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러너의 일과
윈드러너의 일과
아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앞에는 벌거벗은 윈드러너가 서 있다.
"음, 변한 게 없는데? 몸에 쓰인 문자도 그대로고···."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언제 그놈이 변할지 모르고···. 자신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 같은데···."
벌어졌던 그 기행은 아울에 자세하게 전달된 뒤였다.
아울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윈드러너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불행히도 그는 오크의 몸인지라 과거 인간 때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오크는 마나를 모을 수 없는 불편한 신체였다.
그는 급히 레노번을 초빙하여 함께 조사했다.
레노번은 윈드러너를 조사할 때 매우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건 윈드러너가 제어하지 못한다는 능력이 발동되면 대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엘렌이 레노번을 알프레드가 아울을 철저히 보호했다.
"직접 봤다는 말이지?"
"저 혼자뿐이면 혹이라도 잘못 봤다고 하겠습니다만.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정작 본인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처음에 죽었다가 깨어나지 못한 상태라면 몸의 통제권은 누가 가진 것이지?"
아울은 턱을 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금서에 관계된 것이 아닐까요?"
레노번의 말에 아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말고는 지금 말한 것에 상황 설명이 안 되지."
레노번은 아울의 정체를 알고 난 다음부터 호칭에 고민이 생겼다. 몸뚱이는 오크지만 속 영혼은 테일리아드 최고의 대현자였으니까 말이다.
7현자 중 가장 막내며 공석이 되어 어쩔수 없이 추대되어 맡은 자리라 이 대현자 앞에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사실이 의회에 보고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죽여봐."
아울이 엘빈을 향해 말했다.
"뭐?"
"죽여 보라고."
엘빈은 썩은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떻게 할까? 단번에 심장을 찔러 즉사시킬까 아니면 목을 쳐서?"
"어떻게 하든 죽일 사람이 알아서 하는 거지."
불사의 몸인 걸 알면서도 눈앞에서 멀쩡한 사람을 찌르는 행위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얀마. 아프더라고 참아."
"괜찮아요. 이젠 고통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요. 후딱 하세요."
윈드러너 앞으로 다가온 엘빈이 턱짓으로 알프레드를 불렀다.
"왜?"
"죽으면 넘어질 거 아니야. 좀 잡으라고."
"에에?"
알프레드도 그 기괴한 장면을 봤기 때문에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선 듯 나서지 못했다.
"제가 의자에 앉을게요."
윈드러너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으며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때렸다.
"그럼 간다. 숨을 내쉬고 편안하게···."
"그냥 좀 빨리 찔러."
엘빈은 아울을 한 번 째려보고는 단검을 윈드러너의 심장에 박았다.
"윽."
두 눈을 부릅뜬 윈드러너의 고개는 곧 뒤로 꺾어지며 절명했다.
"엇!"
"위험해 뒤로 빠져."
알프레드가 급히 소리쳤다.
"단검이?"
엘빈은 윈드러너의 가슴에 박힌 단검을 힘껏 뽑았다. 심장을 관통했으니 당연히 피가 뿜어져야 정상일 거다.
피는 뿜어지지 않았다. 대신 기이한 형태로 단검을 휘감은 채 딸려 나왔다.
마차 살아 있는 뱀이 먹이를 휘감듯 단검을 칭칭 감아 맨 채로 딸려 나온 것이다.
엘빈은 잽싸게 뒤로 뛰어 사거리를 벌였다. 그러자 단검을 휘감은 핏줄기는 채찍처럼 튕겨 나가더니 다시 윈드러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상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빨리 아물기 시작했다.
"그거 이리 줘봐."
"위험해."
"시끄러워! 뭘 조사하려면 위험은 감수해야지."
"푸하."
그러는 사이 윈드러너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가슴을 내려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했어요? 제가 다시 살아난 것 맞죠?"
"그래."
"근데 왜 피가 한 방울도 안 보이는 거죠? 심장을 찌르셨던 것 같은데?"
"네 피는 살아 있어."
"네?"
"뭔가 변화가 있긴 있는 모양이구먼. 달라니까."
"알아서 하라고 무슨 일 생겨도 난 몰라."
단검을 든 아울은 윈드러너의 팔을 잡고서 정확히 손목의 동맥을 끊었다.
그러자 확 쏟아져 나오던 피가 갑자기 뒤엉키더니 뱀처럼 단검을 타고 올라와 아울의 손을 휘감았다.
"위험!"
"잠깐 멈춰. 괜찮아."
아울은 자기 팔목을 타고 올라오는 핏줄기를 유심히 살폈다.
"어때 느낌은 있어?"
"전혀요."
"제어를 해봐. 될 거야."
"네?"
"멍청아. 머리를 쓰라고. 생각을 하란 말이야."
아울의 호통에 윈드러너는 생각을 집중했다. 그러자 움직이던 핏줄기가 멈췄다.
"됐어. 천천히 끌어당기는 거야. 알지?"
윈드러너는 눈을 찡그리며 집중했다.
"더, 집중해. 잡생각은 버리고 생각을 한 점에 집중해."
그러자 과연 핏줄기가 조금씩 아울의 몸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도로 집어넣어. 네 몸 안으로 빨아들인다고 생각해."
윈드러너가 집중하자 몸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고 상처도 치유되었다.
"이 단검 말고 평범한 검으로 줘봐."
엘빈이 건네준 단검은 잉겔리움 금속으로 만든 검이다.
레노번은 자신이 차고 있던 단검을 건넸다.
아울은 검날을 확인해 보더니 다시 윈드러너의 손목을 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베이지 않고 심지어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그렇군."
"어떻게 된 겁니까?"
레노번의 물음에 아울이 답했다.
"마족의 신체를 통째로 먹은 것은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과는 달라 놈들의 신체 능력까지 흡수했어. 즉 몸이 마족과 같아졌다는 거지. 날 흡수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야. 마족보다 약하니까 즉 오크 따위는 먹을 가치가 없다는 거지. 너희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야. 신체 능력이 마족과 비슷하긴 해도 마족보다 아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내공은 다른 거겠죠?"
"그럴 거야. 신체 조직만 변했어. 아니지, 피까지 변했구나. 이놈은 이제 각성자를 넘어서 마족 특유의 근력과 속도를 가졌겠지."
"갑자기 왜 이런 거죠? 지금까지는 아무 일 없었잖아요."
"끙, 아직 해석 중이야. 이놈의 몸에 새겨진 문자는 두서없거든. 조각조각 흩어져 있어 해독하는 것은 고사하고 퍼즐을 맞추는 것도 힘들어. 아직 내가 해석하지 못한 부분에서 발생한 일이겠지."
"그럼 교주님께 알려야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만약 이것으로 여섯 번째 금서가 작동한 것이라면 마지막 일곱째가 눈을 떴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무언가 말하려고 윈드러너가 입술을 달짝였다.
"왜? 뭔가 할 말이 있어?"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상한 느낌이 있으면 즉시 내게 말해. 넌 우리에게 비밀이 없어야 해. 알겠지?"
"그, 그럼요."
알프레드가 말했다.
"그럼 우리는 윈드러너와 같이 있어도 괜찮다는 거죠?"
"그럴 거야. 신체적 조건은 마족이 훨씬 맛있으니까 앞으로도 마족만 먹을 거야. 가만. 어이 레노번 혹시 연구 중인 마족 시체 남아있나?"
"마침 온전한 것 한 구가 있습니다. 머리가 잘리긴 했어도 아직 해부 전이라."
"애들 시켜 그것 가져 와 보라고 해. 그리고 가서 에르제베트로 좀 불러오고 마녀의 시선으로 보면 뭔가 다른 것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레노번의 연락을 받고 온 마법사 두 명이 마족의 시체를 옮겨 놓고 나갔다.
탁자 위에는 열 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아이 시체가 놓여 있다.
모두의 시선이 윈드러너에 쏠렸다.
"해보라고."
"네?"
"먹어봐."
아울에 말에 윈드러너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식인종도 아니고 뭘 먹으란 말이에요?"
"벌써 두 마리나 먹었다며? 이왕 먹은 거 또 먹으면 되지. 그리고 이놈은 엄밀히 말해서 인간은 아니잖아?"
"그래도 싫어요."
"야, 확실히 할 건 해야지. 지금 중요한 건 원인을 찾아내는 거란 말이야. 이걸 통제하고 싶지 않은 거야? 만약 그러다 진짜 동료에게 피해를 주면 어떻게 될까? 넌 마교에서 축출 될 거야. 마교인끼리 절대 죽이거나 하면 안 되는 규율 알지? 최고 용병이 된다는 꿈도 산산이 부서지는 거지."
아울의 협박 아닌 협박에 엘빈은 고개를 흔들었다.
'망할 영감쟁이.'
윈드러너는 탁자 앞에 섰으나 선 듯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그때 에르제베트도 들어와 일행과 합류했다.
마족 아이의 팔을 잡았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래? 잘 좀 해봐."
"설마 이걸 뜯어 먹으란 소리는 아니죠?"
아울이 알프레드를 보며 말했다.
"이봐. 등 뒤에서 찔러봐. 그럼 피가 나올 거야. 심장은 찌르지 말고 죽으면 소용없으니까. 비켜 찔러."
알프레드도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윈드러너 뒤로 돌아가 대검을 쑤셔 박았다. 대검은 윈드러너의 가슴을 뚫고 불쑥 튀어나왔고 검 끝에 매달린 핏줄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마족의 시체를 감지한 듯 내리박혔다.
"됐어. 빼, 빼내라고."
"알았다고요. 정말 꽉 깨물고 있는 것 같아서."
알프레드가 힘겹게 검을 뽑아내자 상처에서 핏줄기가 작살처럼 튀어나와 마족의 신체를 휘감았다.
"오! 오! 이거 정말 환상적인걸?"
아울은 감탄사를 내질렀고 다른 이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상처를 중심으로 윈드러너의 가슴이 활짝 열렸고 안의 내장이 발아래로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내장에는 심장은 물론 허파, 간, 창자, 할 것 없이 모두 쏟아져 내린 상태였다.
시뻘건 핏줄기가 오랏줄처럼 마족을 휘어 감고 텅 빈 뱃속으로 끌어당기자 활짝 열렸던 갈비뼈는 마족을 감싸 안 듯 천천히 삼키기 시작했다.
이걸 삼켜야 한다고 표현해야 할지··· 여하튼 통째로 집어삼키더니 불룩했던 배는 천천히 가라앉았고 상처도 치유되기 시작하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갔다.
다들 눈앞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모습에 할 말을 잊어 버렸다. 심지어 에르제베트마저 넋 놓은 사람처럼 눈만 동그랗게 떴다.
신나는 사람은 아울뿐이었다.
"역시 우월한 종에는 바로 반응하는구먼. 우리는 안전할 거야. 약해 빠졌으니까. 이놈은 자신보다 우월한 종만 흡수하나 봐."
"아주 신이 났습니다. 그려."
"그럼 흡수한 마족을 자신의 것으로?"
"음, 그래! 아마 더 강해졌을 거야. 저 내장은 필요 없으니 버린 거고 흡수한 마족을 분해해 이미 내장을 다시 만들었을 거야."
"그럼 계속 흡수하면 더 강해진다는 겁니까?"
"이론상으로는 그럴 거로 생각해. 연구는 계속해 봐야겠지만."
"당연히 금서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당연한 소릴. 말라키가 무얼 연구했나? 어떻게 하든 인간이 마족을 딛고 일어서리라고 생각한 거지. 이것도 그 결과물의 하나야. 무려 여섯 번째 금서라고!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되는걸. 해독을 서둘러야 할지도 몰라."
"저도 도움이 된다면···."
"흥, 어림없는 소리. 금서가 달리 금서인가? 그 내용이 퍼지지 않아야 함은 기본이지. 금서를 보는 것은 나 하나만으로 족해. 교주도 그걸 원하는 것이고. 왜? 지식이 탐이나?"
"하하, 아니라고는 할수 없지만, 이번 사안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니만큼 이해해야겠죠."
"어이, 어때?"
"무슨 말씀이죠?"
"인마! 아이 하나 통째로 삼킨 녀석이 뭐라는 거야? 제어를 할 수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윈드러너는 잠시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지. 아. 그렇지. 본능입니다. 본능적으로 일어난 것 같아요. 아직 제어하기는 좀···."
아울은 엘빈을 바라봤다.
"자네가 힘 좀 써 주시게."
"무엇을?"
"저 녀석이 제어권을 찾을 때까지 마족을 계속 잡아 먹이는 거지."
"에? 그게···. 정확히 알고 하는 말인 거냐?"
"확신이 안 서면 교주께 물어보면 되잖아. 간단한 걸 가지고 뭘 고민해."
***
10시간 전
탈로스는 한 창 헬하운드를 때려잡고 있었다. 케이사르와 만남 이후 계속 녀석에게 한 발짝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이 경멸하는 네크로맨서의 주술 능력이 극대화된 몰레이그의 존재는 이제 신경 쓰일 정도가 되었다. 탄툴라의 문을 열고 기간테스를 찾아낸 것도 몰레이그가 분명했다.
말라키가 남긴 흔적을 찾아내는 뭔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였냐가 수수께끼였다.
라마단의 정수 없이 포탈을 연 것을 보면 그에 필적하는 힘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상처가 났을 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덧나게 마련이고 그때 아프더라도 고름을 짜내지 않으면 결국 상처는 썩는다. 그러면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중원 역사에서도 수없이 반복된 일이 아니던가.
그때였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확 느껴지며 몸이 휘청거릴 만큼 균형 감각이 무너져 버렸다.
한참 드잡이질을 하던 중이라 헬하운드 몇 마리가 그 틈에 날카롭게 이빨을 세우며 재빠르게 덤벼들었다.
순간 발에 내공을 불어넣고 힘껏 점프해 낡은 고성의 무너진 석벽 위로 뛰어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단전에서 알수 없는 기운이 갑자기 치고 올라와 순간 내공이 흩어질 뻔했다.
그는 곧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게 왜?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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