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3)
이른 새벽.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허공에 녹아들어 소리소문없이 한 병사 목에 직행했다.
휘리릭.
목탑 위에서 제국군의 동태를 살피며 경계 근무를 서던 쉬가더. 피곤함에 잠깐 하품하다가 목에서 따끔함을 느끼고 제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순식간에 그의 머리가 독립했다.
시체가 된 병사의 몸은 지상으로 추락했고, 그를 시작으로 인근 야간근무자가 줄지어 앞선 이를 뒤따랐다.
쿵. 쿵. 쿵.
신족은 지상에 시체들을 무심한 눈길로 짧게 쳐다보곤 동료가 쥔 물건을 가리켰다.
“야, 그거 나도 해보게 가르쳐주면 안 되냐?”
“무리, 진짜 농담 안 하고 만 번 넘게 답해준 듯.”
“아 쫌! 무리라고만 하지 말고 나도 알려달라고.”
동료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은 특수 처리된 작은 종이 다발. 트럼프 카드와 유사했다. 그것을 만지작거리던 동료가 몇백 년간 반복되는 상황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알려줘도 나처럼 못한다고 X발 놈아.”
“왜 욕하고 지랄?”
“네년이 불을 다루듯이. 이건 포스의 힘으로 사용하는 거라고, 몇 번 말하냐, 새끼야.”
“그럼, 나도 불로 해볼 수 있잖아!”
동료는 그를 향해서 입꼬릴 씰룩였다.
“불로 한다고? 퍽이나 잘되겠다.”
“뭐가 어때서?”
상대가 끝까지 때장 부리자, 특수처리된 종이 한 장을 반대 손으로 쥐고 펄럭였다.
“응, 이거 날아가는 도중에 다 타서 없어짐. 하고 싶단 말 좀 그만해라. 그 소리만 들으면 짜증이 넘어서는 감정이 생긴다.”
“더럽게 까칠하네. 그래 임무나 하자.”
“아, 새끼. 그새 또 삐졌네.”
이들이 맞은 임무는 초소병 몰살 후 상대 진영에 방화하기. 인간에게 맡기기엔 리스크가 높아서 신족이 직접 나섰다. 이 작전의 성공이 앞으로 일어날 전쟁의 양상에서 큰 영향을 끼치리라.
휘리릭. 쿵. X31
신족은 아무런 잡음이 안 생기게 앞선 방법으로 초소 위 적군을 처리했으며, 이후 로스뮤 왕국의 진영을 향해서 이동했다. 그들이 지나간 빈자리를 제국군이 뒤따랐다.
.
.
.
적 군영에 몰래 숨어든 신족은 불침번을 서는 이들의 감시망을 피해서 바닥에 뭔갈 쏟았다.
콸. 콸. 콸.
‘에이씨, 귀찮아 죽겠네. 그냥 다 죽이고 불 지르자니까.’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을까? 저 멀리서 동료가 시선이 느껴졌다. 이에 그는 소리 없이 ‘뭐?’라고 입 모양을 취했다.
도리도리.
동료가 자신과 똑같이 들고 있던 통을 내려놓곤 바닥을 짚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금 불 안 질러 새끼야!’
상대의 걱정을 가뿐히 무시하고 다시 바닥에 액체를 들이붓는 순간.
“누구냐!”
“X발.”
재수 없게 감시병 1명에게 꼬랑지가 밟혔다. 그는 바닥에 뿌리던 통을 병사에게 내던졌다.
쾅!
‘X나 은밀하게 다가오네.’
감시병의 능력이었을까? 그는 존재감이 상당히 희미했다. 뭐, 이미 상대는 통에 맞고 저만치 날아갔고 자신은 대지에 손바닥을 짚은 상태다.
“타올라라!”
화르륵.
침입자와 가까운 몇몇 장소에서 돌연 불길이 치솟았으며, 그곳은 이미 액체가 뿌려져서 짙은 음영이 져 있다.
화르르. 화르르.
불길이 순식간에 미리 뿌려둔 액체를 발판 삼아 번졌다. 갑작스런 화제에 불침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아군에게 현 상황을 전파했다.
“불이다! 적습이다!”
“적습! 적습!”
“살, 살려줘!”
휘리릭. 털썩.
한마디 이상을 내뱉은 이가 드물었는데, 신족이 방화의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얇은 종이를 던져서 전부 죽였기 때문이다.
“야, 그만 퇴각하고 제국군으로 합류하자.”
“왜? 그냥 지금 싹 다 죽이지?”
“얼마 전에 맞붙은 인간 놈들 잊었어?”
“너 설마 벌레에게 쫄은 거?”
“사론델이 소멸한 걸 잊지 마라.”
“그리 말하니 조금 후달리네.”
때마침 병사들이 천막에서 한두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으억! 불이야!”
“꿈인가?”
“안에 미적거리는 새끼들 다 불러!”
“네, 넵습니다.”
병사들은 지천에서 넘실대는 불길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들 앞에 있는 침입자를 알아볼 경황이 없었고, 그 틈에 놈들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 * *
“불이야! 불이야!”
“기상!”
“악! 아악!”
다엘은 아득히 들리는 소란에 정신을 차렸다. 4분대 천막이 외진 곳에 있어서 파악이 상대적으로 늦었다.
“기상! 기상!”
그는 전투복을 신속히 갖춰 입고 후드를 뒤집어쓰며 잠긴 목소리로 악을 썼다.
부스스.
얼마 안 지나서 모두가 일어났고 픽스가 눈을 비비며 다엘을 쳐다봤다.
“무슨 일인데?”
“불났습니다!”
“뭐?!”
모든 분대원이 그 소리에 빠르게 전투 태세를 갖춰서 천막 밖으로 나왔다.
쿵.
“아얏?”
픽스가 천막에서 나오는 길에 불길을 피해서 도망치던 병사와 부딪쳤고, 그는 내친김에 아픈 광대뼈를 문지르며 내려온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를 확인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근데, 지금 떨어진 지침이 뭡니까?”
“갑자기 뭡니까? 모르니까 비켜요.”
상대는 전파된 명령을 알고 있었지만, 충돌의 여파로 기분이 상했기에 픽스를 밀치며 불길이 없는 방향으로 내뺐다. 다엘이 바닥에 넘어져 있는 선임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희도 빨리 피하지 말입니다. 아마 급작스러운 상황이라 다들 정신없을 겁니다.”
“그래 일단 피하고 보자.”
불길이 워낙 거세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왕국 군에게 내려온 지령은. 각자 불을 피한 뒤 외부에서 합류.
지휘관을 찾아서 지시받을 틈이 없었다. 지금은 선조치 후보고할 때다. 다엘 일행도 도망친 병사의 뒤를 따라서 발걸음을 옮겼다.
.
.
.
불길이 치솟는 중심부 반대로 내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4분대는 제국군과 맞닥트렸다. 픽스와 방금 부딪쳤던 병사뿐만 아니라 여러 아군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죽여라!”
매복한 제국군이 활을 쏘며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고 4분대는 일제히 산개하며 즉시 엄폐물에 몸을 숨겼다.
“활?”
픽스는 오래간만에 보는 고전 무기의 등장에 피식거렸다. 4분대는 각자의 역량을 선보이며 적의 기습에 대응했다.
재빠르게 이도류를 꺼내 들고 돌진하는 존.
바닥에 깔린 빙판을 타고 미끄러지는 로라.
엄폐물에 몸을 숨긴 채 SK를 갈기는 줄리나.
적군이 제일 많이 보이는 장소에 솔방울을 투척하는 픽스
많은 환약을 우걱우걱 씹으며 아이닥을 보호하는 스왈로.
그런 일행들을 향해서 쏟아지는 화살을 주먹 쳐내며 엄호하는 중이
어느새 다엘은 적군 배후에 접근해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굳이 죽일 필욘 없지.’
그는 함께 싸우는 전우를 다치게 하는 게 적군에게 더 치명적인 걸 알고 있었다.
쾅! 쾅! 서걱. 서걱.
“끄아악!”
“이, 이놈들 뭐야?!”
“상대할 수 없다!”
제국군은 최정예 급에 해당하는 4분대 화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적군 대다수를 손쉽게 정리하나 싶었는데 제3의 인물이 새롭게 등장했다.
적 사이를 종횡무진 움직이던 다엘은 불현듯 목에 예지 고통을 느꼈다.
‘이건?!’
고통의 강도가 가속하는 게 마계 통로 킵튠에게 느꼈던 손짓과 흡사했다.
휘리릭. 휙.
순간 고개를 좌로 젖힌 덕에 암습은 간발의 차이로 목을 스쳐 지나갔다.
“넌, 그 전기 놈처럼 빠르진 않구나. 그럼 죽어야지.”
상대는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을 향해서 손목 터는 행위를 반복했다. 적의 손에서 쏟아진 희멀건 게 가속하더니, 종국엔 엄청난 속도로 변모했다.
“으악!”
다엘은 비명을 지르며 몸에서 솟아나는 미지의 힘을 이용해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는 닿을 듯 안 닿을 듯 묘기를 선보이며 자신에게 쏟아진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너무 빠른 상대의 공격에 저도 모르게 점프했던 다엘. 온몸 비틀기를 하며 상대의 공격을 피했고 영원히 뜰 수 없기에 이제 지상에 발 디딜 차례인데.
화르륵.
착지할 장소에 시퍼런 불길이 피어올랐다. 색으로 보아서 일반 불이 아니었다.
공중엔 지지대가 없었기에 미지의 힘을 사용해도 여기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다엘은 마나로 몸을 보호하며 속으로 로라를 간절히 찾았다.
‘포스 – 아이스 로드’
촤라락. 푸쉬쉬.
그녀가 자신의 염원을 들었을까? 다엘이 착지할 장소에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로라의 방해에 불의 힘을 사용한 이가 짜증 냈다.
“이 X년! 여기 있었냐?! 오늘 네년 제삿날이다!”
로라가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후비적거리며 습격자를 바라봤다.
‘상대하기 버거운 놈인데. 아니, 지금이 오히려 기회인가?’
“방화범 새끼 여기 있었네.”
그녀는 자신의 분대원 실력을 믿었다. 둘은 이미 서로 라우본 항구 전투에서 안면을 튼 사이인데.
불의 힘을 사용하는 콩코는 로라와 대치.
회전의 힘을 사용하는 스키너는 슈타인과.
불과 얼음은 말할 것도 없고 스키너의 힘은 슈타인같이 빠른 이에겐 상성이 나빴다.
얼음을 다루는 인간은 콩고가 상대할 수 있지만, 전기를 다루는 인간은 신족도 승리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래서 신족은 다시 계획을 수립했는데.
1. 왕국 진영에 불을 지른다.
2. 도망치는 놈들을 죽인다.
3. 인간군의 지휘관, 전기 쓰는 놈을 상성 우위에 있는 란돌이 커버한다.
4. 나머지 부스러기는 콩고와 스키너가 처리한다.
둘의 대치 사이로 존이 머리에서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며 콩고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압!”
“이 새끼 왜 머리...”
챙 챙 쳉.
콩고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존의 공격에 의아할 겨를이 없었다. 적이 존의 공격에 대응하며 잠깐 빈틈을 내비쳤고.
탕.
“헛!”
보라색 탄이 빛살처럼 날아와 콩고의 우측 가슴에 꽂혔고 그의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이 벌레 새끼들이!’
콩고는 불의 힘을 이용해서 모두를 태워버리고 싶었는데, 이어지는 인간 놈들의 연계 공격에 틈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요상한 갑옷 걸치고 얼음 쓰는 년이 가장 문제였다. 자신의 불의 힘을 견제할뿐더러 발밑에 얼음판을 깔아대는 게 미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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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엘과 중이 스왈로가 스키너를 나머지 분대원이 콩고에게 들러붙어서 교전 중인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콩고가 샤우팅을 내질렀다.
“X발!”
‘개각(開角).’
“응?”
“뭘 응? 이야 넌 이제 뒤졌다.”
상대는 이마에서 뿔이 자라났고 갑자기 월등히 강해졌다. 존은 늘어난 스피드를 감당키 어려웠다. 전력을 다한 연속 공격으로 이루던 대치 상태가 깨졌다.
“으헉?!”
챙챙챙.
전위에서 싸우던 그가 주춤거리자, 로라가 전갑의 능력을 개방해서 콩고에게 들러붙었다. 콩고가 개각하자 뒤이어 스키너도 개각했고 약간의 우세를 점쳤던 판도가 뒤집혔다.
“크으으윽.”
“부분대장님!”
“난 신경 쓰지 말고 자리 지켜!”
“푸하하하. 벌레 같은 놈들아, 죄다 밟아서 터트려주마!”
4분대는 디아크를 잃고 이를 갈고 수련에 매진해서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해졌어도 영원을 사는 신족에게 대항하는 건 어불성설. 지금까지도 포스의 힘으로 억지로 버텼다.
더군다나 상대가 월등히 강하기에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도망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4분대는 사력을 다해 습격자에게 대항하며 힘든 전투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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