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53)
"엠버스피어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아델리오가 배신한 모양이다. 제시어스 왕자를 납치해 달아났어."
마테니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감히 이놈이!"
"로미오가 따라붙었고 다른 제자들도 즉시 추적을 시작했다. 메흘린이 병력 분산을 줄이고자 일단 장로들은 묶어 두었다."
마테니는 심장이 크게 뛰었다. 자신의 제자 중 배신자가 나왔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교 내 분위기가 가장 좋지 않은 세력으로 늘 눈총을 받아왔던 터에.
"너도 알다시피 아델리오 그놈은 보통 똑똑한 녀석이 아니다. 녀석은 내가 없는 틈을 타 그리고 네크로맨서의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알고 움직였을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레베카 아칸 시티내에서 네크로맨서의 기술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이곳 조사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제시어스 왕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일이 복잡해져."
"그럼 아칸을 벗어나는 편이···."
"아무래도 그래야 할 듯하다."
마테니는 힐긋 롭시드를 곁눈질했다.
"저 녀석은 걸림돌이 될 텐데요?"
테츠는 콜라다를 뽑았다. 롭시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도 암살자다. 죽음에 대해서는 초연한 상태일 것이다.
"밤의 자매단에서 최고라 불리던 암살자지. 그런 너는 너무나 쉽게 밤의 자매단을 배신했다. 그에 대해 할 말이 있나?"
"말했잖습니까? 제가 밤에 자매단에 남은 이유는 하나 새턴의 날개를 죽이는 것과 밤의 자매단을 와해시키기 위해서란 겁니다. 고로 밤의 자매단을 배신한 적은 없습니다. 계획이었을 뿐."
"좋아. 그 말을 믿어보지."
테츠는 롭시드를 겨눈 콜라다를 거둬들이고 점혈을 풀어 주었다.
"마테니 가자."
두 사람이 창밖으로 몸을 날리려 하자 롭시드가 다급히 불렀다.
"저도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지금 상태에서 넌 걸림돌에 지나지 않아. 따라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말리지는 않겠다만."
"그럼 제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 주십시오."
"싫어. 가자 마테니."
테츠는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마테니는 뒤를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궁금하면 알아서 따라서 와라."
롭시드는 망설이지 않고 마테니의 뒤로 따라붙었다.
천마잠행을 펼치며 건물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두 사람을 쫓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곧 두 사람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롭시드는 포기하지 않고 내달렸다.
***
시몰레이크 후작은 손에 쥔 편지를 촛불 위로 가져갔다. 편지는 금세 불에 타올라 재가 되었다.
"프로이시어 몰레이크에게 전갈을 띄워라. 지금 군단을 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선봉에 불손한 세력을 화살 받이로 내세우라고 해. 곰도 잡고 곰이 잡은 물고기도 가질 때다."
"좋으신 소식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밤의 자매단이 마지막에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군."
"서두르겠습니다. 공주의 사건으로 제이미가 왕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때가 기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제이미가 왕궁에 머물 때 빠르게 밀고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
"당장 부대로 복귀하세요. 여기는 저 혼자 충분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저를 노리지 못할 겁니다. 케이사르 후작께서 더 많은 기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제이미 백작 당신은 부군단장입니다. 이렇게 자릴 쉽게 비우시면 군의 사기가 떨어질 겁니다."
제이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주님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저는 준비를 끝내는 즉시 군단으로 복귀하겠습니다."
***
"시몰레이크가 움직인 모양이다. 에르제베트 지금 당장 코발에 연락을 취해라. 놈이 반드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새턴의 날개가 매우 좋은 함정을 파 놓았다. 생각대로 보통 놈이 아니야. 이번 기회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렇지 않아도 이미 퍼밀리어를 보내 놨습니다."
"잔버크, 잔버크에서 모든 것이 결판난다."
***
-휙
간단하게 성벽을 넘은 테츠와 마테니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경신은 체력을 갉아먹으니 군단에서 말 두 필을 빼내 오자."
샤르미 협곡은 잔버크와 아칸을 잇는 경계점이다. 샤르미 협곡을 지나면 샤르미 평원이 나오고 샤르미 평온을 넘어서면 바로 잔버크 지역이다.
샤르미 평원에는 군단이 진을 치고 있다. 오크는 평원 끝자락 즉 잔버크 지역에 진형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군마를 지키던 병사들을 제압한 두 사람은 말을 몰고 평원을 가로지르다 오크를 우회하여 북쪽으로 달렸다.
테츠가 아칸 시티를 벗어날 때부터 머리 위에는 까마귀 수 마리가 날고 있었다. 까마귀는 테츠의 움직임에 맞춰 날고 있었다.
테츠는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올랐다. 하늘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쏜살같이 내려왔다.
테츠는 까마귀의 목을 잡고 꺾어 죽여버렸다. 그리고 라다만의 정수로 다시 살려냈다
다시 살아난 까마귀에 사령의 눈을 걸었다.
"놈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해서 나를 인도해."
시체가 된 까마귀는 회색 눈빛을 희번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까마귀는 서쪽을 향해 날았다.
"가자, 마테니."
"네. 마스터."
"너무 상심하지 마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애초부터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놈이다."
"아델리오가 배신할 줄은···. 나대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 그런 심성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모든 것이 연기라고 봐야 한다. 아주 철저하게 놈의 연기에 속았던 것이 우리다. 생각해 봐라. 아델리오는 쓸데없이 나섰어. 그리고 자신은 매우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것을 늘 강조했지. 자신의 역할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밖에서 사고를 너무 치니까 제시어스 왕자의 경호로 붙인 것인데···."
"놈은 로미오가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도 로미오가 너무 한곳에 묶여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대체자를 찾고 싶었고 놈은 그것을 노린 것이다. 이놈은 철저히 계획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구나."
"윌슨 대장간 사건도 몬테그레 숲에서도 그의 행동이 조금 과하지 않았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녀석은 쓸데없이 나댔어. 거기다 지나칠 정도로 똑똑하지."
"처음부터 이상하다 했습니다. 테드버드가 그렇게 자신을 원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손가락질받는 팀으로 들어왔을 때부터가···. 모든 것이 계획적인 거였습니다."
"내 추측이다만 놈이 아마 밤의 자매단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물 새턴의 날개가 아닐까 해."
"아! 어쩌면···."
"밤의 자매단을 망쳐 놓은 것이 우리 마교다. 그리고 내가 가장 핵심이지. 마테니 네가 밤의 자매단 단장이었다면 가만히 있겠느냐? 전설이 둘이나 죽어 나간 상황인데 말이야."
"그렇다면? 가장 좋은 복수 기회를 잡았는데 왜 제시어스 왕자를 죽이지 않고 납치했을까요? 설마?"
"그래, 그 설마다. 놈은 지나치게 똑똑해. 생각해 봐라. 손에 쥔 암꿩만 죽이면 손해지. 암꿩을 이용해 수꿩을 유인할 수 있는데 말이야. 한꺼번에 둘을 잡을 기회인데···. 그 똑똑한 놈이 그런 기회를 살리지 않을 수 없었겠지."
"태자 전하 느낌이 이상합니다. 저만 가도록 해 주십시오."
"갑자기 웬 태자 전하 타령이냐? 내가 어떻게라도 될 것 같냐?"
"···. 그런 사지로 태자 전하가 가셨다는 것을 성황께서 아시면 크게 화를 내실 겁니다."
"하긴 골치 아프긴 하지. 그 영감 난리 칠 것이 뻔한데. 그 영감 거짓말하는 것을 더 싫어해서 거짓을 고하지도 못하겠고···."
"태자 전하 차라리 제시어스 왕자를 포기하심이···."
"이건 제시어스 왕자 문제가 아니다. 우리 마교가 농락당한 것이 아니냐? 감히 마교를 무시하고 그런 일을 벌이다니 용서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은 계속 말을 달렸다. 무엇보다 테츠의 성격을 잘 아는 마테니는 더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태자를 지켜야 한다는 각오뿐이었다.
그들이 지나가고 난 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롭시드가 말을 몰고 나타났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봤다. 자신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도는 저 까마귀는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자신을 이곳까지 이끌고 왔다.
까마귀는 다시 자신의 머리 위를 세바퀴 돌더니 서쪽으로 날아갔다. 롭시드는 까마귀 뒤를 따라 달렸다.
어느새 달이 어두워 왔다. 어둠이 내려앉자 하늘 위 까마귀도 어둠에 묻혔다. 특히나 검은 새에다 달빛도 적어 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레베카도 놈을 추적하는데 애로사항이 있는 모양이다. 괜한 체력 낭비를 할 필요 없이 우리도 날이 뜰 때까지 쉬는 편이 낫겠다."
"제가 노숙할 장소를 물색해서 정리하겠습니다."
마테니는 주변을 정리하고 모닥불을 지폈다. 이곳은 오크 점령지역이라 모닥불을 보면 오크가 몰려올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모닥불은 활활 타올랐다. 마테니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마라. 사람 사는 곳이다. 이런저런 일은 당연히 생기기 마련이지.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가 더 관건이다. 한층 더 마교를 강하게 결집시킬 테니까."
"아델리오는 아주 똑똑한 놈입니다. 제시어스 왕자를 죽이지 않고 납치한 것은 마스터를 노린 것입니다. 놈은 마스터가 자신을 추적해 올 것을 알고 제시어스 왕자를 납치한 것입니다. 마스터의 실력을 뻔히 아는 아델리오가 자신 있어 하는 것은 그만큼 철저한 대비를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메흘린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놈은 나에 대해 반만 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야."
"적어도 루옌성에서 오크 사만을 단칼에 죽여 버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놈이 무슨 흉계를 꾸몄을지 걱정입니다."
"잠이나 자둬. 부딪쳐 보면 답이 나올 걸 미리 걱정한다고 답이 나올 것은 아니야."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제시어스 왕자를 포기하고 잠시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닌지."
"참, 나 계속 걱정, 걱정, 걱정. 너가 중심을 잡아야지 애들이 믿고 따르지. 오늘 온종일 한심한 꼴을 보이는구나."
"죄송합니다."
"로미오와 부르스 일행이 아델리오를 추적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거리를 봐서는 녀석들이 먼저 아델리오와 조우할 수도 있어. 문제는 아델리오가 그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거다. 녀석은 필히 추적해 올 것을 알고 그에 대한 대비도 세워 놓았을 것이다."
"아가므네를 통해 일곱 전설에 대한 정보는 다 알고 있었는데 아가므네도 새턴의 날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롭시드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의 머릿속을 들여다봐도 새턴의 날개에 대해서는 작은 조각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철저히 비밀을 지키고 왔었기에 수천 년 동안 조직을 유지해 왔던 것이겠지."
"정말 아델리오가 새턴의 날개일까요?"
"추측일 뿐이다. 직접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든지 해야 알 수 있을 거야. 체력을 아끼자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그럼 쉬고 계십시오. 오크가 불빛을 보고 기어 올지 모르니 주변에 거미줄 조금 쳐 놓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몇 시간이 나 지난 뒤에 마테니가 돌아왔다.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각자 마련된 침구에 몸을 뉘었다. 군단에서 군마를 훔쳐 올 때 마침 노숙 장비를 장착하고 있는 정찰병용 말이었다.
새벽이 가까웠을 때 한참 잠을 자고 있던 마테니가 눈을 부릅떴다.
침낭 밖으로 나온 마테니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때 테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놓고 자신의 기척을 흘리며 오고 있잖으냐? 다가갈 테니 내가 누군지 알아 달라고 하고 있어."
"롭시드가 여기까지 저희를 따라 왔군요."
"아, 이놈이 한참 잘 자고 있는데 부스럭 소리를 내서 사람을 깨우네. 모닥불이나 더 밝혀 놈이 알아서 기어 오게."
"네 마스터."
잠시후 진짜 부스럭 소리와 함께 롭시드가 모습을 보였다.
"새벽하늘이 보일 정도면 다시 움직일 테니까 너도 그때까지 쉬어."
롭시드는 모닥불 주변으로 걸어와서는 잡풀 위로 벌렁 누웠다. 그리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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