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그것(?)
움직이는 그것(?)
부서진 건물 내부는 다른 곳과 뭔가 모를 다른 기분이 들었다.
'뭐지? 기분 탓인가?'
매우 어두웠지만, 사물을 구분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건물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통로였다.
'헐, 밖에서는 전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이쪽으로 뚫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네.'
즉 외부에서는 그냥 평범한 건물에 도로가 이어진 길이었다. 달려가는 속도를 못 이기고 그 충격에 벽을 뚫고 들어왔고 또 바닥이 무너져 아래로 떨어져 내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
앞에서 솔솔 불어오는 것은 바람이었다. 지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상이다.
테츠는 빠르게 달려갔다.
'신선해. 가만?'
이곳은 지하의 통로고 그 기간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유적이다. 당연히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했다.
이런 바람까지 살살 불 정도면 바닥에 쌓인 먼지가 휘날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에는 눅눅함도 먼지 냄새도 심지어 곰팡내도 아예 없었다.
천마비행을 멈춘 테츠는 통로 벽에 손가락을 대어 봤다.
차가운 돌벽의 감촉에 손가락을 비벼봤지만 먼지는 한을 묻어나지 않았다.
테츠는 도력으로 손바닥에 불을 붙여 횃불처럼 타오르게 했다. 도력을 태워 불을 밝히는 간단한 원리다. 공기가 충분하므로 불은 마른 장착불 보다 더 밝게 타올랐다.
벽을 비춰 보니 방금 청소한 것처럼 반들반들했다.
손으로 비벼보니 진짜 먼지 한 올 묻어나지 않았다.
"이건 불가능해. 매일 물걸레질하지 않는다면 이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테츠는 한동안 멍한 표정이 되었다.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청석이 깔려 있었고, 과장되게 말해서 얼굴이 비쳐 보일 정도였다.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이미 조사해 봤지만 마력도 그와 비슷한 다른 기력은 일절 검출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이 마법적인 스킬에 의한 거라면 분명 엄청난 마력 파동이 느껴져야 정상이다.
테츠는 문득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 똑똑한 테츠도 지도 없이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이 정확히 유적 어디쯤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대신 이런 곳에서 갇히면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가라는 기본적인 상식에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던 복도는 단지 어둠 때문이었고 얼마 달리지 않아 그 끝이 보였다.
'이거 물 냄새? 가만!'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 그림자. 분명 사람이다. 벽을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천정에 손이 닿을 만큼 키 큰 자와 인간 성인 남자 비슷한 키의 사람이 통로 끝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기척이 잡히지 않지?'
인간이란 무릇 몸에서 기를 발산한다. 테츠와 같이 공력 10성 이상은 사람은 천 보 밖에 있는 농부의 기척을 읽어 낼 수 있다. 더욱이 도력까지 가지고 있는 다음에야 무엇을 말하리오.
그러나 불과 백 보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의 기척을 읽어내지 못했다고 그것도 그들이 은신해 있거나 기척을 감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예 인간이 내뿜은 기척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곳임에야.
여기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테츠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 눈앞에 그들이 똑똑히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도 기척을 느낄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이 훨씬 더 놀라움을 주고 있었다.
양동이 그리고 걸래.
그렇다. 그들은 지금 벽과 천정을 물걸레로 닦고 있었다. 테츠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오직 물걸레 청소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테츠는 왜 벽과 바닥이 먼지 한 올 없이 반질반질한지 비로소 그 이유를 알수 있었다.
"이보세요. 두 사람 무얼 하는 겁니까?"
천정에 손이 닿는 인물은 비정상적으로 키가 컸다. 평범한 사람의 한 배 반은 족히 넘는 키다. 인간 중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거인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답이 없다. 테츠는 신중히 다가갔다.
기척이 없으니 그들이 가진 감정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살기는 눈곱만큼도 없고 실제 그 둘이 눈앞에 없었다면 그들의 존재 자체를 아예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기.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테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테츠가 본 것은 그자의 손이었다. 그건 인간의 것이 아니다.
나무로 만든 손에 관절에는 철침이 박혀 있었고 그는 나무 손은 걸레를 들고 벽을 닦아 내고 있었다.
테츠가 그의 어깨를 잡아챘는데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휙 돌아섰다.
얼굴도 나무다.
정교하게 사람의 얼굴을 깎은 것이다. 눈, 코, 입, 귀까지 정교하게 깎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작품 같았다.
혹시나 나무 가면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좌우를 둘러왔으나 진짜 나무로만 만든 나무 인형이었다.
세상 살아오면서 많은 신기한 것을 봤다.
살아 움직이는 뼈다귀, 하늘을 나는 거대한 본드래곤,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사령도 그렇고 하지만 그들은 모두 동력원이 있었다. 사령은 사기에 움직이고 리치 또한 사기다.
그냥 냄새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무는 그냥 나무 외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 인형은 다시 원래대로 허리를 돌리더니 벽을 닦기 시작했다.
테츠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새다.
'지능이 없는 건가? 나무 인형이라 도대체 얼마나 여기 있었던 거지? 동력원은 무엇이지?'
복도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밋밋한 벽이다. 통로에는 문도 없고 흔적조차 없다. 그냥 돌로 만든 통로라는 것이다.
테츠는 잠시 나무 인형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살폈다.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관절이 매우 유연했다. 심지어 인간으로는 꺾이는 범위를 넘어선 동작까지 무리 없이 해냈다. 그들은 오직 양동이에 받은 물에 걸레를 빨고 다시 바닥과 천장, 벽을 닦는 것에 열중했다.
테츠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이 나무 인형 둘이 이 짓을 얼마나 하고 있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수천 년이 넘게 이들을 발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이상하네! 걸레는 사용하면 낡을 테고 물은 또 어디서 난 것일까?'
"이봐요.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테츠가 어깨를 툭툭 쳤는데 반응이 없다.
신기하고 황당한 이들 때문에 다른 곳으로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테츠는 조금 더 가감하게 나무 인형의 몸을 더듬어 봤다.
그냥 아예 통나무 그 자체인 듯 보였다. 생명에 관계되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관절 부위에 박혀 있는 강철 침은 이 상황을 더 어이없게 만들었다.
'잉겔리움 금속은 아니고 평범한 철인데 물걸레질을 오래 해왔다면 분명 녹이 엄청나게 슬었을 텐데···.'
손가락 마디마디에 박인 강철은 녹은커녕 윤기가 반질반질했다.
'이건 따로 관리하는 모양인데. 어디서 나왔을까? 이 긴 통로를 매일 닦는 모양인데.'
테츠의 의구심을 오래가지 않았다. 마침 이들은 통로의 거의 끝자락을 닦고 있었기에 청소는 곧 마무리되었다. 키 큰 나무 인형이 양동이를 들고 걸레를 든 작은 나무 인형이 벽을 향해 돌아서더니 오른손바닥을 막다른 벽에 대었다.
그러자 손바닥을 중심으로 빛의 선이 벽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테츠는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 둘이 없는 곳에서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분명 이동 출구가 있을 거로 짐작하고 있었고 그들이 일을 끝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벽에 원형의 진이 생성되고 밝은 빛과 함께 둥그런 포탈이 열렸다. 나무 인형은 거리낌 없이 원형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테츠도 놓치지 않을세라 원형 포탈 안으로 뛰어들었다. 포탈은 마치 물결처럼 출렁거렸고 마치 깊은 물길 속으로 잠수하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호흡을 멈추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나무 인형은 인간처럼 호흡하지 않기에 상관없었지만, 호흡하는 테츠는 물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호흡이 되지 않았다.
즉시 내공을 끌어 올렸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질식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 뒤로 되돌아 나갈 수 없고 오직 앞으로만 전진해야 하는데 이 포탈은 처음 겪는 것으로 순간 이동이 아닌 긴 통로를 통과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도 산소도 없어 호흡이 되지 않는 물속과 같았다. 만약 이 통로가 기약 없이 길어진다면 꼼짝없이 익사할 판이었다.
테츠는 정신을 집중해 디멘션 포탈의 주문식을 전개하려 했으나 몸은 거친 물살에 휩쓸린 것과 같이 휘말려 쓸려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몸이 빙글빙글 돌았고 그 와중에서도 옆에 있는 두 나무 인형을 놓치지 않았다. 엉겁결에 나무 인형을 끌어 앉고 같이 굴렀다.
하지만 호흡 안 되어 기력이 뒤틀리고 숨이 가빠왔다. 아무리 테츠라고 해도 호흡이 안 되고 산소가 없으면 참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너무 방심했다.'
후회한들 지금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 아득하니 쫄아 들더니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까지 왔다.
아니 무슨 포탈이 이따위가 있냐고.
성급한 판단은 항상 위험을 초래한다.
그렇게 깐깐한 테츠조차 일순간의 안일함이 만든 이 죽음을 넘나드는 과정을 회피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극악한 상황까지 치달았다.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최고의 무공
최고의 마법
네크로맨서의 스킬
그 무엇도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호흡은 막무가내로 숨통을 조여왔고 흐려지는 정신은 내공으로도 도력으로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나무 인형이 테츠의 손을 덥석 움켜잡는다. 그건 의식했지만, 곧 나머지 의식이 꺼졌다.
"어푸!!!!!"
속에서 비릿한 물 냄새가 몰려나왔다.
끔찍한 두통.
비릿한 냄새.
테츠는 곧 이것이 물비린내라는 것을 알았다.
숨이 꽉 막혔다가 일시에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기분.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머리끝까지 확 치고 올라왔는데 이건 그냥 토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웩. 우웩. 우웩."
연거푸 구토했더니 배가 쪼그라들고 위 속 내용물이 해방감을 맞은 듯 만세를 외치며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황당한 상태였지만 테츠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상한 눈빛들을 놓치지 않았다.
기척도 없고, 살기도 없으니 적인지 아군인지 전혀 구분되지 않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은 나무 인형이었다.
한동안 입덧하는 임산부처럼 구역질해대던 테츠는 내공을 돌려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여기가 어디요? 말할 수 있는 나무 인형 있소?"
테츠는 노련하게 상황을 판단하기 전까지 공격 의사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약자다 보호되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도록 어눌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기 말에 반응해 오는 인형은 없었다. 솔직히 입을 벌려야 말을 할 건데 대부분의 나무 인형은 조각품 그 자체이지 입이 있더라도 여닫히는 구조가 아닌 단순 조각된 형상이었다.
일단 나무 인형이 적의가 없고 오히려 자신을 구호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상체는 풀어 헤쳐져 있었고 간단한 구호 조처를 한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테츠는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어 내공과 도력을 돌려 기의 순환을 올바르게 이끌고 난 뒤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세상 처음 보는 구경이라도 났는지 다수의 나무 인형이 테츠를 둘러싸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도 제각각이고 생긴 것도 다 달랐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소? 지능이 있는 거요? 말할 수 없으면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는 거요? 여기 얼마나 오래되었소?"
하지만 대답하는 인형은 아무도 없다.
테츠는 바닥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하에 이런 세상이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먼저 황당한 것은 푸른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은 더없이 높았다.
'포탈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온 것 같군. 아마 인간이라면 그 포탈을 통과하지 못했을 거야.'
솔직히 테츠 정도 되니 내공으로 호흡을 억눌러 최대한 산소를 아꼈기에 이 자리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포탈을 통과하기 전에 질식사했을 것이다.
풀냄새가 가득 콧속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어느 마을 같은 분위기인데 사람이 사는 그런 마을은 아닌 것 같다.
난생처음 보는 건축물과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수 없는 것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군중 같은 나무 인형 틈에서 예의 청소를 하고 있던 두 나무 인형을 발견했다.
"이보슈. 뭐 좀 물어봅시다."
테츠가 다가가자 두 나무 인형이 손을 내밀었다.
"뭐라고? 무슨 의미요? 내 말 들리기는 하는 거요? 가자고? 따라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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