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zone(4)
어제의 힘들다는 불평은 벌 수 있을 때 양껏 벌어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래서 내일 수행할 작전을 밤늦게까지 세웠고, 다엘은 쪽잠을 자다가 혹시 몰라서 동이 트기 전에 줄리나와 모닥불에서 헤어졌다.
그렇게 따로 떨어져서 줄리나를 따르다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았다. 다엘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줄리나를 바라보다가 그녀 근처에 요란히 흔들리는 풀숲을 보곤 대경했다.
‘뭐야!’
순식간에 줄리나에게 들이닥치는 괴한들.
“도망 못 가게 막아라!”
다엘은 그들의 고함에 일단 사건 현장에 뛰어가려고 했다. 어차피 8,000포인트짜리 월슬릿은 안전한 곳에 있었다.
‘몸으로 때우지 뭐. 설마 같은 부대원인데 죽이기야 하겠어?’
점점 단단해지는 육체가 다엘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굳센 결심과 함께 줄리나를 구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떼려는데.
착.
갑자기 허리에서 의문의 손길이 느껴졌다.
‘누군가 접근하는 대기의 흐름이 없었는데?!’
다엘은 곧장 마나 폭풍을 등으로 분출했다.
쏴아악.
허리에 손대고 있는 이에게서 약간의 물러섬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처럼 아무 효과가 없기는 처음이었다. 미지의 적 등장에 온몸에 식은땀이 새어 나왔다.
‘사람이 아닌가?’
고개를 돌려 누군지 상대를 확인하려는데, ‘이동’이 시작됐다.
“당신 누구야!”
누군지 정체를 물어봤지만, 알려줄 생각이 없는지 묵묵부답.
다엘은 다치지 않으려고 뒤에서 미는 속도에 맞춰 발을 끊임없이 놀려야 했다. 발놀림이 점점 버거워지더니, 순식간에 마나 호흡을 응용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중간에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지만, 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속도가 너무 빨리 증가한다.’
뒤에서 밀면 분명히 전방 시야가 가릴 텐데, 상대는 나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앞도 안 보고 엄청난 속도로 밀어댔다.
결국 다엘은 의문의 인물에게 사정했다.
“동, 동료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
역시나 다엘의 말은 개 무시. 모든 신경을 달리기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죄책감에 그의 고개가 위기에 처해있는 선임을 향했다.
‘줄리나 일병님을 구해야 하는데.’
현장이 시야에서 빠르게 크길 줄여나갔다. 어느새 레드존 지역을 벗어나며 다엘은 끊임없는 질주를 이었다.
* * *
모닥불 근처를 정리하던 줄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털었다. 움직이려던 순간. 사위에서 수십 명의 인원이 그녀를 에워쌌다.
“도망 못 가게 막아라!”
“이유 없이 얻어맞은 거 생각하면!”
“너 도둑놈과 한패지?”
줄리나가 그 질문에 고갤 흔들며 부정했다.
도리도리.
습격자 중 가장 선두에 나와 있던 분대장이 그녀의 행동이 꼴 보기 싫었던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고갯짓 그만해라 모가지 꺾어버리기 전에. 빨리 같이 있던 새끼나 어디 갔나 불어.”
“...”
“이년 두들겨 패다 보면 도둑놈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그녀 주윌 둘러싼 이는 스무 명 이상. 쭉 둘러보니, 어제 본 익숙한 얼굴이 반수가 넘었다.
“말로 해선 안 되겠네. 아주 험한 꼴 보고 싶다고 발악하네. 녹티스 포박시켜봐.”
“알겠습니다. 분대장님.”
분대장의 지시에 곧 초록색의 짧은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팔은 줄리나를 향했고 손 전체가 초록빛에 감싸여 있었다.
‘포스 - 구속’
그가 힘을 쓰자 목표물을 향해서 무언가가 쏜살같이 날아갔다. 줄리나는 피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자신을 둘러싼 인원수를 생각하니 의미 없는 발악 같았다.
그녀가 회피를 포기하고 별다른 저항 없이 몸을 방치했다.
꽈악.
두꺼운 나무 넝쿨이 줄리나의 손목과 발목을 비롯한 여러 신체 부위를 옥죄었다. 줄곧 적대적이던 분대장이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냐?”
“...”
분대장이 바로 줄리나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졌다.
짝.
귀싸대기 한방에 줄리나의 고개가 좌로 휙 돌아가며 맞은 뺨 부위의 입술이 터졌다. 가차 없는 손찌검에도 그녀는 작음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폭력의 강도가 약해 보였다.
“너, 지금 장난처럼 보이지?”
“그냥 몽둥이찜질부터 하지말입니다.”
그 소리에 분대장이 옆 휘하 분대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하가 상관의 손바닥 위에 묵직한 몽둥이를 살포시 올려놓았다.
분대장이 손에 들린 몽둥이 끝을 반대편 손바닥에 반복해서 치며, 줄리나를 위협했다.
탁탁탁.
“대가리를 깨줄까? 아니면 병신을 만들어줄까?”
“...”
장님에 벙어리라는 소문이 있는 줄리나. 분대장은 처음엔 그녀를 뒤지게 패고 시작하려 했지만, 병신을 더 병신으로 만드는 일에 살짝 망설임이 생겼다.
“도대체 이 모질이 년은 히온플에 어떻게 들어온 거야.”
“...”
“일단, 밟아놓고 보면 뭐든 의사 표현하지 않겠습니까?”
“아씨. 좀 닥쳐봐. 정보를 어떻게 뽑아낼까?”
다른 한 분대원이 고심하는 그의 귀에 제 생각을 전했다.
“그럼, 바닥에 글자를···.”
퍽.
말이 끝나기 전에 분대장이 그의 머리통을 내려치면서 검지로 이마를 반복해서 밀쳤다.
“새끼야 생각 좀 해라. 장님이 글자를 바닥에 쓰냐?”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도대체 그 생각은 언제쯤 길어지는 거냐?”
말없이 줄리나를 식물로 구속하던 녹티스가 갑자기 그 사에 끼어들었다.
“분대장님 잠깐이지 말입니다!”
“왜?”
“이년 벙어리가 아닙니다?”
“뭐?!”
분대장의 고개가 획 돌아가며 줄리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얼마 안 있어서 녹티스가 그에게 이유를 밝혔다.
“아이들이 목소릴 들었답니다.”
“다른 정보는?”
분대장의 질문에 녹티스가 엄지손과 검지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 그에게 보였다.
“정보 이용엔 추가 요금이 붙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돌았냐? 이미 성공보수로 20퍼센트를 요구하고 더 달라고?”
“제 역할은 분명 ‘추적’이었는데, ‘정보’ 제공은 다른 이야기지 말입니다.”
녹티스.
부대 내 남성 포스 유저로 그가 다루는 힘은 식물이다. 대인전은 약하지만, 식물이 있는 환경에서 그의 유틸리티 능력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는 다엘에게 포인트를 도둑맞진 않았지만, 털린 이들의 부탁으로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분대장이 녹티스의 도둑놈 심보에 비아냥거렸다.
“아~ 그러셔요? 근데 지금 뭐 하세요? 도둑 새끼 추적 안 하세요?”
“그건···.”
“병신이 비싼 돈 들여서 데려왔으면 돈값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자신을 비꼬는 분대장의 말에 녹티스는 변명하지 못했다. 분명 일을 의뢰받기 전에는 손쉽게 도둑놈을 추적할 줄 알았다. 식물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숲에선.
그냥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 알아서 원하는 답을 가져다줬다. 그런데 웬걸? 놈의 신상정보는 손쉽게 파악했지만, 위치는 특정이 안 됐다.
아무튼 이미 계약은 했기에 그는 분대장의 독설을 들어야 했다.
“무능력 그 자체이시고요.”
“죄송합니다.”
“괜찮아 죄송할 필요 없어. 계약 파기 되면 네가 손해배상 하면 돼.”
“...”
분대장의 막말에 녹티스가 한발 물러서며 쭈그리가됐다. 분대장이 엄지손으로 뒤로 물러난 녹티스를 가리키며 줄리나를 살벌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저 돈에 미친 사기꾼 새끼가 하는 말 들었지? 너 벙어리 아니란다? 아직도 말할 생각이 없니?”
이번 협박은 좀 싸했다. 줄리나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벙어리, 장님 컨셉 제대로 잡았구나? 내가 여기에 꼽추까지 추가해 줄게.”
머뭇거림을 버린 분대장이 들고 있던 몽둥이로 그녀의 배를 힘껏 가격했다.
서걱.
맹렬하게 날아가던 몽둥이가 깔끔한 절삭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나서 맥없이 추락했다. 아무리 긴장한 상태가 아니라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막아선 상황. 이에 깜짝 놀란 분대장이 뒤로 황급히 물러나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툭.
뒤늦게 잘린 몽둥이가 지면에 충돌하고 그것이 총공격의 신호탄이 되었다.
“쳐라!”
모두가 분대장의 외침에 줄리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반면 줄리나 앞에는 누군가 나타나서 듬직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가 줄리나 앞까지 이동한 경로엔 빙판길이 쭉 이어져 있었다. 곧 그 길은 지면에 사르르 녹아들며 자취를 감췄다.
줄리나 앞에서 든든한 방어막이 되던 이가 살벌하게 경고했다.
“더 이상 접근하면 모가지 따버린다.”
멈칫.
돌진하던 모두가 협박에 움직임을 멈추며 분대장을 쳐다봤다. 시선이 분대장에게 집중되자, 그가 마지못해서 앞으로 나섰다.
“로라 오랜만이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이게 포인트 사냥으론 안 보이는데 말입니다?”
“너희 막내 들어왔다며?”
“그렇습니다. 그게 왜?”
“저년과 신병이 대부분 분대의 포인트를 강탈했다고.”
대화를 듣고 있던 피해자들이 분대장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도둑 새끼 면상 좀 보자.”
“난 도둑놈 주빵 한데만 갈길게.”
“3년을 모은 포인트라고!”
그들의 개소리에 로라가 황당해했다.
“그러니까 지금 포인트 털렸다고 단체로 몰려와 줄리나를 핍박하신 겁니까?”
“크흠. 그게 아니라.”
“그럼, 뭡니까?”
“도둑놈 새끼 정보 좀 알려 달라는데, 계속 침묵하잖아.”
피씩.
상대의 같잖은 변명에 로라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본인들 부주의로 털려놓곤 애꿎은 줄리나한테 뭐 하는 겁니까? 레드존의 목적이 뭔지 다들 망각했나 봅니다?”
“아오! 이년 말하는 거 보소!”
안다. 자신들도 아주 잘.
그들은 항상 터는 처지였지, 이렇게 털린 줄 몰랐다. 솔직히 분대장들도 신병일 때가 있었다. 분명 그땐 강탈을 수없이 겪었다. 근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신입 시절엔 기껏해야 500포인트 정도면 많이 모은 거다. 그리고 대부분 모으기 전에 뺏겼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때완 경우가 달랐다. 불과 ‘어제’ 몇 년 동안 모은 몇천 포인트를 순식간에 뺏겼다. 개고생하며 모은 수고가 떠오르니,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튼 로라가 몰려온 이들에게 현실적인 방안을 일러줬다.
“레드존이 3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숲 한번 뒤지는 게, 그나마 ‘도둑놈’ 잡을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 말이 맞는데 4분대에서 놈을 감추고 보호하면, 우린 아무런 의미 없이 개고생만 한 꼴이잖아. 그럴 바엔 여기서 푸닥거리하는 게 도둑놈 마주칠 확률이 더 높아. 뒤에 장님 년을 닦달하다 보면 언젠가 나타나겠지.”
로라가 검으로 줄리나를 구속하던 식물을 잘랐다.
휙. 서걱. 휙. 서걱.
“막내놈을 죽이지만 않으시면 4분대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냉정한 로라의 말에 투덜대던 분대장이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뭐?!”
“저희 분대장님이 막내가 구르길 원하십니다.”
“나중에 반병신 됐다고 딴말하지 마라. 분명 ‘보호’ 안 한다고 했다?”
“그렇습니다. 살려만 두시고, 지지든 볶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놈을 방치하겠습니다.”
“하하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렇게 동아줄이 내려오는구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않겠습니까? 얼른 추적을 시작하셔야지.”
“그렇지! 얘들아, 철수하자!”
분대장의 지시에 몰려들었던 병력이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금 분대장과 로라의 대화를 통해서 막내가 걱정된 줄리나가 로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목숨만 살려놔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다들 눈 뒤집힌 거 같은데.”
“걱정하지 마. 막내 몸 튼튼하더라.”
로라가 이번엔 자신의 의문점을 물어봤다.
“도대체 얼마나 훔쳤기에 경우 없이 저러냐?”
“총 팔천삼백 포인트쯤 털었습니다.”
풉.
예상을 한참 웃돌며 미쳐 날뛰는 숫자. 때마침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던 터라 로라가 웃다가 줄리나 얼굴에 침을 뿜었다.
“아, 미안. 아무튼 털린 분대장들 눈깔이 뒤집힐만하네. 넌 얼마 받기로 했는데?”
로라의 질문에 줄리나가 얼굴에 튄 침을 닦으며 답했다.
“전 그냥 SK만 받기로 했습니다.”
“레드존이 끝날 동안 포인트만 지키면 소원 성취하겠네?”
“...”
줄리나가 말을 아꼈다. 그녀의 침묵에 로라는 별 개의치 않아 보였다. 생활관에서 폐급 3인방을 대할 때와는 온도 차이가 너무 났다.
아무튼 레드존 첫날 막내를 담당했던 줄리나가 다시 분대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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