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는 내꺼다. 손대지 마라.
오백 마리의 스켈레톤을 배신의 영욕으로 뒤집어 버리고 저쪽에서 울려대는 체령술과 싸우고 있으니 라마단의 정수가 극한까지 가열이 되었다.
"그래, 더욱더 울려라. 그럴수록 힘이 더 난다. 심장의 박동을 느낄 수 있단 말이다. 더, 더 울려다, 울려."
라마단이 빛을 발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며 뛰었다.
"크하하, 드디어 뛰는구나! 심장이! 내공이 느껴진다. 더욱 날뛰어라. 더욱 날뛰어,"
되돌아선 오백의 스켈레톤과 일왕자군이 난전을 벌였다. 그 기회를 틈타 돌격할 수 있지만 이왕자군의 지휘자는 양패구상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지금 테츠가 사용하는 스켈레톤은 아군, 적군이 따로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무조건 공격할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방울 부대는 무얼 하고 있는 거냐?"
"이들이 왜 미친 거냐? 제어가 안 되냐"
"조금 전 하늘에 떠 있던 마법진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누가 망자를 미치게 한 마법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전령을 보내 이 사실을 후방 부대에 알려라."
체령, 방울 소리로 이들을 조정하는 부대가 따로 있었다. 이들은 말을 몰고 망자 부대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창끝에 매단 방울을 힘차게 흔들었으나 반응하는 스켈레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무수한 검이 날아들어 말과 함께 기사도 끝장내 버렸다.
"물러나라. 물러나. 후퇴한다."
후퇴의 나팔이 불리고 일왕자군은 망자의 군대를 남겨놓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스켈레톤이 강하다 하지만 말의 빠르기를 따라갈 수 없었다.
"아후, 한참 재미가 붙었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안 돼. 심장이 다시 느려진다. 제길."
테츠는 라마단의 정기를 더욱 짜내 그 상태에서 역 소환 디스펠을 걸어 버렸다. 그러자 수많은 스켈레톤이 요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그 많은 스켈레톤이 일시에 무너지며 주변 초원을 완전히 뼈다귀로 뒤엎어 버렸다.
"할 수 없군, 다음 전장을 찾아봐야지."
테츠는 모인 내공을 사용해 천마비행으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저런!"
"저, 사람은 마법사인가 보다."
"대단한 마법사다. 일시에 망자군을 완전히 박살 냈다."
"다들 무얼 해? 추격한다. 일왕자군을 추격한다. 지금이 기회다. 모두 돌격한다."
이 부대의 최고 기사단장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전군을 독려했다. 그들은 북과 고함을 치며 일왕자 군을 뒤쫓았다.
"하, 될 것 될 것 같으면서도 안되네. 역시 라마단의 수행이 부족해. 쓸만한 내공이 모였지만 이걸 다 쓰면 다시 심장을 뛰게 해야만 하는군."
천마비행으로 전장을 빠져나온 테츠는 내공이 더는 모이지 않자 다시 평범한 걸음걸이로 되돌아 가 있었다.
"역시 전장이 효과는 확실해. 그냥 나 혼자 리치를 소환하는 것 보다 배는 수련 효과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어. 심장이 금방 뛰는 걸 보면. 전장을 찾아다녀야겠군."
지금은 심장이 또 멈춰져 버렸다.
롱폴드와 잔버크의 경계점을 따라 군데군데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다. 테츠는 북쪽으로 이동하며 전장을 찾아다녔다.
일왕자군에는 여지없이 망자들이 전면에 서서 이왕자군을 공격했다.
북쪽으로 다음 전장을 찾아 이동하던 테츠는 이왕자군이 집결한 막사를 찾았다. 약 수천의 기사가 막사를 치고 집결해 있었다.
테츠는 살짝 숨어들어 군수 보급창고에서 이왕자군의 일반 기사 갑주를 훔쳐 입고 투구도 썼다.
그는 투구를 쓰고 막사 군데군데를 활보했다. 일왕자군은 망자들 때문에 대체로 야간에 공격을 걸어온다. 그래서 대낮에는 쉬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이왕자 군이 대낮에도 공격을 걸 수 있지만, 그것은 무리수였다. 대낮이라고 망자가 안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야간에 또 습격이 있을 수 있으니 이중고를 겪기 때문이다.
테츠는 이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봤다. 반갑다기보다는 아는 얼굴들이었다.
이안 솔라스 백작이 이끄는 군대도 이왕자 군에 합류해 있었다.
이안 솔라스 바로 아세리안 셰필드와 강제 청혼이 오간 귀족 솔라스 집안이다.
이 솔라스 집안은 테츠과 마교에 의해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아세리안과 혼담이 간 장남인 리버러스 솔라스도 보였고 거대한 덩치의 바스터즈 단장도 있었다. 그의 곁에는 철혈의 기사단장 레이어스도 있었다. 이정도 인물이 모습을 보인 것을 보면 솔라스 가문은 이왕자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완 솔라스가 있으면 셰필드가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막사를 찾아보다 역시 솔라스 가문의 깃발을 꽂은 막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막사를 살짝 비집고 보니 오리언 기사단장이 지도를 펼쳐 놓고 부관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외에 귀족 한 명이 더 있었는데 테츠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두 앙숙 가문이 이왕자를 위해 한 부대로 뭉친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대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만큼 오늘 저녁 전투에서는 좀 더 신나게 놀아봐야겠구나."
테츠가 죽 살펴본 결과 이 부대는 솔라리스 동쪽을 다스리는 귀족들의 연합체와 같은 부대였다.
물론 동쪽이라고 해서 다 이왕자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대는 동쪽에서 이왕자를 지지하는 귀족들 위주로 부대가 꾸려져 있었다.
밤이 오고 전장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테츠는 어서 빨리 전장이 달아오르기를 바랐다.
"서쪽 하늘에서 일직선으로 뻗어 올라온 푸른 기운은 요기다. 이거 저 정도 요기면 데스 나이트가 아니면 블러드 나이트라도 온 건가?"
그 정도면 이 부대가 견딜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테츠가 있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막사에서 기사들이 몰려나오고 모두 착검하고 무기를 든 상태로 이동 준비를 시작했다. 테츠도 일반 병사들 틈에 섞여 들어갔다.
횃불이 밝혀지고 군의 행군이 시작됐다. 테츠 주위로 정찰병이 말을 달려 지나치기를 수십 번 드리어 행군이 멈춰지고 테츠가 속한 보병대는 작은 언덕 위로 올라섰다.
저 멀리 일왕자군의 군세가 밝힌 횃불이 보였다.
두 부대는 적당한 초원을 앞에 두고 대치했다. 북소리가 울리고 긴장감이 고조 되었다.
테츠는 늘어선 기사들을 해치고 맨 앞으로 내왔다.
하늘로 솟은 요기의 원점을 찾던 테츠는 그것이 어떤 소환수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원래는 이왕자군의 군세가 일왕자 보다 훨씬 크고 많았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엉망이었다. 망자가 등장하고 난 이후 단 한 번의 승수도 올리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히 망자를 앞세운 일왕자군의 공세 때문이었다.
망자를 상대하느라 전력을 소모한 병력은 뒤에 일왕자군의 공격에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에는 수적 우세를 앞에서 롱홀드 깊숙한 곳까지 일시에 몰아붙였지만, 망자들이 등장함으로써 이왕자 군은 연일 패퇴를 거듭해 이제 본거지인 잔버크까지 밀려났다.
전투 양상이 바뀌었다. 선공이 아닌 방어진을 구축해 어떻게 하든 초반 망자 세력을 부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제 남은 전투는 본거지로 밀리느냐 마느냐의 사활이 걸린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그런데 며칠 사이 온도가 확 바뀌었다.
그것은 단 한 사람 마법사의 등장 때문이었다. 전장마다 그가 나타나 망자를 완전히 휩쓸어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는 미친 듯이 망자를 때려 부수고 다녔다.
벌써 다섯 번의 전투에서 망자가 완전 괴멸되었고 일왕자의 군대는 꼬리를 말고 철수했다.
"오늘도 그가 나타날까?"
"에이, 설마?"
"그의 소문은 정말 대단해 하늘을 덮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망자 위에 떨어지면 그 순간 망자들이 미쳐 날뛴다는군. 오히려 적군을 공격해 초토화한다고 하던데?"
"크, 그 장관을 한번 봤으면 좋겠군. 연일 저놈들에게 계속 밀리고 있으니 죽어간 동료들을 생각하면 오늘 저녁에는 최소 열 마리는 부숴 놓겠어."
"그러게 말이야. 며칠 전에 그동안 죽이 잘 맞았던 친구 하나를 잃었어. 오늘은 단단히 준비해왔지 이걸 보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 허리에 매달린 둥근 철퇴를 툭툭 쳤다.
"그건 모닝스타가 아닌가? 그 철퇴가 망자들에게 잘 들어?"
"효과가 그만이지 검보다 훨씬 놈들에게 타격을 준다고 관절 부위를 노리고 때리면 놈들이 휘청 할 정도지."
"그래? 나도 그걸 구해야겠군."
"그리고 돈이 조금만 있다면 홀리 블라이트 마법이 깃든 철퇴를 구하라고 그건 한방 컷이야."
"홀리 블라이트? 그것 성황의 성군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아닌가?"
"그렇지 이왕자의 부탁으로 성군으로부터 물자지원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곳에서 나온 무기는 망자들에게 효과가 발군이지."
"하, 그 무기가 우리 부대로 오면 좋겠는데 말이야."
"크, 이런 귀중한 무기가 이곳까지 흘러오겠는가? 핵심 부대가 무장해도 모자랄 양일 텐데."
"그나저나 오늘은 달빛이 유독 밝군."
그때 저 멀리 일왕자군에서 전진 북소리가 울려 나왔다.
"온다, 준비하자."
이왕자의 군대는 평소대로 방패병을 앞에 세우고 방어전략을 펼쳤다.
"어라? 자네 어디를 가나?"
"이봐 멈추라고 돌격 명령은 나지 않았어."
"어, 저 사람 왜 저래?"
"누가 잡아 왜 홀로 나서는 거야? 뭐지?"
이왕자 부대 한 가운데서 홀로 망자를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 나왔다.
그 모습에 모두 술렁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한 사람의 기사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망자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미쳤구나. 왜 저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 거지?"
그 기사는 수많은 망자 무리 앞에 홀로 우뚝 섰다.
"앗!"
"와!"
"저럴 수가!"
탄성은 대부분 이왕자 부대에서 터져 나왔다. 홀로 망자 앞으로 뛰어나간 기사는 갑자기 머리 위로 두 팔을 번쩍 올리더니 그것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을 가득 덮을 듯이 허공에 그려졌다.
그것은 찬란한 빛을 가득 담고 망자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기사들을 두 주먹을 불끈 쥐로 부르르 떨었다.
"카오스의 마법사다. 그가 나타났다!"
"그가 어떻게 우리 부대에 있었지? 기사가 아니었던가?"
"뭐래도 좋네. 좋아. 그가 우리 부대에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람들은 그의 마법이 망자들이 혼란을 일으킨다고 카오스의 마법사란 칭호를 달아 주었다.
단 홀로 적진으로 돌격해 마법을 사용해 망자를 무너트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화 속 영웅이라 할지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으아, 와!"
"우아아아!"
테츠의 행동에 고무받은 이왕자의 기사대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고함을 치며 술렁거렸다.
"모두 진정해! 망자들이 스스로 일왕자군을 공격할 것이다. 그들이 서로 싸우도록 일단 내버려 둬. 각 기 부대 단장들은 자신의 휘하 기사들의 동요를 진정시키게. 아직, 아직이야.!"
부대 총 기사단장으로부터 명령이 부속 부대로 하달됐다.
그들은 모두 부들부들 떨면서 저 거대한 마법진을 휘날리는 일인 영웅을 지켜보느라 상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치다. 저 푸른 요기의 정체가 리치였군. 정말 좋은 데 망자로는 심심했는데 리치라니 이거 오늘 횡재 한 거야. 자 덤벼라, 있는 힘껏 덤벼 또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테츠는 오롯이 내공을 되찾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그가 주는 파급력은 어마무시했다. 이왕자에게는 승리의 승전보를 일왕자의 기사들에게는 지옥의 사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미친, 카오스의 마법사다. 모두 피해. 이건 싸움이 되지 않아."
"리치, 리치를 이용해, 놈은 리치까지는 어쩌진 못할 거야."
일왕자의 기사단장이 그렇게 외치는 순간 미친 리치가 요기를 뿌리며 일왕자군의 대열에 뛰어들어 야단법석을 떨었다.
"역시 리치는 손맛이 스켈레톤에 비교할 바가 아니구나. 날뛰어라. 네가 날뛸수록 심장이 빨리 뛰는구나. 삼갑자, 사갑자. 헐, 헐. 내공도 쭉쭉 차오른다."
테츠는 전투에 이기고 지고의 승패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가 제어하는 망자와 리치가 날뛰어 주면 더 좋고 심지어 덤벼드는 기사의 마나와 싸워 주면 상상 이상의 효과를 냈다.
지금 일왕자의 기사단장 세 명이 리치를 둘러싸고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 손맛이 대단하여 라마단의 정수가 끓을 듯이 타올랐다. 테츠는 심장이 크게 박동하며 온몸으로 뜨거운 피를 돌리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발동이 걸릴 듯하면서도 걸리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이때만큼은 완벽히 내공을 제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공이 계속 쌓여갔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테츠는 그와 중에서 리치의 몸을 제어해 내공 대신 요기를 이용해 파천수라장을 뿜어냈다.
리치의 손에서 파천수라장이 펼쳐지자 푸른 요기 덩어리가 기사의 가슴팍을 완전히 함몰시켜 버렸다.
세 명의 시가단장 중 한 명이 피를 토하면 쓰러지자 그들의 사기가 바닥을 쳤다.
"후퇴의 나팔을 불어라. 후퇴한다."
후퇴의 나팔 소리가 들리자 이왕자의 총기사단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지금이다. 공격의 북을 울려라. 놈들을 추적한다. 빼앗긴 땅을 한 치라도 더 찾는다. 모두 돌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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