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빈의 분투
엘빈의 분투
바실은 두 다리에 내공을 불어 넣고 있는 힘껏 위로 뛰어올랐다.
순간 바실은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적양장으로 놈을 칠 것인지 아니면 뛰어올라 피할 것인지···.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제럴드의 고함을 들었고 본능적으로 몸을 위로 띄웠다.
마왕의 움직임은 단순했다. 돌격해 들어오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위로 떠 오른 바실의 발밑으로 지나가 버렸다.
-콰~ 쾅
마왕은 서쪽 성벽 문을 들이받았고 참나무에 강철로 덧대 마족도 부수지 못할 정도로 보강된 성문을 박살 내며 안으로 뚫고 들어왔다.
"적이다. 공격 대형을 유지해."
마교의 제자들은 재빨리 움직이며 마왕을 포위했다.
그때 성벽 위로 뛰어오른 바실이 고함쳤다.
"놈은 마왕이다. 너희는 상대가 아냐! 덤비지 마라."
다행히 마교 제자들이 덤벼들기 전 부서진 성문 구멍으로 세렌이 날아들었다.
마교 장로의 여러 제자 중 특히 엘빈 장로의 제자들이 소위 말하는 마교에서 급진파에 속한다. 이들은 자신의 무력을 믿고 전투를 즐기는 제자들이 즐겨 가입하는 곳이다.
마교는 테츠가 가장 이상적으로 만들어 놓은 단체다. 수습 기간 및 연습 기간 여러 스승을 통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며 그중에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장로를 선택해 가입 신청을 할 수 있다.
입부 희망자는 장로 또는 첫째 제자의 심사를 거쳐 최종 합격 승인을 받게 된다. 이런 시스템은 각 장로의 특징과 무공을 구분 짓게 되고 그와 비슷한 생각과 행동력을 지닌 자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장로별로 도덕적 가르침과 행동 요령 또한 달랐다.
엘빈 장로는 무공 중 특히 장법과 경공을 중시하며 노력과 근성파들이 모여든다. 당연히 노력과 근성을 앞세우니 마교 제자 중에서 내공 수준이 가장 높은 제자들이 주를 이루며 무력을 중시하고 전투에 있어 물러섬이 없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단체다.
그들은 장법과 경공으로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난전을 즐긴다. 그들은 적의 선두를 무너뜨리고 대형을 파괴하는 무서운 자들이다. 그런데도 타 장로 제자보다 사상자가 적은 것은 그들의 경공이 공격용 경공이라는 데 있다.
적을 앞에 두고 물러선다는 것을 치욕으로 아는 자들이기에 바실의 외침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앞서 있던 제자들이 마왕에게 돌격했을 것이다.
부서진 구멍을 뚫고 들어온 세렌이 사자후를 내질렀다.
"물러나라."
내공이 실린 우렁찬 소리에 내공이 약한 제자들은 양손으로 귀를 막고 뒷걸음질 쳤다.
물론 마왕도 세렌의 사자후에 반응하여 돌아섰다.
"됐다. 놈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어."
제럴드가 뛰어들며 장검을 뽑았다.
"엘렌 장로에게 알려라."
"벌써 갔습니다."
세렌은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모두 방해되니 모두 물러나. 궁수는 잉겔리움 화살을 준비해.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절대 쏘지 마."
엘빈 장로의 제자들은 잘 알고 있다. 세렌 장로의 팀은 특별한 파티로 마교에서는 죽음을 몰고 다니는 저승사자로 통하는 파티다.
그 대장 격을 맡은 세렌 장로의 무위는 모든 장로 통틀어 최고라고 칭해지고 있고 그녀가 펼치는 검법은 사신의 춤이라 불린다.
그런 세렌 장로가 이끄는 파티는 마교에서는 파괴자들이라 말한다. 그들은 과거 오크의 사만 대군을 맞이하여 전장을 초토화한 것은 전설이며 마족 무리에도 꿀리지 않고 천여 명을 베어 넘긴 세렌 장로의 위용은 마교에서 아직 회자되고 있다.
자존심 강한 엘빈 장로의 제자들이라도 이 세렌 장로의 파티는 거스를 수가 없는 것이다.
난전이 펼쳐졌다. 세렌과 마왕이 들러붙어 싸우는 데 그들이 부딪칠 때마다 파이어볼 터지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쿵, 쿵' 거리는 소리와 공기의 진동이 두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피부로 말해 전해 주고 있다.
세렌은 천마수라검만을 사용하여 마왕을 몰아붙였다. 마왕의 공격은 매우 단순해서 단점 투성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단점을 상쇄시키는 것은 두 가지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무식할 정도의 맷집과 가공할 정도의 빠르기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마왕의 단점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허점투성이지만 무식한 맷집으로 잉겔리움 검마저 튕겨 냈고 상대가 십여 차례 검을 날려도 단 한 번의 주먹질로 분쇄해 버렸다.
보라. 롱홀드에서 가장 큰 도시 엠버스피어 외곽 북쪽 성문에서 서쪽 성문까지 전속력으로 달리고 이렇게 싸워도 지친 기색은커녕 싸우면 싸울수록 속도가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세렌이 사용하는 천마수라검은 쾌검류에 속하는 검법이라 마왕은 아예 피할 수도 없고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쉴 새 없이 바이올렛을 받아 내다보니 몸에서 흰 연기가 끊이질 않고 피워 올랐다.
어떻게 보면 세렌의 일방적인 공격처럼 보이지만 둘은 대등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었다.
제럴드는 둘의 싸움을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 소름이 솟아올랐다. 지금 마교에서 가장 강한 세렌이 겨우 이런 공방을 이어갈 정도면···.
만약 마왕이 북쪽이 아니 서쪽으로 먼저 침입했다면? 아마 엘빈 장로의 제자들은···.
그 생각을 하니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요즘 마족의 침입이 늘어 가더니 어느 날부터 대규모 기습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우두머리 마왕까지 나타났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정말 큰 일을 치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들이 단순히 인간의 도시를 대상 삼아 공격하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수 없다.
제럴드가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고 고함친 것도 있지만 실제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니 끼어들 틈은커녕 감히 용기마저 들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인간이 아닌 괴물들이었다.
안 그래도 마왕의 돌격으로 부서진 성문이 두 사람의 격돌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세렌은 그 파편을 발로 차 마왕에게 날려 보냈다.
마왕은 방어 따윈 아예 무시하고 몸으로 들이받으며 달려왔다. 내공도 전혀 없는 마족이 같은 등급의 각성자와 이토록 열정적으로 싸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휘리리릭
장내에 엘빈 장로가 날아내리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세렌 장로가 잘 싸우고 있으니 엘빈 장로까지 가세하면 확실히 놈을 제압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엘빈은 바로 덤비지 않고 팔짱을 끼었고 세렌과 마왕이 싸우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바실이 엘빈 장로 옆으로 날아내리며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저놈이 마왕인가?"
"확실합니다. 칼멘이 말했던 정보와도 일치하고 저런 무력을 가진 마족은 마왕뿐입니다."
"음, 확실히 강하군. 평범한 마족은 아니다. 모습이 아이가 아니라서 싸울 맛이 나지 않는가?"
세렌의 검이 미친 듯이 마왕을 헤집어 놓았다. 금세 마왕의 피부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러나 상처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았다.
"호, 잉겔리움 무기가 통하지 않는 거냐?"
엘빈은 노련한 눈빛으로 마왕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피부는 단단하기가 강철보다 강하며 치유력은 일급 힐러 치유의 은총을 상회한다. 마족이라고 말하기에는 미안해질 지경인걸. 거의 반신의 경지에 오른 놈이다."
엘빈은 입술을 핥았다. 투쟁심이 불끈불끈 솟아나는 느낌이다. 강자는 늘 그렇다. 자신의 위력을, 능력의 한계를 늘 시험해 보고 싶어 한다.
자신이 어느 정도 강한지를 그 한계를 느껴 보고 싶어 한다. 네크로맨서 죽음의 사막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종종 장로들끼리 대련은 하나 손에 사정을 두어야 하고 서로 다치지 않도록 노력까지 해야 한다.
이러면 제대로 된 수련 효과가 나오질 않는다. 엘빈은 다른 장로보다 더한 경험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상대와 대련한 사람은 장로 중에서 엘빈뿐이었다.
적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을 때의 쾌감. 그 감각이 솟구쳐 올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칠무신 그림자의 왕 하츠 린네를 골로 보내버렸던 그 자신감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테츠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하츠 린네는 성력 때문에 목숨을 건졌을 수도 있겠지만 만천화우에 의해 평생 불구로 살았을 것이다. 테츠가 특별히 가르쳐 준 기술. 그리고 워낙 지독한 기술이라 항상 말하기를 상대를 죽이겠다고 확실히 마음먹기 전까지는 절대 사용하지 말 것이며 죽기 직전까지 딱 한 명의 제자에게만 전수하라는 무공이다.
당연히 만천화우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엘빈 본인뿐이다. 그는 늘 이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했고 루안의 은신전과 함께 마교에서는 가장 두려운 무공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루안의 은신전은 모두 봤지만, 엘빈의 만천화우를 본 사람은 없다. 그것은 상대를 죽이기 전에는 펼치지 말라는 테츠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에서는 칠무신을 죽일 수 있는 기술이라고 소문이 나 있을 뿐이지 그 누구도 엘빈의 만천화우를 본 사람은 없다.
혁련광이 있던 중원에서도 가장 악랄한 무공으로 손꼽혔던 것이 사천당문의 마천화우다.
"이제 슬슬 교대해 보자."
상대를 파악한 엘빈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세렌은 전속력으로 달려온 상태에서 바로 마왕과 드잡이질에 들어갔다. 그녀는 엘빈 장로가 올때까지 마왕을 잡고 있으려는 심산이었다.
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내공을 한계까지 뽑아냈고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렸고 다시 전력을 다해 마왕을 상대하느라 지칠 수밖에 없었다.
"차합"
세렌은 마왕의 목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질렀고 마왕이 움찔하는 순간 머리를 타 넘어 반대편으로 날아내렸다. 뒤돌아선 마왕이 달려들자. 허공에서 한 소리 음성이 내려왔다.
"이제 네 상대는 나다."
백로마현의 발차기가 연속으로 마왕의 가슴을 때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바로 앞에서 통각의 맥박이 터지는 소리와 같았다.
"으라합"
두 번 발을 내지른 상태에서 그 반발력을 이용 허리를 회전하여 내려찍기를 정수리에 꽂아 넣은 다음 그대로 몸을 한바퀴 회전하여 가슴에 옆차기로 발을 질러 넣었다.
이미 상대의 강함을 파악한 엘빈은 내공을 다 끌어 올려 마음먹고 전력으로 후려찬 것이다.
-휙. 퍼퍽!
엘빈의 발차기를 맞은 마왕의 몸은 땅 위로 낮게 날아가 성벽에 푹 처박혔다. 실로 가공할 발차기였다. 세렌과 대등하게 싸우던 마왕이 엘빈의 발차기에 성벽까지 날아가 박혀 버렸으니 그 제자들은 일시에 주먹을 쥐고 우레와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엘빈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조용히 하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놈은 조금의 충격도 받지 않았다. 이번 싸움을 놓치지 말고 눈에 담아라. 강한 적을 상대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법. 공격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벽에 박혔던 마왕이 무서운 속도로 튕겨져 나왔다.
"쩝. 조금 내상은 입은 줄 알았더니 무식한 놈."
제럴드가 고함쳤다.
"놈은 세렌 장로의 파천수라장을 정면으로 받고도 끄떡없었습니다."
무공을 익히고 그에 몰두하면 상대의 강함이라든지 움직이라든지 그런 부분이 저절로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엘빈은 세렌과 싸우는 마왕은 오직 맷집과 속도에 의존한 단순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임을 금방 파악했다.
마왕보다 세렌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러나 그 데미지를 모두 흡수해 버리니 그것이 문제였다.
그동안 죽음의 사막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테츠는 각 장로에게 메모라이즈로 새로운 무공을 전수해 주었고 그것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엘빈은 잠도 아까울 정도였다.
무공의 길로 들어선 자의 치명적인 단점.
늘 자신의 강함을 시험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더욱더 강해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살 수밖에 없다.
과거 비천한 도둑 출신인 자신이 마교에서 이런 직위를 가지고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를 거느린 위치 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테츠가 자신은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그릇에 맞는 지위와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늘 가슴 한구석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 수많은 제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마왕의 무식한 돌격.
엘빈은 양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기마자세를 취한 뒤 양 손바닥을 맞댄 채 내공을 끌어 올렸다.
마왕이 코앞까지 왔으나 엘빈은 피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 호흡을 고르던 세렌도 움찔했다.
-파파팟
부딪치기 직전 엘빈의 양손이 확 펴지며 마왕의 견정혈을 노리고 무섭게 쇄도해 들어갔다.
- 작가의말
가끔은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이게 배움이 될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
끈기와 노력이 항상 달콤한 결과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인데 말이다.
시행착오.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할지
유종의 미를 선택해야 할지
그 아슬아슬한 난감한 상황에
고뇌 하곤 합니다.
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후원 받은 금액 4만원 남짓
사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나 스스로 발전의 거름이라고
생각하고 덤빈 일이라 후회는 없습니다만.
힘이 빠지는 건 사실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계속 줄어드는
느낌이라 발전이 없고 퇴보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미련한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답답하기도 한
하루입니다. 벌써 12월 마지막 주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제 글 읽어 주시는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늘 변함이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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