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2)
롤랑에게 잡혀 숙소에서 대화를 나눈 결과 다엘 일행은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웨이브의 종결.
그동안 힘이 없어서 적 공세에 수비적으로 대응한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큰 웨이브가 단 며칠을 이어지지 못했다.
인간군대는 방벽 앞에 적군을 최대한 집결시킨 뒤, 무섭게 치고 나가며 한꺼번에 전멸시켰다.
통상 웨이브가 2주는 지속되니 모인 적의 물량이 어마어마할 텐데도 별문제 없었다. 보이드 못은 무서운 속도로 진군하는 부대를 전혀 막지 못했고 그 결과 존재가 소멸했다.
인간 측도 이 작전을 기획하며 많이 긴가민가했다. 까닥하다간 굳건한 방벽이 뚫려서 침공당할 위험이 있었고, 그동안 전선을 구축하고 수동적으로 막았기에 자신들이 가진 힘을 잘 몰랐다.
각설하고 다엘 일행은 대략적인 현재 정세를 대략 파악하고 배정받은 주거지로 이동했다.
「4분대가 기거할 숙소.」
건물은 분대원 전원을 수용하고 남을 만큼 넓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일 층엔 대원이 모일 수 있는 거대한 홀과 식당이 있고 2층에는 십여 개가 넘는 개인실과 화장실이 있다.
저택을 쭉 둘러본 모두가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딱 한 명만 빼고.
“덩치 큰 사람은 주거생활도 하지 말란 겁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디아크가 숙소에 프랑을 데리고 와서 따졌다. 화가 단단히 났는지, 고함이 숙소 내부를 구경하는 분대원의 귀에도 쏙 들어왔다.
“자꾸 말꼬리 흐리지 마시고 대책을 말하세요! 저만 밖에서 노숙합니까? 눈앞에 집 놔두고?”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그럼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뭘 어떻게 하시려고?”
“저택에 커다란 입구를 만들면 전부 해결될 일 같은데?”
자신의 의견이 어떠냐는 디아크의 눈빛에 관리병이 화들짝 놀라며 극구 상대를 말렸다.
“건물에 손상을 주는 건 안 됩니다!”
“그럼 어쩌라고요. 대책은 없고 입구 만드는 건 안 되고.”
“음···. 별채 식으로 숙소 옆에 새로 지어야 할 거 같습니다.”
“새로 만들라? 누가?”
“그야 쓰실 분···.”
“아씨, 장난합니까!”
디아크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예비라 해도 자신은 전투 인력인데 집을 만들라니?
“제가 임무 안 한다고 버티면 그쪽이 책임질 겁니까?”
“그 책임을 왜 저에게 묻습니까?”
“기본권조차 보장 안 돼서 안 한다고 변호할 거거든요.”
“...”
프랑은 눈앞 거인의 막무가내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이곳 관리병이긴 했지만, 그도 엄연히 의무 군 생활 중인 군인이다. 확실한 건 자신이 책임질 소재는 아니었지만, 상황이 터진다면 독박 쓸 거 같았다.
프랑은 이 개 같은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상부에 보고한 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분명 상부에 말해봤자, 자신보고 집 지으라 이를 테지만 일단 보고는 해야 했다.
“응답이 오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오늘 안에 상부의 지침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천상 일이 바로 진행돼도, 몇 달 노숙입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X발, X 같은 군대.”
“이하동문입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네.”
잠깐 대립하던 둘은 언제 다퉜냐는 듯 상황을 마무리하며 각자의 볼일 보러 떠났다.
* * *
결국 별채를 짓는 건 프랑이 담당하게 됐다.
상부 왈. 건축 자재는 제공할 터이니, 경험 삼아 해보라나 뭐라나. 덕분에 프랑만 집짓기를 위해서 관련 서적을 미친 듯 봐야 했다.
반면 디아크는 어차피 건설에 오랜 시일이 걸릴 거 임무가 빨리 떨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그의 바람과는 별개로 의외의 방문객이 숙소에 나타났다.
「4분대가 기거하는 저택 1층 식당.」
“으헛?! 누구냐!”
물을 마시러 식당에 들어선 픽스. 뜬금없이 식당 내부에 후드를 눌러쓴 괴한이 보인 탓에 대경했다. 침입자는 총 두 명이었는데, 뒤 창문이 열려있는 상태로 보아 그곳으로 침입한듯싶다.
괴한 중 한 인물이 자신들을 발견한 픽스를 바라보며 검질 입술 앞에 가져댔다.
“쉿.”
‘뭘 쉿이야?’
“적이 침입했다!”
픽스가 홀로 잽싸게 튀어 나가며 모두에게 강도의 존재를 알렸다.
“저, 저놈이!”
괴인이 픽스의 엉덩짝을 차주려 무릎을 숙이고 뛰쳐나가려는 순간.
“잠깐! 우리가 무단 침입했잖아. 흥분하지 마, 당연한 반응이야.”
옆에 있던 동료가 그를 급히 저지했다. 가녀린 목소리로 보아 그는 여성으로 보였다. 곧 그녀가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걷어내며 다엘 일행을 기다렸다.
“누나, 그렇게 신분 노출해도 되?”
“당연히 안 되지. 하지만 상대가 이미 움직였잖아. 분명 뭔가 있어서 급하게 행동한 거야. 우리도 움직여야지.”
“그래? 난 그냥 쓰고 있어도 되지?”
“알아서 해.”
어느새 다엘이 식당에 가장 먼저 도착해 침입자를 발견했다.
“누구?”
“피치 못해 이렇게 방문한 점. 사과드립니다.”
다엘은 선임이 강도가 들이닥쳤다 해서 잽싸게 와봤는데, 예의 바른 태도로 보아서 왠지 모르게 상대를 도둑 취급하면 안 될 거 같았다.
저 봐라 어느 범죄자가 자기 얼굴을 훤히 드러내며 사과하나?
2명의 괴한 중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보이는 모든 털이 회색인 여인이었다. 왠지 모르게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고 그냥 서 있는 모습만 봐도 절로 기품이 느껴졌다.
다엘은 그녀에게 다시 정체를 물었다. 아직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십니까?”
“제 신분을 밝힐 순 없어도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군요.”
“저희가 언제 만났습니까?”
다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의 목소리가 굉장히 낯익다는 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의 덩치로 대충 파악한바 비교적 최근에 만난 인물이었다.
“아! 휴가 때!”
때마침 중이와 나머지 분대원이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강도가 침입했지 말입니다!”
중이가 범죄자 같지 않은 그녀의 외모를 보곤 바로 삿대질했다.
“어?! 강도가 저렇게 예쁘다고?”
“이놈! 어디서 어른에게 삿대질이야!”
다른 괴한의 호통에 중이가 움찔거리며 들어 올렸던 팔을 잽싸게 내렸다.
“죄, 죄송.”
모든 분대원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은 여인이 그들을 쭉 훑어보곤 다엘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저희 계속 서 있나요?”
“여기에 앉으시지요.”
다엘이 바로 앞에 있는 탁자를 손짓했고 방문객이 의자를 끌어당기며 자리에 앉았다.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침입자를 손님 취급하는 상황에 스왈로가 다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강도 아니야?]
“방문객 같습니다.”
다엘이 선임에게 답하며 자신도 의자를 끌어당겨 상대 맞은편에 앉았다. 그 뒤로 착석하는 분대원이 아무도 없었다.
여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
“안 앉으세요들?”
나머지 분대원은 착석한 두 명을 포위한 형태로 식당을 삥 둘렀다. 로라가 대표로 나서며 여인에게 분대원의 뜻을 전했다.
“저흰 신경 쓰지 마시고 이야기 나누시지요.”
“그럼, 저도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에 들어갈게요.”
“하실 말씀이 뭡니까?”
그녀와 마주 앉은 다엘이 바로 본론을 물었다. 사실 그도 앞서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일 뿐. 아직 상대를 완벽히 신뢰하지 않았다.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지요?”
“좋은 일이었다고 말할 순 없겠습니다.”
“그거 전부 계획된 건 아시나요?”
“압니다.”
“알고 있다니 대화하기 쉽겠군요.”
이어진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1. 이 상황을 유도한 상대는 부사령관 다이븐.
2. 그리고 그는 윌리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에게 원한이 있는 자라.’
아직 확실한 동기를 밝히지 못했지만, 그것과 연관 있을 거라는 게 그녀의 주장.
‘이걸 믿어야 하나?’
일단 흉수까진 맞는 거 같다. 린델 마을에 들이닥쳤던 군단이 부사령관 소관이다.
“여기까지 와서 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시는 까닭이 뭡니까?”
“도와주고 싶어서요.”
“잘 모르는 사람을 말입니까?”
“그 사람이 제가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일지 모르니까요.”
“흠.”
진중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다엘에게 그녀가 앞으로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다이븐 손아귀에서 그가 시키는 일을 계속 수행할 생각인가요?”
“이미 이렇게 된 거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요...”
그녀가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니까 저희보고 왕실 직할이 되어라. 이 말이십니까?”
“핵심은 그거네요.”
“말씀은 알겠는데 뭔 수로 직할이 되란 겁니까?”
의지만 있으면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해드리죠.”
당장 그녀가 손써서 될 수 있다 해도 다엘은 부정적이었다.
“되는 건 둘째치고 그것도 결국 왕실의 사냥개 아닙니까?”
“음... 그렇긴 한데. 임무의 위험도가 다르지 않을까요?”
여기서 끌려 하고 저기서 끌려 하고. 대부분 분대원은 자신들 처지에 미간이 꿈틀거렸다. 뭐 히온플부터 쭉 자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고민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을걸요?”
다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상대가 아주 간단히 답했다.
“곧 임무가 떨어질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때 로라가 뒤편에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직할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일단 상대를 돌려보내라.]
부분대장의 조언에 갈팡질팡하던 다엘의 마음이 굳혔다.
“결정되면 연락은 어떻게 드리면 되나요?”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았다. 다엘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여지를 남겼다.
“칼슨에게 말하세요. 그에게 접선 방법을 일러둘게요.”
“알겠습니다. 오늘 좋은 정보 많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 하시길.”
대화의 장은 순식간에 파하게 되며.
식당으로 침입했던 방문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왔던 길인 창문을 통해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숙소 밖에 있던 디아크가 호들갑 떨며 모두를 불러냈다.
“전부 밖으로 나와봐!”
.
.
.
“무슨 일이십니까?”
“첫 임무 떨어졌다!”
임무라면 귀찮아 질색하던 디아크가 이번엔 웬일인지 되게 좋아했다. 존이 좋아하는 그를 보며 툴툴거렸다.
“벌써 말입니까?”
“뭐가 벌써야 사냥개에겐 휴식할 틈이 없다고!”
“저희 이곳에 온 지 인제 하루 됐습니다.”
“인마! 임무 많이 뛰면 돈 벌고 좋지 뭐!”
매번 할당되는 임무마다 수당을 두둑이 챙겨 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승 가서 쓰라는 노잣돈인지.
“그나저나 이렇게 밑바닥부터 시작하면 어느 세월에 슈타인 님을 뵙습니까?”
“새끼야, 내가 좋은 방법 알려줄까?”
“됐습니다. 또 쓸데없이 ‘세지면 된다.’ 이럴 거 아닙니까?”
디아크는 자신이 할 말을 존이 바로 맞춰버리자 당황했다.
“아, 아니야. 그 말 하려고 한 거.”
“그나저나 임무는 뭡니까?”
“그걸 나한테 물어?”
“알려주시지 말입니다.”
“...”
디아크는 다엘의 독립분대에 들어온 뒤로 묘하게 자신의 권위가 떨어져 감을 느꼈다. 머리론 상황을 이해하는데 가슴으로는 잘 못 받아들였다. 존이 상념에 잠깐 잠긴 그를 불렀다.
“분대장님?”
“어? 아, 임무? 유적지 파견.”
“되게 위험한 거 시킬 줄 알았는데 개꿀입니다?”
“그러게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시키는 일을 봐서는 모르겠다.”
유적지 탐사는 이미 조사된 곳 위주로 했다. 이미 적의 웨이브가 끝난 시점에선 위협될 만한 게 거의 없었다. 단지 벽 밖에 있어서 쉬이 접근하지 못할 뿐이지.
“조사원은 누가 파견됐습니까?”
“내가 누군지 이름 대면 네가 아냐? 자 봐봐라 누군지.”
디아크가 제 손을 존의 머리 위에 가져가 탈탈 털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 붙어있던 서류가 존에게 떨어졌다.
팔랑팔랑.
“헛!”
존이 공중에서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종이를 잽싸게 낚아챘다.
“딩크? 누군지 모르겠네?”
로라가 존의 헛짓거리에 속으로 답답해하며 나섰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방금 안에 있던 내용 전달 안 하냐?”
“네가 해. 난 이거 보게.”
“병신이.”
그녀가 걸쭉하게 욕하더니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디아크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우릴 예비분대로 만든 게 부사령관이라고?”
디아크는 생각보다 큰 거물의 연관에 땀을 삐질 흘렸다.
“그 양반이 우리한테 왜?”
“원한은 다엘 아버지에게 있는데, 저희에게 이러는 내막은 모르겠습니다.”
“일단 시일이 지나 봐야 알겠군.”
모두가 디아크 주위에 둘러앉아 첫 임무를 시작으로 앞으로 분대의 행방을 두고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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