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스칼라 유적9
엘스칼라 유적 9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대규모 무리다. 저 친구 무슨 생각인 거지?"
마법사 베인의 말에 도적 파월에 말한다.
"적어도 우리는 그가 무엇을 하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웨인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골렘을 소환할 정도면야."
벅넬도 거든다.
"골렘의 덩치가···. 이 정도 골렘을 소환하려면 어느 정도 정신력이 있어야 하지?"
"보통 사람이라면 정신이 붕괴할 정도지."
마법사 베인의 목소리에는 작은 허탈감마저 감돈다.
"지금 세상에 누가 이런 능력을 갖췄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어. 떠도는 풍문도 모두 포함해서 말이야."
"제길 살아 나가면 할 이야기가 많겠어."
"믿어 줄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되는군. 누가 내가 골렘 팔에 매달렸다는 말을 믿어 줄까? 아마 술에 취한 놈인지부터 확인하려 들 거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곧 점점 커지는 소리에 묻혀 갔다.
이쪽에서는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가려져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소리는 분명 들린다. 그것도 가깝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대략 짐작해도 수백 마리는 될법한 소리다.
리치 네 마리를 작살내는데 괴물 개 스무 마리 정도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지금 몰려오는 놈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낌이 확 와 닿았다.
정규군 각성자와 붙어도 될 만큼의 전투력을 가진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네 사람 다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 코너를 돌아 나오는 괴물 개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을 파헤치듯 미친 듯이 달려드는 모습은 뭐랄까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 정도로 위압감이 대단했다.
놈들은 이미 죽은 사령이다. 죽음의 공포 없이 오직 주인의 명령 하나만을 본능으로 생각하고 달려드는 사신이다.
가장 큰 문제는 놈들의 속도다.
사령이 낼 수 있는 속도의 범주를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제국에서 이름난 준마라고 할지라도 이 녀석들에게 비비지 못한다.
아예 거대한 죽음의 물결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다.
사람이 파도를 이길 수 있을까? 물론 뒤로 물러나면 피할 수야 있겠지. 그런데 이것이 피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밀려드는 해일이라면?
골렘 위에 올라탄 여섯 명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이거 모험가나 용병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위의 상황이 아니었다.
여섯 사람의 시선이 모두 한곳에 집중됐다. 그야 말할 필요도 없이 모그룩이었다.
'이상하네. 저놈들 사령치고는 너무 빨라. 그렇다고 제조한 것도 아닌데···.'
모그룩은 모그룩 나름대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가 파티원에 자기 능력을 보여주면서까지 괴물을 상대해 보는 것은 역시 놈들의 전투력이었다.
리치 네 마리와 격 없이 싸우는 것을 보고 이놈들이 보통이 아님을 알았다.
모그룩은 먼저 선두의 진형에 재빨리 배신의 영욕을 걸었다. 그 순간 앞서 달리던 놈들이 먼지를 자욱하게 뿜어내며 멈췄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놈과 충돌이 일어나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모그룩은 고개를 끄덕이며 엉켜 있는 주위로 배신의 영욕을 걸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들은 소환물이 맞다. 배신의 영욕은 상대 소환물을 뺏는 스킬이다. 물론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더 높은 사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대상이 소환물이 아닌 제작된 사령이라면 배신의 영욕이 작동하지 않는다.
괴물 개는 정확히 모그룩이 인지하는 범위 내로 제어권이 넘어왔다. 선두의 괴물 개와 후미의 괴물 개가 뒤엉켰다.
괴성이 하늘을 찌르고 미친개의 울부짖음에 돌무더기가 들썩들썩 일 정도였다.
싸우는 것이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광견병에 걸린 미친개가 눈이 까뒤집혀 앞뒤 안 가리고 광폭하게 물어뜯는 그런 모습 그것도 그 힘이 사자를 능가할 정도니.
이걸 전투라고 할 수도 없고 싸움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냥 완전히 난리 통이었다. 물어 뜯는 데는 앞뒤 안 가린다. 그냥 주둥이를 들이밀다가 뭐라도 걸리면 제 목이 다른 놈에게 뜯겨 잘려 나갈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광분에 사로잡혀 서로 간 물어뜯는 경쟁에서 터져 나오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자기 귀를 막게 할 정도였다.
난폭하다는 말이 귀엽게 들릴 정도로 광란의 몸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골렘 위의 여섯 명은 할 말을 잊어버린 듯 몸이 완전히 굳어 버렸다. 도적 파월은 혹시라도 떨어질까 하여 밧줄로 자신과 골렘을 칭칭 동여맸다.
"어찌 저러는 것일까?"
파월 왜 서로 싸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법사 베인이 말했다.
"그러니까 맨 앞에 달려오는 놈들의 발밑에 마법진이 만들어졌어. 아마 모그룩이 한 것이겠지. 이 정도 골렘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한 두 가지 재주가 더 있다고 해도 이상할 필요가 없지."
"서로 싸우게 했다는 건가? 그럼 저놈들이 아무리 많이 밀려와도 걱정이 없겠네?"
그웨인의 말에 오스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나쁜 인간은 아니야. 골렘을 소환한 것은 오로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함이 아닌가?"
그제야 마법사 베인도 우둔함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우리 여섯 명은 그에게 생명을 빚졌습니다. 비록 그도 원하는 것이 있었으나 이런 행동은 쉬이 할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렇게 두려운 괴물도 능력만 있다면 간단히 제압하는군요."
방패 전사 벅넬은 새삼 모그룩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하지, 실감했다. 자신이 만약 저 상황에 있다면 잠시 기도할 틈도 없이 녀석들에게 먹혔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오스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조용한 지하 유적에 어떻게 저런 괴물이 돌아 다닐 수 있는지를 말이다.
물론 이곳이 금지구역이긴 하나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던 과거와 달리 괴물이 판치는 곳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만약 우리가 살아 나간다면 이 사실을 반듯이 군에 알려야 할 것이다. 이건 아칸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야."
도적 파월은 뒤를 돌아봤다. 유일한 통로인 토굴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보라고 누가 토굴을 무너뜨렸든 간에 의도적으로 한 일이라고 그렇다는 것은 쥐새끼 한 마리 내보내지 않겠다는 거지."
"모그룩이 저놈들을 처리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기회라도 잡을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가만히 서 있던 골렘이 거대한 상체를 오른쪽으로 갑자기 휙 틀었다.
"우어."
"잡앗."
넋 놓고 싸움 구경만 하고 있던 일행은 갑작스러운 골렘의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전사 계열은 즉시 중심을 잡았지만 마법사인 베인은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 둔한 편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으악."
그는 신체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직감했고 그가 할수 있는 것은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의 몸은 휘청대다가 아래를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팟
오스카는 인커전으로 오랫동안 복무했다. 그는 여러 번 죽음의 위험을 돌파해낼 정도로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한창 오크와의 전쟁 중에 최일선에서 오크의 움직임을 감시하기도 했던 그다.
그는 베인이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것을 직감하고 허리에 매달고 있던 밧줄을 재빨리 풀러 막 떨어지는 베인의 허리를 휘감았다.
밧줄 끝부분에는 갈고리가 달려 있어 베인의 허리를 감고 딱 줄에 걸렸다.
"잡아, 벅넬, 그웨인."
떨어지는 충격이 밧줄에 실릴 거다. 잘못하면 그 충격에 오스카까지 딸려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벅넬과 그웨인이 재빨리 오스카의 허리와 어깨를 붙잡았다.
그들이 밧줄을 잡지 않고 오스카를 잡은 것은 역시 경험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퉁
베인이 골렘의 팔에 매달려 대롱대롱했다.
"크아아앙"
소름 돋는 괴성이 아래서 들려왔다.
언제 왔는지 전혀 몰랐다. 괴물 개 한 마리가 골렘의 발밑에서 미친 듯이 소리치며 매달린 베인을 물어뜯기 위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베인은 자기 머리 바로 아래로 괴물 개의 쩍 벌린 입이 다가오자 실성한 것처럼 외쳤다.
"당겨, 당겨줘."
"버텨. 이쪽도 중심을 잡아야 해."
골렘이 움직인 것은 바로 괴물 개 때문이었다.
-크크크킁
골렘은 자동으로 이들을 보호하게 되어 있었다. 골렘의 몸이 기우뚱 기우렷다. 그건 골렘이 오른발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쾅. 퍽.
골렘의 거대한 발은 여지없이 괴물 개를 밟아 터트려 버렸다.
"어휴···."
모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겨우 끌려 올라온 베인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떴었다.
"제길, 명색이 마법사인데 파이어볼 하나를 못 날렸어."
"그런 상황이 되면 누구라도 몸이 얼어붙어. 너무 자괴감을 가지지 말라고."
"야, 우리가 한 마리에 이렇게 발발 떠는데 저 사람은 도대체 뭐냐고!"
어느새 모그룩은 검을 뽑아 들고 괴물 개 무리의 한복판에 있었다.
모그룩은 실제 놈들의 전투력이나 움직임을 직접 조사하기 위해 검을 뽑고 직접 싸움에 끼어든 것이다.
놈들은 이성이라는 자체가 없었다. 물론 다른 사령도 마찬가지겠지만.
발이 잘려도 허리가 잘려도 남은 신체 부위는 끝까지 움직이며 달려든다.
목을 쳐 내니 몸뚱이는 움직임을 멈췄다. 대가리는 움직이지는 않지만, 바닥에 떨어진 그 자세에서 턱만 미친 듯이 움직여 댔다.
혹 실수라도 그 입에 걸리면 인간의 발목 정도는 간단히 잘려 버릴 정도였다.
즉 목을 잘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소리다. 이런 난전에서 떨어진 목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대단히 귀찮은 일이었다.
모그룩은 아예 수직으로 몸통째로 쪼개 버렸다.
모그룩은 이런저런 검사를 하는 것이지만 파티원의 눈에는 미친개를 완벽히 학살하는 전사로 보여졌다.
그는 매우 간결하게 검을 휘두르는데 검에 걸린 괴물 개는 간단히 반으로 갈라졌다.
그때였다. 이번에는 빠져나온 두 마리가 동시에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오스카가 밧줄로 골렘의 팔을 묶어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기에 베인은 기를 쓰고 밧줄을 잡고 버텼다. 골렘은 괴물 개를 밟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 골렘의 행동은 매우 굼뜨지만 괴물 개의 움직임은 너무 빨랐다.
"이놈들 인제 보니 지능도 있어. 골렘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이네."
"흥, 조금 전엔 매달린 상황이지만 지금은 아니지."
베인은 이를 악물고 마나를 모았다. 그의 지팡이 끝에서 시뻘건 불길이 일렁거렸다.
불덩이 한 개가 빠른 속도로 괴물 개에게 날아갔다.
-쾅
큰 폭음과 함께 먼지 구름을 피워 올랐다.
베인이 파이어볼을 날린 것이다.
도적 파월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맞았나?"
불기둥과 먼지가 뒤섞여 아래가 잘 보이지 않았다.
"크앙."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괴물 개의 머리통이 치솟아 올랐다.
"조심해!"
놈은 골렘의 무릎을 디디고 도약해 튀어 올랐다.
"이놈이!"
팔목 언저리에 있던 그웨인이 양수검으로 튀어 오르는 괴물 개의 대가리를 정통으로 후려쳤다.
-캉
"헉."
그웨인은 손아귀에 전해지는 진동에 기겁했다. 이 느낌은 검으로 쇠모루를 내려치는 것과 같았다. 손아귀가 얼얼했다.
그러나 괴물 개는 전혀 상처 입지 않았다. 대신 그웨인의 일 검에 더 오르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고 그 순간 골렘의 발이 떨어져 내려 압사되었다.
"한 마리 더 남았어."
현장 분위기 파악이 제일 빠른 도적 파월이 빠르게 놈을 찾았다. 베인이 쏜 파이어볼은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놈이 어디에 있는지···.
파월은 골렘의 움직임에 따라 빠르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저기다. 조심햇."
한 마리는 돌무더기 위로 뛰어올라 있었다. 그리고 골렘이 다른 한 마리를 밟기 위해서 상체를 조금 숙이는 그 순간을 노리고 힘껏 점프해 오른쪽 팔목 위로 뛰어오르려 했다.
오스카는 품속에서 병 하나를 꺼내 재빨리 골렘의 오른 팔목에 집어 던졌다.
막 팔목에 뛰어오는 괴물 개는 순간 휘청거리더니 아래로 쭉 미끄러져 내렸다. 골렘은 기다렸다는 듯이 괴물 개를 움켜잡았고 그 자리에서 찌그러트렸다.
"후아. 오늘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나."
일행은 기름 냄새를 맡았다.
오스카가 던진 것인 기름 등잔에 사용하는 기름이었던 거다. 그 기름을 밟고 괴물 개가 미끄러진 것이다.
역시 임기응변이 뛰어난 자다.
도적 파월이 마법사 베인에게 급히 말했다.
"베인 화염계 마법은 사용하지 말라고 우리 모두를 골렘 위에서 통구이로 만들기 싫다면 말이야."
"아, 알았다고. 저기 또 한 마리 온다."
"이거 여기도 안전한 높이는 아니네. 모두 조심해."
오스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모그룩이 힐긋 뒤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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