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과 진실
고문과 진실
탈로스의 손바닥이 투구를 쳤고 박살 난 투구는 산산이 깨져 흩날렸다. 투구 속 기사의 얼굴이 드러났다.
탈로스의 기억에는 없는 녀석이다.
아칸 거리에서 흔하게 마주칠 법한 인상의 평범한 기사였다.
기사에게도 소울 슬립 방지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네크로맨서 주술과 혼합된 방식이라 마법적으로 푸는 방법은 아예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탈로스는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하려 했으나 시간 낭비일 거라는 생각에 손을 내렸다.
이제 직접 대화로 이 문제를 풀어가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는 상대의 의중을 확실하게 떠보는 것이 가장 우선의 방법이다.
"이봐, 진실을 말한다면 네 목숨은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있어."
기사는 고개를 흔든다.
"그분을 배신한 시점에서 제국 어디에 있든 살아날 방법이 없소. 난 이제 죽음 목숨이나 마찬가지요."
탈로스는 기사의 눈빛에서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럼, 더는 고통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죽여 줄게."
"죽이고 싶으면 지금 당장 죽이시오. 내 입에서는 그 어떤 정보도 들을 수 없을 거요."
"고통이라는 것이 말이야.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있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거든.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정신까지 파괴해버려. 이 악 깨물고 버틸 수 있는 단계가 아니란 거지. 넌 각성자로 살면서 고통에 아주 둔감해져 있을 거다. 그러니 날 선 고통은 더더욱 참기 힘들겠지? 조금 전 보여준 것은 맛보기에 불과해. 네 정신력이 강할지 내 기술이 강할지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탈로스는 작은 천을 찢어 귓구멍을 막았다.
"뭐 하는 거요?"
"뭐라고"
탈로스는 귓구멍을 막을 천을 빼내며 말했다.
"이건 마녀의 숨결이라는 가시억쇠 나무 진액을 발라 말린 솜이야. 소리를 아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네가 비명을 꽥꽥 질러 댈 것 같으니까 내 귓구멍 보호차원에서 미리 끼우는 거야. 이제부터 말하지 말고 몸짓으로 해야 해. 말로 하면 내가 못 알아듣거든."
눈앞에 추악한 난쟁이는 기사에게 더없이 두려운 존재로 비췄다. 추악함은 곧 악마의 얼굴로 대체 됐고 일말의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의 행동은 진짜 악마가 현신한 것 같은 공포를 불러왔다.
이 악마 앞에서 자신이 각성자이고 최고의 무인이라는 자신감은 벌써 무너져 내리고 없었다.
탈로스는 귓구멍을 막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았다.
기사는 단검을 보고 검에 찔리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탈로스는 품에서 검고 작은 주머니 하나도 꺼냈다. 그리고 혓바닥으로 단검을 슬슬 핥더니 기사의 상의를 완전히 뜯어냈다.
그리고 단검으로 가슴 부위 살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얇게 포를 떠내는 것이다.
기사 에드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각성자라서 이 정도 고통은 사실 별거 아니었다.
포를 떠낸 탈로스는 검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줌 꺼내 상처 부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으악!"
그냥 비명이 저절로 튀어나와 버릴 정도의 극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살이 벌겋게 단 인두에 지져지는 것 같은 것 이상의 고통이었다.
검은 가죽 주머니에 든 가루는 소금을 닮은 흰 가루인데 이것을 제조한 것은 아가므네다. 그녀는 평생 독과 함께한 독의 달인이었다. 여기에 테츠가 중원의 독공을 전력으로 전수하였기에 실제로 그녀는 어쩌면 테츠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암살자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흰 가루가 상처 부위에 떨어지자 포를 떠 안 그래도 쓴 느낌인데 흰 가루가 떨어지자마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각성자라고 해서 고통 레벨 지수가 많이 떨어진 것임에도 이런 고통을 느낄 정도면 대단한 물건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각성자 고문용으로 재미 삼아 만든 것이다. 자신은 테츠처럼 소울 슬립이란 고급 스킬을 사용할 수 없기에 각성자 고문용으로 만든 것이며 테츠가 재미로 한 주머니 얻어 놓은 것인데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특히 탈로스가 말한 것처럼 평소 거의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각성자는 고통에 대해 둔감해져 있으므로 이런 고통을 갑자기 당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에드문이 괴로운 것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더더욱 괴로웠다. 흰 가루가 묻은 상처는 치유조차 되지 않았다.
' 그러거나 말거나 탈로스는 다음 위치에 포를 뜨기 위해 단검을 들이댔다.
-스스슥
잉겔리움으로 만든 단검은 종이 자르듯 기사의 피부를 도려냈다.
"으아악. 그, 그만. 아, 알고 싶은 것이 뭐요."
그러나 탈로스는 귀를 완전히 막고 있어서 기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스처를 취하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손을 들 수도 없었다.
다시 상처 위로 흰 가루가 솔솔 떨어지자 기사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두 눈을 까뒤집었다.
비록 점혈했지만, 근육에 힘이 들어가 온몸이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얼마나 극심한 고통인지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흰 가루에는 지독한 독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살이 타올랐다.
그가 가죽 주머니를 열자 기사는 두 눈을 부릅뜨며 발악하듯이 외쳤다. 그러나 탈로스는 전혀 안 들린다는 듯이 상처에 다시 흰 가루를 살살 떨어뜨렸다.
결국 기사는 부르르 떨더니 하체를 축축이 적셔 버렸다. 얼마나 고통의 레벨이 높으면 인내심이 극한에 이르렀다는 기사가 똥오줌을 지릴 정도인 거다.
귀는 안 들리지만, 냄새가 확 올라오자 그제야 귀를 막고 있던 천 조각을 뺐다.
"뭐야? 뭐라고 한 거야?"
"마, 말하겠다고 그렇게 외쳤잖소. 제발 이 고통을 멈춰 주시오."
"인마! 그럼 진작부터 그렇게 말하지."
"말했어요. 말했단 말이오. 진작부터 말했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기사의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고였다.
테츠는 고통을 끊어 버리는 신경절이 모인 곳을 점혈했다. 이러면 인간은 당분간 고통에 면역이 된다.
대신 몸 전체가 감각을 잃어버려 아예 움직이지 못한다. 촉각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시작하자. 여기서 리치로 무얼 하려는 거지?"
"아칸을 전복 및 탈환하려고 합니다."
"왜 리치 따위로 하는 거야. 너희도 각성자가 많을 텐데?"
"각성자는 나설 수 없습니다. 마교 교주와 그 휘하 용병들이 모두 오비디언스 샤우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들이 개입하면 각성자는 소용이 없어서···."
"음, 그래서 그 대안으로 리치 부대를 소환했다 이거군."
"그, 그렇습니다."
"그럼 리치로 선제공격을 하면 되지 다 들킨 마당에 지금까지 왜 시간을 끈 거야?"
"이번 거사는 철저하게 계획된 것입니다. 저쪽에서 준비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어쩔수 없이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쪽? 어디를 말하고 무슨 계획인 거냐?"
"저희는 철저한 점조직 체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로 간에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지, 진실입니다."
"그러니까 이곳 리치는 네가 맡은 임무고 저쪽은 누가 무슨 임무를 맡은 건지 모른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한쪽이 실패하거나 무너져도 전체 계획에 차질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네가 맡은 임무는 리치를 소환해서 때가 되면 아칸을 공력하는 거지? 너희 본부는 어디에 있느냐?"
"맞습니다. 저희 쪽 계획을 맡아서 운용하시는 분은 필포드 경입니다. 저는 그분의 수하로 여기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너희 각성자 대부분 여기에 있나?"
"그렇지 않습니다. 필수 요원만 이곳에 배치되었고 나머지는 다른 장소에서 대기 중입니다."
"다른 장소?"
"고대 말라키가 만든 장소 중 하나입니다. 저도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만 갈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
"필포드 경이 그곳으로 통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에 목걸이처럼 걸고 있는 펜던트입니다."
"리치는 어디로 옮겼어?"
"그건 타라스가 알 겁니다. 필포드경의 명령으로 다른 장소로 이동시켰습니다. 성군이 이곳을 습격하면 리치를 잃을 수가 있기에 미리 빼돌린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너희는 준비가 먼저 끝났는데 저쪽에서 준비가 덜 됐다는 거구나?"
"바로 그렇습니다."
"저쪽에서 계획이 성공했다면 성군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거냐?"
"아예 상대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계획은 철저하게 준비된 완벽한 계획 일부분입니다. 물론 변수가 없지 않았습니다. 이곳을 모험가들에게 들켰으니 말입니다."
"몰레이그는 어디에 있지? 그는 어떻게 터무니없이 강해질 수 있었던 거지?"
"몰레이그는 이제 케이사르님의 오른팔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에 대한 보안은 가장 높습니다. 저따위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에 관한 내용은 모두 비밀에 부쳐져 있습니다. 필포드경도 모를 정도인데 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망감이 크다. 케이사르가 자기 조직을 이렇게 만든 것은 마교 교주에거 엄청난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전혀 계획에 없는 아예 생각지도 못한 집단.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모든 것에 재를 뿌리며 다니고 있는 집단.
마교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케이사르가 위험을 감수하며 마교 교주를 만나 보려고 결심한 이유기도 하다.
도대체 마교 교주란 작자는 어떤 자이며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는 은근슬쩍 황태자를 찾아 달라는 임무를 의뢰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교 교주를 떠보기 위한 농담 식 의뢰에 지나지 않았다.
황태자를 찾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한 케이사르다. 용병 단체 따위가 황태자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그는 단지 마교 교주가 어떻게 행동할지 그것을 알아보려는 방편일 뿐이었다.
기사 에드문이 저쪽이라고 말한 것은 정말 저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탈로스는 그가 거짓을 말하는지 표정, 눈동자의 움직임, 심장박동, 호흡의 균일도까지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이쪽은 단지 리치를 관리하는 정도고 진짜는 저쪽이라는 모양인데. 무슨 일을 꾸미는 거길래 성군이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고?'
탈로스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했다.
"성군에는 칠무신이 두 명이나 있어 그들이 아칸에 거주한다면 이따위 리치로는 아칸을 침공할 수 없을 거다. 칠무신의 능력을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칠무신도 명백한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오. 그들도 어쩔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들었소. 그뿐이오. 그것이 무슨 계획인지는 나는 모르오. 고문을 해도 모르는 사실은 모르는 것일 뿐."
"저 네크로맨서의 이름은?"
"들었지 않았소? 그는 타라스요."
"몰레이그의 제자인가?"
"아니오. 그는 살아남은 네크로맨서 중 하나외다."
"살아남은 네크로맨서라면 과거 반란 때 말이지?"
"그렇소. 몇몇 잡지 못한 네크로맨서 무리가 제국 곳곳에 숨었고 그들에게 많은 현상금이 걸렸지만, 아직도 잡히지 않고 숨어 지내던 네크로맨서요. 케이사르 공께서 그들을 찾아내 한곳에 모았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곳에 다녀온 이후로 능력이 완전히 변했으니까."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고?"
"당연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소. 우리는 우리가 맡은 임무만 집중하도록 명령받았고 비밀은 될 수 있는 한 듣지 않는 것이 오래 사는 방법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그때 갑자기 에드문이 문을 까뒤집고 입을 벌리고 붕어처럼 뻐끔뻐끔하기 시작했다.
"제길 독이 발작한 거군. 적당히 하랬더니···."
아가므네가 만든 독극물의 효과가 너무 뛰어났다. 탈로스가 미쳐 손을 쓰기도 전에 기사 에드문은 눈을 부릅뜬 채 심장이 멎어 버렸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혈도를 닫은 탓에 고통을 느끼지 못해 독이 전신으로 퍼졌고 결국 심장 안으로 침범해 심장이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원래 마족을 죽이기 위해 제작된 독이라 각성자에게도 같은 효과를 보였다. 그것도 고문용으로 성능을 많이 낮추었다고 들었다.
에드문이 죽어버리자 남은 것은 네크로맨서 타라스 뿐이었다.
정신을 차린 타라스는 눈을 치켜뜨고 탈로스에게 거침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탈로스가 격렬한 고통이 느껴지는 혈도 몇 개를 자극하자 게거품을 한 번 물더니 묻지도 않은 것까지 가감 없이 토해냈다.
이쪽은 기사가 아니다. 지금까지 제국 깊숙이 숨어 살다 보니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각별함. 그 이상이었다.
"확실히 목숨만 살려 준다고 약속해주면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전부 말해 드리겠습니다."
"음, 약속해. 하지만 숨기거나 거짓말을 한 경우는 어떻게 할까?"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다. 살려 준다는 보증만 해 주신다면 비밀 그따위 것 그냥 다 말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배반자로 낙인이 찍혀 어딜 가도 죽음 목숨일 텐데?"
"제가 지금까지 숨어 지냈습니다. 숨는 데는 걱정이 없습니다. 지금 눈앞의 죽음이 먼저지 미래의 죽음까지 걱정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하긴···."
탈로스가 자세를 바로잡고 질문하려 하자 타라스가 즉시 선제공격을 놨다.
"먼저 이곳에서 저를 빼낸 다음임입니다. 아칸으로 나가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저도 살 구멍을 만들어 놔야지요. 용병님께서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마음이 변해 저를 죽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거참 귀찮은 놈일세. 반대로 네 입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없으면 어떻게 할래? 그럼 죽여도 불만이 없겠지?"
그때였다.
"어? 어라?"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