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웨이브(7)
다엘은 오랜 투덕거림 끝에 결국 분대장의 고집을 꺾었고, 그날 초저녁 4분대는 임무를 진행할 목적지에 당도했다.
마을 내부에 진입하니, 거리 곳곳에 판자로 만들어진 집이 보였다. 그것은 정상적인 설계도로 지어진 집이 아니었다. 온갖 쓰레기를 얼기설기 엮어 겨우 이어 붙인 수준.
‘요즘도 이런 곳이 있다고?’
아무리 방벽 인근이라 쳐도 요즘 마을치곤 너무 낙후됐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도저히 ‘한 건 해먹은’ 인물이 도망쳐 올 장소가 아니었다. 이에 다엘은 행정관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진짜 이곳으로 도망쳤습니까?”
“마지막 제보가 여기였습니다. 어서 찾아보죠.”
“해졌는데 내일부터 수색하는 건 어떻습니까?”
“안 됩니다! 정말 긴급한 사안입니다. 야간 수색조를 운영하시죠?”
나란히 걷던 디아크가 옆에 보이는 큰 나무에 다가가 등을 기대며 두 눈을 감고 일방적으로 다엘에게 통보했다.
“난 잔다. 알아서 해라. 깨우면 뒤진다.”
“알겠습니다. 저희끼리 조 짜겠습니다. 쉬십시오.”
다엘 입장에선 분대장이 여기까지 와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취침에 들어간 그를 뒤로하고 다엘이 남은 분대원을 훑었다.
“여기서 정처 없이 걸을 게 아니라 숙소부터 구하겠습니다.”
존은 근무조를 운영하자는 행정관 의견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잽싸게 선수 쳤다.
“이따가 조 짤 때. 난 초번으로 넣어라.”
이에 질세라 로라가 바로 끼어들었다.
“나도.”
“뭘 너도야! 내가 제일 먼저 말했거든?”
“애새끼냐? 먼저 말한 게, 뭐 중요?”
“이···!”
여관에 가서 차분히 대화하며 조 나누려 했건만, 선임들 태도를 보아하니 글렀다. 다엘은 이참에 조를 편성했다.
1조. 로라, 퀘살.
2조. 존, 아이닥.
3조. 줄리나, 픽스.
4조. 스왈로, 다엘, 중이.
“나름 조화롭게 짰습니다. 1, 2조에서 초번 말번 하시고. 3, 4조가 중간근무 서겠습니다.”
다엘은 전투력 순이 아닌 짬밥 순으로 인원을 나눴다. 순식간에 조가 정해졌지만, 존의 의문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초번인데?”
“당연히 나지, 이 비실이 새끼야.”
존의 기분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로라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녀를 쏘아봤다.
“이년이! 아까부터 미쳤나?!”
“뭐? 꼽냐? 덤벼보던가.”
로라가 존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까딱거렸다. 존이 그녀의 도발에 응하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다엘이 둘 사이에 끼어들며 양팔로 서로의 접근을 막았다.
“워~워, 여기서 싸우지 마시고 차라리 가위바위보 하십시오.”
“가위바위보? 좋지? 야 비실이 뭐 낼 거냐?”
“너 이기는 거.”
“가위?”
“응, 가위.”
“가위 안내면 뒤진다?”
“응.”
다엘이 심판이 되어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자! 가위바위···.”
돌연 얼굴이 벌겋게 물든 행정관이 끼어들었다. 그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 4분대가 경솔한 행동을 보이자 열받은 상태다.
“잠깐!”
“왜 그러십니까?”
“언제까지 모습을 노출할 겁니까?! 놈이 저흴 보고 도망가겠습니다. ‘나 여기 있다’라고 온 동내에 소문냅니까?”
“아!”
히온플 부대원 대다수가 때리고 부술 줄만 알았지, 수색 임무는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거기다 여긴 인적이 워낙 드물어서 누군가 지켜볼 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여관으로 자리를 옮기지 말입니다.”
행정관의 개입에 실수를 인지한 다엘이 앞으로 나서며 일행들을 이끌었다. 존이 앞장서는 그의 등을 두드렸다.
“너, 이 동네 길 아냐?”
“방금 둘러보면서 봐둔 여관이 있습니다. 저만 따라오시지요.”
모두는 다엘을 뒤따라 이동했다.
* * *
낮엔 구역을 정해서 수색을 진행하고 밤엔 야간에 조를 운영하기 3일째. 매일 같은 인물을 살피며 지루한 수색 작업에 지쳐 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터졌다.
“으억!”
다엘은 혹시 몰라서 마을 외지를 정찰하다가, 흙바닥에서 봉긋하게 솟아나는 머리통에 당황해 뒤로 황급히 발을 물렸다.
“두더지! 네가 왜 여기 있어?!”
상대도 뒤통수에서 들리는 외침 소리에 놀라긴 똑같았다. 덕분에 그는 집중력이 풀려서 솟구치던 몸 반절이 땅 사이에 꼈다. 그 상태로 뒤를 본 네뮬러스가 다엘을 알아보며 이를 갈았다.
뿌드득.
“넌 그때 먹이 놈!”
그는 땅굴을 통해서 벽 내로 침투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가장 빠른 척후병으로 자신이 발탁됐고 나머지 동료들이 땅속에서 뒤따라왔다.
“생각보다 빨리 만났구나!”
네뮬러스는 일전에 다엘을 죽이려다가 오히려 역공당해서 상처 입었다. 그동안 자신을 다치게 한 인간을 다시 만나길 간절히 염원했다.
그의 바람이 오늘 이뤄졌다.
“죽여주마!”
그가 능력을 써서 땅에서 마저 올라온 사이 옆에 있던 다엘이 허공에 녹아들듯 감쪽같이 증발했다.
“뭐, 뭐야?”
네뮬러스는 순간 먹이의 행동을 눈에 담지 못했다는 사실에 눈동자가 끊임없이 흔들렸다. 사실 첫 만남에서 2가지 제약이 다엘의 움직임을 막고 있었다.
일. 이미 반나절 이상 적과 대치했다.
이. 적 군단 한복판이다.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다엘의 본모습을 네뮬러스가 파악하지 못했던 것.
놀란 두더지를 뒤로하고 다엘은 마을 곳곳을 누비며 적의 등장을 모두에게 알렸다.
“적의 공습입니다!”
주민 들으라고 한 소린 아니지만, 외침을 들은 그들은 얼굴에 불신을 가득 품고 다엘을 양치기 소년 보듯 바라보았다.
“저 호랑 말코 새끼가 뭐라 지껄이는 거야?”
“침공? 혹, 벽이 무너진 거 아닙니까?”
“떽!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게.”
주민들은 적습을 개소리 취급하며 일상을 이어 나갔고, 분대원들만 다엘 주위로 합류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디아크가 상황을 물었다.
“벽이 무너져서 놈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온 거야?”
“아닙니다. 네뮬...”
“나이스!”
분대장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호했다. 만약 다엘이 벽이 무너졌다고 말했으면 다시 우울해질 뻔했다. 원체 투쟁을 좋아하는 디아크가 지난날 꽁해있던 이유는 단 1가지.
-쓰레기 화이트급은 귀찮기만 할 뿐 전혀 즐겁지 않다.
적 군단은 얼마 전 상황을 사과하려는지 이번엔 정예 대원을 선물로 보냈다.
“몇 명이나 침입했냐?”
“모르겠습니다. 눈으로 확인한 것만 1명입니다.”
“한 명?”
디아크가 적의 수가 1명이란 사실에 누구 코에 풀 붙이냐는 눈빛으로 분대원을 쭉 훑어봤다.
“우린 8명인데 1명? 이것들이 장난하나! 최소한 쪽수는 맞춰와야 할 거 아니야!”
급발진하는 분대장을 다엘이 타일렀다.
“설마, 침투 작전에 1명만 오겠습니까?”
“그렇···.”
“적입니다!”
중이가 둘의 대화를 자르며 전방에 쭈그려 앉아 땅을 파는 두더지 놈을 손짓했다. 이에 네뮬러스도 다엘 일행을 파악하더니, 땅속으로 잽싸게 가라앉았다.
“치사하게 동료를 끌고 오냐!”
“어딜 도망치냐! 이 버러지 새끼야!”
“분대장님 전투준비 하시지요.”
네뮬러스는 다엘에게.
디아크는 적에게.
다엘은 분대장에게.
서로 맞물려서 한마디 나누자마자 두더지 놈이 자취를 감췄다. 디아크가 적이 사라진 빈 땅에 뛰어가 두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쾅. 쾅.
“겁쟁이 놈! 돌아와라!”
다엘이 그의 어깨를 붙잡곤 말렸다.
“놈들은 곧 올 겁니다. 이 근처에 매복하고 있는 게 어떻습니까?”
“안 오면? 책임질 거냐?”
“여기에 주먹질한다 해서 놈들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흥분으로 눈이 뒤집혔던 디아크가 어느덧 내정을 되찾았다. 그는 아직 통솔이 미약한 다엘을 위해서 손수 나섰다.
“크흠.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군. 이번 전투에서 오더 내리는 거 보여줄 테니까 보고 배워라.”
“알겠습니다.”
“줄리나!”
“...”
분대장의 부름에 그녀가 KS와 다른 모양의 총기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KS 포열이 상당이 두꺼워서 묵직했다면 그건 상당히 가느다라며 얄팍했다.
“넌 평소 하던 대로 후방지원이다.”
끄덕.
줄리나는 말없이 고갯짓하며 원거리 지원하기 적당한 장소로 이동했다.
분대장이 나머지 인원에게도 명령을 하달했다.
“존, 픽스, 중이.”
“““악!”””
“너흰 숨어있다가 치고 빠지는 식으로 급습한다. 각자 엄폐물로 해산!”
“““악!”””
추가로 주위 분대원 3명이 사라졌고, 디아크와 로라, 스왈로, 다엘이 자리에 남았다.
“나머지는 여기에서 적의 시선을 끈다.”
“““악!”””
각자의 성향에 맞게 포지션이 정해졌고 이제 놈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그로 : 디아크, 로라, 스왈로, 다엘.
어태커 : 존, 픽스, 중이.
원거리 지원 : 줄리나.
* * *
세부 작전을 짜고 각자 위치에서 적을 기다리는데 침묵은 길게 가지 못했다.
곧 땅 한편에서 두더지 놈 얼굴이 솟아오르며 다엘 일행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는 근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 4명을 발견했다.
“여기 있었구나! 나도 동료 데려왔다!”
놈의 외침과 동시에 대지가 위아래로 심하게 너울거리며 진동했다.
“피해라!”
탱커들이 이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땅거죽이 폭사하며 막대한 양의 흙기둥이 솟구쳤다. 범위의 규모가 몇백 평은 훌쩍 넘었다.
“헉!”
곁눈질하니 폭파한 구덩이 아래 빼곡히 들어선 적 군단이 보였다. 땅굴을 파고 침투한 적은 신속히 지하에서 튀어 오르며 주위 4명의 인간을 덮쳤다.
“이놈들 속도가?!”
접근하는 적들의 속도가 화이트급을 아득히 상회했다.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디아크가 모두에게 경고했다.
“조심해라 전원 그레이···.”
그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분대장만큼 커다란 네뮬러스가 구덩이에서 뛰쳐나오며 바로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펑!
순간 분대장은 팔을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았지만, 적 주먹에 실린 파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쏘아져 지면에 형편없이 몸을 꼬라박았다.
쾅!
픽스는 분대장이 당하는 사이에 적이 마구 튀어나오는 구덩이를 향해서 솔방울을 투척했다.
휘이잉.
그건 긴박한 전장과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볼품없게 날아갔다.
툭 드르르르.
쏘아진 여러 개의 솔방울은 구덩이 안 경사면을 따라 대구루루 구르더니···.
쾅!
일제히 구덩이 속에서 터졌다. 결과가 경천동지할만한 수준이었으니, 폭발반경 안에 모여있던 보이드 못을 순식간에 말. 살. 했다.
잠깐 구덩이에서 쏟아지던 적 군세가 잠시 주춤했지만, 전황의 판도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꽤 많은 적 군단이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는지, 구덩이는 원래 상태로 회복해 보이드 못을 내뱉었다.
이에 어그로를 담당하는 이들이 바빠지는 건 당연지사. 다엘은 이리저리 피하며 적의 흡수 공격에 똑같은 수로 대응하기 여념 없었다.
‘이놈들은 상대하기가 벅차다!’
속도가 매우 느린 화이트급에겐 압도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었지만, 못해도 5배는 빠른 그레이급엔 무리였다. 거기다 두더지 놈도 그사이에 섞여서 틈틈이 자신을 괴롭혔다.
“죽어라! 여기가 네 무덤이다!”
‘저놈만 없었어도!’
구덩이에서 튀어나온 네뮬러스는 총 3명.
한명은 디아크에게 붙고.
로라에게 한명.
다엘에게 두더지.
거기다 관객으로 아주 많은 그레이급이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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