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1)
창문 하나 없이 출입구만 존재하는 밀실.
중앙 책상 위 마법 램프만이 방을 비추는데, 그곳에 어린 소년이 앉아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와 소년 맞은편에 앉았다.
드르륵.
“이곳에 왜 왔는지 알지?”
상대가 대뜸 반말하며 깍지를 끼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특색이 없는 평범한 중년인이었는데 표정에 생기가 전혀 없었다.
“그렇습니다.”
“어디 보자···.”
상대가 소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고개를 숙여 들고 있는 서류를 바라봤다.
“이름이 다엘, 히온플 소속이네?”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윌리스?”
“...”
심문관은 이미 사전에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취조실에 들어왔지만, 또 물었다.
“이야, 아버지가 배신해서 마족에게 붙고 아들도 똑같이 그 뒤를 따르네? 너희 집 유전이야?”
“...”
이름 한번 대뜸 물어보곤 바로 배신자 취급이다. 다엘은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며 침묵으로 응수했다.
“답이 없네? 내 물음에 대답 안 하면 너만 손해다?”
‘저딴 물음에 답하라고?’
디아크가 심문 전에 앞서 정보를 줬다. 말이 평화적으로 하는 심문이지 이미 죄가 정해져 있다고. 처음엔 설마 그럴지 싶었는데, 다짜고짜 시비며 돌아가는 꼴이 딱 그럴 분위기다.
“네, 아니요, 답하면 돼. 내가 대답하기 쉽게 물어보잖아.”
다엘은 침묵으로 일관할지 말지 살짝 고민했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는데, 아니라고 백날 부인해봤자 소용 있을까? 한편으로는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상대가 과연 뭘 준비했을지.
“유전 아닙니다.”
“오? 이제야 입을 다시 열었네? 배신은... 유전이... 아니다.”
심문관이 반색하며 종이에 소년이 답한 걸 적었다. 다엘은 상대 깃펜의 움직임을 보며 툭 말했다.
“근데, 조사관님은 자신이 누군지 안 밝히십니까?”
다엘의 질문에 심문관의 깃펜이 멈췄다. 그의 얼굴이 잠깐 굳더니 곧바로 안색을 웃는 낯으로 회복했다.
“군단 관리처 소속 개롤인데?”
“개롤 수사관님이군요. 반갑습니다.”
다엘이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수사관이 머뭇거리다가 펜을 내려놓곤 내민 손을 맞잡았다.
쫘아아악.
“끄아아악!”
개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바로 문이 젖히며 병사가 들이닥쳤다.
“무슨 일입니까! 네 이놈! 여기서 무슨 짓이냐?!”
다엘은 맞잡은 손을 놓으며 뭔가 하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별일 아닙니다. 그냥 서로 인사한다는 게, 제가 힘 조절에 실패했네요. 죄송합니다.”
“끄으윽.”
개롤은 꽉 쥐어진 손을 반대 손으로 주무르며 다엘을 쏘아봤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의도가 들어있던 거 같은데?”
“아닙니다. 간만에 타인의 손을 잡아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재개되는 대화에 문 열고 침입했던 병사는 조용히 밀실에서 자취를 감췄다. 개롤은 한참 제 손을 주무르더니 펜을 집어 들어 뭔가를 끄적였다.
“심문 도중 악수를 가장한 조사관 폭행.”
“의도가 없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쨌든 내가 고통을 겪지 않았나?”
“...”
“난 있었던 사실만 적은 거야.”
사실 다엘은 그가 뭐라 적든 상관 안 했다. 자신이 악수를 상대에게 권한 건, 처음에 개롤이 모든 걸 숙지했음에도 인적 사항을 물어본 것과 같은 부분이었다. 일종의 기선제압?
“뭘 적으시던 알아서 하시고, 도대체 저를 배신자 취급하는 이유가 뭡니까?”
다엘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본론에 들어갔다. 이에 개롤이 어이없어하며 반문했다.
“린델 마을에서 주적과 작당모의 현장이 딱 걸려서 잡혀 와놓곤 나한테 되묻는다?”
“임무 지령받고 그곳에서 수색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적이 침공해서 어쩔 수 없이 막았던 거고.”
“알리바이가 그럴듯해. 크크크. 그래, 누굴 찾고 있었는데?”
다엘은 자신의 해명을 소설 취급하자 기분이 상당히 구려졌지만, 일단 누굴 수색했는지 답했다.
“딜프.”
“그 사람이 누군데? 아니, 그놈을 왜 찾는데?”
“임무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맞다 그랬지? 한데, 임무 받은 기록이 없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독립분대 첫 지령이었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확인이 안 된다니까.”
그 뒤로 밝혀지는 진실들.
다엘이 주장하는 임무의 내력 기록이 없음.
딜프는 허구의 인물.
행정관 코발트도 가짜.
대화 중 유일한 팩트는 독립분대가 된 것뿐.
다엘은 뒤늦게 누군가 짜놓은 판에 놀아났다는 걸 인지했다. 그렇게 신중히 매사를 의심했는데, 또 당했다.
‘인사 행정관!’
이후 다엘은 이를 갈며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개롤에게 최대한 뽑았다.
* * *
증거가 없어서 4분대를 아무리 배신자로 몰아도 죄를 확정 지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구류가 풀리며 내려진 처분은 ‘예비’ 독립분대 처우.
-아오! 일이 아주 X같이 꼬였네.
디아크가 길길이 날뛰었다. 모두가 의아해하며 그를 쳐다보자.
-니들은 이게 뭔지 몰라?
-그렇습니다.
-예비 독립분대란, 속히 말해 사냥개다.
즉 1년간 상부에서 시키는 온갖 것을 처리해야만 비로소 독립분대로 인정한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임무를 수행할 때 목숨을 걸지만, 예비는 안 해도 될 임무도 해야 하니 더 위험했다.
픽스는 예비란 이름을 달고 행해지는 부당함에 발끈했다.
-그러면 기존의 히온플과 다른 점이 뭡니까! 이참에 싹 때려치우지 말입니다?
-의무 복무를 마쳤으면, 네 말대로 해도 되는데, 너 아직 얼마 안 됐잖아?
일행 중 복무기간 6년을 채운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앞으로 펼쳐질 암담한 현실을 걱정하며 앞으로 이용할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했다.
그곳은 론도 영지와 멀지 않은 장소에 있었는데, 아주 드넓은 부지에 비슷한 양식의 건물이 대로를 따라서 좌우로 줄지어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 전체적인 구조가 반듯반듯했다.
다엘이 부지를 삥 두른 담벼락 옆을 걸으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앞으로 생활할 장소인가?”
아직도 예비란 말에 꽁해있던 픽스가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이곳에 예비가 아닌 정식 분대로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이미 이리된 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저희를 이리 만든 사람을 하루바삐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엘의 흉수 발언에 디아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짜 누가 이랬을까? 너희 누구한테 원한 산적 없냐?”
그가 모든 분대원을 훑는데 존이 나섰다.
“다들 군 생활하면서 적과 싸우기만 하는데, 그럴 틈이 있겠습니까? 있어봤자 부대원과 마찰 수준일 텐데.”
“그러니까 말이야 부대 생활만 하는데, 도대체 누구냐고. 보니까 아주 높은 분 작품인데.”
흉수를 파악하기 위해서 분대원들이 한창 열 올려 토론 중인데, 어느새 부지 내로 진입할 입구에 도착했다.
“정지! 용무는?”
그곳엔 위병소 같은 게 설치돼 있었는데, 근무자는 쉬가더였다. 상대의 경계에 다엘이 양손을 들며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밝히고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 독립분대로 배정된 히온플 4분대입니다.”
그가 자신의 소속을 알리고 품속에 고이 모셔진 서류를 근무자에게 내밀었다. 병사가 서류를 쓱 훑어보고는 맞은편 동료에게 눈짓했다.
“새로 오셨군요! 가시지요. 머무실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장선 쉬가더가 묵묵히 걷기 심심했는지 다엘에게 말 걸었다.
“얼마 만에 다시 보는 예비분대인지 모르겠습니다.”
“안에 있는 독립분대 중엔 예비가 별로 없나 봅니다?”
“네, 상당히 드문 편이죠. 이미 탄탄대로인 그들이 굳이 문제를 일으켜서 예비로 격하될 필욘 없으니까요.”
쉬가더 말을 들은 픽스가 탄성을 질렀다.
“그렇지! 조사받을 때 왜 그 말을 못 했을까? 이미 탄탄대로인데 뭐 하러 배신했겠냐는 말!”
“더러운 꼴에 휘말리신 모양입니다.”
다엘은 어렴풋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짐작하는 쉬가더의 태도에 놀랐다.
“아시는 게 있습니까?”
“예비란 타이틀을 달고 오는 경우엔 대부분 누명을 쓰고 격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습니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
그는 어떤 여인이 불러서 말을 마치지 못했다.
“어?! 오랜만이야, 프랑?”
“안녕하십니까? 베니쉬님.”
그녀는 건강미를 자랑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햇볕에 살을 태우고 있었던 건지, 자기 숙소 앞 벤치에 민망한 차림으로 누워있었다. 그녀가 일어나 옆에 벗어두었던 겉옷을 걸치며 다가왔다.
“누구? 새로 온 신입?”
“예? 예.”
“서류 좀 보여줄 수 있어?”
“그게···.”
베니쉬의 부탁에 프랑이 곤란해했다.
“뭐, 어때 이젠 한 식구고 내 후배분들인데. 그렇지? 후배 님들?”
4분대는 미인과 병사의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대화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날아오자 호칭을 선배님이라 불러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때 디아크가 자신의 분대원을 향해 혀를 차곤 나섰다.
“이건 또 뭔 미친년이야?”
“뭐? 미친년? 이번에···.”
그녀는 말하다가 디아크를 쳐다보고 입을 벌린 채 말문이 막혔다. 소문을 듣긴 했는데 정말 이렇게 큰 인간이 존재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베니쉬는 상대가 말 걸기 전에 그가 이번에 새로 생긴 건축물인 줄 알았다.
“입 닫아라. 침 떨어진다.”
“호호, 우리 후배가 선배에게 그 무슨 말버릇일까?”
그녀는 원래 새로 온 분대 신고식을 거하게 할 요량이었지만, 디아크의 덩치에 판을 벌이기 약간 두려워했다. 소문으로 접한 거인은, 인성이 빻았다는 말을 자주 접했다.
“선배는 개뿔이. 함께 생활하는 독립분대는 모두 경쟁자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어? 처음 온 놈답지 않게 잘 아네?”
디아크는 독립분대에 대해서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종종 만나는 선임이 모든 정보를 다 알려줘서.
그때 길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디아크를 알아보고 잽싸게 다가왔다.
“야! 너 왜 여깄어?”
디아크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뒤를 돌아봤는데 보자마자 당황했다.
“어떤 새끼가? 헉! 롤랑 병장님.”
“와, 너 독립분대 할 생각 없다며! 근데 이렇게 배신하네? 내가 스카웃 갈 땐 아주 개무시하더니?”
베니쉬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분대장, 아는 사람이야?”
“응. 이놈이 내가 삼고초려 하던 놈. 아니, 거의 무한초려지.”
미친년과 귀찮게 하는 선임이 아는 사이라니, 일이 좀 더럽게 꼬였다. 디아크는 유일하게 롤랑에게만 성깔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이 싹수없는 후배가 우리 분대장이 그리 공들여 데려오려 했던 사람이었다니···.”
“먼저 등쳐먹으려 했던 건 그쪽 같습니다만?”
베니쉬는 든든한 우군이 생긴 기세가 아주 당당해졌다.
“내가 독립분대 생활 팁 좀 일러주려 했는데, 그게 등쳐먹는 거니?!”
“그러려 했는지 딴마음이 있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와, 말본새 봐라.”
둘이 투덕거리는 사이에 롤랑이 병사를 바라봤다.
“이분들 우리 숙소에 대려다가 이야기 좀 할 건데 괜찮죠?”
“절차상 먼저 숙소 안내를···.”
롤랑이 거절을 돌려서 말하는 병사에게 손사래를 쳤다.
“어휴, 우리끼리 왜 이러실까? 제가 안내할게요.”
“저분들 숙소가···.”
병사가 롤랑에게 다가가 다엘 분대의 숙소가 어딘지 위치를 알렸다.
“여기입니다. 아시겠죠?”
“오케. 접수 완료. 이만 가보세요.”
“그럼.”
그가 짧은 묵례 하고 사라지자 롤랑이 다엘 일행을 자기들 숙소로 이끌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말하자고.”
- 작가의말
-
앞으로 부사령관이 손쓸 거기에 전개가 조금 빨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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