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수련(1)
레드존이 끝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이번 주 훈련은 ‘마나 응용 및 마법 발현’. 그냥 정신력 수양을 중점으로 다룬다고 보면 됐다.
4분대는 오전 정비가 끝나고 교장으로 이동했다. 저 멀리 교관이 보였다. 그는 로브를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으며, 새하얗게 길게 기른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연세가 좀 있으시나 보다.’
아직 먼 거리라서 얼굴은 식별 안 돼도 특색이 확연히 보였다. 곧 분대원 모두가 그 앞에 정렬했다. 다엘은 교관의 얼굴을 살펴보곤 당황했다.
‘뭐야! 이 양반이 왜 여기에 있어?’
“반갑네! 이번에 새로 부임한 교관 ‘대마도사’ 키르네.”
“““안녕하십니까!”””
키르가 분대원을 둘러보다가 다엘을 발견하더니, 한쪽 눈을 찡그리며 몰래 윙크했다.
“다들 마법보다는 의지력 단련 위주로 훈련했다고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받았네. 이대로 이어서 할까?”
“좋습니다.”
분대장이 대표로 나서며 교관의 말에 답변하는데, 갑자기 다엘이 손을 들었다. 키르가 눈에 이채를 머금고 그를 가리켰다.
“뭔가?”
“이병! 다엘! 전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디아크가 선임의 눈치도 안 보고 망아지처럼 날뛰는 막내를 노려봤다.
“이 새끼가 미쳤나 요즘 왜 이러지? 도둑놈으로 전직하면서 개념을 상실했냐?”
“죄송합니다. 기술의 다양화를 위해서 마법을 꼭 배우고 싶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x발, 취지는 좋은데, 괘씸하네? 너 요즘 밉상이다?”
“진정하게 분대장.”
키르가 디아크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어떻게 말입니까?”
키르의 제안은 간단했다.
의지력을 단련할 사람은 그걸 훈련하고 마법 배울 사람은 수업을 듣고. 사실 키르는 간만에 수련생(다엘) 가르칠 생각에 입이 근질거렸다.
‘역시 삼에칠 훈련병이야. 아무도 안 배우려는 마법을 익히고 싶어 한다니.’
그런 키르의 핑크빛 생각에 분대장이 찬물을 끼얹었다.
“싫습니다. 막내놈은 저와 함께해야 합니다.”
‘내 해결방안이 싫다고? 버릇없는 놈이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렇게 바로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줄 몰랐으니까. 키르는 디아크의 싹수없는 태도에 심통이 났다.
“자네 무력에 자신 있나?”
“네. 저 쎕니다.”
‘젊은 놈이 벌써 미쳤나? 멀쩡해 보이는데?’
분대장의 ‘쎈척’은 키르가 정해둔 선을 단숨에 넘었다. 곧 온화하게 풍기던 그의 분위기가 무거워지며 웃던 얼굴이 무표정이 됐다. 시건방진 분대장 놈을 살짝 어루만져 줘야겠다.
“나와 싸워볼 텐가?”
‘분명 새로 온 교관도 강하겠지?’
살면서 한 번도 키르의 명성을 접해보지 못한 디아크. 젊고 무지했기에 눈앞의 교관이 어떤 인물인지 몰랐다. 그저 골빈 새끼처럼 강자와 싸울 생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좋습니다! 한수 배우겠습니다.”
“한판 뜨는 게 뭔 한수인가. 지랄하지 말고 나오게.”
나이 먹고 새파랗게 어린 젊은이와 싸우는 게 창피한 일이지만, 이미 열받은 키르에게 그딴 사소한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디아크가 양 볼에 홍조를 머금고 교관에게 달려 나갔다.
쿵쿵.
대지가 분대장이 걷는 발자취마다 지축이 울리며, 그의 신난 심경을 대변했다.
이윽고 서로 마주 보는 둘.
시작의 알림도 없이 치사하게 키르가 선공을 취했다.
“다중-유도 아이스 애로우 200연발.”
키르 전방에 얼음으로 이뤄진 화살이 빼곡히 들어차더니, 각자 저마다 궤도를 달리하며 분대장에게 쏘아졌다.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해주마.’
디아크는 바로 시작할지 몰랐던지라, 허공을 가득 메운 수많은 화살을 보고 당황했다. 곧 그대로 주저앉아 땅에 손바닥을 짚었다.
‘포스-흙 벙커.’
화살이 명중하기 직전에 흙더미가 솟아올라 디아크를 반구 형태로 감쌌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x20
분대장을 둘러싼 봉긋한 흙더미에 얼음 화살이 빼곡히 박혔다. 마법이 막힘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이어지는 키르의 마법. 곧 흙무덤 위에 물방울이 알알이 모이며 뭉쳤다.
“아이스 해머-가중 2t”
허공을 유영하던 물웅덩이가 얼음으로 순식간에 치환되며 네모난 형태를 갖췄다. 육중한 그것을 인도하려는 듯, 키르의 팔이 절도있게 아래로 떨어졌다. 거대한 얼음기둥이 그 손짓에 따라서 지상으로 추락했다.
쾅!
덩어리는 고슴도치 같은 벙커를 깔아뭉개곤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사방팔방 흩어진 얼음 파편이 그 주위를 빼곡하게 메웠다. 동시에 디아크의 흙 방호벽도 허물어지며 그의 처참한 몰골이 드러났다.
“크으윽.”
키르가 먼저 쐈던 아이스 애로우 수십 발이 디아크의 넓은 등판을 꿰뚫고 박혀있었다. 이 정도면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대결이 끝난 듯싶은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키르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쫙 펼쳐 보였다.
“<천벌>.”
동시에 팔을 내려치며 디아크를 양분하듯 손날로 갈랐다.
순식간에 하늘에 먹구름이 몰리며 잠시 어두컴컴해졌다.
번쩍. (1차)
새하얀 순백이 시야를 몽땅 뒤덮었다. 곧 섬광 줄기가 분대장 등판에 박힌 아이스 애로우를 피뢰침 삼아 그를 관통했다.
“끄아악!!!”
꽈르릉.
분대장의 비명과 대기 찢어발기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서 디아크의 외침은 묻혔다. 나름 온몸에 포스를 발휘하며 번개 공격을 견뎠지만, 키르가 앞서 펼쳐둔 얼음 공격이 이를 방해했다.
얼음이 녹으며 지면에 1개의 물 층을 만들고 분대장과 대지의 직접 접촉을 막았다. 만약 지면에 맞닿아 포스를 썼다면, 번개 공격은 그에게 큰 타격이 없었을 거다.
번쩍. (2차)
공격은 한번이 끝이 아니었다. 벼락 줄기가 연이어 디아크 등판에 떨어졌다.
“끄아악!”
꽈르릉.
몸을 추스르기 전에 번개가 또 떨어졌다.
번쩍. (3차)
‘언제까지?’
“끅.”
결국 분대장은 3번째 공격은 견디지 못하고 그 생각을 끝으로 단말마를 내지르며 기절했다. 이에 키르가 파리 쫓듯 가볍게 손을 털었다.
“윈드 캐논.”
순식간에 키르 전방에 둥글게 뭉친 공기 탄환이 분대장에게 쏘아졌다.
펑.
맹렬히 날아가서 그대로 적중하더니, 거구의 몸을 얼음 파편이 있는 공간에서 밀쳐냈다. 곧 교관이 놀라서 멍한 분대원에게 지시했다.
“건방진 ‘아해’를 의무실로 옮기게.”
“““알겠습니다.”””
번쩍.
화들짝.
모두 달라붙어서 분대장을 챙기고 있는데, 얼음 파편이 깔린 자리에 벼락이 또 떨어졌다. 고개가 절로 향했다.
찌릿찌릿.
스파크가 얼음 파편 위를 마구 질주하고 있었다. 까닥 잘못했다간 초상 치르게 생겼다.
“장, 장난해?”
순간 모두의 손놀림이 한계를 넘어섰다. 그들은 순식간에 기절한 분대장을 챙기더니, 막사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때 키르가 다엘을 불렀다.
“자네는 나 좀 보고.”
“알겠습니다.”
모든 분대원이 다엘 만 남겨둔 채 막사로 빠르게 사라졌다.
* * *
둘만 남자, 그간 근황을 나눴다.
다엘은 일단 키르가 어떻게 교관으로 왔냐고 물어봤는데, 답변이 가관이었다.
-나? 돈벌려고 왔다네.
최근 키르는 신교소에서 연구 활동하다가 실수로 폭발을 일으켰다. 그래서 다시 연구를 이으려면 돈이 필요했고 때마침 히온플이 마법 교관 자리가 공석이면서 돈도 많이 줬다.
-잠깐, 삼에칠 훈련병 히온플에 있잖아?
다엘이 여기에 있는 상황도 그의 이적에 한몫했다.
아무튼 방금 전투에서 다엘은 엄청나게 감명받았다. 모두가 천시하는 마법이 그렇게 강하다니, 키르의 무력 정도면 보이드 못과 전쟁에서 엄청나게 활약할 거 같았다.
“교관님 그리 강하신데, 왜 안 싸우십니까?”
“조용히 연구하는 게 좋다네.”
“그래도 그 정도 무력이시면.”
“또 내 소개해야겠구먼···.”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 중에서 무력으론 자기가 압도적으로 일등이란다. 그런데 마법사는 일신의 힘보다 연구를 더 우선시하는 족속들. 키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보다 까마득한 후배인 ‘델로스 아크만’(금속전갑 개발)이 키르보다 더 위대했다.
“슈타인처럼 현역을 뛰면 얼마나 귀찮은데.”
왕국에서 그의 압도적인 전투력에 모셔가려고 수없이 노력했지만, 전부 꽝. 키르는 자기가 귀찮아하는 건 절대로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의 무력이 너무나 강하기에 통제할 수 없었고 왕국도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사실 지금 연구 중인 ‘그것’이 완성된다면, 내가 제일 ‘위대한 대마도사’가 될 텐데.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네.”
“오! 그것이 뭡니까?”
“당연히!”
“당연히?”
“비밀이지. 알려고 하지 말게나 다친다네.”
“...”
다엘의 침묵에 키르가 무안했던지, 다른 곳에 화제를 돌렸다.
“근데, 마법을 배우려고?”
“그렇습니다. 전투 마법 위주로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아까는 마법을 전수할 생각에 너무 들떠서 잊고 있던 1가지 문제점이 떠올랐다. 키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네, 마나 못 나누잖아.”
“그게 문제가 됩니까?”
“일단 고위 마법은 정량의 마나가 필요하네, 그리고 자네 마법 한번만 쓸 건가?”
키르의 냉정한 말에 다엘은 어떻게든 자신의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팽팽 굴렸다.
“모든 마법에 정량이 필요합니까?”
“탄이랑 기초마법은 필요 없네.”
그나마 희망적인 소리다.
“기초마법만 쓰면, 마법을 한 번뿐이 못 쓰는 것만 문제로 남습니까?”
“그렇지?”
앞으로 더욱 성장하려면 다중 코어는 반드시 이뤄야 했다.
“몸에 여러 개의 코어를 만들고 소지할 수 있습니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키르가 회의적 반응을 보이더니, 제 생각을 정리해서 다엘에게 일러줬다.
“다중 코어부턴 자연스레 생성되는 원 코어와는 차원이 다르지.”
“그렇습니다.”
“내가 다중 코어 기초를 설명함세.”
통상적인 1코어 생성 과정.
1. 마령환 섭취->2. 몸 안에 마나 흐름 발생->3. 어느새 이상적인 위치에 코어가 생김.
이론적인 다중 코어 생성 과정.
1. 호흡으로 마나 흐름 생성->2. 1번을 유지하면서 특정 장소에 알박기 시행. -> 3. 알박기하다 보면 그 장소에 코어가 생김.
*알박기 : 마나를 집중하는 행위.
과정만 보면 쉬워 보였다. 하지만, 알박기를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호흡으로 생기는 고통을 참으면서 한곳에 계속해서 마나를 집중시킨다?
‘연습하다 보면 될 거 같은데?’
평소 여러 곳 ‘국소 부위 집중’했던 다엘은 왠지 좀만 연습하면 될 거 같았다. 장대한 설명에도 다엘이 별 낙심하지 않자, 키르가 의아해했다.
“쉽게 볼 게 아니라네. 진짜 어려운 행위라니까?”
“조언 감사합니다. 혼자 막막했는데, 덕분에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키르는 삼에칠의 다중처리 능력이 궁금해졌다.
“좋아. 필요한 능력도 키울 겸 의지력을 단련하면서 마법을 배워보겠나?”
“전 좋습니다만, 교관님이 번거로우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궁금증이 해결될 때까지만 해보지 뭐.”
“감사합니다.”
키르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의무실에 디아크를 호송한 분대원이 돌아왔다. 이에 키르가 훈련 시작을 알렸다.
“돌아왔군! 모두 의지력 단련을 시작함세. 교보재 가져오게.”
“이병! 스왈로! 알겠습니다.”
맞선임이 다엘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곧 앞으로 끌고 가며 마법 훈련 교보제 창고로 이동했다.
“가자, 아우야.”
“네. 스왈로 이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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