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zone(3)
다음날.
여기도 나무 저기도 나무,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 천지에 나무만 보이는 이곳.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울창한 나뭇가지에 가로막혀서 나뭇잎 사이사이 틈으로 극소수 빛만 내리쬈다. 한 인형이 그 음침한 분위기의 현장을 겁도 없이 혼자 걷었다.
터벅터벅.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힘없는 발걸음. 행인이 덤불로 둘러싸인 공터를 지나려던 순간, 몇몇 수풀이 잎 마찰음을 내며 좌우로 흔들렸다.
“포위해라!”
“혼자 다니는 패기 쩔고요?”
“이 시국에 뒤지려 작정했고요.”
우렁찬 외침과 함께 몇몇 인형이 쏜살같이 풀숲에서 튀어나와 행인을 습격했다. 감싼 이중 오더 내렸던 이가 앞으로 나서며 아는 체했다.
“여~ 줄리나. 혼자 청승 떨며 뭐해? 4분대가 버렸어?”
“...”
줄리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으며 곧장 왼쪽 손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행동에 리더가 다가왔다.
“바로 항복?”
띡.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줄리나가 자신의 월슬릿 리셋 버튼을 눌렀다. 이에 그녀와 가장 근접해있던 습격자가 제 손목에 채워진 월슬릿을 확인했다.
“분대장님. 2포인트 들어...”
바스락바스락. 피슝!
분대원의 보고가 이어지던 와중.
뒤에서 나뭇잎이 밟히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분대장은 잽싸게 허리춤에 병장기를 발검하더니, 자신의 머릴 향해서 날아오는 무언가를 무기로 내리쳤다. 그의 실력을 보여주는 듯, 어느새 검에는 은은한 빛이 서렸다.
툭.
목표물을 베어 가르는 시원한 소리가 아닌, 미약하고 볼품없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무언가를 허공에서 격추할 줄 알았는데 ‘갈랐다’ 싶은 순간 검의 궤도가 틀어졌다. 의외의 상황에 분대장이 당황했다.
“헛?!”
분대장은 의미 없이 공중에 휘둘러지는 검을 빠르게 회수했다.
‘단순한 투척 무기가 아니다.’
방금 검이 밀린 만큼 무언가의 날아가는 경로도 옆으로 많이 틀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공중에서 도움닫기 하듯 곧장 방향을 전환했다. 애초에 줄리나의 머리가 타겟인지, 그녀를 향해서 쏜살같이 쇄도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분대장이 기염을 토했다.
‘어떻게 방향을 튼 거지?’
분명 공중에서 날아가던 물체가 다시 움직일 방법은 많았지만, 지금 상황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한 상식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무언가는 줄리나 머리에 착지하더니 자신의 등장을 모두에게 알렸다.
“냐아~”
분대장의 시선은 줄리나 머리 위에 있는 그것의 행동에 고정됐다. 그뿐 아니라 모든 습격자의 공통사항이었다.
‘몬스턴가?’
“저게 뭐야?”
“귀, 귀여운데?”
의문을 가지지만, 몬스터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놈들은 자신을 제외한 종에겐 적대적이어서 저렇게 가까이할 수 없었다.
아무튼 분대장이 새로운 생물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체 파악이 한참인데.
피슝.
갑자기 어디선가 공기 가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익숙한 소리가 그 뒤를 뒤따랐다.
띡.
‘응?’
화들짝.
분대장은 순간 팔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대기 흐름’ 때문에 깜짝 놀랐다. 방금 미확인생물이 날아올 때도 흐름이 거의 안 느껴졌지만, 날아오는 속도가 만만해서 검을 뽑고 충분히 대응했다.
하지만 이번엔 궤를 달리했다. 흐름을 인지하나 싶더니 잘못 느꼈나 싶을 정도로 바로 사라졌다.
‘잠깐, 내 월슬릿에서 소리가 났던 것 같은데? 잘못 들은 거지?’
분대장이 방금 소릴 헛것으로 치부하며 불안감을 달래지만 심장이 요란법석 떨었다.
‘아니지?’
언제까지고 현실을 외면할 순 없었다. 분대장이 ‘제발, 제발.’ 속으로 간절히 외치며 자신의 포인트를 확인했다.
0.
“X바알!!!”
그가 절규하며 제일 가까운 나무에 달려가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쿵. 부스스.
나무는 타격받은 부위가 휑하니 원 모양으로 뚫렸고 그 충격에 전체가 요란히 떨렸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나뭇잎 마찰음이 ‘아파’를 외치는듯했다.
분대장의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귀여운 생물을 넋 놓고 지켜보던 후임들이 깜짝 놀랐다.
“분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짝.
털썩.
분대원의 물음에 귀싸대기로 화답하는 분대장. 맞은 이는 그의 화풀이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말을 걸자마자 때리는 상태로 보아 아무래도 눈깔이 뒤집혔다.
“어떻게 모은 포인트인데, 어떤 새낀지 반드시 찾아서 죽여버린다.”
분대장의 읊조림에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두가 파악했다.
‘X됐다.’
슬금슬금.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모두 분대장의 눈치를 살피며 뒷걸음질 쳤다.
“동작 그만.”
‘헉.’
“내 앞에 대가리 처박고 엎어져라. 3초 준다.”
후다닥.
그들은 잠깐 제자리에서 주춤거리더니, 분대장 앞에 모두 대가리를 처박았다. 반면 줄리나는 지시를 따르지 않고 눈치껏 자리를 비키는 중이었다.
하필이면 분대장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
“야!”
화들짝.
그녀는 놀란 상태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참자, 참자, 참자.’
분대장은 눈에 보이는 모두에게 화풀이하고 싶었지만, 훈련이 아닌 이유로 타 분대에 손찌검하면 분대끼리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그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줄리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뒤지기 싫으면 알짱거리지 말고 빨리 꺼져.”
줄리나는 그 소릴 듣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어서 현장을 벗어났다. 발에 땀 나게 도망치는데, 등 뒤로 누군가의 고통에 찬 비명이 아련하게 들렸다.
“으악! 살려···.”
* * *
어느새 사위엔 캄캄한 어둠이 들어찼다. 장작더미 위에서 불꽃이 오두방정 떨며 춤추고 있고, 그 앞에 줄리아가 앉아있었다. 역시나 그녀 머리 위엔 냐아가 제 앞발에 턱을 괴고 늘어져 있다.
부스럭부스럭.
줄리나는 불꽃의 따스함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곳을 향해 접근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에 따라 줄리아가 옆에 세워둔 KS를 들어 몸에 견착하고 소리 난 방향을 향해 무기를 조준했다.
그녀의 행동에 맞춰 머리 위에 늘어져 있던 냐아도 감았던 눈을 땡그랗게 뜨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줄리나 일병님! 저 다엘입니다!”
멀리서 비추는 불빛에 의해 손쉽게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던 다엘. 그녀의 경각심을 풀어주고자 먼저 자신의 정체를 알렸다.
익숙한 막내의 목소리에 줄리나가 약간 긴장을 풀었지만, 아직 무기는 조준한 상태였다. 냐아가 먼저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고 환영 인사를 건넸다.
“냐아~”
얼마 안 있어 무기를 조준한 깜깜한 허공에서 다엘의 신형이 드러났다. 그는 양손을 들고 손바닥을 보이는 상태로 다가왔다.
그제야 줄리나 KS를 원위치하며 전투 태세를 풀었다. 이제야 합류한 다엘이 어색하게 웃으며 줄리나 옆에 앉았다.
털썩.
줄곧 막내를 기다린 줄리나가 나뭇가지로 땅에 글자를 썼다.
사사삭.
“나, 더는 못하겠어.”
“왜 그러십니까?”
“너무 무서워.”
“죄송합니다. 바람잡이 역할을 맡겨서.”
그때 줄리나 머리 위에 얌전히 있던 냐아가가 상체를 내밀며 옆에 앉아있는 다엘의 머리통을 향해서 앞발을 연속적으로 휘둘렀다.
퍽. 퍽. 퍽.
“앗!”
피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얻어맞았다. 다엘은 맞은 자리를 손바닥으로 문대며 냐아를 노려봤다.
“왜 때려!”
“냐아!”
이상하게 계속 ‘냐아’만 말하지만, 말뜻이 이해됐다. 아무튼 냐아의 대답에 치켜떠진 다엘의 눈에 힘이 풀리며 고개가 아래로 숙어졌다.
“너도 힘들었다고?”
“냐!”
‘하아.’
솔직히 온종일 뛰어다닌 자신이 제일 힘들었다. 하지만, 푸념을 늘어놓을 처지가 아니었다. 다엘이 포인트 사냥하자고 이들을 꼬드겼기 때문이다.
“미안.”
토닥토닥.
막내의 힘없는 목소리에 줄리나가 등을 다독였다. 그때 불현듯 생각이 떠오른 다엘이 그녀를 바라봤다.
“맞다! 오늘 얼마나 벌었는지 보시겠습니까?”
끄덕.
포인트 전부를 털리고 길길이 날뛰는 분대장을 보면서 줄리나도 궁금하긴 했다. 그녀의 눈앞에 다엘이 월슬릿을 내밀었다.
“...!”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숫자.
줄리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떴다. 때마침 반응을 지켜보던 다엘이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디선가 봄바람 소리가 귀를 간질이며 들려왔다.
샤라랄라라~
줄리나의 모습은 여태 본 사람 중 가장 이뻤다. 거기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보는 순간. 맑고 깨끗한 눈망울 덕에 모든 피로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짧게 뜨여졌던 그녀의 눈이 다시 감기며 다엘의 사고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줄리나가 나뭇가지를 끄적이며 바닥에 다시 제 의사를 알렸다.
“방금 확인한 숫자가 맞는 거지?”
“저도 많이 벌린다고 생각은 했는데, 마지막에 정산할 때 깜짝 놀랐습니다.”
3명이 노력해서 오늘 하루 강탈한 포인트는.
8,328포인트.
디아크가 2년 동안 죽도록 모은 게 5,000포인트였는데 너무 차이 났다. 여기엔 다른 사정이 숨어있었다.
일단 분대장급이면 최소 2,000포인트 이상 소지했다. 그리고 다들 한가락 이상으로 하기에 포인트를 강탈하긴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아무리 강해서 힘으로 강제해도 싸움에서 패하면 도망치면 그만이다.
포인트를 뺏길 바에는 자존심 한번 구겨지는 게 100배 1,000배 나았다. 이러한 연유로 디아크는 다엘 만큼 포인트를 벌지 못했다.
줄리나가 나뭇가지를 끄적였다.
사사삭.
“나는 그냥 3,000포인트짜리 SK만 받을게.”
“그걸로 되시겠습니까?”
끄덕.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포인트를 어떻게 배분할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때 합의 본 게 반반. 냐아는 지속적인 간식 제공을 원했기에 거의 지분을 차지하지 않았다.
방금 줄리나가 3,000포인트만 요구했기에 다엘에게 5,000포인트가 떨어졌다.
‘와 5천!’
순식간에 부자가 된 것 같아서 좋았지만, 아직 레드존 기간은 반도 안 지났다. 남은 시간 동안 오늘 강탈한 포인트를 지켜야 했다. 잘못하다간 남은 기간 내내 추격받다가 다 털릴지 몰랐다.
더군다나 거의 반수 이상 분대장의 포인트를 훔쳤기에, 오늘 같은 꼼수는 더 이상 안 먹힐 거다.
“레드존 끝날 때까지 이 포인트를 지키는 게 중요할 듯싶습니다.”
끄덕.
그녀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즉 그 부분을 고심하고 있었다. 곧 생각하던 자신의 의견을 바닥에 적었다.
“특정 장소에 묻어두는 건 어때?”
“저희가 나중에 와서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진짜 재수 없으면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다엘과 줄리나가 포인트 수호 작전 의견을 나누며 토론이 한창인데, 냐아가 갑자기 다엘에게 앞발을 내밀었다.
“냐아.”
“월슬릿 달라고?”
“냐!”
왜 갑자기 이런 요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엘은 손목에서 월슬릿을 풀어서 냐아한테 내밀었다.
냐아가 꽤 넓은 강철판 형태의 월슬릿을 앞발로 손쉽게 집더니, 그 물건을 자신의 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쏘옥.
‘웬 주머니?’
냐아에게 주머니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다엘은 상상치도 못한 모습에 호기심이 솟구쳤다.
“집어넣은 거 살짝만 빼봐.”
“냐.”
다엘의 주문에 냐아가 배 주머니에 앞발을 집어넣더니 강철판을 빼꼼히 빼냈다.
“오오오! 너 주머니 더 있어?”
“냐아.”
“이제 말 걸지 말라고?”
“냐!”
냐아는 다시 머리를 앞발 위에 괴며 늘어졌다. 그러건 말건 다엘은 눈은 반짝반짝 빛나며 이미 호기심에 맛이 갔다. 그의 손이 냐아의 몸통을 잡기 위해서 기척을 최대한 감추며 슬금슬금 접근했다.
“냐!”
늘어져 있던 냐아가 손길을 감지하더니, 번개같이 일어나 가까이 있던 다엘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꽈직.
“아야!”
냐아에게 안된 일이지만, 이따위 공격은 눈이 돌아간 다엘을 저지엔 역부족이었다.
“냐!”
꽈직.
“아악!”
둘의 공방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어느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 작가의말
-
밤새 다엘에게 시달린 냐아. 복수를 다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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