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착수(13) - 준비 태세
조사착수(13) - 준비 태세
테츠는 성내 접견실에 앉아 있었다. 돌 석상처럼 움직임이 전혀 없었고 숨소리조차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브리엄.
아직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전력을 다한 공격.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물론 협소한 공간에서 전력을 다하긴 했으나 비장의 수는 내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성력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내공에 성력을 담아내면 어쩌면 놈을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야생왕이 들려준 이야기 속에 있다.
내공이 극에 다다랐고 도력이 크게 증진했어도 성력은 전혀 다른 차원의 힘이다.
성력이 몸을 망치는 것을 막는 방법이 없었다.
성력을 마음대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시련의 장을 거쳐야 한다.
언젠가 레베카도 그런 말을 했었다. 성력의 힘은 인간의 몸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성황 잉그람이 창안한 시련의 장을 거쳐야 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엘하카드도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인간의 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았고 그는 어렵게 구한 몸이라고까지 했다.
엘하카드도 인간 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온두라스와 마크라스의 경우는 소환할 때 미리 야수화 저주가 걸린 신체를 만들어 놓고 소환했다.
이브리엄은 지성체라 인간계에서는 인간의 몸을 빌지 않으면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의 몸을 빌지 않으면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없다.
"케이사르 그놈은 이브리엄을 지독히고 싫어했어. 잉그람을 인간계에서 몰아내기 위해 마족까지 끌어들인 놈이다. 그런 놈이 또다시 퉁제 불가능한 이브리엄을 이 세계로 소환했다고? 온두라스는 이브리엄을 제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용이었다. 하지만 엘하카드 그놈은 온두라스와는 격이 달라."
제국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케이사르와 엘하카드의 관계도 관계지만 이 사건은 성황 잉그람도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테츠는 사령쥐로 즉시 맨시티의 메흘린에 연락했다.
상세한 내용을 전달하고 엘하카드를 비롯한 문두스, 리브하르트의 사건도 전했다.
테츠가 설명을 끝마치고 사령쥐를 회수했을 때 테드버드가 들어왔다.
"마을은 해방되었습니다. 급히 치료할 병자는 성 입구로 모아 놨습니다. 세실은 성 내부를 계속 조사하고 있습니다."
"가자. 일단 사람 살리는 일이 우선이다."
"알겠습니다."
급한 환자는 테츠가 힐을 내려 대부분의 완치 되었다. 거버트가 성 내부 창고를 털어 비축된 힐링 포션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애석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이 드폴 백작과 그가 고용한 사람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 치료가 끝이 나고 돌아왔을 때 세실도 성 내부 조사를 마쳤다.
다른 흔적은 없다. 그들은 감쪽같이 빠져나갔다.
테츠는 테드버드에 이브리엄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아, 물론 대다수 사람은 현 제국의 황제 잉그람이 이브리엄인 줄 알고는 있다. 하지만 깊은 속내를 알고 있는 부류는 그와 가까운 사람들뿐이다.
"제국에 큰 어둠이 드리운 것 같습니다."
"같은 생각이야. 놈의 목적이 무엇이든 우리에게 좋은 일은 분명 아닐 거야."
"케이사르는 무슨 목적으로 감당하지 못할 이브리엄을 소환한 것입니까? 이브리엄 소환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테드버드의 말에 테츠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케이사르가 어떻게 이브리엄을 소환했지. 더 이상 재료를 구할 수 없었을 텐데···."
"놈이 다시 여기로 오지 않겠습니까? 혹시나 모르니 덫을 놓겠습니다."
"아니 놈은 완전하지 않아. 내 무력을 보았으니 쉬이 덤비지는 못하겠지. 그놈도 인간 몸뚱이가 귀중한 줄 아니까. 섣불리 행동하지 않을 거야. 계속 싸웠다면 내가 이길 거란걸 그도 느꼈을 테니까."
"리브하르트 마을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저희를 드폴 백작의 부하로 알고 있습니다."
"희생된 마을 사람은 몇 명이지?"
"정확히는, 얼핏 수습된 시체를 보니 오백 명을 웃도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이 일에 드폴 백작이 관련되어 있습니까?"
테드버드의 몸에서 살기가 일었다. 무엇보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테드버드이니 이번 참사에 분노를 넘어 살기가 끓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놈은 각성자다. 무엇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거겠지."
"케이사르에게서 말입니까?"
"이 정도 일로 앞에 나서지는 않았을 거고 수하 정도 되는 놈이 나선 거겠지. 내가 조금 늦어 버려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갔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포탈을 이용한 것일 수도 있고."
"포탈이라 상당히 귀찮은 스킬입니다. 저희도 이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추측에 하나에 의지한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아.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을 때까지는 말이야. 그건 그렇고 리브하르트를 먼저 처리해야겠군. 이번 일은 션사인 글로리와도 연관되어 있어 우두머리 리치 발몬드 또한 각성자야. 놈도 어떤 것을 제공하고 대가로 받은 거겠지. 두 놈이···. 들어와 세실 밖에서 뭘 그리 서성거려?"
테츠의 말에 밖에 있던 세실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두 분의 말씀을 방해할까 하여. 잠시 망설였습니다."
"오는 발소리에 감정이 실린 것을 보니 중요한 것을 발견한 모양이구나."
"역시 교주님이십니다. 이걸 찾아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세실이 가져온 것은 작은 책자였다. 살펴보니 수기로 적은 것인데 알수 없는 마법식과 문자, 문양이 가득했고 딱히 설명한 문구는 없었다.
테츠는 그 책에서 독특한 사기를 느꼈다. 즉 이 책을 쓴 자는 네크로맨서라는 것이고 상당한 사기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이 책을 쓰는 동안 사기가 책에 옮겨붙은 것이다.
테츠는 문양을 보면서 잠시 눈빛을 빛냈다.
"아칸의 사건을 알고 있지?"
"영혼 수확 말입니까?"
"그래, 아칸의 십만 영혼을 제물로 바쳤지."
"혹시 그럼?"
"문두스는 솔라리스 왕국에서 두 번째 큰 도시다. 순수 인구수로만 따지면 아칸과 비슷하지."
"설마! 이곳에도 영혼 수확이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이건 그 설계도인 것 같다. 여기 그려진 지도는 문두스가 확실하고 이 주문은 나도 기억하고 있어. 디오스 워툼 포노, 워룸 포노 디오스 아툼 아노스 마노 여기도 주문을 잘못 적어 놓았군. 정답은 워툼 디오스 포노 순이다."
"막아야 합니다. 제2의 아칸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테드버드의 목소리는 격앙됐다.
"이 사실이 성군에 알려진다 해도 칠무신이 개입할 수 없지. 또한 아칸에서 이곳까지 출병도 시기상 무리고 아칸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은 오군단의 발목을 잡기 위한 미끼인 건가?. 실제 목적은 문두스의 영혼 수확?"
"이놈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영혼을···."
"우린 그때 아칸에서 죽은 영혼의 수집한 소울 크리스털을 회수하지 못했어. 나는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치고 하지만 성왕 잉그람은 알고 있었지. 소울 크리스털의 존재를." "그럼 성황은 그 사실을 알고서도 크리스털을 회수하지 않은 겁니까?"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제국의 어둠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지. 능구렁이 황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입도 뻥긋하지 않아. 황제의 진정한 목적도 몰라. 아칸은 어때? 남아 있으라는 거버트까지 다 건너온 거면?"
"이곳의 상황이 급해서 제가 넘어오라 했습니다. 오군단은 만만치 않습니다. 엘스칼라의 방어라면 그들만으로 충분하며 아.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테드버드는 윌리엄 대공으로부터 백작으로 서임 받고 침묵의 숲 전체를 자신 소유로 하사받았다고 했다.
"제 소유의 땅이니 이는 곧 마교의 땅입니다. 그곳을 개간하면 얼추 맨시티를 능가할 정도의 도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넓은 땅이 필요 했는데 네가 딱 좋은 선물을 받았구나. 역시 하늘은 스스로 정의맹을 만드시는구나."
"정의맹이 무엇입니까?"
"정파 연맹 단체다. 무림맹이라고도 하니 음, 쉽게 설명하자면 기사도 정신을 신봉하고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단체를 의미한다. 마교는 복합적인 단체지. 모든 것에 이익이 우선인 단체다. 이익을 좇기 위해서 때론 좋지 못한 일도 스스럼없이 해야 한다. 하지만 정의맹은 기사도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는다. 오직 정의를 수호하는 데 중점을 두는 곳이지." "마교의 분파입니까?"
"원래 뿌리가 달라. 나중에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지. 침묵의 숲은 부교주 자네의 것이지 마교의 것은 아닐세."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마교의 부교주를 담당하고 있는데 개인 사리사욕을 앞세운다는 것은 후배와 제자들 앞에 보기 좋은 본보기는 아닐 겁니다. 재산을 탐하는 것을 보여 주면 너도나도 탐욕에 빠질 겁니다. 저희가 가진 무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각 국가의 귀족이 잉겔리움 검을 손에 넣기 위해 많은 황금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저네 마교에서 직책이 뭔가?"
"부교주님입니다." "그래 부교주지. 그건 마교에서 두 번째로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야. 언제까지 내 의견만 뒤쫓아 올 생각인 거야? 지금 상황에서 내가 없어지면 마교는 쉽게 붕괴할 거야. 자네를 부교주에 앉힌 목적은 내가 없더라도 마교를 유지하고 이끌어 나가라는 의미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는 더 많은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안 돼. 스스로 목소리를 높일 줄 알고 강력한 지도력으로 제자들을 이끌어 가야지."
"명심하겠습니다." "아칸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곳 일부터 먼저 처리하도록 하지.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걸레짝 취급했던 놈을 그냥 두면 앞으로 더 곤란한 사건이 발생할 테니 더 자···."
"자라기 전에 뽑아 버려야죠. 그것도 깔끔하게 말이죠."
"제자 중에 실력 좋은 친구가 누가 있지?"
"정보를 모으시려고요?"
"놈들을 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워. 하지만 이곳은 대대로 리브하르트 가문이 다스려온 곳이고 마을 사람들도 백작의 식솔이나 마찬가지야. 뱀의 대가리를 쳐 내면 몸뚱이는 곧 죽어 버리지. 리브하르트 가문을 들어내면 이곳도 곧 무너져 내릴 거다. 신중하게 생각해야지. 계획은 세우기 전에 정보를 끌어모으는 것도 중요해. 그리고 놈이 이런 중요한 정보가 담긴 책을 흘리고 간 것도 수상해 마치 찾아서 읽어 보라는 듯이 말이야."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옳은 듯합니다." "그래, 테드버드 자네는 감정에 너무 빨리 동화되어 휩싸이는 것이 단점이야. 무릇 단체의 우두머리 자리에 앉아 있는 자라면 좀 더 거시적으로 상황을 두루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해. 감정은 시각을 좁게 만들어 그릇된 결정이 선의 이름에 빗대어 정당성을 부여하도록 종용한다고 그 덫에 빠지게 되면 자넨 결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을 거야. 졸부와 영웅은 한 끗 차이라는 걸 명심해. 자넨 정의맹을 이끌어가야 할 맹주가 되어야 할 제목이니까." "···."
테드버드는 테츠의 말이 난해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간혹 테츠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 뜻을 물거나 파악하는 데 메흘린의 도움을 얻곤 한다. 메흘린은 테츠의 말을 일일이 적어 모르는 단어를 추출하고 해석한 해설집을 가지고 있었다.
테드버드와 테츠는 리브하르트 사건의 해결에 머리를 모았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고향이다.
큰 사건이 해결된 상태에서 그들에게 집을 버리고 떠나라는 말은 할 수 없는 상태다.
테츠는 테드버드에 마을과 성의 경비를 맡기고 홀로 문두스로 내려왔다.
성내가 시끌벅적했다. 모그룩이 돌아왔다는 보고가 성주 레이몬드 아스펠에 전해졌고 그는 급히 모그룩을 불러들였고 관계된 인물 또한 한자리에 초대했다.
그곳에는 당연히 리브하르트 가문의 주인 드폴 백작은 물론 선사인 글로리의 주인 리치 발몬드도 함께 했다.
"제게 맡겨진 임무는 완벽하게 처리 했습니다."
모그룩이 가지고 온 보자기는 집사 그레고리의 손에 들려 있었는데 그레고리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보자기를 풀어 헤쳤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잘린 사람 머리 하나였다.
"이 자를 확인할 수 있는 분은 드폴 백작이실 겁니다. 이 자를 실제로 마주한 사람이니까요. 확인해 보십시오."
드폴의 안색은 창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는 흰 눈을 위로 까뒤집은 머리를 대충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자는 로지웰이오."
-탁
영주 레이몬드는 의자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심 장군! 출병 준비하게 로지웰의 잔당을 쓸어 버리고 리브하르트의 시민을 구하게. 드폴 백작도 함께 참여하여 자리를 빛내 주시겠오?"
"물론입니다. 다만 섣부른 행동에 저희 백성에 위해가 가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모그룩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모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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