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기 시작하는 단서
보이기 시작하는 단서
칼멘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겠군요?"
"음, 그래, 칼자하리를 없앤 건 라마단이었지. 그러니까 없앴다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엘빈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애매하다는 것이 사실은 문젯거리잖아."
아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긴 한데 원인을 알수 없으면 해결하기 힘들다는 지독한 단점이 가장 큰 문제긴 하지."
"그럼 윈드러너가 사라진 이유와도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구체적으로 말해줘야지 알아먹든지 하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엘빈의 말에 아울도 난처했다.
"아직이야. 나도 확실하지 않아서 그러지. 금서 같은 책의 해독이 자고 일어나면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평생 가도 한 줄 해석 못하는 사람도 많아. 지금 내가 해독하는 건 뒤죽박죽되어 있어 더 한 거라고."
여기서 가장 맘을 졸이고 있는 사람은 세렌이다. 교주가 특별히 부탁했던 임무를 또 자신의 감정에 도취하여 실수를 저질렀으니 이젠 자신을 원망하기도 질린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윈드러너를 찾죠?"
"녀석이 마음잡고 숨으려 했으니 방법이 없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녀석의 신체 능력은 마족을 넘어섰는데 마왕까지 흡수했으니 마음먹고 숨으로 했다면 아무도 찾지 못할 거야. 거기다 녀석은 메모라이즈로 무공을 강제 주입 당했지? 그게 녀석에게 큰 위력을 발휘하게 할 거야."
"그건 좀···. 녀석은 무공에 소질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아니 내 생각은 좀 달라. 윈드러너는 타마신 스탁덴 거리 출신이야. 정보에 의하면 도굴꾼 협회 라첼의 손에서도 녀석의 이름이 거론될 만큼 손재주가 좋은 놈이라는 거지. 윈드러너는 몸놀림이 좋고 날쌘 다람쥐와 같아서 도굴꾼들 사이에서 솜씨 좋은 녀석으로 통했던 아이라고 그런 놈이 무공에 소질이 없다는 것이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엘빈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음, 그러니까 언 듯 보면 윈드러너가 소질이 없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말도 안 되게 어설픈 점이 간혹 보이더라고. 그러니까 마치 줄다리기하는 것처럼 말이지. 같은 동작을 여러 번 해도 이상하게 틀리는 부분이 일치하지 않아."
그때 아울이 말했다.
"마치 두 사람이 하는 것처럼?"
"어, 그렇게 말하니까 또 그렇게 이해가 되네. 같은 초식도 틀리는 부분이 딱 두 군데라서 특히 초식이 이어지는 부분이 매끄럽지 않아. 그래 마치 두 사람이 펼치는 것처럼일까나?"
"아무래도 윈드러너의 금서는 책이 아닌 모양이야."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칼멘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금서가 칼자하리 본인 같은 기분이 들어. 어쩌면 윈드러너 몸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영혼일 수도 있고."
"네? 그럼, 한 몸에 두 영혼이 들어 있다는 소리입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윈드러너의 움직임이 어딘가 모르게 항상 어눌했어. 그런 특징은 무공을 수련할 때 더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거고."
엘빈은 무릎을 딱 치며 말했다.
"그럼 혹시 금서가 칼자하리 그 자체라고 가정하자면 아직은 윈드러너의 신체를 강탈하지는 못한 거네? 윈드러너 본인의 의지로 움직임···. 가만 이번 마왕의 흡수로 혹시?"
"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야. 이번 일은 세렌 너의 실수가 가장 크다. 아마도 교주님이 그 때문에 윈드러너를 너에게 맡겨···. 크흡!"
말을 하다 말고 아울의 허리가 숙어졌다.
칼멘이 아울의 옆구리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그 충격은 세렌에 고스란히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책한다고 벌어진 일이 저절로 수습되는 것은 아니다. 너 경고하건대 윈드러너 찾겠다고 엠버스피어를 나서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윈드러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엠버스피어 방어다. 마왕을 잃은 마족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교주님의 명령도 떨어지지 않았어. 여기서 독단적인 행동은 파국을 불러올 뿐이란걸 명심해."
엘빈은 세렌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도록 지레 못을 박았다.
아울도 거들었다.
"이 이야기는 다 내 추측일뿐이지 검증된 것은 아니야. 조각조각 해독한 거라."
칼멘이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지금까지 윈드러너가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것, 마족을 섭취한 것도 윈드러너가 아닌 칼자하리의 능력이라는 거죠?"
"금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금서 자체로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렵지. 아무래도 금서에 봉인된 칼자하리의 영혼이 윈드러너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면야 이해가 되는 부분이긴 하지."
"음, 그러네요. 하지만 칼자하리는 윈드러너의 신체 지배권을 차지하지···. 아니지, 아니야. 지금까지 윈드러너의 신체를 강탈하려 기회를 엿보다가 이번 마왕을 흡수하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했고 그래서 떠났다면?"
그때 알프레드가 말했다.
"윈드러너는 그 사실을 몰랐을까요? 자기 몸에 칼자하리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아울이 고개를 흔든다.
"아니 알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칼자하리는 쉽게 목적에 도달하기 힘들었겠지."
"그 녀석 그런 사실을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던 거죠?"
"그야 칼자하리의 꾐에 빠졌거나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을 수도. 아! 이거 다 내 추측이니까 단언하지 말라고. 명심해."
"단언하고 뭐고 간에 일은 이미 벌어졌고 윈드러너가 없어진 이상 우리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어요. 자, 그럼 라그는 어떻게 되는 거죠? 마왕을 잃었는데요?"
잠잠히 듣고 있던 레노번이 말을 받았다. 역시 마족에 관한 일은 레노번의 지식이 제일이다.
"종족 번식과 관계된 일입니다. 태모는 번식이 가능한 마왕을 만들려고 할 겁니다."
칼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마왕을 만들어요? 어떻게요?"
"험, 그러니까. 험. 말하기 조금 난처하군요. 새로운 마왕을 낳으려 한다는 소리입니다."
칼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라그는 아이예요. 무슨 추잡한 소리를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라그는 인간이 아닙니다. 마족입니다. 종족의 번식에 관해서는 마족 고유의 태생을 따르게 될 겁니다. 원래 이들은 난생했던 종족으로 새로운 마왕 또한 그렇게 탄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라그가 알이라도 낳는다는 거예요?"
레노번은 칼멘을 직시하고 말했다.
"마왕의 외형을 보았습니까?"
"직접 눈앞에서 봤었죠."
"그가 아이입니까? 아니면 번식 가능한 성체였습니까?"
"물론 마왕이니까 특별히 다른 마족과 달리 빨리 자랐겠죠. 하지만 라그는 아직 아이인걸요?"
"그건 교주님께서 손을 써 놓으셨기 때문일 겁니다. 교주님은 라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태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해 놓은 것입니다. 메모라이즈로 인간의 사회성을 심어 놓은 것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마왕을 잃었으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칼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라그는 제가 알아서 책임지겠습니다. 제 임무니까요."
***
신성불가침 조약이 발생한 이후 한 달이 지났다. 테츠는 모그룩으로 변신해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아칸 전체를 이를 잡듯이 뒤졌고 특히 귀족 지구는 인원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살폈지만, 아직 작은 단서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오늘도 아무런 성과 없이 일루엠 길드로 향했다. 아칸에서 왕궁 다음으로 모든 정보가 모이는 것이 일루엠 길드다. 그는 매일 매일 일루엠 길드에 올라온 새로운 소식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길드가 유난히 북적거렸다. 모그룩은 옆 사람을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이리 사람이 많아?"
"제이미 백작이 와 있어서 그러지."
"제이미 백작이? 무슨 일로?"
"나도 잘 몰라. 뭐더라? 마교 교주와 관계되는 일이라는 말이 있긴 하던데."
모그룩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그래?"
모그룩은 길드 건물 내부 깊숙이 있는 길드 장의 거처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몇몇 가드가 그를 막아 세우긴 했으나 서류 한 장에 간단히 통과할 수 있었다. 바로 일루엠 길드가 발행한 마교 가입 증명서였다.
모그룩은 스스로 마교 출신임을 증명했고 일루엠 길드에 용병으로 고용 중인 상태였다. 혼자 돌아다니는 것보다 길드 소속이면 남 눈치 보지 않고 아칸에서 활동하기 편했다.
그는 길드 장의 거처 앞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교 용병 모그룩입니다."
"사적인 용무는 나중에 하세. 지금은 중요한 손님과 이야기 중일세."
방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길드 장 퍼거슨 왈도의 목소리다. 아칸의 대사건 때 일루엠 길드 수뇌부 전원이 사망함에 따라 어반마르스 지점의 지점장 신분에서 일루엠 길드 장으로 승격 해 길드를 꾸려 가는 중인 사내다.
"마교 교주님과 직접 소통을 할 수 있는 자를 찾는다고 해서 온 겁니다."
"들어와."
모그룩은 문을 열고 길드 장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를 마주하고 앉은 제이미와 퍼거슨 왈도가 보였고 마법사 복장의 인물이 제이미 옆에 앉아있었다.
퍼거슨이 들어오는 모그룩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잘 되었군요. 저 친구가 마교 출신인 용병 모그룩입니다."
"마교 출신? 모그룩? 가만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는데?"
퍼거슨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작님도 마교와 관련이 있으나. 마교 출신 용병과 모험가는 많이 아시고 있을 겁니다."
"아니, 모그룩 저 이름은 뭔가 특별한. 아! 생각났다."
제이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 혹시 처형자 아닌가?"
"하하, 저를 그렇게 부르신 분은 아직 없습니다."
모그룩은 마교에서 한 방면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마교의 고위 간부를 포함 교주의 명령으로 죄를 지은 마교인 즉결처분 권한을 가진 인물로 말이다.
현 마교 교리상 장로 이상 계급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오직 교주만이 처벌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교주 대신 처벌 권한을 가진 인물이 바로 모그룩이라는 사실이다.
제이미도 마교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당연히 모그룩의 이름과 그가 처형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처형자라는 말에 퍼거슨과 마법사 둘 다 표정이 굳어졌다. 결코 좋은 말일 수는 없으니까.
"아니 자네 같은 사람이 어찌 이런 곳에 있다는 말인가?"
"마교에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일루엠에 용병 생활로 경험을 쌓는 중입니다."
퍼거슨은 단번에 모그룩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눈치챘다. 한 달 전 마교인 증명서를 들고 와서는 길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안 그래도 인원이 부족한 길드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모그룩이 가지고 온 증명서는 평범한 수료증명서가 아닌 현 마교에 재직 중인 그것도 고위급인 인재였다.
퍼거슨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일도 없는 일이라 단번에 그에게 길드 중책의 직책을 주었다.
길드원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지 않는 이상 대부분 자율 활동을 하곤 한다. 모그룩은 한동안 엘스칼라 유적을 조사하고 다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길드원이 제이미 백작이 놀랄 정도의 신분이라니 왠지 뿌듯해지는 퍼거슨이다.
그는 손수 자리를 내어주며 모그룩이 앉도록 배려했다.
모그룩은 제이미 백작에게 예를 보였다. 제이미는 팬텀 가드너가의 사위이자 솔라리스 왕국 서열 2위의 인물이다.
착석한 모그룩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주님에게 전하실 말이라도 있습니까?"
"우리 정보원에 의하면 토멘트 오버로드 공작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네."
"토멘트 공작이라면 발베도니아에 유배 중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다들 그렇게 알고 있네. 그는 지금도 발베도니아에 있으며 그를 상시 감시하는 브리완 왕의 측근에 둘러싸여 있지."
"그런데요?"
"우리 인커전에 의해 그가 지금 솔라리스 왕국에 있다는 목격담 보고가 들어왔네."
순간 모그룩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건 매우 중요한 정보로군요. 그런 정보를 왜 마교 교주에게 전하려는 겁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우린 지금 사정이 좋지 않아. 엘스칼라 유적에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과거 집행관은 소속의 인재는 이미 한 명도 남아 있질 않네. 어설프게 인커전을 보내기 보다는 확실한 방법이 가장 좋다고 내가 직접 윌리엄 대공에 부탁해서 이뤄진 것일세."
"그러니까 토멘트 공작의 일을 마교 교주더러 직접 조사해 보라는 거군요."
- 작가의말
한동안 글 못 올려 죄송합니다.
저번주 어머니 병원 검사와
어머니 방 장판 교체하고
침대 들여 놓고
다 제가 작업 했습니다.
주말에 올라와서 몸이 아프더니
몸살인가 했더니 너무 아파서
월요일 병원 가니 대상포진이라고...
몸 상태가 죽을 맛입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