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zone(2)
다엘의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향연에 줄리나는 고갯짓으로만 의사 표현하긴 힘에 부쳤는지, 어느 순간부턴 막내를 자신의 옆자리로 불렀다. 이후론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바닥에 나뭇가지를 끄적였다.
다엘은 모닥불 앞에 앉아서 한참 떠들다 말고 전투복 하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배고서 더는 안 되겠다.’
곧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간식.
다엘은 한 손으로 순식간에 에볼 포장지를 벗겼다. 알맹이를 입 안에 넣으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손이 내밀어지며 그 행동을 저지했다.
‘뭐지?’
다엘이 의문에 찬 눈빛으로 줄리나를 바라봤다.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감고 에볼을 응시하며 손을 흔들었다.
‘이걸 달라고?’
의도를 파악한 다엘은 쿨하게 자기가 먹으려던 간식을 그녀 손바닥 위에 올렸다.
줄리나는 막내에게 삥뜯은 에볼을 손에 들린 나뭇가지에 꿰며 밀어 넣었다. 그러곤 가지 반대편을 붙잡더니, 앞에 있는 모닥불에 에볼을 집어넣곤 뒤적였다.
선임이 뭐하나 넋 놓고 감상 중인데 갑자기 의문의 소리가 들렸다.
“냐아~”
‘응?’
소리의 진원지를 찾던 다엘의 시선이 줄리나 머리 위 생명체에 고정됐다.
‘되게 귀엽게 생겼네.’
그것의 눈동자는 땡그랬으며 코는 역삼각형 모양이었다. 아까 얼핏 봤을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순백의 새하얀 털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미생물체가 다엘을 빼꼼히 바라봤다.
“뭐?”
그것이 제 머리에 깔린 짜리몽땅한 앞다리를 끄집어내더니, 다엘이 들고 있는 간식 상자를 가리켰다.
“너도 달라고?”
“냐아.”
다엘은 곧장 상자에서 에볼을 꺼내 들었다.
사부작사부작.
숙련된 손놀림으로 포장을 벗겨서 내용물을 냐아에게 내밀었다.
멈칫.
‘그냥 주면 알아서 먹나?’
간식을 내밀던 다엘의 손길이 냐아 코앞에서 멈췄다.
“줄리나 일병님. 냐아에게 에볼 주면, 얘 들고 먹을 수 있습니까?”
휙.
줄리나에게 답을 듣기 전에 냐아가 상체를 내밀어서 들고 있던 간식을 채갔다.
‘뭐야?!’
냐아의 앞발에 닿자마자 빨려가듯 끌려가는 에볼.
‘물건을 잡지도 않고 그냥 가져간다고?’
얼떨떨한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때마침 줄리나가 굽고 있던 에볼을 다엘에게 내밀었다.
“저 주시는 겁니까?”
끄덕.
“감사합니다.”
사실 멍하니 줄리나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다엘은 속으로 생각했다.
-‘불맛이 들어간 에볼은 어떤 맛일까?’
이 의문을 천사 같은 선임이 바로 풀어줬다. 다엘은 나뭇가지에 꿰어진 뜨거운 에볼을 손으로 잡아 끄집어냈다.
“아 뜨뜨!”
손에 통증이 일었지만, 고작 그딴 걸로 다엘의 행동을 멈출 순 없었다. 이미 한참 전에 허기를 느꼈고, 줄줄이 이어진 방해 때문에 아직 입에 아무것도 넣지 못했다.
‘아무도 날 막을 순 없어! 난 귀머거리다!’
굳은 결심이 무색하게 그 누구도 다엘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는 나뭇가지에 꿰인 걸 빼내느라 손안에 바스러진 에볼을 입으로 가져갔다.
냠냠냠.
‘맛있다!’
씹을수록 혀 전체를 푸근하게 감싸며 입안을 가득 채우는 짙은 고소함.
에볼 특유의 퍽퍽함이 불에 녹았는지 잘 안 느껴졌다. 막 엄청 맛있거나 하진 않았는데, 계속 맛보고 싶은 독특함이 가미됐다.
다엘은 또 맛보기 위해 상자에서 에볼을 꺼내 나뭇가지에 꿰려 했다. 하지만, 그전에 줄리나가 팔을 내밀어 다엘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아 맞다! 이거 줄리나 일병님 거지?’
다엘이 그녀에게 들고 있던 꼬챙이를 건네고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기상에 힘 들어갔던 부위가 비명을 질러댔다.
“끄응차.”
낮에 다쳤던 부상. 호흡을 통해 추슬렀으면 빨리 회복되었을 텐데, 그러질 못해서 빨간약으로 응급처치만 한 상태였다.
다엘은 양 무릎에 손을 지탱해서 겨우 일어났다.
‘낮에 두들겨 맞았을 때, 최소 3~4일은 골골댈 줄 알았는데.’
그동안 다치고 회복하고를 반복하다 보니까, 사람의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튼튼해졌다. 하지만, 신체가 단단해진 것과는 별개로 느껴지는 통증은 더욱 커졌다. 마치 육신의 성장에 맞춰 감각도 민감해진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아까 낮에 매질을 당할 때 ‘싱크’로 심상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가격당할 때마다 머리를 하얗게 만드는 고통 때문에 안 들어가고 배길 수 없었다.
그렇게 심상으로 피했다가
1. 이어지는 육신의 충격에 현실로 복귀.
2. 현실에서 느껴지는 미친 통증에 다시 ‘싱크’로 심상에 대피.
두들겨 맞는 동안 1, 2번의 무한 반복. 타인으로 인해서 강제로 현실에 복귀했기에, 정신력 소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그나마 ‘싱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뭐 각설하고 다엘은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주위에 쓸만한 나뭇가지가 있을까? 둘러봤다.
‘오! 저기 있다.’
생각보다 금세 찾았다. 다엘은 아픈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가서 작대기를 짚고 되돌아왔다. 그러곤 갑자기 뭔 생각이 들었는지, 줄리나 옆에 앉기 전에 그녀 머리 위의 냐아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냥!”
꽈직.
냐아가 전광석화처럼 다엘의 손을 피하더니, 제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손가락을 가차 없이 깨물었다.
화들짝.
“끄아악!”
눈앞을 새하얗게 만드는 통증. 다엘은 물린 손가락을 깜짝 놀라서 회수하곤 상태를 확인했다.
“이씨. 너!”
물린 손가락은 냐아의 이빨에 그대로 꿰뚫려서 뭉클뭉클 피를 쏟아냈다. 냐아가 너무 빨랐기에 반응할 새가 없었다.
눈물이 글썽한 다엘에게 줄리나가 앉으라는 듯 그의 전투복 소매를 잡아당겼다.
털썩.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그러십니까?”
다엘이 의아함을 가지고 줄리나를 바라보는데, 어느새 그녀의 손엔 빨간약 한 병과 붕대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그것들을 무릎 위에 내려놓더니,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 위 냐아를 가리켰다.
도리도리.
딱 봐도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알겠다.
‘건들지 말라고?’
그녀는 다엘의 물린 손을 제 무릎 위에 올리더니 빨간약을 발라주고 붕대로 감싸줬다.
“치료 감사합니다.”
끄덕.
이후로 시작되는 침묵.
줄리나는 치료가 끝난 뒤 품에서 에볼을 꺼내 나뭇가지에 끼웠다. 그녀도 배고픈지 배를 채울 요량으로 보였다. 이참에 다엘도 들고 온 나뭇가지에 에볼을 꿰고 모닥불에 굽기 시작했다.
다엘을 불 가까이에서 구워지는 자신의 에볼을 보며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츄릅츄릅.
‘빨리 구워져라.~’
늦은 밤 침묵과 함께 둘의 식사가 시작됐다.
* * *
다엘은 모닥불 앞에서 에볼을 구워 먹으며 생각했다.
-포인트를 다 털린 마당에 내가 사냥꾼을 해볼까?
분명 낮에 습격자는 자신의 속도에 대응치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몸을 굳게 하는 그 의문의 힘만 아니었다면, 최후의 승자는 자신이리라.
-포스 유저가 유일한 변수인데.
이미 식사 전에 줄리나에게 포스 유저를 대략 파악했지만, 예상키 어려운 능력을 쓰는 그들 덕분에 사냥이 약간 망설여졌다.
모닥불을 보며 멍때리던 다엘이 갑자기 다른 부분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까 습격자는 몇 분대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미리 얻은 정보와 추리력을 더해 습격자의 신상을 파해쳤다.
‘마지막에 봤던 능력자는 여자였어. 부분대장 급 아래로 보였으니, 대충 상병 이하겠군.’
부분대장은 보통 상병 이상은 되어야 직책이 주어졌다. 분명 낮에 습격자가 적 대장을 부를 때 부분대장님이라 불렀다.
대충 고민 끝에 추려낸 유력한 용의자는 2분대!
몸을 마비시키는 여성 포스 유저가 1명 있어서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막상 습격자를 알아냈지만, 쓸모없는 정보였다.
‘이런 걸 파악해서 뭐 하냐.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뭐 할지나 고민하자.’
다엘은 포인트 사냥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전에 월슬릿 조작법부터 알아두려 했다.
‘일단 포인트를 어떻게 강탈하는지부터 물어보자.’
“줄리나 일병님?”
화들짝.
갑작스러운 다엘의 부름에 어깨를 움찔 떠는 줄리나. 방금까지 냐아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다엘에게 호기심을 심어줬다.
‘방금 졸았던 거 같은데?’
그녀가 막내를 바라봤다. 다엘은 입이 너무 근질거렸다. 그래서 원래 물어보려던 것을 망각한 채 지금 치솟는 궁금증부터 물어봤다.
“평상시에 주무시는 상태인데, 거기서 또 잠들 수 있습니까?”
도리도리.
‘뭐지?’
“방금 주무신 게 아닙니까?”
도리도리.
‘아오. 답답해 죽겠네.’
다엘이 그녀에게 말없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밀었다.
“바닥에 써주시면 안 됩니까?”
끄덕.
줄리나가 바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사삭.
모닥불의 빛을 통해서 땅바닥에 쓰인 글을 다엘이 읽었다.
“나 존 거 맞아.”
“평소 눈감고 다니시던데 그게 주무시는 상태 아닙니까?”
“응. 아니야 누가 그래?”
“주위에서 다 그럽니다.”
“남들이 오해했나 보네.”
“그럼, 눈감고 생활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게 게 덜 피곤해서.”
미친놈처럼 자문자답하며 혼자 떠드는 다엘.
상황이 어떻든 의문은 풀렸다. 의문을 풀리니, 다른 의문이 또 생겼지만, 궁금증을 해결하려다 밤새우겠다. 다엘은 처음에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줄리나에게 물었다.
“포인트 탈취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다엘의 질문에 줄리나가 다시 바닥에 끄적거렸다.
사사삭.
“가장 가까이 있는 월슬릿끼리 포인트가 이동되는데.”
사사삭.
“강탈할 상대와 최대한 가까이 가서 상대의 리셋 버튼을 누르면 끝.”
“시범 한번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다엘이 자신의 월슬릿을 줄리나에게 내밀었다. 주위엔 그녀밖에 없기에 다엘의 리셋 버튼만 눌러도 손쉽게 시범을 보여주리라.
그녀가 상대의 리셋 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다엘 눈앞에 자신의 월슬릿을 내밀었다.
다엘 1포인트.
줄리나 1포인트.
‘줄리나 일병님도 털렸나 보다.’
띡.
그녀의 포인트는 다엘 월슬릿의 리셋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2로 변했다.
다엘 0포인트.
줄리나 2포인트.
“이런 원리구나!”
참으로 간단한 시스템.
“포인트는 리셋을 누르면 전부 이동하고 나누진 못합니까?”
끄덕.
줄리나가 자신의 월슬릿 리셋 버튼을 눌러보라는 듯 다엘 눈앞에 내밀었다. 다엘은 확실히 파악해 두기 위해서 거절치 않고 그녀의 리셋 버튼을 눌렀다.
띡.
다엘 2포인트.
줄리나 0포인트.
다엘은 모든 의문 사항을 확인하고 다시 자신의 리셋 버튼을 눌렀다.
띡.
“가르침 감사합니다. 포인트는 얼마 안 되지만, 수업료로 드리겠습니다.”
끄덕.
‘후, 파악이 끝났다!’
.
.
.
더 이상 막내의 질문이 없자, 줄리나는 쏟아지는 수마를 못 이기고 꾸벅이며 졸기 시작했다. 반면 다엘은 흔들리는 그녀의 고개를 자기 어깨로 받치며, 포인트 사냥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웠다.
- 작가의말
-
다엘은 낮에 습격자에게 두들겨 맞을 때 ‘싱크’를 운용해서 치솟는 살의를 통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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