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
"무슨 일이야? 이런 야밤에?"
"급한 전갈입니다. 핀든 남작을 뵈어야 합니다."
"허, 이런 야밤에 남작님을 어떻게 깨워?"
"정말 급한 일입니다. 반드시 남작님을 뵈어야 합니다."
인상이 고약한 사내가 인상을 찡그리니 더욱 험악하게 보였다.
"할 수 없군, 여기서 기다려 사람을 보내 핀든 남작을 모셔 오도록 하겠다."
"감합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골목길을 향해 다가오는 마치가 한 대 보였다. 마차는 골목길 초입에 서서 멈췄고 마차 안에서 귀족 복장을 한 인물이 두 명의 가드 호위를 받으며 내려섰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생긴 눈매에 팔자 수염을 하고 키에 비해 상당히 마른 몸매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손에 짧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보아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는 몬테키가 들어갔던 집 앞에 멈춰 서서는 나무문을 지팡이로 툭툭 쳤다.
"나다 문 열어라."
-덜컹
나무문이 열리자 그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핀든 남작을 뵙습니다."
몬테키는 고개를 바짝 숙이고 그를 맞이했다.
"이 야밤에 나를 다 불러내고 무슨 일이야 도대체? 오늘은 카오스 마법사인가 뭔가 하는 놈을 잡으러 가지 않았나? 내 많은 첨병까지 여관에 보내 주지 않았더냐? 설마?"
몬테키는 떨려오는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제길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학살당했습니다."
"잠깐 정확히 이야기해. 너희가 학살당했다는 거냐? 내가 보낸 애들이 학살당했다는 거냐?"
"둘 다입니다."
"뭐라고? 어찌 일인이 그 많은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냐? 기껏해야 디스펠 주문을 몇 개 아는 놈이 아니더냐???"
"저희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디스펠 주문 몇 개 정도 알고 있는 그런 마법사 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네크로맨서였습니다. 그것도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네크로맨서입니다."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거냐? 정확히 말해 보아라."
"놈이 망자와 리치를 소환하여 남작님이 보낸 자들을 모두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제 암살자 두 명을 이상한 마법으로 간단히 죽여 버렸습니다."
"망자와 리치를 소환했다고? 진정 그 말이 사실이더냐?"
"그렇습니다. 어디라고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핀든 남작은 험악한 덩치의 사내를 보고 말했다.
"너는 여관으로 사람을 보내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남작님."
"그것참 괴이한 일이로고. 제국에 남은 네크로맨서는 몰레이그 하나뿐이라고 알고 있거늘. 혹시 성황의 감옥에서 또 다른 놈이 몰래 빠져나왔나?"
"빠져나온 것이 아니고 당당히 걸어 나왔다."
"누구냐?"
돌연한 음성에 핀든 남작을 호위하고 있던 가드 두 명이 검을 뽑아 들었다.
"위층입니다."
몬테키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뛰어오르며 외쳤다.
계단 위로 막 뛰어 올라가던 몬테키의 몸이 공중에서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는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내렸는데 두 눈을 멀겋게 뜨고 허공을 보는 자세로 절명해 있었다.
"이것은 무슨 마법이냐? 몬테키 정도의 암살자를 단번에?"
가드 두 명이 핀든 남작을 막아서고 험악한 인상의 중년인이 문을 열기 위해 달려갔다.
-핑
"크윽"
험악한 인상의 중년인은 달리는 속도를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문에 몸을 부딪치더니 쓰러져 버렸다. 그의 기해혈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핀든 남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삽시간에 두 사람이 영문도 알지 못하고 당하자 지팡이에 마나를 잔뜩 올리고 주문을 읊었다.
테츠는 천천히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핀든과 눈이 마주쳤다.
"너, 너는? 마교의 기사 테츠가 아니냐?"
핀든 남작은 테츠의 철가면을 알아보았다. 그는 펠링턴 기사 대회에서 테츠를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을 알아보자 테츠는 살짝 놀랐다. 철가면이 너무 잘 알려진 탓이다.
"마교의 기사가 여긴 무슨 일로?"
"일이 복잡하게 되어 버렸군. 나는 나를 암살하러 온 놈을 미행했을 뿐이다."
"너를 암살했다고 그럼 늙은 요리사의 집에 있던 카오스 마법사가 너란 말이냐?"
"난 카오스의 마법사가 뭔지도 몰라. 하여튼 잠자고 있는데 저놈이 나를 습격한 것은 사실이지."
핀든 남작은 순간 혼란이 왔다.
'어떻게 된 것인가? 여관에서 카오스 마법사와 이놈을 착각한 건가? 같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랬던 것인가?'
"핀든 남작이라고 했지? 네가 암살자를 보낸 놈인가?"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노리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카오스 마법사란 자요."
"오해가 있었던 뭐든 간에 너희는 나를 죽이려 사람을 보낸 것이지. 그냥 넘어가면 내 입장이 뭐가 되나?"
"마교의 인물들은 모두 알야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대는 어떻게 여기에?"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보다 왜 나를 암살하려 사람을 보냈냐는 거지."
"오해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크악"
가드 중 한 명이 앞으로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졌다.
"난 성격이 좋지 못해. 질문에는 정확한 답을 하는 게 도리에 맞는 거지 왜 말을 바꿔?"
핀든 남작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마교의 기사 테츠. 펠링턴 기사 대회에서 준우승한 실력이다. 팔성의 마나를 가진 강자들을 차례로 꺾은 괴물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그를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것도 출입문은 거대한 덩치가 엎어져 가리고 있었다.
테츠가 어떤 스킬로 사람을 해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손만 흔들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져 가고 있으니.
"그럼 이렇게 묻자. 누가 카오스 마법사를 죽이라고 지시했지?"
핀든 남작은 두려움에 온몸이 저렸다. 그의 앞에서 서 있는 가드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는 것을 보니 입이 타고 가슴이 떨려 왔다.
"쿠센 영주입니다."
테츠는 당연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코를 훌쩍했다. 그는 계단에 엉덩이를 걸치고 주저앉았다.
"그가 이왕자의 편에 붙을까 걱정이 되어 미리 제거할 셈이었나?"
"그렇습니다. 그는 일왕자에게 엄청난 골칫거리로 등장했으니 쿠센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일왕자의 가장 최측근이니까요."
"웨이로지 남작과 렌돌프 백작을 알고 있지?"
"웨이로지 남작은 제 친우입니다."
"그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알고 있죠. 그들은 당신들 마교와 싸우다 전사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와 싸우다 전사? 기가 찰 노릇이군. 웨이로지 남작과 렌돌프 백작은 쿠센이 보낸 암살자들에게 죽임을 당했어."
"그럴 수가? 그는 오솔로프 드라코의 성에서 전사했다고 했는데?"
"난 성격상 거짓말을 못 해. 한 적도 없고. 그는 쿠센이 보낸 암살자에게 죽었다. 그 암살자의 입에서 직접 들은 말이다."
"···."
"아마 일왕자와 이왕자의 싸움이 있기 전에 큰일을 벌이려다 마교에 의해 그 계획이 분해됐을 거다. 그다음 일왕자 편으로 붙은 거지 그 잔당이 아니 이 모든 배후의 인물! 나는 그를 알고 싶어."
테츠는 일전 드센이 말하려다 만 인물이 바로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몰레이그의 제자가 디멘션 포탈로 습격하지 않았다면 그 원흉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을 터인데.
"후, 난 웨이로지가 그런 것에 관여하고 있을 줄 몰랐소. 쿠센 영주로부터 그가 마교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들었을 뿐이오."
"물론 우리가 그를 잡긴 잡았지. 그는 절대 배후를 말하지 않았어. 할 수 없이 그를 가둬 놓았지 렌돌프 백작을 흉내 내는 그의 집사 세오른과 함께 말이지. 하지만 암살자가 그 둘을 독살시켜 버렸어. 우리는 그 암살자를 잡아 정확히 누기 시킨 것인지 알아냈어. 쿠센이다."
"그는 일왕자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이오."
"그럼 쿠센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추측이라도 할 수 없는 건가?"
"쿠센의 성주의 뒤라. 그건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소. 난 쿠센의 개요. 주인 이상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참 이건 알아주게. 난 나를 헤치러 온 사람을 살려 둔 적이 없어."
"나도 각오하고 있던 참이오. 쉽게는 당하지 않으리다. 익스플로전."
-쾅
테츠는 그가 지팡이에 마나를 가득 모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기술을 쓸지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종류가 이와 같은 것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주위 집기와 시체들이 한데 뒤엉켜 엄청난 파편을 날렸다. 문은 완전히 박살 나버렸고 폭발의 위세를 등에 업고 핀든 남작은 골목길 밖으로 달려나갔다.
"쿨럭, 쿨럭"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테츠는 기침을 하며 밖으로 날아내렸다.
"뭐 놈의 위치상 알만한 것은 그것뿐이었나. 몰레이그를 잡아 죽이고 드센을 붙잡아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군. 그전에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처리해야지?"
그때였다. 작은 살기를 품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얼래? 누구지 암살자 같은 느낌은 드는데 그건 아니구나. 가만 이건?"
테츠는 어둠 속으로 신형을 감추고 모든 기척을 지웠다. 폭발이 일어난 곳에는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고 잠을 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창문을 열고 있었다.
그때 지붕 위를 움직이는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조용히 폭발이 일어난 집 근처로 다가왔다.
"아이고 저놈 아직도 살기를 갈무리하지 못했구나. 그렇게 엄하게 가르쳐 놓았는데."
테츠는 그 그림자가 마테니인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기척을 감추고 마테니 뒤로 날아내린 테츠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무엇을 찾는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녀석아 아직도 살기를 감추지 못하고 대문짝만하게 드러내 놓고 다니느냐?"
너무도 반가운 음성에 마테니의 몸이 한순간 경직이 되었다가 서서히 뒤돌아섰다.
"마스터! 살아 계셨군요."
"뭐, 살아? 그럼 내가 죽었던 거로 알았었냐?"
마테니는 반가움에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엠버스피어 정문에 남겨진 표식을 보고 마스터가 이곳에 온줄 알았습니다. 요기를 느끼고 여관으로 다가 폭발음을 듣고 여기로 왔는데 마스터를 보게 될 줄이야."
"그동안 무얼 했느냐? 아 참,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한 놈을 미행해야 하니 가면서 이야기하자."
테츠는 천마비행으로 허공을 날아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핀든 남작을 태운 마차를 찾을 수 있었다.
마차는 엠버스피어 성주가 거주하는 성으로 들어갔다.
"미행할 필요도 없었군. 단순한 사람이군. 핀든은."
"오늘은 불편하더라도 여기서 밤을 지새워야겠다."
"마스터 저쪽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마테니는 첨탑을 가르치며 말했다.
"음. 괜찮을 것 같군. 밤이슬 피하기에는 딱 좋아 보여."
첨탑 안은 의외로 깨끗했다. 경비병이 잠시 쉬는 곳으로 작은 탁자와 의자도 놓여 있었고 밖에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어 어둡지도 않았다.
마테니는 테츠와 헤어진 이후의 경과를 이야기했다. 테드버드 남작이 이끄는 마교는 알야센을 반년 만에 완전히 점령했고 그곳을 세력을 흡수해 삼천의 군세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들은 알야센에 마교의 깃발을 내걸고 알야센을 통치할 정도라 했다.
테드버드는 별도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그곳에서 군사 조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테츠가 갑자기 행방불명되어 마교 최상위 명령권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두 테츠를 찾기 위해 롱홀드로 들어오려 했으나 테드버드가 그들을 말리고 테츠를 찾는 임무는 오로지 마테니에게 맡겼다는 이야기다.
"테드버드는 역시 믿음직해. 그는 군사로서의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지. 자기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 마교를 더욱 살찌우게 할 인물이야."
"마스터를 찾느라 롱홀드 내에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구나. 그동안 수행을 게을리하지는 않았겠지? 아까는 살기를 숨기지 못하고 있더구나."
"갑작스러운 요기 때문에 조금 흥분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오신 것인지? 미행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핀든 남작이라고 나를 암살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낸 사람이다."
"그럼 지금 당장 놈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아까 마차에 있던 그놈 맞습니까?"
"아니, 기다려 내일 날이 밝으면 녀석이 쿠센 영주를 만날 것이다. 그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들어봐야 해. 그게 핵심이거든."
"그렇군요. 마스터 그런데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롱홀드에서는 전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테츠는 몰레이그를 만난 날부터 그의 제자 얀차카로 인해 사막으로 간일, 라마단의 정수를 배우고 그곳을 탈출했던 일을 들려주었다.
"헉, 1년 반 동안 대단한 일을 겪으셨군요."
"고생은 좀 했지. 덕분에 배운 것이 많으니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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