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2)
"당분간 그 검은 착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럴 생각이다. 이게 여기 있다는 것이 알려 지면 곤란해 질 테니 마녀와 반사르가의 일이 해결될 때까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지."
"좋으신 생각입니다. 저희가 숨은 인커전이나 첩자를 잡아낸다 해도 계속 밀려드는 사람을 대상으로 일일이 조사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반사르가의 눈과 귀 나아가 시몰레이크 후작의 눈과 귀도 엠버스피어에 확실히 있습니다."
"다른 보고할 일이 없으면 그만···."
테츠와 레베카는 작전 회의실에서 나오며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마치 뭘 먹다가 그냥 나온 것처럼 입맛이 개운하지 못해."
"저도 마찬가지예요. 에르제베트의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알지만 어쩔수 없어. 이젠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마교 전체가 걸린 문제라고 메흘린의 말도 빈말이 아니야. 영감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영감의 들고 있는 기름 잔에 불을 붙이면 안 돼. 조심해야 한다고."
"조용한 곳을 하나 준비할 겁니다. 제단을 하나 만들어야겠어요."
"너도 음침한 지하가 좋은 거냐? 네크로맨서나 마녀들은 왜 멀쩡한 건물 놔두고 땅속으로 기어들어 가려 하지?"
"당연한 이야기죠. 좋지 못한 짓을 하려면 남의 이목을 피해야 하고 사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되도록 깊은 굴속이 안성맞춤인 거죠."
"너도 팔 거야?"
"가능하다면요. 저쪽은 상당한 등급의 흑마녀예요. 제대로 상대하려면 저도 그에 따르는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그럼 성내 지하 창고를 비워 줘?"
"아뇨. 장소는 제가 구해 볼게요."
"좋아, 나는 잠시 아리스토틀을 만나보고 올게."
"무슨 일로요?"
"케이사르가 코발이라는 자의 이름을 들먹였지?"
"네 확실히 코발이라고 했죠."
"놈은 사람이 아닌 마족이야. 마족에 대해서는 마법사만큼 잘 아는 이가 없어. 더욱이 이번 원정에 마족 최고 권위자가 와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면 정보를 알 수 있을 거야."
"좋아요. 그럼 각자 맡을 일을 하죠. 나중에 저녁에 봬요."
테츠는 창문을 열고 천마비행으로 날아갔다.
"어휴. 교주님은 늘 창문으로만 다니시네요."
"이게 빠르거든. 나중에 봐."
동녘의 마탑에는 테일리아드에서 온 조사대가 머물고 있다. 조사대의 책임자 레노번은 고대 서적을 탐독하고 고대어에 대해 가장 박식한 지식을 갖춘 마법사다.
현 테일리아드에서 그만큼 고대어를 특히 말라키 언어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단 한명 어반마르스의 역사학자 버클을 제외하면.
"코발? 가만있자. 코발이라··· 코발이라··· 이거 어디서 본 기억이 있긴 한데···."
레노번은 책장에서 여러 권의 책을 빼내 책상 위로 늘려 놓고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 그렇군, 여기 있다. 여기 있네요."
레노번이 테츠 눈앞으로 내민 책의 표지는 검은색에 붉은 글씨로 제목이 쓰여 있었다.
'마족의 계급과 서열'
레노번은 책을 펼치며 한참 찾다가 테츠 앞으로 한 페이지를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코발. 마족의 세계에서 유흥 삼품의 계급을 가지고 있으며 주도면밀한 계획가이다. 그는 잔인한 계획과 꾀를 잘 내어 사람을 혼란케 한다. 특징으로 사람 고기를 매우 즐기며 마법사를 가장 싫어한다. 마법사를 보면 반드시 불에 태워 죽인다가 아니라 구워서 먹는다네요."
"한마디로 군사 같은 놈이네. 계획을 세워 전략적인 작전을 구사한다고? 놈의 생김새나 특징에 관한 기록은 없나?"
"그의 본모습을 본 자는 없다. 그는 연극의 마왕이며 흉내의 대가이다. 수백 명의 인간 인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 번 본 대상의 인격을 그대로 모방도 가능하다. 성격, 목소리, 기억까지도 빼앗을 수 있으며 상대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항상 모습을 변화시키는 변신의 귀재이다."
"아. 접때 만났던 마족이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이유를 알겠군."
"그는 마족 세계에서 삼품의 계급으로 한 개의 군단을 이끄는 맹장이자 전략의 달인이다."
"귀찮은 놈이 넘어왔네."
레노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번에 발견한 마족이? 코발과 관계가 있다고 보십니까?"
"관계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코발 이놈이 이쪽 세계로 건너왔어. 분명히 자신의 부하들도 데려왔겠지. 코발의 부하들이니까 주인의 버릇대로 인간을 죽이고 가죽을 뒤집어쓰고 변장하는 거야."
레노번을 얼굴을 벌겋게 상기시켰다.
"이거 그냥 마족 한둘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닌데요? 삼품이면 군단 하나를 이끄는 마족입니다. 정말이라면 우리끼리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하시는 정보가 확실하다면 테일리아드는 전시 태세로 전환 될 겁니다."
"확실한 것일 테니 교주께서 그리 말하는 걸세."
"대현자님 오셨습니까?"
레노번은 입구에 들어서는 늙은 마법사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뭘 하는가? 어서 연락을 취하지 않고?"
"알겠습니다. 테일리아드로 급히 서신을 띄우겠습니다."
레노번은 빠른 걸음으로 급히 밖으로 나갔다.
"흠.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납니다."
"어? 레베카가 확실히 지웠다고 했는데 냄새가 나는가?"
"저는 마녀의 술법에 특화된 마법사 출신이었습니다. 마녀의 주술은 느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전하의 몸에서 두 명의 마녀 냄새가 납니다."
'이 늙은 생강 봐라. 개 코로구먼.'
"레베카는 직접 봤으니 잘 알 테고 저쪽 아칸 시티에도 고약한 마녀가 한 명 있었어."
"말씀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냄새입니다. 마녀의 술법은 인간 세상에 전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 말은 세상에서 마녀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없어지면 좋지요. 마녀치고 올바른 성정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언제나 악한 존재로 기억됩니다."
"착한 성정을 가진 마녀도 있지 않아?"
"세상에 착한 마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녀의 기술 중에 사람에게 이로운 기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녀를 아주 싫어하시는군. 세르자비 일황비도 마녀 출신이라고 들었네만."
"마녀로서의 성정을 버리신 분입니다. 테일리아드에서는 그 누구도 그녀를 마녀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럼 레베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순혈 마녀는 성황께서 감화시켰습니다. 레베카의 소유는 성황이시므로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일을 없을 겁니다."
"후후, 레베카가 사고 치면 성황 책임이다. 그 말로 들리는걸."
"하하 이 늙은이를 주책맞은 노인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레베카가 아리스토틀에 좋지 않은 마녀의 술법이 걸려 있다고 들었는데 그 내용에 대해 듣고 싶어."
"후후, 순혈 마녀라면 당연히 눈치챘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젊었을 적에 위치 헌터였습니다."
"위치 헌터? 마녀 사냥꾼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한창 멋모르고 혈기로 다닐 때이지요. 마녀 머리에 금화 열 닢이 걸려 있었는데 젊었을 적에는 아주 큰 돈이죠. 한몫 잡겠다는 마음으로 위치 헌터 팀에 합류했죠."
"수많은 마녀의 목을 베었겠구먼."
"위치 헌터가 하는 일이 마녀의 목을 베는 것이지요."
"왜 하필 목인가?"
"마녀는 죽으면 눈동자가 회색으로 변합니다. 마녀의 영혼이 사멸하면 그렇게 됩니다. 몸 전체를 가지고 움직이기 귀찮으니 증거물로 머리를 잘라 가면 편하지요. 그래서 마녀의 머리가 유행처럼 번진 적이 많습니다. 금화 열 닢의 유혹은 목숨을 걸 만큼 대단한 것이지요."
"그래서 몸에 걸린 그 술법은 뭐지?"
"제가 위치 헌터로 은퇴를 얼마 남겨 두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국왕의 부름을 받고 마법사 본업으로 복귀해야 했거든요. 저희 팀이 마지막으로 회색 마녀를 궁지에 몰았는데 은퇴 기념으로 그녀의 목을 저에게 맡긴다고 했습니다."
"회색 마녀는 소환술에 능통하고 주로 영을 다루는 마녀라고 들었어."
"그렇습니다. 회색 마녀는 사람의 정신을 미혹게 하고 영혼을 갈취하여 자신의 힘을 키우는 마녀입니다. 그 회색 마녀는 999명의 영혼을 갈취했고 마지막 천명째를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저희 팀과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마지막으로 일 검으로 마녀의 목을 쳐낸 것이 저였는데 머리가 잘린 마녀는 마지막 생명의 기력을 다해 저에게 저주를 걸었죠."
아리스토틀은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회색 마녀의 저주, 특히 자신의 생명을 소진하여 거는 주술은 아무도 풀 수 없습니다. 제 영혼의 생명이 점점 줄어 들어가는 것을 느꼈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 걸려 있는 주술이 그때 회색 마녀의 주술이란 말이야?"
"아닙니다. 지금 걸려 있는 마법은 다른 마녀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걸어 주었던 주술입니다."
"아주 복잡한 사연이 담겨 있는 것 같네."
"음. 기나긴 이야기지요. 제가 한창 마녀사냥을 할 때 딱 한 번 마녀 한 명을 못 본채 놓아 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사람을 해하는 악한 마녀는 아니었지만, 악한 술법을 모두 습득한 마녀였기에 팀원들은 그녀를 죽이길 바랐죠. 제가 몰래 그 마녀를 빼돌렸습니다. 그 이후 그녀가 저를 찾아 왔고 아시다시피 그런 상황이면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다는 것이고···. 하하, 위치 헌터임에도 몰래 마녀를 감춰두고 위태로운 줄다리기 같은 사랑을 했었죠. 제 생명이 거의 꺼져 갈 때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리버스 주술을 걸었습니다. 회색 마녀의 주술로 빼앗긴 생명만큼 주변 사람의 생명을 조금씩 끌어와 연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흠, 지금 내 생명도 뺏어 가는 거?"
"당치도 않은 말씀을. 제 제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조금씩 도와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 영원히 살아간다는 말이 되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정해진 수명에 다다르면 두 주술은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마녀란 끔찍한 것이군."
"그래서 저는 마녀는 질색이라···."
"레베카는 성질이 좀 있긴 하지만 성정이 좋은 녀석이야."
"당연히 그러하겠지요. 성황께서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중히 키우신 마녀입니다."
"글쎄 그게 나 때문이라는군."
"후후, 순혈 마녀의 피를 이은 아이는 성력을 누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욱 쉽게 자손을 가질 수 있겠지요."
"엥, 다 알고 있었네. 하하. 참."
"마족의 수뇌부에 속한 자가 이 세계로 왔다고 하니 두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마족은 자립으로 이 세계를 넘어오지는 못합니다. 누군가 차원에 구멍을 뚫지 않은 한 말라키들이 쳐 놓은 마법의 차원은 절대 마족이 뚫지 못합니다. 반대로 외부에서 누가 뚫지 않으면···."
"그런 미친 짓을 한 자가 반사르가의 케이사르 후작이라고! 확증할만한 증거를 잡은 건 아니지만 추측하건대 놈밖에 없어."
"그가 무엇 때문에 끔찍한 일을 벌이는지가 궁금하군요."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뭐 이것도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성황이 관련 있는 것 같아."
"생각보다 크고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은 기분이 듭니다."
"문제는 말이야. 내가 그 판세에 끼어들고 싶지만, 아버지의 눈총이 얼마나 거센지 이거 뭐 마음 놓고 움직일 수가 있어야지."
"이제 한번 뵐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진즉에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꾸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니까 막상 걸음을 내딛기가 그렇더라고. 이번 마녀 사건도 해결해야 하고 또 마족의 출현 지역이 롱홀드니까 내가 엠버스피어를 마음 놓고 비울 수가 없어."
"당분간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성력만큼은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력을 사용하게 되면 태자 전하의 신분이 노출되어 버립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이번 아칸 시티에서 성력을 사용할 뻔했어. 놈들은 몇 년째 나를 찾는 중이거든."
"조심하셔야 합니다. 놈들이 마족에게까지 손을 뻗은 것은 그만큼 철저히 계획을 진행 시켜 왔다는 소리입니다. 부디 현명하게 대처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전화의 불길로 번지면 제국은 금세 불타오를 겁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