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테츠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살기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나, 둘, 셋, 저번보다 한 마리가 더 늘었군. 오늘은 재미있어 질 거야.'
코를 고는 소리까지 내며 테츠는 잠에 빠져들었다. 세 명의 암살자들은 신중한 움직임으로 최소한의 소음도 자제하며 갈고리를 이용해 닫힌 창문을 살짝 열었다. 갑자기 찬바람이 들어가면 안 되니 두 명이 몸으로 창밖에서 쏟아 들어오는 바람과 빛을 막았다.
아주 철두철미한 움직임을 보이며 세 명은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눈 짓을 하며 침대에 누워 있는 테츠를 바라봤다.
세 명이 동시에 검을 빼 들고 침대로 다가왔다.
"아이고 이놈들 살기란 살기는 풀풀 날리고 오는구나."
침대 위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킨 테츠는 들어온 세 명을 바라봤다.
"명색이 암살자란 놈들이 살기를 갈무리하지 못하다니 그러고도 암살자라 할 테냐?"
삼 인은 말을 맞춘 것처럼 몸을 날려 협공해 들어왔다. 그것은 대단한 빠르기로 눈 깜짝할 사이 테츠의 주요 부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네 놈이 사흘 전에 내게 칼을 박은 놈이렷다?"
테츠는 놈의 체취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놈을 알아본 것이다.
한쪽 팔을 휘둘러 두 명을 쳐 내고 한 놈은 흡성대법으로 끌어당겼다.
"내 몸에 검을 꽂은 놈을 살려 둔다는 것은 천마의 수치다. 제 발로 찾아왔으니 고통 없이 죽여 주마."
테츠는 모가지를 움켜쥐더니 힘껏 비틀어 버렸다.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고개가 완전히 꺾여 버린 암살자는 푸들푸들하더니 이내 축 늘어져 버렸다.
테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열린 창문으로 시체를 던져 버렸다.
암경에 의해 뒤로 밀려났던 암살자들은 다시 중심을 세우고 덤벼들었다. 그들은 모든 힘을 쥐어짜네 일검에 모든 것을 담고 날아들어 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내 바닥으로 엎어지며 꼼짝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테츠는 다가가 두 사람의 복면을 벗겼다.
그들은 움직이려 애썼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테츠가 지풍을 퉁겨 그들을 점혈한 탓이었다.
둘 다 평범하게 생긴 자들이었다. 평범한 복장을 입혀 거리에 던져 놓으면 지나가다 스쳐도 얼굴이 기억이 안 날 정도의 사람이었다.
"대답하고 안 하고는 너희에게 달렸어. 난 성격이 급한 사람이야. 그러니 알아서 판단해. 자 질문 간다. 누가 날 죽이라고 사주했어?"
"···."
"음,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그래야 암살자지."
테츠는 흡성대법으로 한 녀석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몸을 더듬더니 무릎 관절을 반대로 꺾어 버렸다.
"우아악"
녀석의 입을 비집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 누가 사주했어?"
또 말이 없자 이번에는 왼손 관절을 빠개 버렸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또 울리자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모르지만 두 번이나 큰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이봐, 이러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치겠어. 누가 우리 물건을 채어 가려고 하나 본데?"
"이렇게 하다가는 놈을 잡을 기회를 놓쳐 버린다고 내가 말했지 진작에 올라가서 잡아야 한다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가 불안해."
"그렇지만 단장이 자정이 넘을 때까지는 공격하지 말랐잖은가?"
"그건 맞지만 비명이 들린 거로 봐서 누군가 그걸 어겼다는 거잖아. 우리가 어긴 게 아니지."
"올라가서 놈을 잡아야 합니다. 아니면 뺏어야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죠"
모험가와 용병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절대 단장의 명령을 어기는 게 아니야. 분명한 것은 비명이 났기 때문이지."
"맞아. 그럼 올라가자. 카오스의 마법사를 잡자."
모험가와 용병들은 우르르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들이 막 방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방안에서 검이 쏟아져 나왔다.
"피해, 미친 이건."
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전사 스켈레톤의 무리였다. 그들은 무식하게 검을 내리치며 용병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방안에서 스켈레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뒤로 물러나 망자들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스켈레톤과 용병이 뒤엉켜 난리 난 가운데 테츠는 태연히 비명을 지르고 버둥거리는 놈의 머리통을 부여잡고 들어 올렸다.
"어디를 더 부숴 주랴? 이번에는 오른 다리? 오른팔 네가 정해 봐."
"으, 으, 차라리 죽여라."
"아 죽기 전에 뭔지 말할 게 있잖아. 그래 누가 사주했다고?"
"···."
"고집 센 녀석이군. 이건 좀 아플 거야."
테츠는 녀석의 백회의 장심을 누르고 내공을 불어넣어 버렸다.
"크아아."
머리통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눈과 귀와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또 한 명의 암살자는 벌벌 떨었다.
"어때 많이 아프지? 말하면 아주 편해진다. 행복해지는 거야. 누가 사주했지?"
"피, 핀든 나, 남작"
"핀든 남작이라. 듣도 보도 못한 놈이군."
"놈은 어디에 있지?"
"성주의 성내."
"성주라면 쿠센을 말하는 거냐."
"···."
녀석은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미 죽어버린 것이다.
"에이, 뭐 이리 약해,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죽어 버리네."
테츠는 시체를 다시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밖에서는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고함치는 소리, 비명이 함께 섞여 들어왔다.
테츠는 힐긋 쓰러져 있는 암살자를 봤다.
"자, 너는 어디가 부러지고 싶은 거냐?"
"묻는 말에 무조건 답해 드리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오, 좋아, 너 마음에 든다. 진작 그랬으면 좋게 끝냈을 거 아니냐. 난 성격이 급하지만 한번 한 소리는 반드시 지키는 스타일이야. 만약 네 이야기가 마음에 들면 너를 놓아주겠다."
"정말입니까?"
"물론, 정말이지. 난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반드시 지키지. 널 놓아 주겠다고 했으면 그냥 놓아 줄 거야. 물론 그만한 대가를 지급할 때 말이지."
녀석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물어보십시오. 아는 범위까지는 다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나를 죽이라고 사주한 핀든 남작인가 뭔가 하는 놈에 대해 말해봐."
"핀든 남작은 쿠센 성주의 심부름꾼으로 쿠센의 말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쿠센의 충성스러운 심복인 자입니다."
"핀든이 날 죽이라고 사주한 걸 보면 쿠센이 날 죽이라고 한 거로군."
"그럴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쿠센과 일왕자의 관계는 어떻게 되지?"
"쿠센의 딸 아드리아가 일왕자비입니다. 일왕자의 외가입니다. 쿠센의 권세가 막강한 이유입니다. 쿠센은 엠버스피어를 중립으로 만들어 놓고 알게 모르게 일왕자를 돕고 있습니다."
"음, 그건 어느 정도 유추 가능한 이야기지 내 마음에 딱 드는 이야기는 아닌데?"
"믿어 주십시오. 그것이 제가 아는 모든 정보입니다. 일개 암살자가 알아서 안 될 내용까지는 알 수 없는 법입니다."
밖에서 고함소리가 더 커지고 난리가 났다.
"스켈레톤은 강하긴 한 대 한방이 없어. 저것들을 조용히 시키려면 리치가 훨씬 낫겠네."
테츠는 방안에 리치를 소환해 버렸다. 지독한 요기가 퍼지자 암살자는 비명을 내질렀다.
리치가 밖으로 나가자 고함은 금세 비명으로 변했다.
"도망쳐, 괴물이다. 크아악."
난장판이 아닌 완전 학살판이 벌어졌다. 요기를 흩뿌리는 리치를 기사도 아니고 일반 용병과 모험가들이 막아낼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비명 소리와 이층에서 떨어진 시체 때문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무리가 모두 여관으로 뛰어들었는데 학살을 벌이는 리치와 마주쳤다.
아래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돼지 멱 따는 소리처럼 들렸다.
"저래서 불나방이라는 거야. 기름을 지고 불길 속에 뛰어들면 어떻겠어? 그러니 올 곳 못 올곳 가려 가며 다녀야 오래 살 수 있는 거야. 너는 못 올 곳을 왔긴 왔지만 그래도 살아나갈 희망은 하나 잡은 거다. 자 계속하자. 내 맘에 드는 정보를 더 쏟아내 봐."
"쿠센 성주는 일왕자의 후견인으로 일왕자가 손을 대지 못하는 더러운 일을 뒤에서 그가 모두 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일왕자가 왕위에 오르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너는 소속이 어디지?"
"저희는 솔라리스 전역을 대상으로 활약하는 새벽의 검이라는 암살 단체입니다."
"너는 언제 엠버스피어에 왔지?"
"제 상관의 명령을 받고 여기에 온 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됐습니다."
"여기에 너 말고 또 다른 암살자가 있느냐?"
"두 명이 더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제 직속 상관입니다."
"혹시 일왕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얼마 전까지는 일왕자는 수도 아칸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왕자들은 직접 전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것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냐? 자신의 수하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그 지휘자들은 안전하게 궁생활을 하고 있다라?"
"윌리엄 대공의 명입니다. 그리고 팬텀가드너의 전통상 항상 그렇게 해왔습니다."
"개 같은 전통이군. 고통당하고 죽어 나가는 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왕가야. 클클클, 그거는 마음에 드는 정보다. 컬컬컬."
"두 왕자는 아칸 왕궁에서 자신의 군대를 지휘만 할 수 있습니다. 승자는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죠."
"혹시 몰레이그라는 자를 아느냐? 드센 백작이라는 자는 들어본 적이 있느냐?"
"몰레이그는 누군지 모릅니다. 드센 백작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일왕자군에서 망자를 조정하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그건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테츠는 사령의 눈으로 리치를 통해 주변을 살폈다. 여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리 중 리치를 목격하고는 모두 도망가 버렸고 여관 내에는 살아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 있으면 엠버스피어 기사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테츠는 암살자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썩 마음에 든 정보는 없었다만은 약속은 약속이니 가라."
"가, 감사합니다."
암살자는 눈치를 살피더니 잽싸게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테츠는 소환된 스켈레톤과 리치를 소환 해제했다.
"놈은 제 상관한테로 달려가겠지. 그 보고를 받은 상관 놈은 또 보고 하기 위해 움직일 테고."
테츠는 짐을 챙기고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천마비행으로 몇 개의 지붕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후아, 리치를 소환하고 뭐라 해도 역시 내공만 한 것이 없구나."
테츠의 시야 안으로 정신없이 달리는 암살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도시를 가로질러 한참을 달리더니 외곽 쪽 낡은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뭐라고 또 실패? 우리 이름에 똥칠해도 단단히 하는구먼, 우리가 언제 실패라는 말을 입에 달았었나? 내 기억에는 어제 말고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는 진정한 마법사입니다. 동료 두 명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십니까? 그야말로 순식간에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망자와 리치를 소환해 냈단 말입니다. 밑에서 죽치고 있던 용병들이 순식간에 살해 되어버렸습니다."
"망자와 리치를 소환했다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분명합니다. 제 두 눈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리치의 요기가 아직 제 몸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카오스의 마법사임이 분명합니다."
"넌 어떻게 살아 돌아왔지?"
"운, 운이 좋았습니다. 브리거와 델로가 놈에게 처절히 죽는 순간 아래층에 용병들이 들이닥쳤죠. 그러자 놈이 소환술을 썼는데 망자와 리치가 소환되어 용병들과 엉켜 들었을 때 탈출했습니다."
"흠, 놈이 리치를 소환해? 이건 정말 큰 일이다. 생각보다 더 골치 아픈 놈인 줄 모르겠구나. 너희는 여기 숨어 있어라. 난 핀든 남작을 만나서 사정을 전해 드려야겠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집 밖을 나서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으악."
돌연한 비명에 그는 고개를 번쩍 돌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테츠는 일장에 암살자 한 명을 죽여 버렸다.
"날 살려 주기 위해 놓아준 게 아니라 미행하기 위해 놓아 준거였어. 제길."
그 말을 끝으로 그는 테츠의 혈적지를 맞고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놓아주기로 한 약속은 이미 지켰어. 안 죽인다고는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을 해치운 테츠는 다시 미행하기 시작했다.
이번 암살자의 움직임은 좀 더 예리했다. 누가 미행하는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춰 살펴 가기를 반복하면서 이동했다. 상당히 용의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도 테츠가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시내의 번잡한 골목길에 접어들어 한 평범한 가정집 같은 곳에 멈춰 섰다.
그는 둥그런 쇠문 고리를 탁탁 쳤다.
"누구시오?"
"붉은 산?"
"푸른 강!"
"나요, 몬테키요."
문이 열리며 인상이 험악한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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