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의 습격
마족의 습격
"대열을 유지하시오! 대열이 무너지면 방어벽 또한 무너질 거요."
알프레드는 베틀 워락을 지휘하며 분전했다. 타이탄 그놈 장군이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마족에게 달려들었다가 큰 상처를 입어 뒤쪽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힐링 포션과 힐러가 동원되어 치료 중이다. 베틀 워락이 그 정도의 치료를 받는다면 상당히 크게 다친 상태라고 봐야 했다.
괴물 아이.
절대 외모에 속아서는 안 된다. 천진난만한 눈을 가졌고 보면 누구라도 한 번쯤 안아 주고 싶은 충동에 빠질 만큼 귀엽게 생긴 아이들이다.
특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알몸에 대체로 마른 몸을 하고 있어 혹자는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외적인 외모일 뿐이며 실제 그들의 행동은 소름 끼치게도 한 마리 악마와도 같았다.
이들은 각성자와의 전투를 통해 회복이 빠른 인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죽이는가를 터득해 잘 알고 있다. 대부분 머리를 부수거나 고사리 같은 손을 심장에 찔러 넣어 움켜잡거나 뽑아낸다.
그들의 힘 앞에 인간이 만든 갑옷 따위는 종잇조각과 같다. 베틀 워락은 마법사 집단이지만 기사의 기술을 병용하는 마법 전사 군단이다.
황제의 성군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군대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이 발가벗은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쩔쩔맸다.
가장 악랄한 마녀보다 더 악랄한 놈들이다. 이놈들은 도덕적인 가치관이 전혀 없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다 죽여 버리는 살인 기계 같은 놈들이다.
아이의 외모에 당황해 잠깐이라도 틈을 보이면 어김없이 저승 구경할 정도다. 이놈들의 속도 또한 얼마나 재빠른지 베틀 워락의 부대 한 가운데 뛰어들어 상처 하나 없이 무쌍을 찍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베틀 워락이 각성자에다가 순도 높은 검술을 펼칠 수 있어 사상자를 줄이는 정도였다.
"상처를 입었다면 즉시 빠지시오. 괜히 어물쩍거리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만 돼."
알프레드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곳 엠버스피어 오크의 총관리 책임자는 자신이다. 하지만 오크 대신 선택한 것은 인간인 베틀 워락이다.
이런 행동에는 아울의 조언이 깔려 있었다. 마교는 베틀 워락에 빚을 씌워 두는 것이 좋겠다는 아울의 말을 따른 것이다. 특히 그놈 장군의 부상으로 비워 버린 지휘부의 역할을 알프레드는 매우 효율적으로 운용했다.
알프레드는 과거 3인이 전부였던 개인 용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구가 수만의 군단을 효율적으로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은 마교의 절대적인 계급 구조 때문이다.
장로라는 입장에서 군단이 아닌 제자라는 시스템은 특이했다. 특히 장로별로 복장이 다 다르고 색상도 달라 마교 내 장로의 제자들은 결속력이 일반 군대와는 아예 질적으로 달랐다.
군단과 그 군단을 지휘하는 군단장과 장로와 제자들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특히 그동안 굵직굵직한 싸움판에 직접 참여한 실전 경험은 장로들에게 군단급 인원을 통솔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테츠가 장로들에게 사소한 책임까지 물은 것은 그들의 지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특히 부하들의 실수는 곧 상위 통솔자의 책임이라고 강조하고 마교는 늘 연대 책임으로 상과 벌을 논했다.
오크와의 전투, 마족과의 전투를 통해 마교는 알게 모르게 대규모 전투에 빠르게 적응했다. 특히 초기에 모집한 인원이 별 볼 일 없는 인원이 대다수였지만 마교의 소문이 무르익고 고급 인재가 모여들기 시작하자 마교는 더더욱 견고해져 갔다.
이와 더불어 장로들의 지휘 통솔력도 빠르게 높아졌다. 그것은 늘 테츠가 책임 의식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알프레드는 그놈 장군 대신 지휘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게 베틀 워락을 지휘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실제 전투에는 뛰어들지 못했다.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다면 마족 한두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놈 장군의 부탁으로 지휘하고 있으니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알프레드를 믿고 베틀 워락의 지휘관들은 자신의 부대에 집중할 수 있었고 하필 그놈 장군의 부관이 그놈 장군을 업고 후퇴하는 바람에 지휘석이 완전히 빈 상태였다.
알프레드의 사자후는 전투에서 핵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왕좌왕하는 이가 없도록, 전 인원이 다 들리게 내지른 사자후는 베틀 워락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데 큰 구심점이 되어 주었다.
마족 괴물 아이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각성자인 베틀 워락도 애를 먹었다. 난전 상황이라 아군의 피해를 우려해 고급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풀기 힘든 난제 중 하나였다.
원래 마법사의 전투 방식이 접근하는 적을 원거리 포격부터 시작해 진을 빼놓은 것을 우선으로 하고 근접했을 때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싸우는 것이 마법사만의 전투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간격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마족의 움직임이 너무나 빨랐다.
베틀 워락쪽에서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알프레드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여기서 지휘를 포기하고 전투에 뛰어들면 신경 쓰지 못하는 쪽의 부대를 시작해서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도 않았고 덥지도 않았지만, 알프레드의 이마에 땀이 다 맺힐 정도였다.
심각한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초기 열 명 정도였던 마족이 시간이 갈수록 성벽을 넘어오는 인원이 많아지고 있었다. 마족에게 성문 자체는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그들은 성벽을 간단하게 타고 넘었다.
베틀 워락은 노련하고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베테랑들이다 그런데도 마족 한 마리조차 잡지 못해 쩔쩔맸다.
"여어? 한가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어?"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알프레드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뭐해? 말할 시간이면 저놈들을 좀 처리해."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은색으로 빛나는 창을 어깨에 메고 있는 세실리아였다.
그 뒤로 엘빈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알프레드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지휘할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이었다.
"그 자리나 잘 지키라고 모처럼 땀 좀 흘릴 테니까."
그녀는 은창을 휘두르며 엘빈의 뒤를 따라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로 마교의 제자들이 환호성을 내 지르며 전투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검과 같은 무기로 특히 잉겔리움 무기를 지닌 마교의 제자들은 근접전에서 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효율을 냈다.
마교 제가 둘이 붙으면 효과적으로 마족을 압살할 정도였다. 한 명이 마족의 길목을 차단해 움직임을 방해하면 나머지 한 명이 공격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마족으로 제압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한 모양새였다.
엘빈이 장풍을 날리며 마족의 움직임을 차단하자 그의 제자 중 경신의 달인인 와이어트가 단번에 마족의 목을 쳐 날려 버렸다.
근접전에서만큼은 마교의 전투력은 거의 압도적이 다 못해 패도적이었다. 광분한 엘빈의 장력에 무수한 흙더미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마교 제자 개개인의 능력 또한 내공이라는 특수 때문에 근접전에서 아예 적수가 보이지 않을 만큼의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마족의 움직임도 뛰어나지만, 내공으로 펼치는 경공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천마비행으로 베틀 워락은 꿈도 꾸지 못할 속도로 움직이며 마족을 압박했다. 마족 괴물 아이들은 마교의 등장으로 전세가 역전당하자 갑자기 달아나기 시작했다.
"와이어트, 웨우드 너희 둘만 나를 따라와라."
엘빈은 두 제자를 데라고 마족을 추격하기 위해 성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당황하지 말고 모두 대기하시오. 조금이라도 다친 부상자는 즉시 뒤로 빠져 치료에 전념하시오."
알프레드는 세실리아를 보고 외쳤다.
"북쪽은?"
"걱정하지 마. 미친 애가 갔으니···. 알지? 아마 이쪽보다 더 난리 났을 거야."
"세렌이 갔으면 뭐···.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교주님은?"
"바쁘다고 우리 더러 가서 정리하래."
"저 친구는 누구야?"
"아, 제? 좀 사연이 있어."
"어? 아! 저런!"
알프레드는 '헉' 소리를 내지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한 젊은이가 궁지에 몰린 마족에 덤벼들다 가슴을 꿰뚫리고 말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가슴 한가운데 심장을 관통당한 채로 즉 가슴에 통과한 괴물 아이의 손을 양손으로 움켜잡은 채 버티자 옆에 있던 마교 제자 한 명이 검을 휘둘러 괴물 아이의 머리를 잘라 버렸다.
그는 가슴을 관통한 마족의 손을 쑥 빼내더니 세실리아 쪽을 바라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니? 심장을 관통당하지 않았나?"
"아, 알프레드 장로는 재 처음 보는구나. 저래 보여도 교주님 직계야. 우리 장로 서열 중 막내라고."
"아니 내 말은 심장이···."
"아, 안 죽어 재. 죽일 수가 없어. 뭐 그렇다고. 참 오랜만에 왔는데 혹 창고에 술 남은 거 있어?"
"있을 거야."
"아후, 좋아. 오늘 저녁에 거나하게 한 잔 때리자고."
"아니 마족이 언제 습격해 올지···."
"한잔하고 싸워도 마족 정도는 우습지. 이번에 아주 혼이 났으니까 당분간은 못 덤빌 거야. 북쪽에 가 볼래? 정리 끝났을걸?"
***
"제길! 언니 제 몫도 남겨 두라고욧!"
"먼저 죽이는 게 임자지 몫 타령은 걸리적거릴 거면 저기 따로 가서 놀아 괜히 방해하지 말고."
이쪽은 단둘이서 이미 평정을 다 해 놓은 상태다. 목이 잘린 아이의 시체가 군데군데 엎어져 있었다.
마족은 며칠 베틀 워락과도 싸워봤고 오크와도 싸워 봤다. 전투의 질이 베틀 워락보다 오크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마족 인원 대부분이 북쪽 성벽을 넘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럴싸한 계획은 단 두 명의 난입으로 인해 박살이 나 버렸다. 상황이 불리하면 도망가기라도 했지만 이건 도망갈 틈도 주지 않았다.
마족에게 일방적이라는 말을 통용시킬 수 있는 사람은 세렌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검을 표현 하자면
'무자비'
일말의 인정도 담기지 않는 무자비함의 극치였다. 압도적인 속도로 오크를 농락했는데 그 속도를 능가해 버리는 적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지독히 매정한 검을 가진 자가 말이다.
속수무책
대비할 방도가 없었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냥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세렌의 검은 날이 갈수록 날이 섰고 검법은 완숙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오랜만의 출격이라 세렌의 팀 동료도 모두 합세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전투에 참여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세렌의 호통이 터져 나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럴드는 전장을 내려다보며 세렌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는 문득 옆에 서 있는 트리스탄의 분위기가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왜? 분해?"
"네, 그럼요. 저희는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는데···."
"어쩔수 없잖아. 오크는 포션이 통하지 않으니까. 대신 내공에 버금가는 완력이 있잖아."
"네, 하지만 수련 기간이 길어요. 너무나 아쉽습니다. 이번 전투로 그동안 공들여 갈고 닦은 전사들을 너무나 허무하게 잃었어요."
"이제는 완전히 인간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네."
"저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늘 동료가 많이 죽었습니다."
"전쟁이란 어쩔수 없는 거야. 언젠가 나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검을 손에 쥐고 있는 이상 어느 전장에서 어떻게 죽을지 몰라."
"그동안 잠도 안 재우고 열심히 수련시킨 인재들인데요. 그들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어야 하는 심정을 아십니까?"
"그래,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다고 낙담하면 안 돼. 넌 수십만 오크를 이끌어 가야 하는 왕이라고."
"오크가 이렇게 나약한 것을 오늘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어쩌면 오크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희망이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교가 저희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도 없었을 텐데."
"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나 같으면 부모를 죽인 원수를 스승으로 모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을 건데 말이야."
"저도 마찬가지예요. 단지 아버지의 마지막 명령이 있었기에 그것을 지키고자 다짐했을 뿐입니다."
"아버지의 명령?"
"네. 교주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에게서 배우라고 그러면 내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을 거라고. 아버지는 스승님에게 저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스승님은 흔쾌히 그걸 수락한 것이고요."
"그렇긴 해도 원수와 함께 지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할 수 있어."
"대신 오크를 위해 헌신할 수 있고 오크의 나라를 세울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죽음이 절대 헛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당시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고 복수의 날을 세우기 위해 스승님을 저버렸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거고 오크는 제국에서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겠지요."
제럴드는 트리스탄이 옛날의 꼬마 오크가 아닌 진정한 오크의 왕으로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백성을 아낄 줄 아는 마음과 그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의 분함이야말로 군주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미덕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세렌은 마지막 괴물 아이를 양단 내며 검을 거둬들였다.
그녀의 얼굴은 늘 불만족이다. 양껏 힘을 쓰지 못해 개운치 않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진짜 괴물이군."
"저도 세렌 장로처럼 강해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우린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거다."
해는 머리 꼭대기에 떠서 뜨거운 햇볕을 내리쬐고 있고 엠버스피어를 습격한 마족의 난리통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
"죽여라. 나를 죽여라."
날카로운 여인네의 목소리가 지하실 가득 울려 퍼졌다.
"시끄러."
-퍽
둔탁한 소리 뒤로 사방이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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