원하는 것이 뭐야?
원하는 것이 뭐야?
일단 상대의 수준을 가늠해 보기로 했다.
신체 속도는 구 마인과 비슷하거나 살짝 뛰어넘는 수준이다.
관람 중인 나무 인형보다는 확실히 강해 보인다. 덩치도 훨씬 크고 생긴 것도 다르고 주먹이 아닌 공처럼 둥근 타격 무기를 단 것도 그렇고 아마 전문 전투 병기인 모양이다.
이 이상야릇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살짝 기대되는 테츠다.
아마도 이곳은 과거 말라키가 남겨 놓은 수많은 유적 중의 하나일 거다.
말라키는 무한의 능력으로 인간이 감히 생각지 못한 것들을 창조했다.
니알라토텝의 가호를 직접 받았기 때문인데 마족에게 멸족당할 운명의 생명체에게 태고의 신 니알라토텝은 마법의 힘을 인간에게 주었다.
니알라토텝의 가호를 직접 몸으로 받은 인간이 말라키다. 말라키들은 갑자기 터진 지성 폭발에 무수한 지식을 창조해 냈다. 그때는 정말 혁명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지적 지능의 대폭발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분명히 규격 외의 힘이었다. 인간이 함부로 휘두를 힘이 아닌 신의 능력이었다.
마족이 추방되고 멸족의 고비를 넘기자 힘은 또 다른 불운을 불러왔다. 감정이 풍부한 인간이 신적인 힘을 휘두르면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니알라토텝은 또다시 인간 사회에 개입했다.
그는 세대를 지날수록 말라키의 피를 흐리게 해 힘을 약화했다. 1세대 말라키가 저물고 2세대 3세대를 내려오자 말라키의 능력은 대폭 축소되었다.
가장 큰 원인은 니알라토텝의 저주로 인해 같은 말라키끼리는 절대 잉태할 수 없었다. 대를 잇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평범한 인간과 관계를 맺어 후손을 만드는 것뿐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피가 자연적으로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1세대 말라키들의 당면 과제는 마족에 대항한 인간 구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악의 구별이 있을 수 없었다. 사체도 사용할 수 있으면 사용해야 했고 도덕적 가치관을 넘어선 만행도 당연하다는 듯이 자행되었다.
특히 네크로맨서 스킬은 대부분 끔찍했고 마녀의 주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 많은 지적 결과물이 만들어졌고 그 시대는 그야 말고 반신의 시대였다.
1세대 말라키가 저물고 그들의 힘을 승계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들의 유산은 대부분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말라키 중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종말을 알게 되었고 남은 인류가 또 한 번 멸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후일 인류에게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남긴 것이 바로 지금의 금서다. 그들은 인류의 위기를 단계적으로 설정하여 그에 맞는 상황에 따라 금서의 출현을 맞추어 놓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연구했던 지식을 후대의 자손들이 발견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안배해 놓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많은 세월 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의 지적 수준이 말라키가 생각했던 것 이하로 떨어져 버린 것이 가장 컸다.
인간은 경쟁의 동물이다. 생존을 놓고 경쟁할 대상이 없으면 나약해진다.
평화로운 세상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상대적으로 전투적 고양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전투 기술 또한 획일화되었고 다양성이 사라졌다.
둥그런 나무 주먹은 성인 남자 머리 세배는 되는 크기였다. 이것이 나무라고 해서 얕봐서는 안 된다.
테츠가 나무 주먹을 피하는 순간 바닥을 쳤는데 커다란 구덩이가 팰 정도였다. 각성자라도 저 주먹에 맞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란걸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이 커다랗고 뚱뚱한 나무 인형은 분명 말라키가 남긴 유산일 거다.
테츠는 날아오는 나무 주먹에 파천수라장을 때려 박았다.
테츠 정도의 내공에 도력까지 겸비했다면 단단한 바위도 가루로 만들 위력이 담긴 장력이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무 인형이 중심을 잃고 잠깐 비틀했으니 인간의 움직임과는 다른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균형을 잡았다. 상체가 완전히 한 바퀴 돌아 버린 것이다. 참나무통 같은 허리는 완벽히 한 바퀴가 돌아가도 무리 없게 되어 있었던 거다.
'호오? 주먹이 멀쩡하네? 이거 나무 맞긴 맞나?'
테츠의 파천수라장을 맞은 나무 주먹은 멀쩡했다. 물론 테츠의 손바닥 모양이 각인처럼 찍히긴 했어도 그 외에는 잔금 하나 없었다.
강철과 같은 단단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강도였다.
관중석의 나무 인형은 모두 격투에 집중하고 있고 그들의 머리는 분명 테츠와 나무 인형의 움직임에 맞춰져 있었다.
'눈이 없는데 어떻게 보는 거지?'
그들은 시선이 있는 것처럼 테츠를 쫓았다. 그들의 얼굴은 나무 조각이다. 입도 조각이니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눈도 마찬가지여야 정상이지 않은가? 조각된 눈으로 사물을 본다? 그렇다면 그건 마법이나 주술 같은 다른 요인이 결합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듯이 이들에게서는 그 어떤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기척은 물론 그냥 평범한 나무 인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무 인형의 공격은 단순하고 단조로웠다. 진즉에 승부를 낼 수 있었지만 테츠는 나무 인형의 전투력을 충분히 경험하고 싶었기에 방어에만 집중했다.
'과거 마족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실력이다. 역시 이들도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창조된 생명···. 생명체라고 불러야 할지 묘하긴 하군.'
살펴볼 것은 다 살펴봤고 슬슬 결판을 내도 될 듯싶었다.
그동안 나무 인형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어 움직였기에 다른 사람이 보면 박빙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였을 터였다.
테츠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무 인형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속도로 테츠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라? 녀석 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데?'
비록 속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반발 차이로 계속 테츠를 쫓아 오고 있었다.
-슥
돌연 테츠의 신형이 바닥으로 꺼지듯이 사라졌다.
천마잠행
'오? 이것 봐라?'
테츠가 펼치는 천마잠행 수준이면 칠무신도 눈앞에서 테츠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테츠를 찾기 위해 급히 시선을 옮겨도 테츠를 시각적으로는 볼 수 없다.
천마잠행 자체가 상대의 시선을 피해 지속해서 사각으로 움직이는 경공이다. 그리고 초고수와의 싸움에서 상대를 놓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무 인형은 정확하게 테츠의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해 들어왔다. 즉 천마비행으로 움직이나 천마잠행으로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테츠를 향한 공격은 일관성이 있었다.
'이놈 역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나를 보는 것 이상으로 느끼는···.'
천마잠행은 다른 경공과 달리 기척까지 감추는 무서운 암격의 기술이다. 그런 천마잠행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인간의 오감이 아닌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관람석의 나무 인형조차 테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쾅, 쾅, 쾅
파천수라장의 탄(彈)이 번개 같은 빠르기로 나무 인형의 몸통을 후려쳤다. 인간이 아니기에 혈도 따위가 있을 수 없으니 참나무통처럼 생긴 나무를 후려쳤다.
거기다 테츠는 대충 후려친 것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혈도가 있듯이 나무에는 결이 있다. 나무꾼은 장작을 팰 때 나뭇결을 보고 어떻게 도끼질해야 나무가 잘 쪼개지는지 안다.
테츠는 여유롭게 싸우면서 나무 인형을 충분히 관찰했고 나무 인형 몸체에 난 결 또한 이미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빠각
파천수라장을 맞은 나무의 결이 꺾이며 목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맞은 곳은 뼈가 부러지듯이 움푹 패 안으로 꺾여 들어갔다. 하지만 나무 인형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기세등등하여 날뛰기 시작했다.
'후, 좀 잔인하지만 내 능력을 보여줘야만 하겠군.'
결심을 선 테츠는 달려드는 나무 인형을 향해 발검했다.
-사악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나무는 나무다. 강철 검 그것도 잉겔리움으로 만든 검에는 방법이 없었다.
-쿵
머리부터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나무 인형은 반으로 딱 갈라져 좌우로 튕겨 나갔다.
속 내용이 궁금했던 테츠는 깜짝 놀랐다.
텅 빈 참나무통이 아니었다. 안에는 요상한 구조물이 한가득하였다. 대충 톱니바퀴 같은 것이 수도 없이 빽빽하게 맞물려 있었고 인간의 뼈와 같이 기본 틀을 이루는 나무 막대가 각 관절에 해당하는 원형의 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라? 이건 나무가 아닌 것 같은데?'
정 중앙 역시 반으로 갈라진 묘한 것이 테츠의 눈에 띄었다. 그것은 외형상 커다란 복숭아 씨앗처럼 보였다. 성인 남자 머리만 한 크기의 복숭아 씨앗이다.
-두르르르르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투기장 입구에서 나무 인형이 굴러왔다.
이 녀석은 발 대신 바퀴 네 개가 달린 마차형 인형이었다. 그 옆에 나무 인형 병사 네 명이 같이 달려 나왔다.
이들에게서 기척을 읽을 수도, 감정을 읽을 수도 없으니 공격하러 온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도무지 파악되지 않았다.
테츠는 일단 방어 태세를 유지하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무 인형 병사는 움직임이 멈춘 아마도 반으로 갈라져 버려 안의 내용물이 작동하지 못하게 된 관계로 움직이지 못하는 듯했다.
병사 두 명이 두 쪽이 난 신체를 수레 인형의 짐칸에 옮겨 담았다. 테츠에는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공격할 태세는 아니었고 단순히 두 쪽이 난 인형을 옮기기 위해 나온 것뿐이었다.
"어이! 이 봐들! 내 목소리 들려? 뭘 원하는 거지? 답답해 죽겠네."
크게 고함을 쳤다.
-와르르르르르
나무 수레 인형과 나무 병사는 그냥 그대로 퇴장해 버렸고 또 다른 무언가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등장했다.
테츠는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수 없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데려와 격투를 시키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번에 나온 놈은 하체는 짤막한 데 비해 상체가 거대한 인간형 인형인데 상·하체의 비율이 극명하게 달랐다.
상체에 가려 하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균형적인 외형이었다. 하체가 상체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상당히 잘 가공된, 즉 잘 조각된 인형이었다. 좀 전 나무 인형처럼 투박한 것이 아닌 인간의 근육질 형태를 잘 이해하고 조각한 멋진 조각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야. 이건 부수기 아까운 녀석인데···. 이 친구들 감정이 없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네. 말이라도 통하면 이유라도 들을 건데. 어쩌나?"
테츠는 고민되기 시작했다. 이미 인형의 전투력은 파악한 상태였다. 자신이 마음먹고 공격을 한다면 이 투기장 내 나무 인형을 모조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들에게 죽음이 있을까? 단순한 인형일까? 나무 외 복숭아 씨앗은 무얼까?
이들의 놀음에 계속 동조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했다.
테츠는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인간처럼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이 이거라면 부응해 줄 수밖에."
달려오는 나무 인형을 향해 폭사 되어 갔다. 그리고 일검을 날렸다.
테츠는 정확하게 가슴의 정중앙을 찔렀다. 그 복숭아 씨앗 같은 것이 이 나무 인형의 동력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 어?"
빠르다. 마주쳐 오는 테츠의 일검을 정확히 피했다. 전부 피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 가슴 정중앙 부위를 피한 것이다.
하지만 테츠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검이 박히긴 했는데 겨우 삼 분의 일 정도였고 또 박힌 상태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그대로 밀어 비켜낼 수 있을 터인데 테츠의 완력을 버텨내고 있다.
지금 상황이면 강철이라도 무처럼 베어졌을 터였다.
-부아아악
양쪽 팔이 껴안듯이 테츠를 움켜잡았다. 팔목의 굵기가 테츠의 몸통보다 더 굵었다.
양손에 붙잡힌 테츠를 으깨려는 듯이 엄청난 힘으로 압박해 왔다.
'음, 그렇군. 상대를 토막 낸 것을 보고 이젠 맷집 좋은 녀석을 내 보내왔구나. 오옷, 그래도 이 녀석 완력이 대단한데 거의 6성 내공에 맞먹는 수준이구먼.'
양쪽에서 테츠의 몸을 쥐어짜듯이 압박해 왔지만, 테츠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아예 인형의 완력이 어디까지 힘을 내는지 시험하는 중이었다.
'검이 들어간 느낌으로 봐서는 아직 내부 기관까지 닿지 않았어. 이 녀석 인간으로 치면 완전히 근육 덩어리 구나.'
테츠는 이 나무 인형의 상체가 왜 이렇게 비대한지 이해했다.
테츠는 왼발로 축퇴하여 가슴을 차고 그 반동으로 검을 뽑았고 그 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회전시켰다.
-싹둑
나뭇등걸이 잘리는 소리와 함께 거인 인형의 양팔이 속절없이 잘려 나갔다.
자신을 포박한 양손의 압박감이 사라지자 테츠는 천마심공을 끌어 올려 거인 인형의 가슴에 아수라멸천장을 때려 박았다.
아수라멸천장은 내공 파훼 전문 장법으로 아무리 강한 내가 기공이라도 속절없이 파훼해 버리는 천마 최고의 장법이었다.
이곳에 와서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즉 테츠 정도의 내가 기공을 가진 고수가 없었기에 파천수라장으로만 주신 제국을 평정하고도 남았으니 굳이 최고의 장법을 사용하는 것은 내공 낭비였다.
아수라멸천장을 맞은 거인형의 내부 기관은 그 순간 내부에서 모조리 박살이 나서 조각 조작으로 흩어졌고 테츠가 노린 것은 정확히 몸속에 내장된 복숭아 씨앗이었다.
아수라멸천장을 맞은 동력원이 파괴당하자 거인 인형은 중심을 잃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무너져 내렸다.
"이봐들! 더 할 필요 있겠어?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이래도 계속할 테야?"
테츠가 사자후를 담은 고함을 치자 갑자기 관람석에 앉은 나무 인형들이 귀를 틀어막는 시늉을 하며 기겁하여 우왕좌왕했다.
'응? 이놈들 소리에 민감하네?'
"내 말 들 리 지? 크아~~!!"
내공을 끌어 올려 사자후 일갈을 터트리자 전면 관람석에 앉아 있던 나무 인형이 전부가 와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지듯이 앞으로 쓰러져 내렸다.
"엇! 너무 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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