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차이
방으로 돌아온 테츠는 놀란 가슴이 진정 되지 않았다.
늘 생각해 왔던 바였다. 누군가 테드 황태자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막상 당해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로 상황을 넘기긴 했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하는 법이 없다.
"마스터,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죽여 버릴까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면 누가 알겠습니까?"
"아니, 그들을 건드리지 마라. 그 메흘린이라는 사람은 꽤 마음에 드는구나."
"그냥 두면 분위기로 봐서 저희를 계속 괴롭힐 듯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미 저희를 쿠센 영주의 살인범으로 의심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물론 그건 그들의 추측일뿐이야. 확실한 증거가 없거든. 그는 우리를 떠보려고 술자리 핑계를 댄 거지."
"그런데 쓸데없이 황태자 이야기는 왜 꺼냈을까요? 유치하게 누구를 닮았다는 이야기로 접근을 하다니 전 그가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난 그가 매우 똑똑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녀석을 영입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야."
"음, 마스터의 눈에 완전히 들었군요. 그가 그럴만한 능력이 과연 있을까요?"
"그래서 놔두라는 것이다. 그가 뭘 또 하는지 지켜보는 맛도 있을 것 같군. 오늘은 이만하고 쉬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
메흘린과 애시턴은 마차에 내려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술이 확 깨는구나."
메흘린은 의자에 주저앉으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뭔가 편치않는 것이 있습니까?"
"애시턴 자네는 테츠라는 기사를 어떻게 보았는가?"
"비범한 자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감춘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전형적인 느낌이 났습니다."
"많은 것을 감춘 자라."
"그런데 황태자를 닮았다는 농은 왜 하신 겁니까?"
"농이라고?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네."
"그럼 그가 정말 테드 황태자를 닮았다는 것입니까?"
"닮은 정도가 아니야. 깜짝 놀랄 정도였어. 성황이 봤다면 제 아들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어."
"음, 메흘린 경께서 황태자를 본 것은 수년 전이 아닙니까. 혹시 기억이 가물가물하실 때도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애시턴 자네는 나를 따라 몇 년을 같이 있었던가? 아직도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 난 한번 본 사람의 얼굴은 몇 년이 아니라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태자의 얼굴인데 어찌 잊겠나?"
"그가 닮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도 그것 뿐이겠기죠?"
"마교의 테츠 기사라. 마교의 테츠라. 마교라. 마교. 이 신흥 단체를 조사할 필요가 있겠어. 애시턴 내일 전서구로 연락을 띄워 마교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만큼 모든 정보를 수집하라고 해."
"네."
"그가 황태자를 닮았다는 것이 묘해. 지금 황태자는 행방불명 상태이잖아? 음, 뭔가 실타래가 풀어지는 것도 같긴 한데."
"후후, 그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응? 무슨 이치?"
"솔직히 테드 황태자의 소문을 들어 보면 가관이지 않습니까? 천하의 망나니로 소문이 난 황태자인데. 테츠 저 사람은 강직하고 강단이 뛰어난 사람으로 보입니다. 황태자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고 펠링턴 기사 대회에서 준우승, 아니 솔직히 그가 양보하지 않았다면 우승은 그의 몫일 정도로 무위가 소드 마스터급에 오른 사람입니다. 황태자와는 전혀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우연히 많이 닮았을 뿐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은 워낙 변수가 심하고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것이 작용하고 있는지 몰라. 그는 쿠센 영주의 살인범 리스트에 올라있으니 우리는 그를 계속 주시해야···."
그때 문밖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냐?"
메흘린이 고함을 치자 문밖에 있던 기사가 대답했다.
"친우라고 말하며 찾아오신 분이 있으십니다."
"친구?"
애시턴이 메흘린에게 손짓하며 문밖으로 나갔다.
"오래간만이다. 애시턴"
문밖에 있는 인물은 거창하고 화려한 복장을 한 귀족이었다. 눈에 확 띄는 백마 위에 거만한 폼으로 채찍을 들고 앉아 있었다.
"나그라 집행관님이 아닙니까?"
"깨끗한 성내를 놔두고 이런 돼지우리 같은 곳에 있는 이유가 뭐냐?"
"조용히 조사하는 차원에서 이곳을 찾아···."
나그라 집행관은 말에서 뛰어 내리더니 애시턴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 말이나 잘 묶어 두라고 네 몸값보다 비싼 놈이야."
나그라 집행관은 애시턴을 무시하고 들어가 버렸다. 애시턴은 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나그라 집행관의 말을 끌고 나갔다.
"메흘린 이 친구. 고생이 많군그래?"
메흘린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썩은 두부를 씹은 표정을 지었다.
"이 친구야. 인상을 펴게. 무슨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인상이 왜 그래?"
"잘 알면서 왜 말을 돌리고 그래? 나는 네 꼴을 보고 인상을 쓴 거야."
"같은 일을 하는 친구끼리 그러면 쓰나. 콩 한 쪽도 나눠 먹던 우리가 아닌가?"
"내 평생 가장 후회한 일 중 하나가 자네에게 콩 반쪽을 준 일이야."
"그건 그렇고 자네 어디까지 진척이 되어 있나?"
"무슨 소릴 하려고 여기 온 건가?"
"일왕비님이 그놈 목에 성 한 채를 걸었어. 왕가의 핏줄을 상해하거나 심지어 살해하면 반역자의 죄와 동등하다는 건 알겠지? 집행관의 규정에 따라 이 사건의 정보는 공유할 필요가 있어."
"이건 전적으로 내가 관여할 문제야. 자네는 뒤로 빠져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네. 이건 친구로서 진심으로 말하는 거네. 이번 사건은 느낌이 찜찜해."
"나는 집행관의 규정을 이야기하고 있어. 자네의 하소연을 듣는 게 아니라."
"뭘 알고 싶은데?"
"지금까지 자네가 조사한 것 전부와 자네의 소견까지 몽땅 말일세."
"싫다면?"
"자네는 로렌 왕자의 특명을 받고 왔지? 나는 일왕자비의 명령을 받았는데 다음날 윌리엄 대공이 나를 직접 부르셨어. 그리고 이번 사건의 범인을 반드시 잡으라 명하셨네. 나는 일왕자비의 명령과 윌리엄 대공의 명령을 같이 받았다는 거야. 즉 네 명령권자보다 더 위인 인물의 명령을 받았어. 집행관의 법에 따라 상위 명령권자의 권한으로 자네의 모든 정보를 알아야만 하네."
"···."
"그래도 입을 다물면 난 윌리엄 대공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어."
"쩝, 할 수 없군. 법은 법이고 규칙은 규정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나."
메흘린의 이야기를 죽 들은 나그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교의 테츠라는 놈이?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는 소린가?"
"뭐, 일단은 그렇다는 이야기야."
"간단한 일을 두고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나?"
"마교가 뭔지 모르지만 테츠 그놈을 체포해서 실토하게 만들면 되지 않겠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야. 그에게 정확한 증거를 설명할 수 없어. 그는 펠링턴 기사 대회에서 준우승할 만큼 대단한 무위를 가지고 있어. 자네가 덤벼든다 해도 테츠의 옷깃 하나 건들지 못할 정도야.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법을 집행하는 이가 상대가 강하다고 움츠러드는 건가? 이번 사건은 자네보다 내가 더 맞을 수 있겠어. 이번은 내가 해결하는 편이 훨씬 맞는 것 같아."
"이봐,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경고하지. 나서지 마. 이번 사건 분위기가 좋지 않아."
"충고는 고맙네. 하지만 집행관으로서의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나그라 집행권은 일어서며 애시턴을 돌아봤다.
"내 말 가져다주겠나?"
***
테츠는 아침부터 찾아온 전령이 전한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것은 애미르손 백작이 보내온 것이다.
"이왕자 주력군이 엘드리치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야."
"생각대로군요."
"테드버드에게 에스카달을 공략하라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엘드리치와 요른, 페복 이 세 개의 성뿐이다."
"요른은 문제 소지가 가장 적고 페복이 신경 쓰이는구나. 테드버드 쪽에서도 굉장히 멀고 디멘션 포탈도 지하에 갇혀 버린 상태니···. 아니 그래도 한 번 가볼까?"
"신경이 쓰인다면 한 번 가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혹 모르지. 놈들이 무너진 입구를 보수 했을 수도 있고. 좋아, 그럼 오늘 저녁에는 페복의 성으로 넘어가 보자. 에미르손 백작이 엘드리치 공략에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 눈치다. 리처드 왕자의 부탁이라고 하니 마교의 이름으로 그들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지."
"황혼의 샘에 머무는 사람 중에 마교의 기사 테츠가 있으면 이리 나와라."
돌연한 고함에 테츠와 마테니는 놀란 것보다 짜증이 밀려 왔다. 목소리에는 거만과 오만이 가득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터, 어떻게 할까요? 저놈의 목을 베어 버릴까요?"
"그러고 싶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목소리만 들어봐도 저놈의 성격까지 알 수 있겠다."
테츠와 마테니는 완벽한 복장으로 문밖으로 나섰다.
"나는 아칸의 집행관 나그라다. 마교의 기사 테츠는 모습을 보여라."
나그라는 계단에서 걸어 내려오는 테츠와 마테니를 보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네가 마교의 기사 테츠냐? 나는 아칸의 집행관 나그라···." "시끄럽게 아침부터 왜 고함질이냐? 난 귀가 먹지 않았다. 여기 손님들의 짜증 나는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냐?"
테츠의 말에 나그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윌리엄 대공의 왕명을 받고 엠버스피어에 온 집행관이다. 나를 무시하는 것은 윌리엄 대공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모르느냐? 지금 네 행동 하나하나의 죄를 물어도 중죄가 됨을 명심해라."
"귀찮아,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테츠의 말에 나그라를 수행하고 있던 기사 여덟이 검 자루에 손을 올려놓으며 노려봤다.
나그라는 이놈 봐라 하는 눈빛으로 테츠를 바라봤다.
그는 목소리의 톤을 한단계 내리고 나름 부드럽게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본인은 왕명을 받은 집행관이고 이곳 엠버스피어에서 발생한 사건을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소."
"그런데?"
"이번 조사가 진행되면서 테츠 기사 당신이 용의 선상에 이름을 올렸기에 왕의 명령을 대신해 당신을 압송하겠소."
"압송? 용의 선상에 이름을 올렸다고? 증거를 보여 주시오."
"증거는 곧 나올 거다. 설마 기사 여덟을 앞에 두고 반항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우리는 왕의 명을 대리하는 자의 신분으로 네게 말하는 것이다."
"증거를 가져오시고 난 다음 이야기합시다. 지금 아침 먹을 시간이외다. 다른 사람 식사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물러가시오."
나그라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정말 매를 버는 놈들이군. 저놈들을 압송해라. 반항하면 왕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나그라는 메흘린으로부터 테츠가 펠링턴 기사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말을 듣고 은근히 왕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이놈들이 아침 식전 운동을 강제로 시키는구나."
테츠가 당당히 걸어 내려오자 여덟 명의 기사는 당장에 검을 뽑아 올리며 테츠를 겨누었다.
"여관에서의 싸움은 기물을 파손하여 주인 볼 면목이 서지 않으니 밖으로 나와라."
테츠는 자신의 향한 검을 무시하고 여관 밖으로 나갔다.
"저놈이 도망가려 수작을 부리는 것 같으니 잡아라."
나그라의 말에 기사들은 검을 세우고 테츠를 포위했다.
갑작스러운 싸움에 여관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마테니가 검을 뽑으려 하자 테츠가 저지했다.
"후딱 끝내고 아침이나 먹자. 아침부터 붉은색을 보기 싫으니 내가 알아서 쫓아내마."
테츠는 자신을 포위한 기사들을 둘러 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두 팔을 하늘 위로 추어올리더니 한 바퀴 휘저으며 흡성 대법을 전개했다.
칠성에 가까운 흡성 대법이 펼쳐지자 주변의 공기를 무섭게 빨아 드렸다.
"합!"
테츠의 기합 한 번에 기사들은 쥐고 있던 무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테츠는 흡성 대법으로 빨아 당긴 무기를 뭉쳐 내공으로 우그러뜨려 버렸다.
여덟 명의 기사가 들고 있던 검이 공처럼 둘둘 말려져 그들 앞으로 '퉁'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저런!"
"우와, 대단한 마법이다."
사람들은 경탄에 마지않고 감탄사를 내질렀다.
기사들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힘이 무기를 당겨서 손을 놓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의 무기가 공처럼 말려서 바닥에 떨어졌으니.
기사들이 멍하니 있자 나그라도 방금 일어나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놈이 왕명에 반항하는 것이냐?"
"반항이고 뭐고 귀찮아. 너 아침부터 피 보기 싫지? 그 입 다물어라. 널 살려 놓는 이유는 하나야. 아침밥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그라는 무서운 인상의 테츠를 향해 감히 말 반박을 하지 못하고 선 채로 굳어져 버렸다.
"다시 내게 오려면 정확한 증거를 들고 와라. 그게 아니고 다시 한번 귀찮게 하면 그냥 죽여 버릴 테다."
"마스터, 아침밥이 다 차려졌습니다."
"그럼 수고들 하시오. 빈속이라 아침을 먹으러 가겠소."
테츠는 나그라와 기사들을 무시하고 여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이 빠진 나그라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 테츠의 뒤통수에다 대고 고함을 쳤다.
"지금은 여기서 물러난다만. 두고 보자 이놈. 엠버스피어의 기사들을 총동원하여 네놈을 반드시 잡아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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