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의 위업
관중들은 무대가 떠나갈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한쪽은 환희의 환호성을 한쪽은 아쉬운 탄성이 담긴 환호성이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 결승이나 마찬가지인 테츠와 슈라어드의 대결이 준비됐다.
슈라어드는 펜텀 가드너의 기사로 어릴 때부터 검술의 천재로 두각을 보였고 솔라리스 최고 검사의 제자로 들어가 20대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검을 잡은 순간부터 그의 나이 30인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을 만큼 완벽한 기사였다.
사람들은 이미 그가 소드 마스터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실력을 보기 위해 구름 관중이 모였다.
슈라어드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교의 철가면. 그의 능력과 그의 무훈은 이제껏 봐왔던 그 어떤 기사 보다 뛰어났다.
사람들은 그가 어떤 능력을 더 가졌는지 궁금해한다. 오늘 철가면은 진짜 시험 무대에 오른다.
"마교의 기사 테츠 대 팬텀 가드너의 천재 기사 슈라어드 시합 개시"
슈라어드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꽉 차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늘 대결에서 이겨왔고 그 좋은 기분을 떠올렸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아니 이기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세웠다.
명검 발록 블레이드에 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렸다.
테츠는 그의 기수식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발검의 기수식은 쾌검의 자세다.
팬텀 베니쉬!
쾌검의 검술. 순식간에 여러 줄기의 검이 테츠의 눈앞에 나타났다. 쾌검에 잔영의 기술까지 담긴 스킬이다. 검은 총 다섯 자루였다. 그 다섯 자루의 검 중에 실체가 있다.
테츠는 오행마검(五行魔劍)을 펼쳤다. 오행마검 또한 팬텀 베니쉬와 같이 환영의 검법이다. 다섯 자루의 데오뜨랑이 슈라어드의 발록 블레이드에 맞부딪쳤다.
허세 속의 본체가 격돌하며 요란한 격검 소리를 냈다. 푸른 오러가 뱀처럼 테츠의 데오뜨랑을 감쌌지만 테츠는 데오뜨랑을 흔들어 쉽게 푸른 오러를 쳐냈다.
한 번의 격돌로 서로를 힘을 탐색한 슈라어드는 눈앞에서 검 끝을 하늘로 향하여 세우고
깊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푸른 오러를 검에 가득 담았다.
푸른 오러 블레이드는 검신을 따라 일렁거리며 아름다운 불꽃을 만들어냈다.
보통 검이 아닌 발록 블레이드와 조합은 무섭다기보다는 처연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검신에서 이는 푸른불꽃은 그 하나하나가 무서운 예기를 담고 있어 강철 따위 종잇조각처럼 갈라 버릴 정도의 위력이다.
둘 다 방패를 들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검 하나에 의지해 방어와 공격을 펼쳐야 하기에 검 실력이 곧 모든 것을 좌우한다.
슈라어드가 방패를 들지 않고 나온 것도 검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지였다.
-갈!
먼저 움직인 것은 슈라어드였다. 발록 블레이드는 일직선으로 검기를 뿌려 내며 테츠를 향해 날아왔다.
테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강력하고 힘이 담긴 일격이었다. 하지만 천마비행으로 간단히 피해버렸다.
'역시 이곳 기술은 힘 위주의 일결 필살 검이군. 변화도 없고 너무 단순한 패턴의 반복이야. 승패는 힘이 더 강한 쪽이 이긴다는 너무나 깔끔한 세계다.'
그렇다 이 세계의 검은 화려한 검법이나 변화가 심한 검법보다는 가진 마나의 힘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힘의 검이 대부분이었다.
슈라어드가 소드 마스터의 칭호를 받은 것도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상대를 향해 변화 없이 일직선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상대가 테츠처럼 경공의 조예가 뛰어난 사람에게는 통할 리 없는 기술이었다.
한 번에 수십 미터씩 미끄러지는 천마비행을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관중들은 흥분하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슈라어드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공격하면 순식간에 피해버리니 그를 따라잡으려면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에이고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려 한다.
왜냐하면, 경공을 따라잡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테츠가 다시 움직이자 대쉬로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하지만 테츠를 다른 마교 사람과 비교하면 오산이다. 그는 경공 수련자가 아니라 이미 완성이 된 자였다.
테츠는 슈라어드의 대쉬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방향을 바꾸었고 연달아 삼검을 떨쳐 냈다.
슈라어드는 대쉬를 멈추고 날아든 검을 쳐냈다. 오묘한 검이다. 머리를 향해 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가슴을 향해 들어왔다. 기겁하고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쳐내려 하면 갑자기 물러났다가 하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슈라어드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앞선 대결에서 마교 사람과 한 번이라도 붙어 봤으면 그것이 경험이 될 테지만 처음 붙어본 지금 상황에서 마교의 경공과 검술은 대처 불가능한 수준이란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검이 없다. 검이 살아 있는 인간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날아들었다.
-엇?
슈라어드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아찔한 느낌마저 들었다. 꽉 찬 팔성의 마나가 깃든 검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상대의 검을 받아넘기는 것만도 두려울 정도였다.
단조로운 공격으로는 테츠에게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슈라어드는 광역 기술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슈라어드의 진정한 위력은 지금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역기술은 일 대 일 대결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완전히 궁지에 몰리지 않고서는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광역 기술은 전투 때에나 쓸 수 있는 기술이지 대련에서 쓰는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테츠라는 기사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반신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란 걸 슈라어드는 알아본 것이다.
관중들에게는 그저 막상막하의 대결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테츠가 오늘도 장난을 치는군. 너무 싱겁게 끝내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공격타이밍이 충분한데도 전혀 공격하지 않고 있어. 검으로 공격하면서 파천수라장을 한 번만 날려도 벌써 끝난 경기인데 말이야."
테드버드만이 경기의 흐름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테츠는 상대가 가진 기술을 모두 끌어내도록 은근히 유도하고 있었다.
푸른 예기가 전하를 방출하는 것처럼 스파크가 튀었다.
썬더 블레이즈
푸른 낙뢰가 테츠를 포함해 주변으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공간의 제약 때문에 피할 수도 또 막을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테츠는 데오뜨랑을 뻗어 몸을 회전시켰다.
회선무류강(回旋無流剛)이 펼쳐지며 슈라어드가 떨어뜨린 푸른 번개를 모조리 빨아들였다가 다시 공중으로 흩뿌렸다.
"이런!"
세상에 이런 무위를 펼치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 슈라어드는 답답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그가 대결에 나선 이래 최초였다.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을 상대에 대한 공포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을 가져 왔다.
관중들은 그들이 훌륭히 공방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공격을 쏟아 붓은 슈라어드가 곧 테츠를 제압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테츠가 천마비행으로 슈라어드에 붙었다. 긴장한 슈라어드는 침을 삼키며 검을 두 손으로 감아쥐었다.
데오뜨랑에서 천마삼검이 펼쳐졌다. 테츠의 검은 강한 압박감으로 슈라어드를 몰아갔다.
천마섬과 천마환이 연이어 떨어져 내렸다.
슈라어드는 날아드는 검을 쳐내느라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천마멸이 떨어져 내렸다. 썬더 블레이즈와 같이 검기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슈라어드는 조금전 테츠가 보여준 방식으로 검을 세우고 몸을 회전시켜 쏟아지는 검기의 비를 방어해 냈다.
그가 검술의 천재란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번 본 테츠의 회선무류강을 흉내 냈다. 내공 대신 마나로 펼쳤지만, 어느 정도는 천마멸을 막아 낼 수 있었다.
물론 테츠가 백번 양보하여 삼갑자의 내공만 쓴 것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테츠의 손에서 구화마검이 펼쳐졌다. 앨빈과 마교 일행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검법이다. 테츠의 손에서 펼쳐진 구화마검의 위력은 독보적이었다.
슈라어드는 공격은 아예 생각도 못 하고 테츠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무려 소드 마스터라는 지위에 오른 인물도 테츠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소드 마스터급에 속하면 오러 블레이드의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 가능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공을 사용하는 검법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슈라어드는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의 공격에 이상한 것이 있음을 느낀 것이다.
분명히 더 몰아붙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이 되면 검을 멈춘다.
위험하다 싶으면 오히려 검을 물렸다.
그는 한동안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혹이나 원래 그런 검법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관중의 함성에 따라 검의 변화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그가 자신이 아닌 관중을 향해 검을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넌 관중의 함성을 즐기고 있었어. 나는 그냥 덤인가? 지금껏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구나!"
그의 말을 들었는지 테츠가 검을 내렸다.
"진짜로 하면 이 대결은 이어지지 못해. 왜냐하면, 넌 너무 약하니까."
슈라어드는 순간 콧방귀를 낄뻔했다.
세상에서 그 누가 자신더러 약하다고 했던가?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니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네게 치욕을 주려고 그러는가? 아니면 진짜 실력을 보이기 싫은 건가?"
"난 그들이 마교에 대해 좀 더 알았으면 해서. 단지 그뿐이야. 장단을 맞춰 주기 싫다면 끝낼까? 가진 기술은 좀 더 없고?"
"날 가지고 놀 셈이냐?"
갑자기 두 사람이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가 오가자 사람들은 궁금해하며 함성을 질렀다.
"관중들이 야유를 지르기 시작했어. 대결을 이어가야 할 때야."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진짜 실력이 있다면 어서 끝내라."
"우리 승패를 나누지 말고 그냥 즐기자고. 이 경기의 승패가 어떻게 날 거란 걸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냥 편하게 즐기라고."
테츠의 일언 일언이 슈라어드의 가슴에 박혔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무시를 당한 적이 있었던가? 소드 마스터라는 칭호는 거저 얻는 게 아니란 걸 눈앞에 사내에게 보여야 한다.
발록 블레이드가 퍼런 불꽃을 뿜어내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슈라어드는 마나를 쥐어짰다. 무려 팔성에 가까운 마나가 가득 모였다. 오러 블레이드가 형성된 발록 블레이드는 힘겨운 검명을 토해냈다.
일격 필사의 검법 피니쉬 블로우 이걸 적중시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테츠에게 붙어야 한다. 그는 이상한 마법을 써 순간이동 하듯 움직여서 실수하면 애꿎은 허공만 칠 것이 분명했다.
"네가 정말 강하다면 이 검을 피해내지 말고 받아 보아라. 그렇지 않으면 네 말이 모두 허언이었다는 것이 들통날 것이다."
"조금 전부터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공격해 보시구려."
'이 기술 만큼은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내 사부조차 두려워 막지 못한 검이다.'
순식간에 대쉬로 달려들었다. 테츠는 물러나지 않고 말뚝과 같이 서 있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연무장의 허수아비와 같았다.
너무나 쉬운 표적이 눈앞에 서 있었다.
"날 원망하지 마라 네가 자초한 일이다."
테츠의 머리 위로 피니쉬 블로우가 떨어져 내렸다.
슈라어드의 입이 크게 벌어지고 그의 모든 것이 담긴 울부짖음이 토해졌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함성이 갑자기 가라앉았다.
-탕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슈라어드의 검은 무언가의 압력에서 뒤로 튕겨나며 하늘 위로 번쩍 치켜 올라갔다.
"이런 말이 안 되는 일이!"
슈라어드의 모든 정수가 담긴 일격을 테츠는 그냥 평범하게 한 손으로 데오뜨랑을 휘둘러 쳐 내 버린 것이다.
"음? 이게 그렇게 기를 모으고 쓴 공격이야?"
강철도 잘라 버릴 정도의 마나의 예리함은 인정하지만, 내공의 중후함에 애초에 견줄 대상이 아니었다.
테츠는 한 손에 오갑자의 내공을 두르고 너무나 쉽게 피니쉬 블러우를 쳐냈다.
그제야 슈라어드는 인간이 아닌 괴물과 싸우고 있음을 깨달았다. 테츠의 철가면이 악마처럼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다.
"조금만 더 놀다 끝냅시다. 너무 빨리 끝내면 당신 명예에도 좋지 않을 것 아니오? 박빙의 승부처럼 이어갈 수 있도록 손을 좀 빌려주시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소"
뭐냐? 눈앞에 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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