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1)
다엘은 10사단 인근에서 잃어버린 보급품을 되찾고 막사로 복귀했다. 동행했던 묘천은 어느새 냐아로 돌아가 군장 위에 자리를 잡고 늘어졌다.
다엘이 4 생활관 출입문을 밀면서 중얼거렸다.
“부분대장님께 빨리 칼 돌려드려야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이 막내를 반겼다.
“빨리빨리 좀 다녀라!”
“칼 찾았어?”
“돌, 돌아왔습니다.”
다엘은 그들의 과도한 관심에 얼떨떨해하며 우선 로라에게 다가갔다.
“부분대장님 늦게 드려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녀에게 쓰레기 칼을 내밀자 로라가 자신의 칼을 잽싸게 건네받았다.
“찾았으면 됐어. 어서 분대장님께 가봐.”
“알겠습니다.”
다엘은 우선 자신의 군장을 침상에 내려놨다. 분대장은 그 짧은 시간을 못 참고 재촉했다.
“막내야~”
“갑니다.”
간단한 뒷정리도 못 하고 바로 디아크에게 불려갔다.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분대장이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약속 잊은 거 아니지?”
“무슨 약속 말입니까?”
“능력 개화했잖아.”
능력 개화했으니까 뭐 하자고.
‘설마?’
“싸움은 포스 개화하고 아니었습니까?”
분명 결투는 자신이 포스를 개화한 뒤였다.
“아 그거? 능력 개화하면 포스까진 금방이야.”
포스까지 금방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됐다. 다엘은 존의 사례를 들며 역으로 물었다.
“존 나셰 상병도 능력 개화자 아닙니까?”
“쟤? 쟤는 자신이 되는 걸 해야지, 원하는 걸 하는 바보.”
디아크는 능력에 대한 추가 설명을 이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거 말고···.”
우선 능력을 개화하면 여러 실험을 거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깨쳐야 했다. 응용법을 찾다 보면 자신의 ‘힘’의 본질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되고.
“이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자신의 포스에 관해 정의 내릴 수 있지.”
설명을 듣던 다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씀대로라면 분대장님 포스 또한 아직 확정 아닙니까?”
“아마? 따지고 보면 나도 알아가는 중이니까.”
“그럼, 존 상병은 되는 걸 해야지. 왜 하고 싶은 걸 합니까?”
그때 다엘의 어깨 위로 예지 감각이 살랑거리며 느껴졌다.
‘응?’
움찔.
어느새 존이 옆에 다가와 팔로 다엘의 어깨를 감쌌다.
“귀가 가려워서 와봤더니, 내 이야기입니다?”
“막내가 네가 왜 삽질하는지 궁금해하네?”
“삽질 아닙니다.”
디아크는 존의 부정에 비꼬았다.
“그러셔서 아직 포스가 아니시고 능력이세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자신이 원하는 포스 얻을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노력의 산증인, 슈타인 님 무시하십니까?”
디아크는 자꾸 답답한 소리 하는 존에게 ‘슈타인의 포스 개화 시기’를 알렸다.
“너도 나이 50 먹고 깨우치려고?”
“전 더 빠를 겁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더 늦어서 60에 깨우칠지도?”
“이이···!”
쾅!
갑자기 생활관 문이 벌컥 젖히며 스왈로가 들어왔다.
“전 부대원 내일 16시에 집합 잡혔습니다.”
“갑자기 왜?”
“공치사와 전달 사항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어. 그것보다 문 좀 살살 열어라. 별것도 아닌 일에 미쳤냐?”
“죄송합니다.”
“됐어.”
휙휙.
디아크가 ‘이만 가보라는 듯.’ 스왈로에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곤 다엘을 쳐다봤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존 상병 이야기는 마쳤고 싸우자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존이 발끈했다.
“내 이야기 아직 안 끝났거든?”
디아크가 존에게 눈을 흘겨 떴다.
“나 지금 신병 개인 면담 중인데. 너도 개인 면담하고 싶냐?”
“아, 면담이셨구나! 진작 말씀하시지.”
존이 허둥지둥 자리를 비켰다. 침상으로 돌아가는 존에게 분대장이 말했다.
“할 말 있으면 이따 말하자고.”
“일없습니다.”
분대장이 제 이마를 톡 치며 다엘을 바라봤다.
“불러놓고 너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지?”
“아닙니다.”
이후 분대장의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1. 포스를 개화하기 위한 여러 팁.
2. 6개월 뒤 독립분대를 이끌 분대장을 선출하는데 그때 겨루자.
3. 너 이번 주 내로 휴가 나가야 한다.
‘휴가라고?’
첫 파견을 마친 신병은 무조건 그 주에 휴가 나가는 게 전통. 다른 건 몰라도 그 소리에 다엘의 눈이 반짝였다.
‘이참에 검 사야겠다.’
그동안 전투하며 무기 부재로 자주 곤란함 겪었다.
‘그리고 다중코어도 이번 휴가 때 기틀 잡자.’
어차피 휴가 나가서 할 일도 없다. 다엘의 머릿속은 온통 수련 생각으로 가득 찼다.
* * *
몇일이 흘렀다. 그동안 특별한 이벤트라면 전 부대원 소집이 있는 날. 히온플은 그날 부대 희생자에 대한 애도식도 같이 진행했다.
-이번 파견에 20명이 투입되어서 4명이 희생됐다.
사망자 중 4분대에도 1명이 있었다. 바로 판초리 일병의 사망. 분대원 다들 쉬쉬하며 이야기하길 피했지만, 이날은 그와의 추억을 회상 안 하고 배길 수 없었다.
-말투 때문에 괴롭혀서 미안했다.
-부디 좋은 곳에 갔기를···.
희생자 애도와 공치사를 한자리에서 진행한다는 게 조금 이상했지만, 여긴 그랬다.
-호명하는 자는 단상 아래로 나오도록.
이날 다엘은 5,000포인트를 받고 한 계급 특진해서 일병이 되었다. 그는 받은 포인트로 마령환’성을 5개 사고 나머지는 에볼을 사다가 냐아에게 바쳤다.
대충 공치사가 마무리되고 커맨더는 마지막쯤에.
-지금 보이드 못이 출현 안 한 지 1달이 다 돼간다.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습격하던 놈들이 활동을 갑자기 멈췄다?
-아직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군대가 적을 멸한 게 아니니, 분명 놈들에게 꿍꿍이가 있으렷다.
-지금 조사 중이니까 그동안 다들 훈련에 매진하도록.
-악!!!
이렇게 이날의 이벤트는 마무리됐다.
「막내의 휴가 출발 날.」
다엘은 군장을 메고 생활관 입구에 섰다. 출발하기 전에 뒤돌아 분대 선임에게 인사했다.
“일병! 다엘! 다녀오겠습니다!”
스왈로가 옆에서 간식으로 먹으라고 여분의 에볼을 내밀었다.
“좋아 죽네. 이참에 푹 쉬라고.”
“필요한 거 사다 드립니까?”
“아니 됐어! 내가 나갈 때 사면 돼.”
존이 신난 다엘에게 태클 걸었다.
“이대로 탈영하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여기가 제집입니다!”
밥 잘 주지, 재워주지, 입혀주지, 돈 잘 주지, 거기도 성장 요소도 무궁무진하지. 여러 가지 요인이 다엘을 진정한 군인으로 만들었다.
“혹시 몰라 말해둔다. 탈영하는 즉시 왕국에서 수배령 내린다. 알간?”
“알겠습니다!”
픽스는 다가와서 자신의 월슬릿을 다엘에게 내밀었다.
“막내야 난 뭐 좀 사다 줘.”
“뭐 말입니까?”
그가 두어 번 접힌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여기 적어둠.”
그때 존이 픽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퍽.
“앗!”
“새끼야, 넌 누가 휴가 나가든 매번 부탁이냐?”
픽스가 도끼눈을 치켜뜨며 뒤를 돌아봤다.
“왜 때리십니까!”
“양심 있냐고.”
“뭐가 말입니까!”
“역지사지 좀 해라. 넌 너 휴가 나갈 때 누가 부탁하면 좋냐?”
“네! 좋습니다!”
다엘이 다투는 둘을 말렸다.
“두 분 진정하시고. 어차피 할 일도 없는 거, 부탁하셔도 괜찮습니다. 존 나셰 상병님도 뭐 시키실 일 있습니까?”
“난 괜찮은데, 주변에서 자꾸 이놈 부탁을 들어주니까 습관이 드는 거라고.”
“아니! 다엘이 괜찮다는데 왜 본인이 날리십니까!”
“뭐! 씨댕아?”
둘은 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다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리길 포기하고 분대장을 살폈다.
‘역시 관심 없네.’
디아크는 다엘이 뭘 하든 본인 볼일이 없으면 신경 안 썼다. 더욱이 최근 자신의 볼일은 끝났고.
이번엔 다엘이 줄리나를 바라봤다.
흔들흔들.
그녀는 마주치길 기다렸던지 바로 손으로 배웅 인사를 해줬다. 다엘도 그에 맞춰서 고개를 꾸벅였다.
착.
어느새 다가온 로라가 다엘의 어깨를 붙잡고 출입구로 등을 떠밀었다.
“여기서 밤새우겠다. 잘 다녀오라고.”
“다녀오겠습니다.”
끼이익.
마침내 생활관 문이 열리며 다엘의 첫 휴가가 시작됐다.
* * *
다엘이 받은 휴가는 9박 10일. 그는 부대 막사를 나오자마자 방벽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막상 휴가를 나왔지만, 기거할 집 따윈 없었다.
‘이참에 칼슨 아저씨를 뵈러 가자.’
그나마 만날 사람은 칼슨. 다엘은 카흐 영지로 목적지를 정하고 앞으로 뭐할지 고민했다.
‘하루바삐 다중코어를 만들고 싶은데.’
하고 싶다고 지금 바로 수련을 하는 건 위험했다. 벽 밖에서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랐다.
‘안전 확보가 최우선이지.’
결심과 동시에 메고 있던 군장의 배낭끈을 양손으로 움켜쥐곤 뛰기 시작했다.
.
.
.
다엘은 전력을 다해서 뛰다 보니, 어느새 방벽에 도착했다. 통로 앞에 근무 중인 쉬가더가 보였다. 그도 다엘의 시선을 느꼈는지, 둘의 눈이 마주쳤다.
‘고생하시네!’
지금은 우연히 특수부대에 들어왔지만, 기회가 없었다면 자신도 쉬가더가 됐으리라. 뭔가 그리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다엘은 색다른 기분을 느끼며 걷다 보니 어느덧 통로 앞에 도착했다.
‘히온플은 절차 없이 바로 통과라고?’
그때 근무자가 먼저 다엘의 전투복을 알아보곤 뒷발굽을 붙이면서 상체를 내밀었다.
“수호!”
“수호.”
다엘이 그에게 다가가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져 간식을 한 움큼 꺼냈다.
“수고하십니다. 드릴 건 없고 이거라도 드세요.”
그러곤 손에 쥐고 있던걸 쉬가더에게 내밀었다.
“어이쿠, 괜찮습니다.”
손사래 치면서 안 받으려 했지만, 그는 무작정 쥐여주는 다엘을 못내 못 이겨 결국 받았다.
“그럼 수고하세요!”
“수호!”
“네.”
멀어지는 다엘의 등을 바라보며 쉬가더가 중얼거렸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히온플이네?”
옆 동료가 다가와 그의 손에 쥐어진 에볼 하나를 빼냈다.
“강한가 보지.”
“군인 같지 않게 인성도 좋아 보여.”
“우물우물. 혹시 아냐? 소악마 일지?”
그가 들고 있던 에볼을 동료 눈앞에 내밀었다.
“넌 이걸 준 사람에게 그리 말하고 싶냐? 넙죽넙죽 처먹으면서?”
“꿀꺽. 뭔데 시비냐?”
“애혀 말을 말자. 근무나 서, 새끼야.”
한소리들은 동료가 땅에 군화 뒷발을 박찼다.
“아오, 씨댕이 내 후임이었으면 X나 패는 건데.”
“응. 나도야.”
그들의 다툼을 뒤로 하고 다엘은 방벽 안으로 진입했다. 어느새 그의 손엔 마령환이 들려있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상기했다.
‘이걸 먹고 온몸을 마나로 막으라고?’
일단 키르가 다중코어에 집중하기 전에 이것부터 해보라 권했다.
‘600포인트짜리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지금 다엘에 소지한 마령환은 이번에 얻은 5개, 저번에 얻은 3개 총 8개였다. 이걸로 최소한 2개의 다중코어를 만드는 게 이번 목표였다.
후우 후우.
다엘은 심호흡하며 긴장을 풀더니, 손에 들고 있던 걸 입으로 가져가 날름 먹었다.
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엘의 전신이 옅은 빛무리에 휩싸였다.
우물우물.
망령환을 씹을수록 다엘의 얼굴에 오만상이 지어졌다.
‘맛이 뭐 이래?!’
첫 코어 만들 때 바로 삼켰던 마령환도 비슷한 맛이리라. 만약 그날 삼키지 않았다면, 미식에 예민한 다엘이 코어를 한 번에 못 만들었을 거다.
‘오! 시작됐다.’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몸 안에 마나 기운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온몸을 주유하며 틈만 나면 몸 밖으로 나가려 안간힘 썼다.
‘이래서 온몸을 막으라 하셨구나.’
다엘이 앞서 두른 마나막이 기운의 탈출을 막았다. 처음 코어를 만들 때처럼 무진장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이게 바로 600포인트짜리의 힘인가?’
마령환’ 성의 경우는 은은하게 오래 지속되는 게 특징이었다. 노도와 같은 기운의 흐름보다 미약한 게 코어의 성장에 좋았다.
‘한두 알은 정도는 경과만 지켜보고 그다음부터 기운을 조절해보자.’
바로 알박기를 할 수 있지만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았다. 이미 외부를 막은 상태라 기운이 소실될 리 없이 꾸준히 몸 안에서 움직일 거다.
다엘은 보폭을 자연스레 줄이며 다중코어 만들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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