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21)
"이번에 메흘린도 깨달은 바가 있는 모양이야. 내 행동을 이제 제지하지 않겠다고 하더군."
"그럼, 아칸 시티로 넘어가실 생각입니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아. 잉겔리움 광산으로 더 많은 사람을 보내야 해. 로만 울프가 눈치를 채고 모우루니 협곡으로 조사대를 파견했어."
"모우루니 협곡은 통과하기 쉽지 않은 곳이죠. 제가 살짝 손을 보면 아예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음, 그것 좋은 생각이다.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그리고 마족 놈들이 웅크리고 있는 숲에 불을 좀 질러야겠어."
"토끼몰이할 셈이군요."
"본격적으로 대처해야지 마교 키운다고 주변 애들 너무 풀어 놓았더니 제멋대로 행동하고 난리를 치는구먼. 이번에 단단히 후려잡아야지. 기간이 1년도 채 안 남았잖아?"
"황제 인계식이 내년부터 자유로워 지면 삼대 가문에서 후견인을 내세울 거예요."
"뻔한 놈이니 뻔한 행동을 하겠지."
"그렇지 않을걸요. 케이사르의 계획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많아요."
"음, 그놈 하나만은 제대로 파악이 안 돼.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가장 궁금한 놈이기도 하고.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지? 성황이 다스리는 제국을 상대로 패를 감출만큼 자신 있는 패를 손에 잡기라도 했나? 그것이 마족이라면 잘못된 패를 들고 있는 거고."
"내가 전면에 나서면 놈들은 당장 신성불가침 조약으로 묶어 버리려고 할 거야. 이렇게 자유로울 때 문제의 근원을 싹 다 뿌리 뽑아 버려야겠어."
***
마테니는 제자들을 불러 놓고 일장 훈시를 하고 있었다. 특히 모든 장로의 표적이 아델리오로 모였다.
"아델리오 너는 장로들의 결정으로 외부 활동이 전면 금지됐다."
"후, 전 정말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람들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 거지. 그동안 배운 기술이 충분하니 당분간 넌 그림자가 되어라."
"그림자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로미오와 함께하는 거다. 로미오가 하던 일을 너와 분담 시키겠다."
"엑, 그 지루한 일을···."
"지루한 일이 아니라 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명심해라. 너이기에 이 일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수시로 점검할 테니 잠자는 것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건 생각보다 지독한 벌입니다."
"그 정도에서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뭐, 위에서 결정한 것이라면 어쩔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로미오와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
테츠는 테드버드와 알프레드를 동행해 모우루니 협곡으로 포탈을 타고 건너갔다. 그동안 캐낸 잉겔리움을 엠버스피어로 옮기고 인원을 더 늘리기 위해서다.
혹독한 자연환경이기에 몸이 축난 인원은 다시 복귀시키고 새로운 인원을 보충했다. 그리고 경비를 좀 더 강화했다. 경비를 강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스톤 골렘을 한 마리 더 보충시키는 것이 다였다.
스톤 골렘은 테츠가 없어도 외부의 적은 충분히 판독할 정도는 된다. 자율행동으로 설정하면 이곳 분지를 돌아다니며 광부들을 보호할 것이다.
로만 울프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곳에 들러 그 사실을 주지시킬 이유도 있었다.
옮겨온 잉겔리움은 윌슨 대장간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주먹 크기만 한 잉겔리움은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한 아름이나 되는 잉겔리움이 창고 가득 채워져 있으니.
윌슨 대장간의 용광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인해 매일매일 잉겔리움을 달궜다.
테츠는 처리해야 할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했다.
테츠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누구로 할까 고민했다. 테드버드는 정이 많고 살인을 좋아 하지 않은 정통파 기사다. 기사도 정신을 중요시하고 사려 깊고 꼼꼼한 성격을 가졌다.
그의 판단력도 훌륭하다. 제자들이 한결같이 테드버드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을 보면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엘빈은 다혈질에 용맹하기로는 장로들 중의 최고다. 가끔 충동적인 행동을 해서 테드버드에게 한소리를 먹지만 엘빈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다.
알프레드는 테드버드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지략보다는 무에 더 치중된 인물이다. 실버팽과 세실리아도 충분히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
마테니야 말할 것도 없고 다 마교를 대표하는 믿음직한 검과 방패들이다. 하지만 테츠는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늘 생각했다. 무공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이 세계는 마법이 판치는 세계다. 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메테오 같은 것을 정면으로 맞으면 끝장이란 것이다.
공수 조화가 잘 되어 있는 무공이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갑자기 오성 육성의 내공을 가지지 않은 한. 마나도 그렇지만 평생 수련에 매진해야 마스터 소리를 듣는다.
무공도 마나도 그런 긴 수련 기간을 필요로 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노력한 대가에 따라 능력은 조금씩 조금씩 늘어간다. 신이 아닌 이상 하루아침에 고수가 될 수는 없다.
이 세계는 인간은 그나마 중원인보다 빠르게 내공을 모을 수 있는 신체를 가졌다고는 하나 고수 반열 즉 오성 이상 내공을 가지려면 최소 30년은 수련해야 한다.
그런데 칠무신. 그들은 팔성 내공을 가진 테츠와 견주어도 될 만큼의 실력을 갖췄다. 그들이 진심으로 덤빈다면 순수한 내공만으로 그들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가진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바로 성력의 힘. 그동안 테츠가 사용하기 꺼렸던 이유는 테드의 영혼이 성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힘을 키워나갔기 때문이다.
시련의 장을 거치지 않고도 성력을 힘을 꺼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테드의 영혼 때문이었다. 혁련광은 제삼자로서 환마귀혼대법에 걸린 테드의 영혼에서 성력을 끌어다 쓴 것이다.
이번 레베카의 실수로 인해 잠시 테드의 영혼이 풀렸으나 오히려 환마귀혼대법의 불안정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이제 불편 없이 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테츠는 그것을 시험하려 한다. 레베카가 테드의 영혼을 가라앉히는 것을 막은 이유도 성력 때문이다. 테드의 영혼이 없으면 성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레베카는 환마귀혼대법을 알 수 없었고 두 영혼이 아니라 한 영혼에서 둘로 나뉜 인격체라고 생각했다.
혁련광의 원래 목표는 단순했다. 주신 제국에 무공을 퍼뜨리고 무림화 시키는 것. 그래서 마교를 세웠다. 하지만 역사의 방향은 묘하게 흘러갔다.
그러기에 자신의 신분이 너무 높았다. 황태자로서의 신분이 가지는 벽은 테츠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자신은 그것을 벗어나려고 황궁을 나왔지만 브레니아스가의 피는 평범한 것이 아녔다.
자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의 고리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처도 벗어 날 수 없는 감옥과 같았다.
테츠는 그럴 바에야 당당히 정면으로 부닥치겠다고 경로를 수정했다. 이번 레베카 사건이 테츠에 준 동기부여는 상당했다.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움직이는데 제약이 사라졌다.
더욱이 메흘린이 무참히 밟히고 난 다음부터 매우 조심해졌다는 것이다. 어디로 움직이려고 하면 늘 투덜거리던 것이 깔끔히 없어져 버렸다.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세렌은 테츠를 앞에 두고 고개를 숙였다. 세렌은 테츠의 비밀을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믿을 만한 부하다.
세상 무서운 게 없는 살인귀이면서 가장 충직한 자다. 테츠가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 바로 세렌이다.
"너와 단둘이 가볼 곳이 있다."
"알겠습니다."
"어딘지는 궁금하지 않고?"
"스승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딘지 상관없습니다."
"좋아. 좋은 마음가짐이다."
세렌과 단둘이 샘필드 마을 아래로 이동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샘필드 마을은 메테오에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몬테그레 숲으로 간다. 여기서 이틀 거리니 우리 둘이 달리면 하루 만에 주파할 수 있을 것이다."
세렌은 이유를 물을 필요 없이 테츠의 뒤를 따랐다. 테츠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말에 의문을 달 필요가 없고 그가 하자면 망설임 없이 움직일 뿐이다.
테츠도 이것을 알기에 세렌만 대동하고 온 것이다. 몬테그레 숲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메흘린에게 설명했다. 이전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난리 쳤을 메흘린이다.
하지만 그도 이번 사건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던지 테츠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테츠는 빠르게 천마비행으로 달렸다. 내공의 차이로 인해 세렌의 속도를 맞췄다. 세렌은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테츠를 따랐다.
"힘들면 이야기해라. 조금씩 쉬어 가면서 가도 된다. 괜한 의욕으로 체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체력 안배는 긴 싸움을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알겠습니다. 피로도가 쌓이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테츠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레서 힐을 걸었다. 세렌의 몸에서 금빛 빛이 반짝거리며 돌았다.
"웃, 다시 힘이 납니다. 몸이 한결 가뿐해진 것 같습니다."
"피곤이 쌓이면 다시 이야기해라. 멈추지 않고 갈 것이다."
사실 세렌은 아주 기쁜 상태였다. 자신이 가는 곳은 몬테그레 숲이다. 마족이 득실거리는 곳 다른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휩싸이거나 걱정부터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렌은 강자와 싸울수 있다는 것에 기뻐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동안 제대로 싸운 적이 없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요번 마테니 제자 구조에서 겨우 한 명을 베었다. 그 한 명으로는 손맛조차 제대로 느껴 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대로 몬테그레 숲에 간다면 정말 원 없이 싸울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니 흥분도 되었고 손이 근질근질한 것이 미칠 지경이었다. 마족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마물이 아니다. 신체 능력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위다. 내공이 없었다면 그리고 손에 잉겔리움 무기를 잡지 않았다면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괴물들이다.
예전 마력을 가진 말라키가 마족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말라키가 가진 힘을 귀찮게 여긴 신에 의해 대를 잇지 못하고 멸족당했다.
지금의 마법사는 말라키에 비하면 형편없이 나약해진 상태였다. 신은 인간이 그런 막강한 마력을 사용하는 것을 제어했다. 말라키 이후 인간은 마력의 힘을 얻을 수 있는 폭이 평범한 수준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테츠가 레서 힐을 걸어주니 세렌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몬테그레 숲 근처로 올 수 있었다. 테츠는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더니 세렌에게 말했다.
"여기가 적당할 것 같다.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든든히 먹고 체력을 올려놓자 뭐든 배불러야 신이 나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땔감을 마련해 오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빈손으로 왔는데 굳이 사냥까지 해서 양념 안 된 고기를 먹을 필요 있나. 그놈 말대로 기술은 쓰라고 있는 것이다."
테츠는 몬테그레 숲이 보이는 곳에 다크 디멘션 포탈을 사용했다. 디멘션 포탈에 기록되는 장소는 열 곳. 먼저 샘필드 마을의 기록을 지워 버리고 몬테그레 숲을 새로 그려 넣었다.
"가자. 밥은 집밥이 최고다."
테츠와 세렌은 오렌시아의 시중으로 든든히 배를 챙겼다. 다시 몬테그래 숲으로 온 테츠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든 좋다. 한 마리만 잡아라. 족제비든. 늑대든 여우든 상관없으니 눈에 걸리는 놈으로 한 마리만 있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숲으로 들어가기 전 사냥을 시작했다. 잠시 뒤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한 테츠는 즉시 지풍을 날려 여우를 잡았다.
곧바로 죽은 여우의 사체를 라마단의 정수로 되살려냈다. 여우에 사령의 눈을 걸고 숲 안으로 들여보냈다.
"난 잠시 숲 안을 정찰 할 테니 넌 주변의 기척을 감시해라. 나는 사령의 눈에 집중하겠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눈에 띄지 않고 숲속을 조사하기에는 숲에 사는 짐승만큼 편리한 것도 없을 터. 테츠는 여우를 이용해 사령의 눈으로 숲 안으로 들어갔다.
레베카가 캐어낸 정보에 의하면 이번에 넘어온 마족의 우두머리는 코발이라는 자다. 마족 전문가인 레노번은 코발을 전략의 기재라고 했다. 사람 고기를 즐기며 사람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 흉내를 내며 한 개의 군단을 이끈다.
먼젓번 사람의 탈을 뒤집어쓰고 윌슨 대장간을 습격한 것도 코발의 지시였다.
"자고로 뱀을 잡을 때는 독니가 있는 대가릴 먼저 잘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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