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
난항
테츠조차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인간의 갈비뼈가 좌우로 벌어지고 비록 마족이지만 어린아이를 삼킨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갈비뼈가 닫히며 마족을 완전히 삼키는 그 순간 테츠는 자신의 어지럼증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럴 거로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시간과 일치했거든요."
"인간을 삼킨 적은?"
"다행히도 아직 없습니다."
모두가 회의실에 모인 가운데 토론이 이어졌다.
테츠는 아칸 상황이 편치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곳에서 윈드러너를 조사해 볼 시간이 촉박했다.
유적 내에 있는 아가므네와는 사령쥐로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급한 불은 끝 상태이긴 했다.
성군이 도착해 유적 내를 조사하더라도 소환수 들과 마주칠 확률은 없다고 보는 편이다. 하지만 세 사람이 사라진 것을 알면 필포드가 어떻게 나올지 아직 예상 밖이고 필포드의 펜던트를 손에 넣어야 리치 대군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저쪽이라고만 밝힌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다.
"아울, 금서를 해독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
"일단 직접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양과 지식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시간이 촉박해 아칸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
세렌은 다급한 호흡을 내뱉으며 말한다.
"아칸의 분위기를 볼 때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여기서 마왕을 쉽게 통제할 녀석은 너뿐이지 않으냐? 엘빈에 맡겨 놓는다면 아예 마왕을 쳐 죽일 텐데?"
엘빈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골칫거리는 일찌감치 처리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굳이 마왕을 살려 두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태모 때문이다. 태모와 마왕은 한 쌍이지. 태모가 각성하면 마왕보다 더 곤란해져. 그리고 마왕을 죽여봤자 곧 새로운 마왕이 태어나 빈자리를 메꾸게 될 거야."
"그럼 여긴 계속 마족과 마왕의 공격이 끊이질 않을 겁니다. 보니 그들은 라그를 되찾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칼멘이 끼어든다.
"교주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과거 알로 번식하는 경우 태모가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암컷 모두 임신하고 자식을 낳지 않습니까? 굳이 태모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여왕이니까. 라그는 마족의 여왕이다. 그들은 인간의 몸과 생식 방법을 선택했지만, 마족 사회의 구조적인 부분은 그대로 가지고 가는 거야. 마족 사회의 최고 우두머리는 여왕이며 그 여왕을 지키는 것이 마왕의 역할이다. 무엇보다 태모의 능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
"능력요? 혹시 오비디언스 샤우트를 말하는 거라면 이번 인간형 마족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에르제베트가 혹시나 해서 라그의 피를 이용해 봤지만 실패했습니다."
"하하, 한가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마족을 통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야. 중요한 것은 라그 존재 그 자체다. 모든 마족을 통틀어 마왕까지 대체품이 있으나 태모는 오직 하나다. 라그가 죽으면 마족의 구심점이 무너지는 거라고 봐야 한다. 칼멘 너는 절대적으로 라그를 지켜라. 라그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럴 겁니다. 라그를 지켜 낼 겁니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걸요?"
"라그는 이 세상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거다."
아울이 살짝 눈치를 보더니 끼어든다.
"황제께서도 라그와 마왕의 존재를 아십니다. 어쩌면 라그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뭐? 내가 안 된다면 그만인 거지. 라그가 탐이 난다면 직접 오라 해. 그전에는 어림도 없어. 아울 너도 마지막 경고야. 더는 황제와 거래를···."
엘빈이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이 황제의 명령을 듣고 있습니까? 이놈이 우리의 비밀을 황제에게 고자질하는 겁니까?"
"진정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야. 아울은 잘못이 없어. 내 이야기는 지금은 호랑이 수염을 건들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미 귀찮은 것이 차고 넘치니까. 또 다른 문젯거리는 사양이야.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급한 불부터 먼저 끄는 것이 현명한 거지."
"그럼 엠버스피어는 당분간 이대로 지속하는 겁니까?"
"그래야지. 트리스탄."
"네, 스승님."
"오크는 번식력이 너무 강해. 벌써 엠버스피어를 거의 다 채워나가지?"
"그건···."
"제어해, 아직은 때가 아니야. 아울."
"네 교주님."
"너도 트리스탄 때문에 오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졌지?"
"그렇습니다. 오크의 왕 다음으로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크도 바보는 아니야. 야생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런 평온함을 즐기는 녀석들도 아니지."
"정확한 분석입니다."
"나대기 좋아하는 녀석들은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오크 인구를 조절할 생각이십니까?"
"그래, 밖에 마족이 있잖아. 그놈들을 이용해."
트리스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울이 그런 트리스탄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은 교주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 거다. 너는 네 종족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 올바른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란다. 성군이란 자고로 채찍과 칭찬을 시기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주님의 말씀은 오크의 결집력을 더 높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하시는 거다. 너도 머리통이 좀 더 굵어지면 그 뜻을 이해할 날이 올 거다."
트리스탄은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며 말했다.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배움에 처지에서 보고 듣고 그것을 머리에 새기겠습니다."
"좋아. 오크의 무기는 엄청난 번식력과 강한 생활력이다. 그것은 제국을 위협할 수도 있어. 만약 그 단계가 되면 네가 뿌린 곡식을 수확하기도 전에 불길이 온 들판을 태워 버릴 테니까. 황제는 무서운 사람이다. 아직은 그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어. 그리고 윌리엄도 권력을 잡았으니 솔라리스 재건을 위해 발 벗고 나설 거다. 오크는 확실한 걸림돌이지. 그것에 대해 대비도 해야 한다."
아울이 말을 잇는다.
"그 중간에 케이사르가 있습니다. 그가 또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공략할지 그것도 지켜봐야 합니다."
알프레드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제 황제를 방해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솔라리스 왕국이든, 오크든, 마족이든 케이사르든 간단하게 축출할 수 있을 텐데요. 특히 칠무신을 동원한다면야 아주 쉬운 일일 텐데. 무엇 때문에 웅크리고 계신 거죠?"
"주신 제국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어. 황제는 그것의 실체를 찾고자 한다. 나도 마찬가지고 이 일에는 칠무신도 관계가 되어 있다고 봐. 우린 생각보다 아주 얇은 살얼음판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 얼음판이 깨지면 우리 모두 깊이를 알수 없는 깊은 강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테니까. 어쩌면 주신 제국 전체가 말이야."
며칠 뒤 성군은 성공적으로 아칸에 입성했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제이미 공작이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솔라리스 팬텀 가드너 왕가를 구한 공적을 인정받아 백작에서 공작으로 추서되었다.
아직 왕국이 제대로 복귀되지 않아 입관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칸 시민들은 제이미를 공작으로 부름에 주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그럴 정도의 업적을 쌓았기에 당연하다는 것이 지배적이었고 귀족들 또한 윌리엄 대공의 눈치를 보느라 제이미에게 연이은 축하 사절을 보내왔다.
그들 모두 한때 시몰레이크 후작을 지원했던 터라 지금 윌리엄 대공에게 잘못 보이면 자신의 가문이 몰락할 정도의 타격을 받을 수 있기에 그들로서는 어쩔수 없는 행동이었다.
평민 출신 제이미가 공작으로 추서되는데 반대한 귀족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은 지금 솔라리스 귀족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불사왕이 이끄는 성군은 쉴 틈도 가지지 않고 엘스칼라 유적으로 향했다. 그와 합세한 오군단은 유적의 동서를 양분하여 서쪽은 오군단이 동쪽은 성군이 맡는 식으로 해서 유적 전체를 조사했다.
투기장 한가운데 거대한 검은 말에 올라탄 야생왕이 있다. 그 뒤로 불타는 검을 손에 쥔 불사왕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여기인 모양이군."
"상당한 사기다. 대략 줄여봐도 4만 정도는 될 것 같아."
"어차피 귀찮은 놈들일 뿐이죠. 그런데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생각 중이다. 이놈들 도대체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
"더 조사해 볼 가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여긴 쥐새끼 한 마리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응, 그런 모양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이미 모두 사라졌어."
"그 정도 리치 대 부대를 움직인다면 역시 포탈이겠죠?"
"물론, 케이사르 쪽에서 꽤 괜찮은 기술을 쓰는 놈이 있다고 봐야겠지."
"시간을 벌어주면 벌어줄수록 손해만 아니오. 이놈들 제국이 아닌 곳으로 숨은 것 같은데?"
"다른 차원이겠지."
"마법사 패거리도 그 정도 차원을 만들지는 못하는데 그거 신의 영역 아니오?"
"지금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 아마도 과거 말라키가 만들어 놓은 몇몇 장소를 발견한 거겠지."
"성황께서도 찾기 힘들어하신 것을 어찌 놈들은 쉽게 찾아냈을까요?"
"케이사르는 오랫동안 비밀의 지식을 탐독해 왔어. 그곳에서 방법을 찾아낸 거겠지."
"이제 이곳을 더 살펴볼 이유는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우, 뭐가 느낌이 좋지 않아. 당분간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우리는 적이 있는 곳으로 진군하는 군대요."
"내 말 들어. 세상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이건 큰 변화를 의미해."
"···. 내가 우겨서 되는 일이 아니겠지요?"
"뭔가 말하기 힘든 그런 느낌이야. 잠시 이곳에 대기해. 이 유적은 다른 힘을 발산하고 있어. 아마 고대 말라키의 어떤 유산에 의한 힘이겠지."
"우리가 그 힘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말이요?"
"그래, 그 말이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어. 뭔가 이 꺼림칙한 기분을 해소하기 전까지는 이곳을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이 맞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성군은 유적에 모두 들이겠습니다. 보급은 아칸에 맡겨야 할 것 같네요."
"내가 윌리엄 대공에게 직접 부탁해 놓겠네."
갑자기 무이가 크게 투레질하자 야생왕이 고삐를 잡아당기며 진정시켰다.
"무슨 일이요?"
"그분께서 이곳에 오신 것 같네."
"참으로 바쁜 분이신 것 같습니다. 인사 드려도 될까요?"
"아서라. 그분 나름대로 목적이 있으니 괜한 간섭은 오해만 키울 뿐이다."
"그래도 그분의 안전은 우리 책임이 아니오?"
"하하, 안전이라. 아직도 넌 그분의 능력을 낮게 보고 있구나. 과거의 철없는 망나니가 아니란다. 우리 정도는 가뿐하게 넘어섰을 거다."
"남자는 무릇 검을 섞어 보지 않는 이상 인정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오."
"맘대로 해. 너의 그 아집이 언젠가 네 발목을 잡을 테니까."
"그래도 상관없소. 난 두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믿으니까 말이오."
"그분이 이곳에 온 것은 뭔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일 테지."
"전 어떻게 할까요?"
"성군을 흩어지게 하지 말고 한곳에 모아 두도록 해. 이곳은 넓어."
"아, 알겠습니다. 일단 보급부터 확인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보충하도록 하죠. 형님 말은 당분간 유적을 벗어나지 말라는 거죠?"
"응."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나머지는 형님이 알아서 조율해 주시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
테츠는 빠르게 움직였다. 아가므네의 종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엘로이와 필포드 경이 머물던 유적의 한 곳을 이미 다녀온 뒤였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아가므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가므네라면 반드시 어떤 표식이나 기호를 남겨 놨을 거다. 그런데 아무런 흔적이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면 피치 못한 상황에 빠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내공으로 오감을 확대하고 도력으로 기척을 잡으려 했지만, 전혀 잡히지 않았다. 역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자책에 빠졌다.
엠버스피어에를 다녀온 그 이틀 동안 이곳의 환경이 완전히 변해버렸으니까 말이다.
테츠도 인간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결정해야 했고 유적을 벗어나 아칸에 오고부터 사령쥐가 계속 신호를 보내왔다. 엠버스피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사령쥐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확인하는 편이 더 확실하다고 판단했고 네크로맨서 때문에 침묵의 숲까지 와 버렸기에 깊은 판단 대신 당시 기분의 흐름에 따라 엠버스피어로 넘어온 것이다.
확실히 엠버스피어에는 정리할 문젯거리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아울을 통한 보고도 중요했고 사자의 서와 마탄의 서 필사본을 아울에게 주어 타라스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했고 그 지식을 아울에게 해독하도록 명했다.
오크 때문에 침울해 있는 트리스탄에게 용기를 돋을 말도 해 줘야 했고 세렌과 칼멘에 각각 부여된 임무에 충실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이리저리 하다 보니 이틀이 훌쩍 지나갔고 부랴부랴 다시 유적으로 돌아왔더니 필포드는 고사하고 아가므네까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아가므네는 철저하게 훈련된 암살자다. 그녀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것이 기본 훈련된 몸에 밴 행동양식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아니면 흔적을 남길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아 기절했거나 아니면 죽었을지도. 물론 죽지는 않았다. 죽음이란 것은 반드시 어떤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것조차 없다면 그녀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
'몸이 하나인 것이 억울할 정도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곳에 있던 엘로이도 필포드도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체를 알수 없는 것은 폴트 울거의 행적이다. 폴트 울거는 길잡이 등불과 길잡이 보석을 이용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테츠를 그를 추격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리치가 있던 투기장에 나타난 세 명의 인물을 신경 쓰는 동안 폴트 울거는 뒷전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유적에서 놈이 움직인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놈은 도대체 누구지?'
진짜 폴트 울거는 이미 자신에 의해 불귀객이 되었던 터다. 누가 폴트 울거 행세하고 있는지를 밝혀내야 했다.
'후, 무슨 일이 동시에 일어나니 어느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그 순간의 결정이 이런 폐단을 만들어 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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