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zone(1)
오후 훈련에서 마나를 활용하지 않으며 진행하니 다엘의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로라의 도움이 아주 컸는데, 그녀는 훈련 방법을 계속 바꾸며 신병에게 도움이 되는 최적의 수를 찾았다.
그렇게 다엘은 선임에게 훈련을 가장한 괴롭힘을 당하며 정신없는 한 주를 보냈고, 그다음 주에 드디어 첫 ‘강탈’주를 맞이했다.
「이곳은 방벽 밖 레드존이 시행되는 숲 훈련장.」
다엘은 전방의 커다란 나무에 몸을 기대어 엄폐하며, 고된 훈련으로 온몸이 삐거덕거리는 상황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일주일 동안 훈련받는다고 죽는 줄 알았네. 부분대장님은 '적당히'를 모른단 말이야.”
구시렁구시렁.
한참을 숨어서 은밀히 이동하는데 발바닥이 땅에 딱 달라붙으며 몸이 서서히 굳었다.
“엇!”
‘뭐에 당했지? 도대체 언제?’
뭐 때문에 이러는지 아직 상황 파악도 못 했는데, 주변에서 숨어있던 인기척이 하나둘 감지됐다.
“얘들아, 그물에 먹이 걸렸다. 시작하자.”
“이번에도 병신 만듭니까?”
“이 새끼한테 방금 맞은 거 화풀이해야겠다.”
대장으로 보이는 이를 필두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총 4명. 각자 날이 없는 둔기를 꼬나쥐고 다엘을 둥글게 감싸서 압박했다.
대장이 덫에 걸린 먹이에게 다가오다가 처음 보는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신병이야? 못 보던 얼굴인데? 몇 분대냐?”
“...”
다엘이 입술 지그시 깨물며 대답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이놈 봐라. 선임이 물어보는데 망설이네?”
‘레드존은 무조건 강자존(强者尊)이랬지?’
스왈로가 레드존 때는 선임이고 나발이고 만나는 사람 전부 강도랬다. 다엘은 몸의 마비를 풀기 위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마나를 흡수했다.
쏴아아.
다엘 주위로 심상치 않은 마나 흐름이 발생했다.
‘효과가 있다!’
가장 무게감이 크게 느껴지는 지면과 맞닿은 발 중심으로 흡수했는데, 굳었던 몸이 빠르게 풀렸다. 적 대장이 다엘의 낌새를 빠르게 파악하더니, 먹이가 움직이기 전에 다급히 공격 명령을 내렸다.
“쳐!”
대장의 지시에 다엘에게 빠르게 돌진했다. 습격자도 한가락 하는지라 서로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곧 지체없이 굳어 있는 다엘을 향해서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휙.
다엘의 사위를 점하며 휘둘러진 무기는 이미 목표물이 사라지고 없는 허공을 맹렬히 갈랐다.
‘으악! 식겁했네!’
빗발치는 몽둥이찜질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몸의 마비가 생각보다 늦게 풀려서 하마터면 뭣도 못 해보고 그냥 당할뻔했다.
지금 부대에서 그의 속도만큼은 최상급이라 봐도 무방했다. 최근에 교관조차 놀라게 한 속도가 더욱 성장해있었다.
-무조건 빨라야 한다.
안 그래도 기동성을 중요시하고 있었는데, 교관의 흘리기를 본 이후로 이 생각은 아예 굳혀졌다.
-강한 건 필요 없다. 속도가 느리면 맞추지도 못하고 대응 자체가 안된다.
더욱이 요즘 들어 근육에 마나를 집중시켜도 별로 안 아프고, ‘국소 부위 집중’ 개수도 많이 늘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가 넓어지니 더욱 빨라지는 건 당연지사.
아무튼 공격을 피한 다엘이 주변 지형지물을 둘러보았다. 지금부터 매우 빠른 속도로 공격하려면 앞서서 미리 파악해야 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주윌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이 정도면 얼추 된 거 같고.’
이제 반격하기 위해서,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적 대장을 향해서 움직였다.
‘우선 주빵!’
휙. 퍽.
“윽?!”
대장의 고개가 다엘의 주먹질에 맞고 획 돌아갔다. 대장은 분명 자신에게 돌진하는 신병의 움직임을 인지했다. 하지만, 보면 뭐 하나? 파악과 동시에 얻어맞았다.
대장은 속으로 경악했다.
‘내가 신병 놈의 속도를 못 따라간다고?’
자신의 주빵을 시작으로 신병 놈은 한줄기의 광풍이 되어 자신의 분대원을 휩쓸었다. 아무도 그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 채 두들겨 맞았다. 분명 분대원 모두 ‘대기 흐름 파악’을 배웠지만, 이상하게 신병 놈의 접근엔 대응하기 힘들었다.
아니, 그가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한 흐름이 잘 안 느껴졌다.
퍽. 퍽. 퍽.
“겁나 야비하게 싸우네!”
“멈춰봐 새끼야!”
“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뼈를 분질러주마.”
다엘의 빠른 공격에 대응하다 보니, 어느새 서로 뭉치게 된 습격자들. 한편, 다엘은 아주 신났다. 때리는 족족 느껴지는 타격감에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전부 풀었다.
‘사람 패는 게 이렇게 재밌다고?’
습격자는 신병의 공격에 반격하지만 전부 의미 없는 손놀림이었다.
“이 쥐새끼가!”
“하, 저놈을 어떻게 잡지?”
어찌 된 일인지 살펴보자.
다엘은 지난주 오후 훈련을 5일 만에 졸업했다. 훈련 첫날 ‘공 피하기’ 할 땐 마나로 회피와 방어를 동시에 해야 해서 움직임이 느렸는데, 로라의 조언에 힘입어 ‘대기 흐름 파악’능력 습득 후엔 방어가 필요 없어졌다.
온전히 기동력에 집중한 다엘의 속도는 독보적이었고 기술 습득 이후로 그의 공격 방식이 변했다.
공격 프로세스.
1. 폭발적인 기동력을 만들기 위해 짧게 국소 부위에 집중하기. -> 2. 신체에 집중하던 마나를 해제하고 대기 흐름으로 적 공격 느끼기. -> 적 공격이 없다? 다시 마나를 끌어오며 적 공격.
만약 적이 반격한다? 흐름을 느끼며 공격 회피 후 프로세스 반복.
자신보다 느린 상대에게 아주 효과적인 전투 방법이었다. 분대장같이 방어력 몰빵이고 자신보다 더 빠른 이에겐 잘 안 먹히겠지만 말이다.
추가로 공격 프로세스가 원활히 진행되려면 ‘마나를 썼다. 풀었다.’ 빠른 스위칭이 필수였다.
‘내가 이렇게 성장했나?’
“좀만 버텨라 곧 있으면 놈이 지킬 거다!”
“X발 다구리가 뭐지 확실히 알려주마!”
“이딴 솜 주먹 따위는”
퍽퍽퍽.
다엘은 한 줄기 빛처럼 움직이며 지난 일주일간 수련 성과를 발휘해 습격자를 한참 동안 두들겨 팼다.
* * *
덜컹.
망나니처럼 날뛰던 다엘의 공격이 일순 대장의 무기에 막혔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재차 공격을 이어 나가려 했지만, 몸이 처음처럼 굳는 바람에 움직이지 못했다. 이에 심장이 철렁했다.
“어?!”
“지금!”
이 순간만 기다렸다는 듯, 모든 습격자가 한 몸이 되어 다엘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퍽퍽퍽퍽.
몸에 무기가 휘몰아쳤다. 그 한 번의 총공격으로 다엘은 바닥에 몸을 뉘었다.
털썩.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평생 죽만 먹게 해주마.”
“딱 내가 맞은 거 100만 배만 때린다.”
끊이지 않는 매타작.
다엘은 순식간에 4명에게 두들겨 맞아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다. 분노에 가득 담겨서 휘둘러지는 무기가 그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신병을 한참 두들겨 패더니, 어느덧 습격자 화풀이 시간이 끝났다.
“얘들아, 그만해라. 시간 너무 잡아먹었다. 핀트.”
“일병. 핀트!”
“저 새끼, 월슬릿 확인해.”
“알겠습니다.”
후다닥.
지시받은 이가 다엘의 손목에 다가갔다. 그를 제외하고 남은 분대원 중 1명이 옆에 있는 후임 얼굴을 바라보며 시비 걸었다.
“새끼. 안 그래도 못생긴 면상 더 못생겨졌네.”
선임병의 태클에 한 소리 들은 후임이 작게 옹알거렸다.
“남 말할 땐가?”
“뭐? 뭐라 했냐?”
“아, 아닙니다.”
그들의 얼굴은 다엘의 빠른 공격에 맞고 ‘눈탱이 밤탱이.’ 돼 있었다. 이들뿐 아니라 다엘과 교전한 모든 습격자의 공통사항이었다.
둘이 투덕거릴 때 대장의 명령을 받은 핀트가 다엘의 월슬릿을 확인했다.
“헉, 부분대장님. 이 새끼 대어급입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대장이 쓰러진 다엘에게 황급히 뛰어갔다.
“그래? 얼마나?”
“501포인트 있습니다.”
“오! 고생 개같이 시키더니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순식간에 다가온 대장이 자신의 월슬릿을 다엘의 월슬릿에 최대한 가깝게 밀착했다.
자신의 포인트를 강탈하려는 대장에게 다엘이 작게 중얼거렸다.
“안, 안돼.”
그 개소리에 대장의 손이 다엘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퍽.
“패배자 새끼가 안 되긴 뭘 안돼.”
가차 없이 다엘의 월슬릿 버튼을 조작했다.
띡.
자신의 월슬릿을 바라보던 대장은 어이없어했다.
“하, 이건 뭔 경우냐?”
그는 눈을 비비며 자신의 포인트를 다시 확인했다.
“분명 501포인트 있지 않았냐?”
“그렇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근데, 왜 8포인트 오르냐? 너 월슬릿 가져와 봐.”
핀트는 대장의 명령에 의문을 품었지만, 바로 그에게 월슬릿을 내밀었다.
“이 새끼 아닌데 뭐지?”
대장이 확인한 핀트의 포인트는 13.
애초에 리셋을 시키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포인트가 들어가게 돼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들어온 8포인트가 신병의 포인트가 맞아 보였다.
‘493포인트는 어디 갔는데?’
혹시 다른 사람에게 나머지 포인트가 들어갔나 싶어서 대장은 모든 분대원을 불렀다.
“전부 모여봐.”
“알겠습니다.”
갑자기 풀숲에서 가녀린 소리가 새나왔다.
“저도 모입니까?”
“응.”
이윽고 모두 모이는 습격자. 그들은 4명이 아니라 5명이었다.
“모두 내가 포인트 볼 수 있게 손 좀 내밀어봐.”
착.
부분대장의 지시에 모두 월슬릿을 내밀었다. 대장이 모두의 포인트를 일일이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데? 501포인트짜리가 아니라 8포인트짜리잖아! 아오, 똥 제대로 밟았네.”
부분대장이 상황 파악을 마치고 다음 타겟을 노리기 위해서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동하자.”
“알겠습니다.”
뒤늦게 나온 한 명이 쓰러진 다엘을 가리켰다.
“저대로 두고 갑니까?”
“내버려 둬. 알아서 살겠지. 여기 히온플이다. 약한 놈 없어.”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습격자들은 사라졌다.
다엘은 덩그러니 숲 한복판에 혼자 남아서 호흡하며 정신을 읽지 않으려 사력을 다했다.
‘여기서 의식 잃으면 큰일 난다.’
일단 부상을 응급처치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빨간약을 발라야 해!’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적인가?’
터벅터벅.
현재 극악한 몸 상태 덕분에 뒤돌아서 누군지 확인할 힘도 없었다.
‘아, 이대로 인생 끝나는 건가.’
싸우다 보이드 못에게 죽는 게 아니라, 부대에서 훈련받다가 죽게 생겼다. 그래도 마지막 반격의 한발이 남았다. 코어 마나는 온전히 남아있었다.
‘수상한 낌새를 보이면 바로!’
다엘이 상대 접근에 따라서 공격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되게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어? 우리 분대원이네?”
‘누구지?’
목소리로 봐서는 여자다. 로라 부분대장은 이런 목소리가 아니고.
‘줄리나 일병님?’
그녀가 다가와 다엘의 팔을 자기 목에 감싸서 일으켜 세웠다. 다엘은 며칠 전에 봤던 그녀의 모습에 안심하며 끝까지 버티던 의식의 끈을 스르륵 놓았다.
‘달콤한 ㅎ?’
그게 다엘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 * *
타닥타닥.
다엘은 모닥불 장작 타는 소리에 의식을 차렸다. 곧 그의 눈이 떠졌다.
‘아직 살아있네.’
사위는 벌써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암묵적 규칙이 해가 지면 공격하지 않기지?’
밤에 휴전하는 게 히온플의 오랜 전통이랬다. 일단 한시름 돌렸다. 수많은 위협이 산재하지만, 그중 히온플 대원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다.
다엘은 자신의 안전을 대충 파악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모닥불 맞은편에 자신을 도와준 그녀가 보였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줄리나 일병님.”
다엘의 감사에 그녀가 고갯짓으로 작게 끄덕였다. 역시나 감고 있는 눈. 지금 뭘 하는지 전혀 파악 안 됐다.
‘기억을 잃기 전에 목소리 몇 마디 들었던 거 같은데.’
착각이었나보다. 다엘은 우선 안 좋은 몸 상태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 호흡을 시작했다.
툭.
‘응?’
눈감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데, 근처에 돌이 떨어지면서 상념을 방해했다. 뭔가 싶어서 다엘이 눈을 뜨자, 멀찍이 줄리나가 손을 내밀며 안된다는 제스처를 보냈다.
‘뭐지? 뭘 하지 말라는 거야?’
다엘이 자기 말을 이해를 못 하는 듯 보이자, 그녀가 크게 숨을 들이켜더니 멈췄다.
“아! 호흡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끄덕.
위아래로 움직이는 줄리나의 고개. 하지만, 그녀의 주문은 다엘에게 의아함을 키웠다.
“왜 안되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지금 다엘은 호흡을 통한 몸의 치유가 시급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녀 또한 알 터. 줄리나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 위를 가리켰다.
“어라?”
‘저게 뭐지?’
그녀의 머리 위엔 처음 보는 생물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줄리나 머리보다 덩치가 작았고 머리 위로 세모난 한 쌍의 귀가 있으며, 그것 또한 눈을 감은 채 그녀 머리 위에 늘어져 있었다. 얼핏 보니까 가늘고 긴 꼬리도 보였다.
‘분명 낮에는 없었는데?’
“그게 뭡니까?”
도리도리.
다엘의 질문에 좌우로 흔들어지는 고개.
“그럼 다른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끄덕.
“그거 낮에도 가지고 계셨습니까?”
도리도리.
‘아오. 답답하다. 이건 뭐 끄덕 아니면 도리도리뿐이니.’
다엘은 본의 아니게 줄리나와 대화를 통해서 거울치료 받았다.
‘내 침묵에 신교소 형들이 이런 느낌이었나?’
답답함은 답답함이고 당장 궁금증을 푸는 게 더 중요했다. 다엘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계속 질문했다.
그렇게 둘은 밤늦게까지 질문과 고갯짓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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