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잠바크
테츠는 조바심에 몸에 달아올랐다. 잘못되면 황태자의 인생이고 뭐고 간에 완전히 끝장이 날 터였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 드리리다."
그렇게 안하무인이였던 테츠의 꼬리를 말게 만드는 노인이다.
"네가 왜 너를 살렸는지 아느냐?"
"궁금합니다."
어느새 말투까지 겸손해진 테츠다 이 노인네에게 잘못 보이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노인의 손에는 반지와 펜던트가 들려있었다. 그건 자신을 이쪽으로 보낸 네크로맨서가 가진 물건이 아닌가?"
"이 반지와 펜던트가 너를 살렸다고 봐야지. 이건 네크로맨서의 신분을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지. 넌 종파가 사라센의 사제군."
테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버리려다 챙겨온 물건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다 흘렀다.
"난 아잠바크다. 라마단의 마지막 스승이다."
네크로맨서의 족보를 말하는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테츠다.
"후후, 놀라지 않는 것을 보니 정신이 많이 빠진 모양이구나."
네크로맨서의 족보를 테츠가 어찌 알겠는가? 그의 관심사는 어떻게 이 몸뚱이를 원래대로 되돌리느냐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까?"
아잠바크는 테츠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난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 내가 가진 지식이 그냥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원통한 일이지."
"저기 내 몸은 어떻게?"
"한 번만 더 내 말을 끊으면 영원히 시체로 살게 해 주겠다."
"···."
"내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내가 가진 지식은 너무 억울해. 이곳에 갇혀 죽지 않고 버티온 것은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지. 너는 사라센의 사제로 그 종파의 기술을 배웠겠지? 그걸 모두 포기하고 나의 지식을 배워라. 그러면 너를 원래 대로 되돌려 줄 것이다."
"저더러 노인장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인가요?"
"그렇다. 라마단의 마지막 제자가 되란 말인다."
"그럼 나를 원래대로 되돌려 준다는 말인가요?"
"되돌려 준다기보다는 라마단의 기술을 배우면 자연스럽게 내 몸을 너 스스로 치유할 수 있지."
테츠는 당장에라도 승낙하려 했으나.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들어 입밖에 튀어나온 말을 막았다.
"굉장히 어려운 결정일 거다. 네가 배운 모든 사라센의 능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망설인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두 종파가 섞여 서는 안돼. 너는 내 제자가 되는 순간 사라센의 모든 능력을 포기해야 한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이곳을 몰라? 너 정신에 많은 충격을 입었구나. 쯧쯧, 죽었다 깨어나면 기억이 불안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곳이 어떤 곳입니까? 나갈 방법이 있는 겁니까?"
"으하하. 이곳에 온 이래로 가장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사자의 땅에서 나갈 방법은 없다. 성황 잉그람이 네크로맨서를 추방한 지 벌써 30년째다. 그의 덕력이 가라앉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갈 방법은 없다."
테츠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잠바크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곳이 어딘지 나갈 방법이 없다는 말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 잘 생각해서 결정을 내려라."
"내 몸이 버틸까요?"
"통풍만 신경 써. 썩지 않게 관리하면 하면 되지. 클, 클, 클"
한시가 급한데 이 노인네는 제 몸이 아니라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런 걸 두고 진퇴양난이라 하겠지. 생각이고 뭐고 당장이라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노인네를 완벽히 속이려면 약간의 연기가 필요했다.
사흘째 되는 날 테츠는 심각한 표정을 보이며 아잠바크의 조건을 수락했다.
아잠바크는 뛸 듯이 기뻐하며 테츠를 제자로 맞아들였다.
테츠는 따듯한 열기가 올라오는 모래 위에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아잠바크는 테츠의 몸 위로 수많은 마법진을 그려 놓았다.
"이 의식을 취하면 네가 익혔던 사라센의 능력들은 사라지고 백지상태가 될 거야. 이건 원래 네크로맨서를 없애기 위한 주술이었지. 너는 백지상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순수한 백지 그 자체지. 그 위에 라마단의 새로운 주술이 덫 씌워 질 거다."
원래 아무것도 없던 터라 백지로 지워진들 잃을 게 없다. 아잠바크는 나를 사라센인가 뭔가 하는 네크로맨서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네크로맨서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 몸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고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두 번째다. 얀차카라는 네크로맨서가 순간이동 마법으로 이곳에 왔다면 당연히 나갈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찬 기대를 품었다.
의식이 뭔지 주술이 뭔지는 몰라도 아잠바크는 하루 종일 테츠 주위를 돌며 무언가를 읊조렸다. 테츠는 지겨워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죽은 몸뚱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가서야 겨우 의식이 멈췄다.
테츠는 가끔 자신이 새하얀 빛에 둘러 싸이는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것 이외에 별반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됐다. 네 몸에 쓰인 모든 사라센의 능력은 말끔히 사라졌을 것이다. 이제부터 라마단의 정수를 네게 불어 넣어 줄 것이다."
아직 끝이 아닌 모양이다. 테츠는 지겨움에 기절할 지경이었다. 운공조식을 하려 했지만, 내공이 모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 다른 공상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틀 밤이 지나고 나서야 아잠바크는 테츠 옆에 누워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다.
100살에 가까운 나이치고 이틀 밤을 새우며 주술을 하는 것은 중노동이었을 테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틴 것이다.
테츠는 몸에 무언가 변화가 있을까 하여 이리저리 살펴봐도 아무런 힘도 그 어떤 징조도 발견할 수 없었다.
설마 아잠바크가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가 깨어나면 물어볼 일이다.
몸이 죽었다고 했더니 배도 고프지 않고 배변이나 소변 같은 신체 활동도 느낄 수 없었다.
여기 와서 마신 거라고는 물밖에 없었다.
테츠느 아잠바크가 자는 것을 확인하고 일어나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곳은 자연이 만든 천연동굴이란 걸 알았다.
유사에 빠져 흘려 내려온 것이 이 동굴 속이었나 보다. 마침 아잠바크의 눈에 띄어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만약 반지와 펜던트를 주워 오지 않았다면 지금 망자의 시체나 데스 나이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쳇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이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네크로맨서들이 갇혀 있다고 말하지? 그럼 롱홀드에 있던 네크로맨서는 어떻게 이곳을 나갔지? 이동 마법만 배우면 누구나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동굴을 난 길을 따라 동굴 밖으로 나온 테츠는 뜨거운 태양 볕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에게 펼쳐진 것은 끝없이 넓은 사막이었다.
"근 오 일을 뛰고 걸은 것 같은데 이 사막이 얼마나 넓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거지?"
더는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테츠는 아잠바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아잠바크는 이미 일어나 들어오는 테츠를 바라봤다.
"왜, 밖을 보니 도망갈 생각이 없어지더냐???"
"제가 도망을 왜 갑니까? 약속한 것은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것참 다행한 일이다."
테츠의 발치로 죽은 토끼 하나가 던져졌다.
"그놈을 사령으로 만드는 것으로 오늘 배움을 시작하자. 너에게 이미 라마단의 정수가 깃들어 있어서 요령만 알면 쉽게 깨우칠 것이다."
아잠바크는 능숙하게 자신 앞에 죽어 널브러진 사막 토끼를 되살렸다. 되살렸다기보다는 시체를 일으킨 거였다.
테츠는 그것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테츠는 아잠바크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그는 아잠바크가 외치는 주문을 한 번 만에 외워 버렸다.
테츠의 손가락 끝에서 가는 초록색 안개가 흘러나오더니 죽은 사막 토끼의 콧구멍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테츠가 주문을 외우니 사막 토끼가 되살아났다.
아잠바크는 놀라 크게 눈을 떴다.
"아니. 어떻게 한번 본 것만으로 그대로 따라 하느냐?"
"제가 좀 그렇습니다. 옛날부터 유명했죠. 남이 하는 무공을 한두 번 본 것으로 모두 외워 버렸으니까요. 아무리 난해한 무공도 세 번 보는 것으로 그대로 흉내 냈으니까요."
"무공인 뭔지는 모르겠지만 인제 보니 엄청난 귀재구나."
아잠바크의 입이 귀에 걸렸다.
"정말 엄청난 보물을 주었구나. 으하하."
"스승님 진도 뽑으시죠?"
"그래, 그래, 으하하."
테츠의 배움은 가르치는 아잠바크가 달릴 정도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 가지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응용한다고 딱 테츠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천부적인 타고난 재질은 무공이든 사술이든 가리지 않고 빨아들였다.
솔직히 테츠는 네크로맨서의 기술을 경멸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아잠바크를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는 것은 첫 번째가 그와의 약속이고 두 번째가 자신의 몸을 되돌리는 데 있었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거지. 쿨럭. 대단하다는 말밖에 달리 찬사를 보낼 방법이 없구나. 쿨럭, 내가 진정 괴물을 주었어."
아잠바크는 며칠 사이 완전히 노인네가 돼버렸다. 그의 몰골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약해져 가고 있었다.
테츠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늙은 고수가 후학을 위해 아낌없이 내공을 주면 나타나는 증상과 지금 오잠바크의 형세가 같은 거라고. 그는 테츠의 몸에 라마단의 정수를 모두 물려 주었기에 생기가 완전히 빠져나가 100살의 노인네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테츠는 가공할 속도로 오잠바크의 가르침을 흡수했다. 그 속에는 네크로맨서의 모든 술법이 완벽히 녹아 있었다. 사령과 망령을 일으키고 지옥으로부터 망자를 소환하는 방법, 리치와 데스 나이트, 블러드 나이트의 제조법은 물론이고 리치킹과 데스 나이트킹의 제조법도 배웠다. 그것에는 라마단 네크로맨서의 최고 경지인 불멸자의 제조 공정까지 포함됐다.
테츠는 불멸자의 능력을 알고 혀를 내둘렀다. 이 괴물이 나온다면 육갑자 내공의 테츠도 감히 장담하기 힘들 정도의 괴물이었다.
"이전에 봤던 데스 나이트와 블러드 나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입니다."
"데스 나이트와 블러드 나이트를 사라센에서 만들었다고 클, 클, 클, 그 기술은 원래 라마단이 시초였다. 그들은 흉내를 낸 것에 지나지 않아. 라마단의 제조 기술이야말로 완벽한 데스 나이트를 만들어 낼수 있다. 뒤로 훔쳐 배운 사라센이 만든 것은 발끝도 못 미치는 것이야."
얼마 전 블러드 나이트를 보고 경악했는데 그거 뒤로 훔쳐 배운 기술이라니. 성황 잉그람이 이들을 추방했던 이유가 너무나 확실하게 보였다.
물론 그것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네크로맨서의 기술을 쓸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저 아잠바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지식을 배우는 것일 뿐.
"아따따. 감각이 오는데요?"
"클, 클, 클, 라마단의 정수는 다른 종파 네크로맨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다른 놈들은 기껏해야 시체나 살리지만, 라마만은 부패만 되지 않는 몸뚱이라면 진짜로 되살릴 수 있지. 클, 클, 클"
"심장은 아직 뛰지 않습니다."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 네가 라마단의 공부를 게을리만 하지 않으면 곧 심장이 뛰게 된다."
그때였다. 동굴 밖에서부터 인간의 고함이 들려왔다.
"이봐 노인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나?"
그 소리에 아잠바크의 인상이 짙게 찌푸려졌다.
테츠는 인간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 뛰쳐나가려고 했다.
"멈춰 저놈은 좋은 취지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야."
"네?"
"라마단의 배신자. 사악한 독충 같은 놈이다."
"적입니까?"
테츠는 순간 내공을 끌어모았으나 아쉽게도 반응이 없었다.
"저기 사막 토끼 사체 몇 개를 챙겨라."
테츠가 사막 토끼 사체를 몇 개 들어 허리에 찼다.
"나를 업고 동굴 입구 쪽으로 가자꾸나."
이제 거동도 불편할 정도로 늙어 버린 아잠바크다.
"이 정도에서 멈춰. 놈은 내가 두려워 이곳까지 들어오지 못한다."
아잠바크는 동굴 밖을 향해 고함을 쳤다.
"이놈 뭐가 두려운 거냐? 왔으면 정식으로 인사를 해야지."
"하, 노인장 진짜 지겨운 목숨이구려. 아직 죽지 않았으니 돌아가 주술을 좀 더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아잠바크는 테츠에서 사막 토끼 한 마리를 달라고 손짓했다.
"사령으로 만들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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