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투
혈투
굉장히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의 정면충돌.
비틀거리며 물러선 것은 바로
마왕이었다.
어깨뼈가 움푹 들어간 것이 완전히 부서진 모양이다.
"회복력이 아무리 좋아도 뼈를 정확히 맞추지 않으면 곤란할 거다."
제운종으로 가볍게 날아오른 엘빈은 단숨에 마왕과의 거리를 좁히고 가슴에 은영마환장을 때려 박았다.
-퍼퍼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왕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제자들은 크게 환호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렸다.
그러나 엘빈의 표정은 밝지 않다. 마왕이 타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뿌드드득
마왕은 양어깨를 펴고 근육의 힘으로 부러진 어깨뼈를 맞추었다.
"괴물이구만."
엘빈은 바짝 긴장하며 내공의 흐름을 유지했다. 지금까지 싸워본 그 어떤 상대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도 이미 고수의 대열에 들어섰기 때문에 상대의 강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세렌은 좌식을 취하고 내공을 안정시켰다. 천마비행을 전속력으로 펼친 이후 곧바로 마왕과 싸우다 보니 기의 흐름이 약간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제럴드는 세렌의 앞에 서서 보호했다. 그 옆으로 바실이 뛰어내렸다.
"저놈 정말 대단한데?"
"마왕이니까."
"그 정도면 자기 부하를 이끌고 함께 쳐들어오면 되지 왜 혼자 온 거지?"
"몰라. 자들이 하는 행동을 어떻게 내가 알아. 혼자서 적당히 가능했겠다 싶었든지 아니면 마족 희생을 더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겠지."
"생각보다 엘빈 장로가 잘 싸우는군."
"확실히 장로는 허울 좋은 자리가 아니야. 우리 둘이 덤벼도 어림없는 수준에 올라 있구먼."
"이거 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군. 적이 점점 더 강해져."
"대장이 따라와 막지 않았다면 여기 제자는 모두 죽었을 목숨이야."
"생각하니 끔찍하군. 대장이 회복하면 오늘 저 마왕이란 작자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있을지가 아니라 반드시 잡아야 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어."
엘빈의 파상공세가 시작됐다.
세렌의 경공과는 격이 달랐다. 마왕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엘빈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또 공격이 열 살 어린아이 수준으로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주먹 아니면 발 단 두 가지 공격이 전부였다. 무공의 조예를 깨우치기 시작한 엘빈의 눈에는 그냥 모든 것이 다 허점 투성이었다. 특히 마족이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 이상 중요 사혈도 같다고 봐야 한다.
엘빈의 은형마환장은 이미 경지에 올라가 있다. 애초에 이 그룹은 게으름을 적으로 생각할 만큼 마교 내에서 가장 부지런한 그룹이었다. 자고 먹고 싸는 것 외에는 오로지 무공 수련에 매달렸으니까.
수많은 바윗덩이를 오로지 장, 그러니까 맨손바닥만으로 깎아 내는 수련은 보통 고통스러운 수련이 아니다. 그렇게 단련된 내공과 장력의 힘은 각성자가 온 힘을 다해 휘두르는 해머를 튕겨낼 만큼 무지막지한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퍼퍼퍽
마왕의 명치에 손바닥 자국이 움푹 팼고 처음으로 마왕은 다리를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치에 치명타를 입은 것이다. 이건 각성자라 할지라도 절명할 정도의 파괴력이며 심장에 가해진 충격은 바스러질 정도였다.
마왕은 무릎을 꿇어 가슴을 숙였다. 그것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즉 심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행동이었다.
심장에 충격이 간 상태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심장 박동에 의해 상처 난 곳이 빨리 아물지 않을 수도 있으니 회복될 때까지 멈춘 것이다.
그걸 파악한 엘빈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넘으며 떨어져 내렸다. 양다리에 내공을 끌어모아 마왕의 등을 내리찍었다.
-퍽.
반발력으로 튕겨 나온 엘빈은 허공에서 몸을 한 번 비틀고 바닥에 착지했다.
순간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여기 있는 제자 전부 엘빈 휘하의 제자들이라 방금 엘빈의 그 공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알고 있다.
그걸 받아낸 마왕의 맷집은 정말 가공할 정도였다.
"미친 맷집이구나."
공격을 성공시킨 엘빈도 두 다리가 뻐근할 정도의 반발력을 느꼈다.
"외적은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아. 기를 통해 내부 장기를 뒤흔들어야 해."
세렌의 고함이 들려왔다.
엘빈은 마왕으로부터 삼십 보 이상 떨어져 있는 상태다.
그때 제럴드가 크게 외쳤다.
"지금이다. 준비된 궁수는 화살을 쏴라."
그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벽 위에 있던 제자들이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놓았다. 이들도 내공으로 단련된 고수인 만큼 쏘아진 화살은 평범한 화살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화살촉은 잉겔리움으로 되어 있고 웬만해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특제 화살이었다.
사오십 발의 화살이 정확하게 마왕을 향해 내리 꽂혔고 곧 마왕의 몸은 고슴도치를 방불케 했다.
"크아아아."
마왕이 괴력을 일으키며 상체를 세웠다. 그가 근육에 힘을 주자 몸에 박혔던 화살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오로지 근력의 힘으로만 화살을 밀어낸 것이다.
엘빈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마왕의 몸에서 온천에서 일어나는 수증기처럼 흰 연기가 무수히 피어올랐다. 화살에 맞은 상처는 금방 회복되었다.
그때 세렌이 눈을 번쩍 떴다.
"후~ 하~."
한 호흡 길게 내뿜은 세렌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바이올렛을 천천히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제럴드 힐링 포션 여유분 있어?"
"물론이죠. 여기."
세렌은 제럴드가 준 포션을 단숨에 삼키고 소맷자락으로 입술을 닦았다.
"다시 시작해 봐야지."
세렌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자 엘빈이 외쳤다.
"교대는 아직이야."
"혼자는 버겁다고 느껴요. 합공하죠."
엘빈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맨정신인 것 맞지? 저놈한테 맞아서 어떻게 된 것은 아니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고 가기나 해요."
엘빈은 장난기를 뺐다. 저 세렌이 합공하자고 나온 것을 보면 적어도 마왕은 세렌 자신이 자신보다 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휘리리릭
장내에 두 사람이 더 날아내렸다.
소식을 접하고 달려 온 알프레드와 트리스탄이다.
알프레드는 완전히 박살이 난 서쪽 성문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엘빈 장로와 합공할 생각입니다. 알프레드 장로도 거들죠?"
"그 정도입니까?"
"세 명이 덤벼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도···."
"넌 안 돼. 빠져. 방해만 돼."
세렌의 말에 트리스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수시로 변했다.
"널 무시하려 한···."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들이 한가하게 주절거릴 정도로 마왕은 편한 대상이 아니었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엘빈을 향해 뛰어들었다.
"쳇! 이놈에 내게 맞은 것이 아프긴 아팠던 모양이구나."
다시 드잡이질이 시작됐다. 마왕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엘빈의 천마비행은 잡을 수가 없었다. 엘빈의 제자들은 병장기를 애용하지 않고 장법 위주의 싸움이 주가 되다 보니 병장기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경공은 필수 중의 필수였고 치고 빠지는 그들의 스타일은 마교에서 알아주는 전법 중 하나다.
알프레드는 오롯이 힘 위주로 탱크처럼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다. 그들은 기마대가 밀고 들어와도 단 한 걸음도 후퇴하지 않는 마교에서 철의 장벽으로 통한다.
특히 알프레드의 진혼탈백도는 위력은 무시무시할 정도이며 마교 통틀어 모든 검법 중 사거리가 가장 긴 검법이다. 돌격해 오는 기마대 수십 마리를 단일초식에 베어 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알프레드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나는 바람 가르는 소리에 주변에 있는 제자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저건 막을 수도 없다. 그냥 피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진혼탈백도의 위력은 엄청났다.
-쾅
검이 마왕의 몸에 닿자 들리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우드득
검이 마왕의 갈비뼈를 우그러뜨렸다.
그가 휘청하자 그 틈을 놓칠 리 없는 엘빈이다.
-뻑
관자놀이에 백로마현으로 정확하게 뒤꿈치를 질러 넣었다. 마왕의 고개가 좌측으로 획 꺾일 정도로 강력한 일격.
가장 치명적인 일격은 역시 세렌의 몫이다.
-파악
두 사람이 만들어 준 틈으로 세렌은 온전히 공격에 모든 것을 집중 시킬수 있었다. 천마수라검의 일격이 마왕의 목젖을 관통해 버렸다.
역시 마교다. 장로 세 명이 함께 하니 제아무리 강한 맷집의 마왕일지라도 어쩌지 못했다.
"쿠아아아아악"
그는 그 자리에서 양팔을 벌려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앗"
그 힘에 세렌이 회전하자 엘빈이 재빨리 바이올렛을 잡은 세렌의 손을 걷어차 떨어뜨렸다.
세렌은 회전력에 저만치 나가떨어졌고 엘빈은 몸은 틀어 마왕의 주먹을 빗겨 냈다.
"으라합!"
알프레드가 기합을 넣고 진혼탈백도로 회전하는 마왕을 내리쳤다.
"쾅, 쿠쾅."
어찌나 빨리 회전하는지 이번에는 알프레드의 진혼탈백도도 튕겨 나왔다.
세렌은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바이올렛은 마왕의 목을 관통한 채로 꽂혀 있는 상태다.
가장 냉정한 사람은 엘빈이다. 그는 다시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빙글빙글 돌고 있는 마왕을 뛰어넘었다. 회전은 좌우에서는 막강한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지만 머리 위는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다.
마왕을 뛰어넘는 그 순간 머리 위 정수리를 향해 잉겔리움 단검 두 자루를 맹렬한 기세로 날렸다.
-파파팍. 파파팍.
"크아아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왕의 비명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그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전은 서서히 멈춰졌고 균형이 기울더니 땅바닥에 모로 쓰러졌다.
"됐다."
알프레드가 탄성을 내질렀다. 세렌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그때 엘빈이 외쳤다.
"멈춰!"
엘빈은 세렌의 다섯 걸음 앞에 혈영신장을 내질렀다.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워 올라 세렌은 급히 멈췄다.
그때
마왕이 상체를 벌떡 세웠다.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며 막대기가 저절로 세워지듯이 몸이 벌떡 세워졌다.
"미친 근력이다."
"크아아."
마왕은 괴성을 지르며 정수리에 반쯤 꼽힌 단검을 뽑아 집어 던졌다. 두 개의 단검은 정수리와 목뒤 사혈에 정확히 꽂혔다. 하지만 마왕은 죽기는커녕 역시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며 역시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저런 괴물을!"
엘빈도 질려버릴 정도의 맷집과 회복력이었다.
"목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마족은 그렇게 죽이잖아요."
마왕은 목에 박힌 바이올렛마저 뽑아냈다. 목을 관통한 검을 뽑아내면서 지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실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저놈이!"
세렌이 버럭버럭했다. 마왕은 바이올렛을 뽑아 버리지 않고 손에 잡은 것이다. 누가 자신의 검을 잡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세렌이다. 칼멘조차도 바이올렛을 잡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누구도 아닌 적이 자신의 병기를 잡고 있으니 분기가 충천하여 머리에 김이 날 정도였다
"조심해. 저놈이 휘두르면 장난이 아닐 거다. 알프레드 넌 특히 더 조심해."
세렌은 아무 말 없이 제럴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럴드는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던져 주었다.
"알지? 잠시 빌리는 거야."
"당연하지요. 마음 놓고 사용하세요."
세렌은 바닥을 차고 날았다. 좌우에서 세련과 알프레드가 함께 사각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파파팟.
마왕은 또다시 팽이처럼 회전했다. 더욱이 이번에는 주먹이 아닌 바이올렛을 들고 있는 상태다.
-까가강. 깡. 깡. 깡
시퍼런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알프레드의 거대한 검도 순간적으로 뒤로 움찔움찔 밀릴 정도였고 제럴드의 검을 든 세렌도 감히 정면으로 마주치지 못하고 빗겨 흘러 냈다.
정면으로 치면 제럴드의 검이 견디지 못하고 강철 부분이 박살이 날 것이 분명했다. 제럴드의 검은 날만 잉겔리움이고 검신 중앙 부분은 강철이다.
벌써 충격을 받은 강철 부위가 강한 진동으로 일으키며 세렌의 손아귀를 휘젓고 있었다.
"후우~"
엘빈은 마왕이 정수리에서 뽑아 던졌던 단검을 주워 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걸 여기서 쓸 줄이야. 하긴 저놈은 이거 아니면 잡을 수 없을 테니."
엘빈의 눈빛이 빛났다. 만천화우를 사용하기에는 마왕의 피부가 너무 단단했다. 만천화우의 바늘은 실과같이 가늘어 혈관 속으로 타고 들어간다. 그래서 사악한 무기다.
하지만 워낙 피부와 근육이 강한 마왕이기에 만천화우가 통할 리는 없어 보였다.
엘빈은 네크로맨서 죽음의 사막에서 있으면서 테츠에게 전수 한 한가기 무공을 선보이려 한다.
테츠는 메모라이즈 마법으로 장로에게 특별한 무공을 한 개씩 전수했다. 엘빈은 사막에 그 무공을 수련하느라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죽을힘을 다해 매달렸다. 마침내 그 무공을 최초로 선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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