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병기 숙달(5)
신교소 간부 회의실.
훈련병의 수련 현황과 보급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더니, 마지막 안건으로 ‘그 훈련’에 회의 초점이 맞춰졌다. 훈련의 클라이맥스이기에 차질 없이 준비해야 했다. 더욱이 처음 시행하는 훈련이었다.
커맨더가 방금 물자 보고를 마친 담당자에게 걱정을 드러냈다.
“진짜로 부족한 물자 없나? 나중에 일이 터지면···.”
말을 생략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들어있다. 이를 짐작한 보고자는 무언의 협박에 식은땀을 흘렸다.
“지시하신 물자는 차질 없이 완벽합니다. 더 추가로 준비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까?”
“아, 아닐세 걱정되어서 말이야. 지시한 것만 잘 준비되면 되네.”
‘왜 이렇게 불안할까?’
이미 사전 조사도 철저하게 마쳤고 준비도 완벽했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불안이 커맨더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쓸모없는 걱정을 하는 걸까?’
“언제 경보 날짜를 정했지?”
“완벽한 준비가 끝난 뒤. 4주 차 첫날로 잡았습니다.”
“일주일 뒤? 잠깐. 그땐 신교소 마지막 주잖나?”
“그렇습니다.”
“훈련병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어.”
지금 심정이 불안하지만, 그완 별개로 커맨더가 짓궂게 웃었다. 보고자도 그를 따라서 썩은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키르는 회의가 진행될 동안 보고할 거리가 없어서 자릴 지키다가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커맨더님. 얼추 회의가 마무리된 거 같은데 저 좀 보지요.”
“급한 일입니까?”
끄덕.
노인장이 할 말 있나 보다. 커맨더는 금일 보고가 대부분 끝났지만, 혹시 몰라 주위 간부들 얼굴을 살폈다.
“보고 남은 사람?”
“없습니다.”
“그럼, 회의를 이만 마치지. 모두 해산.”
“수호!”
각자 경례하며 회의실에서 하나둘 사라졌다. 종국엔 키르와 커맨더만 원탁에 남았다.
“키르님.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삼에칠에 관한 거네. 내 제자로 들일까 해서.”
‘응?!’
우수 훈련병으로 ‘그곳’에 보낼 생각인데 뜬금없이 대마도사의 제자라니! 하늘이 무너져도 안 됐다. 그놈은 론도 신교소의 희망이다.
갑작스러운 제자 돌직구에 당황하던 커맨더가 정신을 추스르고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절.대. 안 됩니다.”
‘뭐야, 왜 이리 강경하지?’
단지 훈련병 1명 빼서 제자 시키겠다는 건데, 이처럼 거센 반응을 이해하질 못하겠다. 장기적으로 왕국의 마법 발전을 위해서 다른 마도사도 주기적으로 훈련병을 제자로 맞이했다.
‘아니 근데, 이놈이 내 말에 토를?’
키르는 거절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어서 솟구치는 화를 간신히 참고 물어봤다.
“왜?”
“그곳에 보낼 겁니다.”
“뭐?!”
‘그곳’ 한 단어면 어딘지 간부들은 다 알았다.
“거길 보낸다고? 거긴 ‘우수한’ 이상의 훈련병만 가는 곳이잖아.”
“그래서 삼에칠을 보내는 겁니다.”
‘뭐야?! 이놈이 그놈이 가진 특별함을 어떻게 알지?’
방금은 커맨더가 이번엔 키르가 당황했다.
“자네. 삼에칠의 특별함을 어떻게 알아?”
“특별한 건 모르겠고 그가 강하기에 ‘그곳’에 보내는 겁니다.”
“녀석이 강하다고?”
“몰랐습니까? 지금 훈련병 중에서 제일 강합니다. 분명 거기 가서도 공을 세울 겁니다.”
키르는 한 달 중 2주 차만 수업하고 연구하느라 삼에칠의 강함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주의 깊게 살펴보았더라면, 지금쯤 그의 제자가 되어있을 텐데 아쉽게 됐다.
‘아···. 제자로 빼 오긴 글렀네.’
커맨더의 확고한 태도에 빠르게 포기했다. ‘그곳’의 병력 보충이 대마도사 제자보다 우선순위가 높았다.
“근데, 이 새끼가 어디다 대고 바락바락 대들어! 뭐? ‘절대’ 안 돼?”
이왕 파토 난 거 키르는 행패를 부렸다. 분위기가 폭력도 불사할 느낌이었다. 커맨더는 지금 나이에 키르에게 두들겨 맞을 순 없어서 눈치를 보며 내뺄 준비를 했다.
“그게 아니라···.”
조심스럽게 열던 출구가 어느덧 반이나 열었다.
“너 인마, 오늘 죽어보자.”
버릇없는 놈을 확실하게 어루만지기 위해서 품으로 잠시 시선을 돌렸던 키르. 그의 도망을 파악하는 게 한발 늦었다.
휙.
품에서 물건을 빼 들고 주윌 둘러보니 팰 놈은 이미 사라진 상태.
“하, 도망쳤군···.”
키르는 이 나이 먹고 추격전 하기도 뭐해서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후, 그놈이 그렇게 강하다고?”
혼자서 씁쓸함을 가득 안고 회의실을 퇴장했다.
* * *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인다던 코어 교관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다엘은 아무의 도움 없이 혼자 피나는 노력을 통해 ‘지옥’에서 탈출했다. 그동안 함께했던 환우들은 하나둘 대기소로 복귀했다.
어느덧 훈련은 4달하고 3주를 지나고 있었다. 보통 5달 교육받고 자대배치를 받았으니 이제 1주일 남짓한 기간이 남았다.
다엘은 의무실에 있는 동안 몸 상태를 최상은 아니어도 50% 이상은 회복했다. 그는 발걸음도 가볍게 4주 차 병기 훈련받으러 향했다.
“룰루~”
방금 막 지옥에서 벗어나서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신교소의 지리는 2달이 지난 시점에 꿰찬 지 오래라, 그의 발걸음엔 거리낄 게 없었다.
저 멀리 4주 차 병기 교장이 보였다.
‘응?’
조금 더 접근하니 모든 훈련병이 머리에 뭔갈 쓰고 있었다.
‘뭐야 저게. 쉬가더 헬멧인가?’
그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건 택견. (De‘tec’tor + 볼 ‘견’(見))
보이드 못의 위치를 보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장비다.
헬멧의 오른쪽 눈엔 마법 처리된 글라스가 연결되어 그걸 통해서 보이드 못의 마나 밀도를 판별할 수 있다. 또한 헬멧 내부에 통신기가 부착돼, 그걸로 보이드 못과 위치를 보고하는 것도 쉬가더 행동 지침에 포함돼있다.
즉 모두가 통신병의 역할도 겸직한다는 소리다. 이 보고를 위해서 4주 차 훈련에서 ‘거리 감각’을 길렀고, 그레이급 이상의 보이드 발견 시 정면으로 바라보고 거리와 각도만 보고하면 됐다.
다엘은 4주 차 교관에게 다가가서 자신이 복귀했음을 알렸다.
“교관님! 저 왔습니다.”
교관을 향한 다엘 두 눈엔 하트가 가득 차 있었다. 심히 부담되는 눈빛이었는데, 수업에 집중하느라 늦게 알아차린 교관이 잔소리 폭탄으로 삼에칠을 반겼다.
“너 내가 사격할 때 딴 자세 취하지 말랬지? 아니 그것보다 KS 코어에 마나 넣을 미친 생각은 왜 한 거냐!”
“지시 어긴 점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엘이 뒤늦게 감사함을 표하며 엎드려 절할 기세로 몸을 낮췄다.
“됐다. 들어가. 난 교관으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알겠습니다!”
당장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기에 다엘은 훈련병 사이로 들어갔다. 교관이 자리로 들어가던 삼에칠을 다급히 불렀다.
“잠깐!”
‘응?’
“이거 가져가라.”
교관이 뒤돌아선 다엘에게 쉬가더 전용 헬멧 ‘택견’을 내밀었다.
“악!”
“들어가 봐.”
다엘이 온 김에 교관이 택견의 사용법과 보고해야 할 부분을 다시 설명했다. 다엘은 설명을 들으며 주위 훈련병을 찬찬히 둘러봤다.
‘뭐야! 다들 왜 이리 초췌해?’
다들 얼굴에 음영이 지고 생기가 없었다. 하나같이 푸석푸석. 그나마 앞에 삼에오(3-5) 정도가 주변인과 비교하면 나아 보였다.
‘형이다!’
다엘의 눈에 다시 하트가 차올랐다. 목숨을 구해줬기에 그의 등만 봐도 좋았다.
으스스.
다엘의 눈빛에 삼에오는 등 뒤로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어깨를 움찔 떠는 그를 바라보며 다엘이 속으로 다짐했다.
‘은혜를 꼭 갚겠어!’
“삼에칠 왔냐?”
“...”
“너 없는 동안 지옥이었다.”
뒤의 삼에구(3-9) 말에 다엘이 침묵으로 응수했지만, 그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
.
.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네가 한동안 부상으로 빠지니, 대항전에서 3 대기소가 최하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그러며 은근히 너 때문에 꼴찌 했다고 속내를 내비쳤지만, 다엘은 콧방귀를 뀌었다.
‘평소에 뒹굴뒹굴하며, 수련을 한 번도 안 해놓고선 내가 빠져서 꼴찌 했다고?’
다엘이 속으로 어이없어하는데, 갑자기 신교소 전역에 비상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삐이잉~
~
~
경보음 뒤에 크게 증폭된 조교의 안내가 뒤따랐다.
“비상. 비상 7사단 경계선 돌파. 실제상황.”
훈련병이 우왕좌왕하며 교관을 바라봤다.
‘응? 없다?’
방금까지 서 있던 교관이 어느새 사라졌다.
“뭐, 뭐야?”
때마침 다시 들리는 안내. 이번엔 뒤에 내용이 추가됐다.
“비상, 비상 7사단 경계선 돌파. 실제상황. 모든 훈련병 신속히 대기소로 집합.”
“얘들아, 대기소로 모이래. 빨리 가보자.”
추가된 지시에 모두가 정렬할 생각도 못 하고 대기소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만큼 그들에게 초조함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알린다. 모든 훈련병 신속히 대기소로 집합 바란다.”
비어버린 4주 차 교장에 안내음만 쓸쓸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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