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테츠가 눈빛을 주자 마테니가 용병 테이블로 넘어갔다.
"이보게들 방금 자네들이 한 말에 관심이 있는데 말이야."
마테니는 탁자위에 은화 몇닢을 꺼내 놓았다.
"어때 이 정도면 술값은 충분할 것 같은데."
은화는 당장에 두 용병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하, 알고 싶은 게 뭡니까?"
"자네들이 방금 하던 이야기 말이야. 그걸 자세히 알고 싶군."
"기사 한 명의 이야기네. 그는 엠버스피어에서 잘 나가는 기사였어. 상급 익스퍼트의 실력을 갖춘 기사 단장으로 많은 부하도 거느리고 있었어. 어느 날 주민의 신고로 몬스터 토벌을 나가게 됐지. 몬스터 토벌은 잘 이루어졌어. 그런데 갑자기 그 기사 펜도락이 미쳐 버린 거야. 펜도락은 자신의 동료를 무참히 살해했어. 그를 잡기 위해 쿠센 성주가 보낸 추적대도 모조리 도살해 버렸지."
"그것 대단하군요. 그가 왜 동료를 살해했는지는 모릅니까?"
"그러니까 그걸 모른다는 거야. 혹자는 그가 저주에 걸렸을 거라고 하더군. 그는 평소 다정다감하고 부하를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야. 그런데 갑자기 돌변해서 부하를 헤쳤다는군."
"쿠센 영주가 직접 그에게 현상금을 걸었나요?"
"물론일세. 그는 한때 쿠센 영주 밑에서 기사 생활을 했었어. 쿠센 영주는 그를 산 채로 잡기를 바란다네."
"언제 추적대가 떠나죠?"
"사흘 뒤네. 이번에는 현상금을 노린 용병과 모험가가 많이 참여할 거 같아. 자네도 갈셈인가? 우리는 이번에는 빠질 생각이야. 목숨 아까운 줄 알거든."
"그가 그토록 대단합니까?"
"저번 추적대가 몰살당했어. 그들은 쿠센이 직접 임명한 로한의 기사고 모두 소드 익스퍼트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어. 그들은 다음날 모두 찢긴 시체로 발견 됐다고."
"좋은 정보 고마웠습니다. 이 은화는 당신들 겁니다."
두 사람은 활짝 웃으며 은화를 챙겼다.
"펜도락이라는 자도 뭔가 이상하군요. 그도 조사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테니 여기서 헤어지자. 넌 쿠센의 서재를 뒤져봐 모을 수 있을 모든 정보를 가져와."
"마스터는 펜도락을 추적할 생각입니까?"
"그래, 아마도 드센이나 다른 쪽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놈들은 네크로맨서와의 협업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몰라. 펜도락을 잡아 보면 대충 감을 잡을 것 같아. 여기 엠버스피어에서도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군."
"알겠습니다. 마스터. 전 먼저 가서 잠입할 틈을 알아보겠습니다."
"무리는 하지 마라.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니 확실한 타이밍을 노려. 섣불리 행동하다가 정체가 발각되면 곤란하니. 그리고 강적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 알겠지."
"네, 마스터. 그럼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마테니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가 창문을 타 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구나. 놈들이 아직 네크로맨서와 손을 잡고 있을 확률이 높아. 리치와 데스 나이트도 만들 줄 안다면 이곳에서도 못 만들라는 법은 없지."
테츠는 사흘 동안 운공조식을 하며 내공을 닦았다. 완벽한 육갑자의 내공은 칠갑자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테츠는 펠링턴 기사 대회를 통해 칠성 마나의 공격은 사갑자 내공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드 마스터급의 슈라어드 공격은 사갑자의 수준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넓다. 얼마나 더 강한 고수들이 있는지 모른다. 테츠의 철학은 하나였다.
조건 없이 강해지는 것. 강함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사흘이 되었을 때 많은 수의 용병과 모험가들이 한곳으로 이동했다. 테츠는 그들 틈에 섞여 말을 몰았다.
그들이 멈춰 선 곳은 엠버스피어 기사들의 연무장이었다.
기사 단장 한 명이 단상에 올라 고함을 쳤다.
"펜도락을 잡으러 가기 전에 명심해야 될 것이 있다. 절대 무리하여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하라. 생포가 우선이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죽여도 좋다. 대신 놈의 머리는 잊지 말도록."
용병과 모험가들이 떠나간 뒤에 기사 수십 명이 말을 몰고 나타났다.
"그대들은 용병과 펜도락이 본격적으로 싸움이 붙었을 때 기회를 보고 나서게 놈을 꼭 생포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테츠는 모험가 무리 속에 있다가 말에 올랐다. 그들은 도시를 빠져나와 북동쪽을 향해 말을 몰았다.
선두에 서서 길잡이를 하는 용병이 한 명이 있었다. 모두 그의 뒤를 따라 말을 몰았다.
그는 길을 외우기라도 하는 듯이 전혀 망설임 없이 용병의 대열을 이끌었다.
반나절 말을 달려 도착하는 곳은 울창한 숲이 시작되는 경계점이었다.
"모두 말을 멈추시오. 이곳이 저번 추적대가 당한 곳입니다."
"숲으로 들어갈 생각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진을 치고 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방법과 소수의 인원이 숲으로 들어가 놈을 유인해 오는 방법입니다. 놈은 이 숲속에 있습니다."
길잡이의 말에 용병들과 모험가들은 수군거렸다. 누구 하나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닙니까. 여기서 일단 진을 치고 놈을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사람들이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에 반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는 놈을 잡기 힘들 겁니다. 우리 파티가 직접 숲으로 들어가 놈을 유인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놈을 잡게 되면 현상금은 우리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시오."
"흥, 놈을 유인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현상금을 독식하려 하시오. 우리 파티가 들어가겠소."
"이보게. 저 사람? 혼자 숲으로 들어가고 있어."
테츠는 말다툼을 벌이는 용병을 해치고 혼자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 친구 자살하러 가는 건 아니겠지?"
"누구요? 저 사람의 파티는? 왜 혼자 보내는 거요?"
"파티도 없는 것 같은데? 저 친구 미치지 않았는가?"
숲속에서 돌연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 나와 사람들의 모골을 송연케 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망할 펜도락이 아닐까?"
"모두 무기를 손에 들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용병과 모험가들은 무기를 뽑아 들고 숲속을 주시했다. 테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가 저 친구 좀 말리게. 정말 제정신이 아닌 거 아닌가?"
"이 보게들 저 친구 혼자 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야. 다 같이 움직이세. 놈은 혼자야 우리 머릿수를 결코 이기지 못할 걸세."
"확실히 하자고 현상금은 놈의 목을 베는 자가 먹는 거야."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기 온 목적이 대부분 고액의 현상금 때문이다. 여기서 진을 치고 있다가 먼저 간 사람이 펜도락을 잡아 버리면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한 파티가 테츠를 뒤따라 숲으로 들어가자 용병과 모험가들이 우르르 몰리면서 모두 줄지어 숲속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그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던 길잡이였다.
그는 말에 오르며 숲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응시했다.
"저 정도로 신선한 것들을 데리고 왔으니 이번에는 꼭 성공하겠지?"
그는 의미 모를 말을 남기고 박차를 찼다. 그는 숲과 반대 방향으로 말 머리를 돌리더니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기병들이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엠버스피어의 문장을 갑주와 방패에 새긴 정규군들이었다.
"숲으로 진입한다. 모두 무기를 뽑고 주변을 경계하라.'
그렇게 울창한 숲은 아니라 군데군데 햇볕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최근에 난 길인지 수풀이 말발굽에 밟혀 뉘어 있었다. 아마도 추적대가 이곳을 지나간 것 같았다.
테츠는 청각을 높이고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이봐 자네는 혼자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지? 현상금이 그리 탐났나. 뒤로 물러나게."
테츠를 제치고 한 파티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나서자 너도나도 달려들어 테츠를 앞질렀다.
또 한 번의 괴기스러운 비명이 전면에서 울려 나왔다.
"마치 놈이 우릴 유인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흥, 그래 봤자 놈은 한 명이야. 우리가 모두 덤비면 쉽게 놈을 제압할 수 있어. 내가 현상금을 타면 단단히 한턱내지."
용병들은 거칠게 말을 몰려 비명이 터진 곳으로 달렸다. 모두 몰려가자 테츠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
'이상하군, 추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확하게 놈이 있는 곳으로 왔어. 길잡이 녀석이 보이질 않아. 녀석은 길 안내만 하고 빠진 것 같군. 이건 함정이야.'
테츠는 주변에 사람이 없자 천마비행으로 나무 위로 올랐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 보다 배는 빨리 이동할 수 있다.
가장 앞에서 말을 달리던 선두조는 힘껏 고삐를 당기며 말을 멈췄다. 작은 공터 한가운데 검은 갑주를 두른 기사 한 명이 검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저놈 펜도락이지?"
"분위기를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선두에 있던 용병이 양수검을 어깨에 걸치고 앞으로 나섰다.
"펜도락 무기를 버리고 그만 항복해. 너 혼자 우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나?"
상대방은 말이 없다. 투구를 쓰고 있어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정말 펜도락이 맞는 거야?"
"펜도락이 아니면 누구겠어. 이런 숲속에 혼자 갑주를 입고 저기 서 있을 이유가 있는 거야?"
용병들은 그를 포위하려 천천히 전진했다.
펜도락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모두 조심해 먼젓번 추적대가 모두 몰살한 것을 상기해. 저놈 혼자가 아닐 수도 있어."
용병들은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펜도락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괜한 말로 놀라게 하지 말게. 여기는 저놈 혼자야."
-키아아아아아
아까 전부터 났던 소름 끼지는 비명은 역시 펜도락이 내지른 거였다.
"저놈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모두 무기를 들고 놈을 포위해. 일시에 덮친다. 먼저 말해 두지만, 놈의 목을 자른 놈이 현상금을 받아가는 거다."
"현상금은 내 것이다."
앞서 있던 양수검의 용병이 기합과 함께 펜도락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검은 무섭게 떨어져 내리며 펜도락의 투구를 반으로 가를 듯이 떨어져 내렸다.
-깡
검은 투구와 부딪혔는데 쇠모루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언제 뽑혔는지 펜도락의 검이 하늘로 올라가 있었다.
"으악"
그의 양손이 모두 잘렸고 양수검을 잡은 팔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모두 덮쳐라. 생포는 없다. 놈을 죽여!"
용병들은 우격다짐으로 덤벼들었으나 펜도락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놈. 지옥으로 꺼져라."
한 용병이 검을 수평으로 뉘어 휘두르며 펜도락의 목을 정확히 가격했다.
그러나 역시 쇠모루를 치는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고 검이 튕겨 나왔다.
"뭐냐? 이놈 몸이 쉿 덩이 같아."
-캉! 캉! 캉!
달려들던 용병은 모두 검을 성공시키며 펜도락의 몸을 베거나 찔렀다. 하지만 들려 나오는 소음은 전부 쇳덩이를 때리는 소음뿐이었다.
"으아악"
용병 수명이 그의 검에 베여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컥."
또 한 명이 펜도락의 검에 몸이 관통당해 쓰러졌다.
"워해머를 든 사람 없어? 놈의 갑옷을 내리쳐"
"저리 비켯! 이놈 뒈져라."
양손 워해머 창을 든 덩치가 무자비하게 해머를 내리쳤다.
워해머는 투구위로 정확하게 떨어져 내렸다.
공기가 울리는 것 같은 커다란 소음이 났다.
"우악"
워해머를 든 용병의 가슴이 벌어지고 시뻘건 피를 허공에 뿌렸다.
"미친! 이건 뚫리지 않는 갑옷이야."
전신을 시커먼 갑옷으로 뒤덮은 펜도락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키아아아아아
펜도락은 귀를 찢을 것 같은 괴성을 터트리며 용병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으악, 악, 케엑
죽음을 알리는 비명이 터지며 용병들의 잘린 머리와 팔, 다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모두 피해! 도망가!"
누군가 그렇게 외치자 살아남은 용병과 모험가들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말의 감정이 없는 펜도락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용병을 도살했다.
막 도착한 테츠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그때였다. 숲속에서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엠버스피어의 기마병이 모습을 보였다.
"엠버스피어의 기사들이다. 살았다!"
"어서 저놈을 잡아. 검이 통하지 않는 놈이야."
기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펜도락을 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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