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착수(4) - 인재는 언제나 환영이지
조사착수(4) - 인재는 언제나 환영이지
파웰이 앞장서서 걸었다.
"이곳 골목이 그래도 솔라리스에서 제법 유명세를 치르는 곳입니다. 광부의 땀이 일궈낸 값진 무기들의 공연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광산이 발달한 문두스에서 대장간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겠지. 아칸에서 주먹 망치를 운영했던 윌슨도 이곳 출신이라고 했다.
"황금 모루 이 상점이 이 골목에서 가장 빛나는···."
파웰은 조금 어색해하며 말을 멈췄다. 그가 자신 있게 소개한 황금 모루라는 간판을 단 가게를 가차 없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모그룩은 황금 모루 앞 대로가 아닌 건물 틈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겨우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의 좁은 통로로 일반인이 통행하는 곳은 아니었다.
"저기 무슨 일로?"
파웰은 난처한 기색을 지으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좌우 벽이 엉망이었기 때문에다. 좁은 골목인데다 벽에 스치기라도 하면 오염된 잿가루가 그대로 옷에 묻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리. 소리가 들리잖아."
"소리요?"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 소리. 호객하는 소리.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무슨 소리라니?
"쇠 두드리는 소리 말이야. 안 들려?"
파웰이 가만히 집중하니 골목길 저 안쪽에서 아주 미약하게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벌써 모그룩은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에잉!"
파웰도 옷 버릴 각오를 하고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았고 황금 모루에도 자주 들렀는데 이 골목이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건물 사이 공간이라 사람이 오가는 통로로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골목길은 한참 길었고 그 안쪽의 끝에는 작은 공방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딱 봐도 볼품없는, 노예들이나 머물 것 같은 장소였다.
공기 중에 잿가루와 연기가 날렸고 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주변에는 제대로 정리된 것이 하나도 없고 여기저기 흩어진 공구나 가재도구들이 엉망으로 뒹굴고 있었다.
문두스 최고의 무기 상점이라 일컬어지는 황금 모루 뒤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파월도 처음 보는 장면이다.
-탕! 탕! 탕!
그제야 확실히 망치 소리가 들린다. 달군 쇠를 모루에 올리고 내리치는 망치 소리는 카랑카랑함보다 어딘가 눌린 듯한 소리가 나야 정상이다.
이 망치 소리는 매우 경쾌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울리고 있었다.
"꽤 좋은 소리잖아?"
"누구요?"
망치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한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머리는 산발이고 앞머리가 치렁치렁해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벗은 상체는 정말 조각 같이 잘 빚어진 것 같았다. 있을 곳만 있는 근육이 정교하게 자리 잡은 완벽한 신체였다.
땀이 반지르르 흐르는 윤기 나는 피부의 상체는 조각 그 자체였다.
-짝, 짝, 짝
모그룩은 손뼉을 쳤다.
"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놀랄 노자로세."
"잉? 이런 공간이 있었나? 뭐냐? 대장간인가?
파웰은 주변을 훑어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실로 오묘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누구냐고 물었소."
중저음의 굵직한 목소리. 파웰은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순 없었지만, 모그룩은 상체의 근육을 보고 이미 그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목소리 깔고 어른한테 할 법한 소리냐?"
"여긴 사람이 올곧아 아닙니다."
"그런 너는 사람이 아니냐?"
"그러니까. 제 말은 손님같이 격식 있는 분들이 오실 곳이 못 된다는 소립니다."
"내가 못 올 곳을 왔다는 거냐?"
"후, 전 바쁜 사람입니다. 볼일이 없으면 뒤돌아 나가시면 됩니다."
"봐라.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을 문전 박대해서는 안 된다. 혹시 아냐? 네 운을 바꿀 수 있을지."
사내가 잠깐 움찔한다.
"문전박대가 무슨 의미입니까?"
"아. 중원의 속어를 네가 알수가 없지. 그러니까 찾아온 사람 매몰차게 내치지 말라는 이야기다."
"내친다는 무슨 뜻입니까?"
"···. 너 교육 과정은 제대로 밟았냐?"
"제 몰골을 보시고도 그런 말씀 하십니까? 철이 들면서 가장 먼저 잡은 것이 이 망치입니다. 지금 당신이 여기 오기 전까지 계속 이놈만 휘둘렀습니다."
"얼굴 좀 보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
모그룩이 금화를 던지자 사내가 낚아챘다.
그는 반짝이는 금화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는 금화입니다. 주인은 내가 당신에게 이걸 받았다는 걸 절대 믿지 않을 것이며 금화는 금화대로 빼앗기고 거짓말했다고 주먹질 당할 겁니다. 그렇다고 이 금화를 감출···."
"얼굴 보고 싶다고. 머리카락 다 잘라 버리기 전에 보여봐라."
-휙
녀석은 금화를 다시 던져 주며 돌아섰다.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말을 뭉개버린 놈은 네 놈이 처음이다."
-팟
파웰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앞에 있던 모그룩의 모습이 땅속으로 꺼지듯이 쑥 내려가더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얼굴 한 번 보여 주는 게 그리 힘든 일이더냐?"
-팟, 팟
갑자기 사내의 등 뒤에서 솟아난 모그룩은 부드럽게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에는 언제 뽑았는지 외날의 곡도가 들려 있었다.
-탁
파웰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음 본다. 각성자의 무력을.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끔찍할 정도의 순간에 사내 등 뒤로 다가가서는 머리카락을 완벽하게 잘라 버렸다. 그것은 거울을 보면서 집중해 면도해도 한참을 걸릴 일이다.
사내도 부들부들 떨었다.
"으아아아."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손에 든 망치를 마구 휘저어 댔다.
"야, 지저분한 머리 좀 깎아 줬기로 서니 그러다 사람 죽이겠구나."
그러나 모그룩은 곧 입을 닫았다. 드러난 그의 얼굴이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다.
-탕
모그룩은 가볍게 그의 망치를 쳐 떨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한 수에 사내는 엄청난 반발력을 느꼈고 어찌할 겨를도 없이 망치가 저절로 날아 가버렸다.
"저런. 미친!"
파웰도 고수 소리 듣는 검사다. 일루엠 길드 소속의 길드원이라면 기본적인 검술은 능숙하게 다룬다. 하물며 파웰은 이곳 사무소 소장이다. 그의 무력은 문두스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다.
그런 그도 모그룩이 검을 어떻게 휘두른 것인지 눈으로 따라잡질 못했다.
"인마. 얼굴 좀 그렇다고 난리를 치냐? 원래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왜 그런 거냐?"
사내는 머리를 더듬었다. 그러나 한 올도 남지 않은 민머리를 확인하는 순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야, 머리야 또 자라면 되는 거지. 얼굴이 그러면 가면이라도 쓰면 되잖아. 기막힌 솜씨를 가졌으니 가면 하나 만드는 것은 금방이지. 머리카락으로 가릴 필요도 없고 좋지 않아?"
사내는 주변에 떨어진 불쏘시개를 집어 들었다.
"멈춰라 어리석은 놈. 네놈이 상대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니다."
파웰이 고함쳤지만 사내는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모그룩은 검을 허리에 찬 검집에 집어넣고 오른손 검지를 새웠다.
-탁, 탁, 탁
사내가 휘두르는 쇠꼬챙이를 오른손 검지로 받아 내는데 한 치의 틈도 없는 완벽하고 깨끗한 동작이라 파웰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파웰은 놀란 것은 사내가 거의 풀스윙으로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는데 정확히 그 궤적을 읽고 단지 검지 하나만으로 탁탁 막아내는데 그게 신기한 것은 둘째치고 모그룩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다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저, 저것이 각성자의 힘인가? 미쳤군."
사내는 죽을힘을 다해 쇠꼬챙이를 휘둘렀다.
"야. 언제까지 할래? 너 호흡이 무너졌다. 괜한 힘 낭비야."
사내는 뒤로 물러나며 헉헉거렸다. 진짜 전력을 다했는데 눈앞에 이 사람은 단지 손가락 하나로 여유롭게 막아내고 있었다.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가 널 살려둔 것에 감사해야 할 거다. 만약 공격했다면 넌 즉사야."
파웰의 말이 사실이다.
-쨍
사내는 쇠꼬챙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느낀 것이다. 눈앞에 이 사람 자신이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야, 그대로 포기는 그렇지. 악착같이···."
"원하는 것이 뭡니까?"
"원하는 거 달라면 줄래?"
"들어나 보죠."
"이름."
"라울 몬테네."
"조금 실망이다. 감정 조절이 미흡해. 교육 수준도 미달이고."
"···."
"얼굴은 왜 그렇게 된 거냐?"
"네가 어떻게 몬테네의 성을 쓰는 거냐?"
"몬테네 가의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아는 사람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비밀도 아니고···."
"몬테네 가? 어떤 가문이길래?"
"쇠를 다루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하지만 큰 잘못을 저질러 일족이 멸족을···."
"뭐, 과거 지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넌 검에 소질이 있어 망치 소리 듣고 감동하였을 정도니까. 조금 전 쇠꼬챙이 휘두르던 느낌도 사실 꽤 괜찮았어. 다듬으면 그 애랑 좋은 맞수가 되겠군. 얼굴은 왜 그렇게 된 거냐?"
"저분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저희 가문은 큰 잘못을 저질렀고 그때 전 여섯 살의 나이었습니다. 우리 혈족의 쇠 다루는 능력을 탐낸 보에몽이 절 빼돌린 겁니다. 대신 그 누구도 절 알아볼 수 없도록 달아오른 쇠로 얼굴을 뭉개 버렸습니다."
모그룩이 파웰에게 물었다.
"보에몽이 누구야?"
"황금 모루 주인장입니다."
"흥, 네 기술을 탐내 했다고? 그놈이 겨우 여섯 살짜리의 능력을 알아봤다고?"
"가만, 라울, 그래 라울 이제 생각났다. 천재 라울 설마 그게 너냐?"
"그렇습니다."
"과거 몬테네 가문에서 천재 한 명이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네 살짜리가 쇠의 질을 알아보고 그것에 맞게 연성까지 해내던···. 그 아이가 살아 있을 줄이야."
"그런데 가문은 왜 멸족했나?"
파웰이 말을 받았다.
"한 자루 검 때문입니다. 너무나 훌륭한 검이어서 아칸의 영웅 윌리엄 대공께 공납해야 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죠. 그 검에 겨룰만한 검이 없을 정도로 정말 잘 벼린 엄청난 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명검에는 탐욕 또한 뒤따르지요. 검을 차지하기 위해, 저도 그때는 젊었을 때라 상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하여튼 귀족들 간에 모종의 거래가 오갔고 결과 몬테네 가가 국가 반역죄를 뒤집어쓰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검은?"
"그 이후 검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애꿎은 몬테네 가가 대신 죄를 뒤집어썼다고 봐야겠죠." "음, 그때 황금 모루 주인이 널 빼돌린 거구나."
모그룩은 라울을 바라봤다.
"언제까지 여기서 망치질만 할 셈이냐? 복수할 생각은 없는 거냐? 네 일족을 몰살시킨 놈이 이 하늘 아래 버젓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검의 이름은 알고 있냐?"
"파사의 검. 잊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라울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자! 여러분! 전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여기 없었던 것이지요. 입과 눈과 귀를 닫습니다. 저는 여기 없었던 겁니다."
파웰은 황급히 골목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좁은 담벼락의 잿가루가 그의 몸에 묻어 엉망이 되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소리는 정말 좋았어. 얼굴이 망가져서 관상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 아쉽긴 한데. 어디 보자."
모그룩은 라울의 몸을 더듬으며 근골의 형태를 느꼈다.
"좋아! 음, 멋져! 완벽해! 타고난 재질에다 극악한 환경에 따른 육체적 노동이 만들어 낸 멋진 몸이다. 검을 익히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타고났어. 내게 말 지독하게 안 듣는 천살궁과 천무지체를 타고난 천재 둘이 있는데 너는 그 둘을 제압할 정도의 신체를 가지고 있어 물론 노력이 따라야 하겠지만···."
"전 그딴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제 가슴에 불을 질렀으니 제가 할 일은 오직 하나 복수의 검을 벼리는 것뿐입니다. 그 검으로···. 적의 심장에···. 아윽!"
딱밤 한 대에 라울은 머리통이 깨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얌마. 복수는 네 몫이지 그걸 왜 남에게 미뤄."
"전 검을 익힌 적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망치질 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배우면 충분히 가능해. 너 내 제자가 되겠냐?"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파사의 검이라. 그 검을 가진 놈이 원흉이겠구먼."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검이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너 지금까지 고된 육체노동을 했는데 병 앓은 적이 없지?"
"네, 어떻게 그걸?"
"고되고 힘들고 해도 잠시 자고 일어나면 가뿐하지?"
"그렇습니다. 일곱 살 때부터 이렇게 망치질만 했는데 단 한 번도 앓은 적이 없고 힘에 겨워 쓰러진 적도 없습니다."
"야, 너 선천적으로 임독양맥이 이어진 채로 태어났어. 중원에서는 천년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하는 인재라고. 중원에서는 천양신맥이라고 불러 임독양맥은 물론 세맥과 이어지는 경락, 혈맥이 아예 타동 된 채로 태어난다고 네 망치 소리를 듣고 알았어. 평범한 인간이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내. 천양신맥이라서 가능한 거지. 여자는 절대 타고 날 수 없어. 양기가 엄청나거든. 너 나이 몇이야?"
"22살입니다."
"천양신맥치고 오래 살았네. 평범한 사람이 천양신맥을 타고 나면 아무리 길어도 서른은 넘기기 힘들지. 몸속의 양기가 세맥과 혈맥을 천천히 녹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들거든. 네가 지금까지 발작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이독치독의 원리로 몸속 화기를 다스렸기 때문이야. 대장장이 일이 널 살린 거라고."
"···."
모그룩이 아무리 설명해도 라울은 이해할 수 없다. 모그룩은 자신이 찾아낸 인재에 반해 혼자 독백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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