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 통로(2)
다음날.
슈타인이 마지막 괴수를 깔끔한 일검으로 양단하자, 성벽 위에서 엄청난 존재감이 뿜어졌다.
짝짝짝.
“그걸 막을 줄이야.”
병사들은 흩어져서 난전을 치르다가 새로운 적 등장에 늘어트렸던 병장기를 바로 들었다.
“누구냐!”
“헉헉, 끝난 게 아닌가?”
“어머니, 여기가 소자 무덤인가 봅니다.”
관자놀이 양옆에 뿔이 ㄴ자로 자리한 두 인물이 벽 위에서 병사들을 내려보았다. 그중 손뼉 치던 인물이 슈타인을 비아냥거렸다.
“병사들이 반 정도 죽었나? 그러니까 왜 이곳에 겨 와서 무의미한 죽음을 자초해.”
“닥쳐라! 죽여주마.”
앞선 괴수와 교전에서 수많은 병사의 죽음을 목도한 슈타인.
놈들의 등장에 지금까지 들끓던 마음이 무언가로 승화해서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장은 본연의 색을 잃고 죽은 병사들의 피로 덮어져서 시뻘겠다.
‘뇌각 - 신체 강화.’
적을 향해 튀어 나간 슈타인은 순식간에 노란 빛줄기로 변해서 목적지에 당도했고, 이런 사령관 뒤를 다엘을 위시한 정예 병력이 뒤쫓았다.
‘이상하군. 놈들이 왜 지금 나설까?’
보통이라면 자신들 병력(괴수)이 전멸하기 전에 나서지 않나? 다엘이 의아할 새도 없이 전투는 시작됐다.
콰과광. 우루루. 번쩍. 챙챙.
계단을 밟고 성벽으로 올라가려던 정예 병력의 발걸음이 일순 멈췄다. 성벽 위에선 비좁은 공간이 무색하게 경천동지할 전투가 일어났다.
“미, 미친.”
“누, 누구와 싸우려 했던 거야.”
“약한 소리 마! 저런 놈들과 맞서시는 사령관님을 보라고!”
누구도 대결에 참전할 수 없었다. 그곳은 1개의 노란 줄기와 2개의 회색 줄기가 끊임없이 부딪쳤다 튕기며 그 여파로 격전지 공기를 마구 밀어냈다.
전장은 이미 성벽의 범위를 넘어섰고 점점 커지는 규모에 모두 뒷걸음질 치는데, 후드를 뒤집어쓴 인물이 과감하게 그 용담호혈에 뛰어들었다.
‘내가 한 명을 상대해야 해.’
“으르르르.”
“저, 저, 저?!”
“위험해!”
각성의 힘을 끌어올린 다엘이 한 회색 줄기에 맹렬하게 쇄도했다.
챙.
그의 난입에 고속 이동하던 적이 칼을 수평으로 눕히며 상단부를 방어하는 자세로 모습을 잠시 비췄다.
‘뮤랑족?!’
“버러지 놈이, 그 피를 어떻게?”
상대가 잠깐 주춤거리더니 자세를 바르게 교정하곤 다엘에게 달려들었다.
“뒤져라!”
‘으헉!’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상대. 자신의 피지컬을 아득히 상회하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두 가지 있었다. 바로.
촤라락.
한발 빠르게 팔에서 살덩이가 튀어나와 적에게 맹렬히 쏘아졌다.
“같잖은 짓을!”
적은 제 얼굴에 쏘아진 덩어리를 검면으로 쳐내며 손쉽게 걷어냈다. 그사이 다엘은 상대에게 접근해 양팔로 가슴팍을 찢어발겼다. 어느새 길게 자란 손톱이 검은빛을 내뿜었다.
“흥.”
상의 앞섬을 피로 적시나 싶은 순간, 놈의 가슴 앞에 투명한 막이 생겨나 공격을 잠깐 저지했다. 그로 인해 짧은 틈이 생겼고 적이 뒤로 재빨리 물러나며 손가락을 튕겼다.
탁!
다엘 양옆에 투명한 반구가 생겨나 대응할 새도 없이 들이닥쳐 안에 가뒀다.
“뭐, 뭐야?!”
‘예지 고통이 안 느껴졌다.’
투명한 막을 찢어발기려는데.
“죽어라.”
놈은 구와 다엘을 통째로 가르려는 듯, 순식간에 옆에 나타나 허릴 향해서 맹렬한 횡 베기를 선보였다.
쏴아악.
‘죽는다!’
스멀스멀.
상대의 병장기가 투명한 막에 닿을 때 미지의 힘이 샘솟았고.
검격에 부서진 투명한 구가 허공에 산산이 흩날리며.
놈의 공격이 허릴 가르기 직전에.
피슝.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다엘. 검을 회수 못한 놈 좌측에 나타나 가슴팍에 주먹을 냅다 꽂아 넣었다.
“헛!”
적은 자신의 병장기를 내버리곤 팔을 X자로 교차했다.
쾅!
다엘의 공격이 그 위를 타격했고 놈이 뒤로 튕겨 나갔다.
와르르.
눈 깜짝할 사이에 성벽 하나가 박살 나 돌무더기가 무너져 자욱한 먼지를 뿜었다.
“하, X발 마이너까지 다룬다고?”
희끄무레한 먼지 속에서 흐릿한 형체가 걸어나 왔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
“병신 킬리파?”
옆에 다가온 동료가 먼지를 털고 있는 그를 비웃었다.
“뭐 새끼야? 싸우자고?”
“기르던 가축에게 처맞고 왜 나에게 분풀이? 도랏?”
“...”
기분이 언짢아진 킬리파는 어금니를 앙다물고 성벽 위 다엘을 쏘아보며 손을 마구 튕겼다.
탁. 탁. 탁.탁.탁.탁.
자리에서 바로 사라진 그가 허둥거리는 다엘의 목을 손쉽게 움켜쥐었다.
꽈아악.
“으윽.”
“안돼!”
슈타인이 대경하며 달려들려 했지만, 앞을 놈의 동료가 막아섰다.
“어딜 가려고?”
“네놈!”
다엘을 구하기 위해 흥분한 슈타인이 놈에게 다급히 달려들었다.
챙. 챙. 챙.
다시 시작되는 2차전. 선으로 변한 그들을 뒤로하고 킬리파가 다엘의 목을 움켜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리 맥없이 붙잡혀?”
“크으윽.”
다엘은 킬리파의 손아귀에 목이 졸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상대의 팔을 붙잡고 간신히 버틸 뿐.
‘끝인가.’
미지의 힘의 약점.
강한 공격에는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주지만, 목 조르기 같은 공격에는 유의미한 힘을 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놈이 앞서서 튕겼던 손놀림이 무슨 짓인지, 사위에 반투명한 막이 들어차서 움직임을 방해하던 차라 목조름에 대응하지 못했다.
아군이 붙잡힌 다엘을 구하기 위해서 킬리파에게 사격했지만, 결과가 미비했다.
“계속 발포해라!”
KS에서 쏘아진 탄은 날아가다가 어느 한 지점에 막혀서 죄다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그러던 차에 보랏빛 탄환이 그곳에 쏘아졌다.
챙챙챙.
뚫고 나가나 싶더니 채 5m를 전진하지 못하고 소멸했다.
“전우를 구하겠단 저 동료애, 눈물겹다 그지?”
쫘아악.
놈은 그대로 목 졸라 죽이려는 듯 서서히 아귀힘을 키웠다.
“네놈이 잊힌 두 힘을 다뤄서 흥미롭다만, 짜증 나니까 그냥 죽어라.”
다엘은 산소 부족으로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상태를 버티며, 미지의 힘이 크게 차오르는 순간 도망칠 기회를 엿봤다. 이런 생각과 맞물려 자신을 구하기 위해 군단에서 몇몇이 튀어나왔다.
“안돼!”
“형!”
“솔방울 던져!”
“아, 벌레 새끼들이 귀찮게 하네.”
웅얼웅얼.
‘뭐...라...고?’
다엘은 마음먹었던 것과 다르게 어느새 상대가 하는 말이 뭉개져서 들리며, 방금 하려던 행동도 망각하고 서서히 의식이 아득해졌다.
피슝.
“후퇴하자, 나 더 날뛰면 상대를 죽일지 모르겠어.”
돌연 슈타인과 대치 중이던 이가 킬리파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냥 죽이지 왜?”
“킵튠님 말씀 잊었어?”
“뭐?”
“강한 가축은 죽이지 말라 하셨잖아.”
“아, 맞다!”
킬리파는 너무 오래전 규율이라 잊고 있었다. 그는 욕설을 뱉으며 다엘을 자신이 처박혔던 돌무더기에 내던졌다.
“에이, X발.”
“가자.”
쾅. 와르르.
놈들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뭐야?”
상황을 지켜보던 병사 대부분이 어버버할 동안 4분대는 빠르게 다엘이 처박힌 장소로 달려갔다.
“형!”
“동생아!”
“흐어어억, 콜록콜록.”
다엘은 얼굴이 시뻘게져 모든 구멍으로 액체를 쏟아내며 목을 부여잡곤 기침했다. 이에 로라가 말없이 다가와 등을 두들기고 픽스와 스왈로가 다엘의 겨드랑이를 들추며 부축했다.
“뿔 달린 새끼들 뭡니까?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던데?”
픽스의 의문에 로라가 짧게 답했다.
“마족.”
“전설 속 마족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마도?”
“놈들이 여기에 왜 있습니까?”
“나도 몰라 인마.”
“콜록. 저 물 좀 주시면.”
다엘이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힘없이 말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제가 얼른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중이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타인이 다엘에게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자네 괜찮나?”
“어? 아,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다엘은 그가 내민 가죽 주머니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빨리 몸을 추스르게나. 바로 심층부에 진격할 터이니.”
“얼마나 시간이 있습니까?”
“30분만 쉬고 출발할걸세.”
이미 첫 출전 병력의 반 이상을 잃었다. 여기서 발길을 돌릴 수 없는 노릇. 거기다 마족이라 예상되는 놈들과 겨뤄보니 할만했다.
‘놈들은 소수일지 모른다 했지?’
확실한 정보가 아닌 떠도는 소문이지만, 이 말이 슈타인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세나.”
“알겠습니다.”
슈타인은 다엘의 어깨를 토닥이고 멀어졌고, 그의 등에 먼저 간 수많은 동료 목숨이 얹혀있었다.
* * *
외부에서 볼 땐 성벽이 높아서 몇 층은 돼 보이는 성이 놀랍게도 단층 구조였다. 내부는 여러 방이 넓은 홀을 둘러쌌으며 정면엔 휘황찬란한 문이 보였다.
수많은 저항을 뚫고 이곳에 당도하기 위해서 병력의 반을 잃었건만, 여긴 허무하리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끝이 다가왔다!”
고요.
적진 한복판이기에 슈타인을 제외하곤 아무 병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슈타인에 몇 계단 위 대전 문을 노려보며 병력을 통솔했다.
“전원~ 발포 준비!”
착.
병사들이 전방의 문을 향해서 일사불란하게 KS를 겨눴다. 슈타인은 전신을 전갑으로 무장하기 전에 뒤에 정렬한 병력을 쭉 훑었다.
‘다들 지쳐 보이는군. 그럴만하지.’
대부분의 병사 눈 밑에 심한 다크서클이 껴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만 하루가 넘게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거기다 300명의 괴수와 싸우며 날밤을 지새웠다.
슈타인은 투구를 착용함으로써 완전무장하고 전방 문을 들고 있던 칼로 가리켰다.
“발포!”
슈아앙~ 콰과광!
KS에서 불을 뿜으며 발포된 탄이 대전 문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놈이다!’
문이 떨어져 나간 구멍 사이로 마족이 보였다. 놈은 의자에 누워있다시피 기대고 있었는데, 자신과 눈이 마주치고도 하품을 쩍쩍했다.
‘인간의 힘을 보여주마!’
“전군 돌격!”
“““와아아!”””
슈타인의 돌격을 필두로 인간군은 왕좌 주위를 빠르게 둘러쌌다. 모두가 모이자, 놈은 의자에서 등을 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축이 반기를 들어?”
‘헛!’
순식간에 사령관 앞에 나타난 마족이 그의 배를 걷어찼다.
펑! 휘이이잉 쾅!
가장 강할지 모른다는 슈타인이 놈의 발차기 한방에 대전 내벽을 무너트리며 한없이 뒤로 날아갔다.
이리 쉽게 당할 게 아니었는데, 시간제한이 있던 ‘뇌각’의 특성상 전투가 시작되고 뒤늦게 능력을 활성화하려 했던 것이 그의 패인이었다.
사령관이 당하자 제2 지휘권자가 절규하며 병을 통솔했다.
“놈을 죽여라!”
그의 돌진에 동화된 모두가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X발!”
“으악!”
“악!”
“타합.”
각양각색의 기합을 외치며 다가가던 이들은 적의 파리 쫓는 손짓에 우수수 튕겨 나가 내벽을 무너트리곤 대전에서 종적을 감췄다.
‘미, 미친 아까 싸우던 놈과 급이 다르잖아.’
다엘은 방금 사령관을 발로 차는 놈의 움직임을 순간 놓쳤다.
‘놈이 날 찰 때를 노려야 한다.’
다엘은 내성에서의 마족과 전투를 통해 자신의 전투법을 개선했다.
-적을 미지의 힘으로 날리고 나서 쉼 없이 몰아쳤다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그리하여 탄생한 작전이 선 카운터 후 맹공격. 다엘은 놈이 자신을 공격하길 기다리며 근처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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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병력의 3분지 2쯤이 사라졌을까? 엄청난 속도로 날뛰던 놈이 불현듯 다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넌 이너 포스라는 짝퉁과 힘 형태가 다르다? 오히려 내 쪽과 가까운데? 재밌네. 근래에 자주 보여.”
놈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떠들었다.
‘뭐라 씨불이는 거야? 나도 그냥 공격하지.’
“따라와. 이야기 좀 하자.”
‘어어어?’
다엘은 강한 이끎을 느끼며 순식간에 마족에게 납치됐다. 갑자기 대치 상태가 깨지자 모두 현실을 못 받아들이며 어리둥절했다.
“어디 갔어!?”
한 쉬가더가 의문을 표하기 무섭게 열기 폭풍이 들이닥쳤다. 그의 앞머리가 휘몰아치는 뜨거운 바람에 흩날렸다.
“슈타인 님!”
처음에 날아간 사령관이 어느새 전장으로 복귀했다.
“놈은?”
“그게···.”
쉬가더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항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했다.
“용병 단장과 함께 사라졌다···.? 윌리스 때와 비슷하군.”
슈타인이 금속 투구를 해체하며 생존한 이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전군! 성을 샅샅이 수색하라!”
“““악!”””
수많은 희생을 뒤로하고 강행군했는데, 목표물을 코앞에서 놓쳤다. 그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군을 통솔했다.
‘조금만 버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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