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나라의 테츠
신비한 나라의 테츠
살다 살다 이런 황당한 경험은 처음이다.
아니 이런 곳이 어떻게 아칸 지하에 있는지 들키지 않고 어떻게 그 세월을 버텨 왔는지 도무지 상상도,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래 나무라고 치자. 인간처럼 호흡할 필요도 없고 먹을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나무가 수천 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나이를 먹듯 세월에 나무도 삭기 마련이다.
그럼 이들도 세대교체가 가능할까? 어떤 방식으로 번식하지? 마력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포탈은 또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것일까?
하늘은 더없이 깨끗하고 푸르렀다. 마치 푸른색 물감을 칠해 놓은 것처럼.
'공기가 여기서 나왔던가? 그럼 차원에서 공기가 그 포탈로 빠져나온 것인가? 아니지, 그곳은 물속과 같아서 바람이 나올 틈은 전혀 없어. 공기를 어떤 수로 밀폐된 통로에 집어넣은 거지?'
묻고 싶은 말은 많으나 이곳 나무 인형은 말을 하지 못하니 그 답답함이 자꾸 커진다.
내 손을 잡은 이 나무 인형은 또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 것인가?
주변에 흐르는 작은 내. 푸른 초목, 아름드리나무들이 전부인 곳이다. 저 밑 언덕 평지에 옹기종기 지어진 것은 인위적인 건축물이긴 한데 사람이 거주할 만한 구조는 절대 아니다.
테츠가 눈대중으로 대충 살펴보니 나무 인형은 100기 정도다. 신기한 것은 같은 모양은 없고 전부 다 다르다는 것이다. 마른 인형이 있으면 뚱뚱한 인형도 있고 키도 제각각에 심지어 조각한 얼굴 모양도 다 다르다.
동력원이 무엇일까?
나무처럼 가볍다.
그런데도 앞서가는 이 나무 인형의 움직임은 매우 유연하다. 사람보다 훨씬 유연하게 움직였다.
'음, 아무래도 말라키가 남긴 유적을 우연히 발견한 것 같네.'
케이사르도 말라키가 남긴 유적 즉 차원 공간을 많이 찾아낸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기간테스가 갇혀 있던 곳도 말라키가 만들어 놓은 차원 속이 아니던가?
그 거대한 거인을 보노라면 이 나무 인형도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워낙 기이한 것을 자주 봐 왔던 테츠지만 이건 정말 황당한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니?"
그러나 말이 없다. 입은 조각이니 말을 하는 게 더 이상하겠지.
살기도 없고 적대 관계를 표현하지 않으니 일단은 이 친구가 하는 대로 맞춰 주기로 했다.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잠시 걸음을 멈춘 나무 인형이 손으로 무엇을 가리켰다.
테츠는 반대편 평원 위에 서 있는 성채 하나를 바라보았다.
"저기로 가자고?"
나무 인형이 다시 손을 잡아끈다.
"알았어. 알았다고 저기가 목적지면 내가 더 빨리 갈 수 있어."
테츠는 나무 인형을 가볍게 안아 들었다. 나무뿐이니 너무 가벼웠다.
천마비행으로 쭉 치고 나가니 주변 풍경이 눈앞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차압."
일소를 내지른 테츠는 커다란 고목 위로 뛰어올라 나뭇가지를 차고 다음 나무 위로 올라 다시 굵은 가지를 차 숲속을 거침없이 이동했다.
안겨 있는 나무 인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호흡도 없고 심장 박동도 없고 그냥 장작 나무 한 덩이를 품에 안고 뛰는 기분이네. 마력이라도 느껴지면 덜 할 건데. 이게 뭐지?'
성채가 가까워지자 테츠는 또 한 번 놀랐다. 모든 것이 나무로 지어진 성이었다. 원래 성이란 방어 용도의 목적으로 단단한 석재로 짓는 것이 기본이다. 이 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나무로 되어 있었다.
성 주변을 삥 둘러 열 폭 이상의 큰 혜자까지 있었고 그곳에는 시퍼런 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성의 입구에는 올림 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정도 거리면 그냥 한달음에 뛰어넘어 성벽 위까지 갈 수 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무 인형을 다리 앞에 내려놓았다.
나무 인형은 다리가 맞물리는 나무 기둥으로 다가가 기대어 있는 나무망치를 들더니 나무 기둥을 냅다 후려 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났다.
서너 번 더 내려치자 성벽 위에서 나무 인형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망치를 내려놓은 나무 인형이 손을 흔들자 성벽 위 나무 인형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는 정적이 찾아왔다. 한참이나 말없이 서 있었다.
'이들도 사회성을 가지고 있나? 성채를 지었다는 것은 계급이 있다는 건데? 나무 인형도 성주가 있나? 혜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적이 있다는 소리인데? 에? 실제 적이 있을까?'
테츠는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다 펼쳤다. 옆에 나무 인형에게 몇 마디 물어봤지만, 언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제스처도 없다.
표정 변화도 없으니 감정도 읽을 수 없어 답답할 지경이다. 그냥 뛰어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때
-그르르르릉
무직한 소리와 함께 혜자 위로 다리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만 듣고서도 저 다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짐작이 갔다. 아주 단단한 나무로 만든 다리인데 생각보다 굉장히 튼튼하게 보였다.
-쿵
다리가 내려오자 테츠는 나무 인형을 바라봤다. 그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 가는 거 맞지? 가도 되지?"
테츠가 제스처를 취하며 움직이려 하자. 나무 인형이 그의 손을 잡았다.
'아직 움직이지 말라는 건가?'
나무 인형이 강하게 그의 손을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삐이이이이익
저 성문의 경첩도 나무로 만든듯하다. 나무와 나무가 살을 맞대고 비벼지는 소리가 묵직하면서도 날카롭게 들려왔다.
큰 소리와 함께 성문은 좌우로 열렸다.
'오호? 그런대로 격식은 갖추었는데?'
성에서 나온 나무 인형은 조금 전 마을 같은 나무 인형과는 확실히 달랐다.
먼저 몸통이 둥그스름한 게 꼭 술 단지 같이 생겼다. 그게 다 원목이라 상당히 단단하게 느껴졌는데 그것에 달린 팔다리도 내 옆 나무 인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단단해 보였다.
키는 2m 전후에 손에 날카로운 창을 들도 있었는데 그것도 다 나무다. 창 앞쪽은 뾰족하게 만들긴 했는데 그리 실용성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워낙 손이 커서 창 자루 굵기가 테츠 엄지 검지를 양손으로 맞닿아 원형을 만든 정도의 굵기다.
창 길이는 3m 정도 되어 보였다.
"후후, 나무 병사인 모양이네. 나무로 만들었으니까 검이 없구나. 그리고 돌과 쇠를 다룰 줄도 모르는 것 같네. 아니지 저들의 관절은 쇠인 것 같은데? 앗. 하하. 화살은 사용하는구나. 나무에 화살을 사용해 봤자 무슨 의미지?"
그러나 곧 그 화살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화살은 촉이 없는 대신 뾰족하게 가공되어 있는데 그 끝에 무언가 시커먼 것이 발린 것을 보니 불화살 용도인 것 같았다.
"하긴 나무에 상극은 불이니까. 음, 저들이 저런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 적대적인 상대가 있다는 건데."
일사불란
나무 병사들의 움직임은 정말 기계와 같이 보폭도 정확했고 움직임 또한 완벽히 일치했다.
모든 병사가 똑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며 앞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들 얼굴을 보니 역시 조각상이다. 입은 있되 벌릴 수 없는 입이다.
창을 세우고 다리를 건너온 맨 앞의 병사가 창을 수평으로 세웠다.
"이거 뭐. 살기가 없으니 공격을 하는 건지 방어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네. 그냥 목석이냐고."
그래도 혹시나 해 공격에 대비했다. 그들이 지척까지 다가오자 옆에 있는 나무 인형이 내 앞을 가로막더니 창을 든 병사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의 둥근 몸체에 대고 노크하듯이 똑똑 두드리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소리에 잠깐잠깐 변화가 섞여 있어 마치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이들의 의사소통 방법을 알게 되었다.
과연 그가 두드리는 소리가 끝나자 성 위에서 나무 작대기 같은 커다란 나무 기둥 두 개가 성문 갑자기 세워졌다.
그러자 병사들이 좌우로 두 발짝씩 옆으로 물러났고 나무 인형은 다시 테츠로 와 손을 잡고 끌기 시작했다.
테츠는 나무 인형을 따라 다리 위를 걸었다. 이들이 언제 돌변하여 덤벼든다 해도 두려운 것은 없었다. 자신은 강철도 된 검을 사용하니 나무 따위야 땔감 만드는 수준으로 쪼개 버릴 수 있을 테니까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성안도 그리 복잡한 구조는 아니었다. 인간의 성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식자재가 아예 없으니 그에 딸린 구조물이 없었고 말이나 다른 동물 또한 아예 없었기 때문에 마구간 등 그런 부속 시설도 없었고 특히 이들은 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쉬기 위한 병영 따위는 어디를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테츠가 무슨 용도인지 알 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 5층 높이의 좌석이 원형으로 빙 둘러 있는 곳. 딱 봐도 투기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든 이 투기장은 바닥 역시 나무를 깔아 만들어 놓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운치 하나는 끝내 주는 장소였다.
"나더러 여기로 들어가라고? 이거 손님 취급이야? 아님. 투기장 전사 취급인 거야?"
분위기가 야릇하게 흘러간다. 나무 인형은 나를 붙잡고 투기장으로 곧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난감하긴 했다. 그렇다고 거부할 정도의 위험은 없어 보였고 이런 것을 마다할 또 테츠가 아니지 않는가?
그냥 호기심이 더 컸을 뿐이다.
나무 인형에 끌려 투기장 가운데까지 걸어 나왔다. 벌써 객석에는 많은 나무 병정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가 혜자 너머에서 기다리는 동안 벌써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가 없으니 함성이 없었고 투기장은 정말 쥐죽은 듯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내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자 나무 인형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곤 다시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키자 또 갸웃한다.
할수 없이 그의 몸체를 노크하듯이 두드렸다.
-탁, 탁, 탁
세 번을 두드렸는데 나무 인형이 화들짝 놀라 서너 걸음 뒷걸음쳤고 앉아 있던 나무 병정 전체가 벌떡 일어났다.
제길 먼가···. 뭔지 알아야지 애들 반응이 왜 이래?
가만 생각해 보니 이들 눈도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지 않을까? 눈도 조각인데 어떻게 투기장 경기며 아니지 마치 앞을 보는 것처럼 전혀 불편 없이 움직이지 않았던가?
"왜? 뭘 어쩌라는 거야?"
노크하는 행동이 의사소통인 건 알겠는데 내가 하니 왜 이렇게 놀라는 걸까? 병사들이 기립한 것은 소리 때문인가? 아니면 내 행동 때문인가?
나는 나무 인형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았다. 그는 반응이 없다.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도대체 이들 원리는 뭐지?'
테츠는 슬슬 짜증이 나서 다시 한번 나무 인형의 몸을 노크했다.
얼마나 잘 다듬었는지 맑고 청명한 목탁 소리가 다 났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더욱더 놀란 것은 일제히 일어섰던 병사들이 다시 착석한 것이다. 동작의 흐트러짐이 없이, 누구 하나 모난 것 없이 수백 명이나 되는 나무 인형의 움직임이 놀랍도록 일치감이 있었다.
일서는 동작, 앉는 동작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건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제야 나무 인형이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건 내가 들어온 투기장 반대편 문이다.
대충 느낌이 왔다.
"아니, 친절하게 날 데리고 온 줄 알았더니 대뜸 싸우라고?"
그 말이 사실인 것이 곧 증명됐다. 반대편 문에서 무언가 굴러 나왔다.
아, 맞다. 걸어나 온 것이 아니고 뭔가 굴러 나왔다.
나무 인형은 내 뒤로 돌아가더니 잽싸게 뛰어나가 버린다.
"야, 야! 인마 어디가?"
-우두두두두두둑
나무 바닥 위라 굴러 나오는 것이 너무 묵직해서 소리가 바닥을 통해 투기장 전체로 진동을 전했다. 그때 그 진동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병사들이 일제히 오른손을 위로 올렸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누가 늦게 들거나 빨리 들거나 하는 놈 없이 똑같이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관람석에 앉아 있는 나무 인형 전원이 오른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다른 행동을 하는 놈은 죽어라 뛰고 있는 나무 인형 저 놈뿐이고.
"하이고 내 팔자야. 뭐가 뭔지 알게 뭐냐. 뭐 싸우라고 하니 싸우기는 하겠다만은 뭔 내용인지 뭘 알고는 있어야지. 이게 뭔 일이야."
-와르르르 쿵!
내 앞에 선 거대한 드럼통같이 생긴 물체가 멈추어 섰다.
상당히 무거운지 투기장 바닥 나무가 무게 때문에 조금 휘어져 있다.
-캬르르르릉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드럼통 아래위에서 손과 발 그리고 희한한 머리통이 튀어나오더니 또 벌떡 일어선다.
"와. 진짜 잘 만들었다. 이거 만드는 기술 배우면 떼돈 벌겠는데?"
움직임이 상당히 부드럽고 다른 나무 인형과 달리 관절 부분에 강철 침이 박혀 있지 않았다. 대신 원형의 큰 구체가 두 개 있는데 하나가 하나를 감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자세한 구조는 분해해 봐야 알 것 같다.
-휘익
녀석이 다짜고짜 공격한다. 주먹이 없다. 대신 원형의 큰 나무 볼이 부착되어 있다. 움직이는 속도가 각성자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무식하게 빨랐다.
-부악
둥근 나무 공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장난 아니었다.
'이것 봐라? 마냥 웃고 있을 때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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