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59)
눈 앞에서 흔들리는 코발의 머리통과 머리통에 붙은 척추는 몰레이그의 머릿속을 텅 비게 했다.
손을 앞으로 잡아서 목을 뜯으며 척추뼈까지 함께 뽑는 기술이다. 특히 사자를 오랫동안 다루었던 몰레이그는 네크로맨서의 이런 기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테츠는 몰레이그 앞으로 코발의 머리를 던졌다.
"히익!"
몰레이그는 기겁하고 뒷걸음질 쳤다.
"살고 싶냐?"
"당연한 소리를···."
"네놈은 이곳에서 오크를 제어하고 있었지? 아니면 다른 흉계를 꾸민 거냐?"
"어떻게 당신이 라마단의 정수를?"
"사레센의 사제들이 쿠젠의 밤을 점령했다. 이젠 네크로맨서의 사막도 평온을 되찾았지. 나는 아잠바크의 제자며 사막의 네크로맨서를 통합한 최초의 네크로맨서다."
"아잠바크! 그는 성황 잉그람이 직접 목을 베어 죽였어.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단 말이다."
"멍청이! 라마단의 기술을 무시하지 마라. 라마단의 정수를 품고 있는 이상 라마단은 불멸자다. 너도 척추뼈가 뜯겨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군. 죽으면 사령으로 살려 내주마."
"자, 잠깐! 아델리오를 만나 봐야지. 그는 제시어스 왕자를 볼모로 잡고 있다. 그리고 또 한명의 마교 제자도 잡고 있지. 안내해 주겠다."
"허튼짓할 생각 마라. 네 어깨에 달린 머리통은 내 것이니까."
"물론이다. 나도 살려고 하는 짓인데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앞장서."
몰레이그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오크 무리를 바라봤다. 스켈레톤 무리는 오크와 비등한 전투력이고 리치는 상당히 강하다 하지만 머릿수는 오크가 월등하다. 싸움이 격해지면 결국 오크가 망자 무리를 제압할 수 있긴 있을 것이다.
우르카도 가세했으니 곧 망자를 제압하면···.
"움직이라고! 여기서 뒈지고 싶냐? 머리통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 알았다고···."
몰레이크는 손바닥을 바닥에 짚고 작은 소환진을 그렸다. 그러자 백골로 된 늑대 한 마리가 소환됐다.
뼈다귀로 되어 있지만, 덩치는 송아지만 한 거대한 녀석이었다.
몰레이그는 늑대 위로 올라타며 말했다.
"따라 올 수 있다면 따라서 오던지···."
그 말을 끝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테츠는 바로 옆으로 붙으며 말했다.
"이런 느림보 늑대로 무얼 하려는 거냐? 딴짓하면 바로 내 물건을 찾아가겠어."
"히익! 괴물 같은 놈."
몰레이그는 혀를 내두르며 달렸다.
몰레이그가 탄 늑대는 울창한 숲 안으로 들어갔다.
숲속으로 얼마 정도 들어갔을까 테츠는 이미 많은 무리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공터에는 수많은 오크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몰레이그를 태운 늑대가 지나가자 오크가 물러서 공간을 만들었다.
주변은 울창한 수목 지대였으나 고목은 밑등걸만 남겨 놓은채 벌채가 된 상태였다. 그중 북쪽의 가장 큰 고목은 다른 고목보다 조금 높게 잘려져 있었는데 최소 여덟 명이 양팔을 펼쳐 이을 정도의 거대한 고목이었다.
그 고목 위에 아델리오가 단검을 제시어스 왕자에 목에 겨눈 채 테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아델리오. 잘 지냈냐? 안 본 사이에 간이 많이 커졌구나."
아델리오는 답이 없다.
"설마, 이놈들로 나를 막겠다는 계산은 아닐 테지?"
그때 언제 왔는지 알렉스가 아델리오 옆으로 걸어 나오며 외쳤다.
"저쪽을 봐라."
마법사 알렉스가 가리킨 곳에는 역시 잘린 고목이 있는데 그곳에는 말뚝이 하나 박혀 있었고 알몸의 사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바로 로미오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궁수가 저놈을 벌집으로 만들 것이다.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아라."
그때 몰레이그가 뛰어들며 말했다.
"그 정도로는 안 돼. 라마단의 정수를 이은 놈이다. 계획을 수정해. 저놈은 악마닷!"
몰레이그는 고함을 내지르며 뛰어올랐다.
알렉스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벙긋이는 순간
"크아악!"
"우왁"
"케엑"
가래 끊은 소리와 함께 오크들이 집단으로 나자빠졌다.
모두 로미오를 겨누고 있던 오크의 궁수들이었다.
오크들은 온몸이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라마단의 헬 스플린터다."
몰레이그가 고함을 치며 아델리오를 바라봤다.
"그만둬라. 우리가 저놈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제시어스 왕자라도 죽여야 한다."
그러나 아델리오는 제시어스 왕자의 목에 가져다 댄 단검을 움직이지 않았다."
-펑! 펑! 펑!
오크의 무리 속에서 폭발음이 연속으로 들렸다.
"커프스 익스플로전 저놈은 괴물이라니까. 아델리오! 빨리 제시어스 왕자를 죽여라."
그때야 아델리오가 고함을 쳤다.
"멈춰, 그렇지 않으면 제시어스 왕자가 죽는다."
아델리오의 고함이 끝났을 때 테츠는 거꾸로 매달린 로미오 앞으로 날아내렸다. 살아남은 오크의 궁수가 활을 날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화살이 로미오를 향해 날아왔지만 테츠는 기합 한 번으로 화살의 방향을 돌렸다.
테츠는 재빨리 지풍을 날려 묶인 로미오의 밧줄을 끊었다.
"한심한 놈 적에게 잡히다니 그러고도 마교의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입을 놀릴 거냐?"
"죄송합니다."
로미오는 완전히 벌거숭이였고 무기조차 없었다. 고문을 당했는지 그의 몸에는 검자국과 채찍 자국이 수도 없이 나 있었다. 특히 등 피부는 포를 떴는지 아예 뜯겨 나가 있었다.
"이제 너를 도울 수가 없다. 네 능력으로 이 난관을 돌파해라."
"알겠습니다."
"어이, 아델리오. 네가 새턴의 날개라는 것을···. 나도 깜박 속았구나."
"···."
아델리오는 말이 없이 제시어스 왕자의 목에 댄 단검을 보며 말했다.
"사케논 사막의 독전갈 페리와 맨사라 숲의 푸른 지네, 한 번 물리면 끝이라는 블랙 스네이크의 카미자 독, 즙을 마시면 온몸이 마비된다는 신경초 화풀이 냉이, 죽음의 신경독을 가진 거미 자이언트 로미의 독이빨에서 추출한 독, 이 세상에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파충류 땅굴속이 알라수의 땀샘 독. 그것들이 이 단검에 묻혀있는 독의 종류다. 제시어스 왕자는 이 단검에 닿는 것만으로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더 이상 날뛰면 제시어스 왕자는 네 손으로 죽이는 꼴이다."
테츠가 웃으며 말했다.
"제시어스 왕자를 납치한 것은 나를 유인하려 함이지? 나를 잡기 위해 마족의 우두머리 코발을 내세웠고? 코발이라면 충분히 나와 싸울 만하다 판단 했을 거야. 어쩌냐 코발은 내게 목이 뜯겨 죽었는데?"
"경고했다. 저놈은 악마다. 제시어스 왕자를 죽이면 여기 모두가 죽게 될 거야. 알렉스 너도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
"같이 타도되겠소?"
"멍청이 살고 싶으면 어서 올라타!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한다."
몰레이그가 탄 스켈레톤 울프 위로 알렉스가 올라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속으로 달려 사라져 버렸다.
"저놈도 디스펠 주술을 익혔군. 뭐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쫓아갈 테니."
도망가는 몰레이크에게 헬 스플린터를 펼쳤으나 눈치 빠른 몰레이그는 디스펠 마법으로 스플린터를 역 소환시켰다.
헬 스플린터도 일종의 소환술이다. 소환술에는 반드시 소환술식이 따라야 하지만 라마단 정수를 품고 있는 테츠는 소환술식 필요 없이 바로 헬 스플린터를 소환할 수 있다.
몰레이그는 늑대를 소환하고 숲으로 테츠를 데려오면서 늑대에게 소환술식 하나를 걸어 놓았다. 역소환 디스펠 마법.
만약 늑대주위로 어떤 소환술이 전개되면 즉시 역 소환 즉 소환 취소 주문을 걸어 놓았다. 그 한 수가 몰레이그와 알렉스의 목숨을 구했다.
"포기해, 아델리오. 제시어스 왕자를 죽인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내 상관할 바도 아니고. 만약 제시어스 왕자를 죽이면 이 숲에서 살아나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흥, 교주 당신은 고상한 자존감이 있지 않소? 마교가 제시어스 왕자를 지키고 있는데 일개 암살자 따위에게 빼앗겼으니 마교의 자존감은? 교주 당신은 그 사실을 용납하지 못하지 못할 것이오. 그 고목에서 내려오는 순간 제시어스 왕자는 죽는다."
"네가 새턴의 날개였다니 시몰레이크 후작이 머리를 좀 쓴 모양이다만, 제시어스 왕자 따위 죽든 말든 별로 감흥은 없어. 물론 네 말대로 자존감에 약간은 상처를 입을 테지만 여기 있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고 방금 도망간 두 놈과 시몰레이크 후작의 머리도 가질 셈이다. 그러면 제시어스 왕자의 생명과 바꿀 만하지 않을까? 자 어서 죽여라. 죽여봐라."
-핑
아주 미약한 소리. 그러나 테츠의 오감은 반신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팍
테츠는 소리도 없이 날아오는 작은 무엇을 잡았다. 그것은 한 뼘 정도 길이의 작은 화살이었다.
"흥, 오크 무리 속에 암살자들을 깔아 놓았군. 되돌려 주마."
"아악"
왼쪽 눈에 화살이 깊숙이 박힌 사내는 비명을 지르다가 곧바로 쓰러져 푸들푸들 떨다가 축 늘어졌다.
"이놈들 화살에도 독을 묻혀 놓았군. 로미오 너는 길을 뚫고 탈출해라 녀석이 노리는 것은 나다."
"교주님. 저는 끝까지 함께 싸우겠습니다."
"네 마음을 알지만 지금 너는 짐만 될 뿐이다. 알몸으로 무얼 하겠다는 거냐?"
-휘이익
-픽
테츠와 로미오가 있는 곳으로 오크와 오크 무리 속에 교묘하게 섞인 암살자들이 날아들었다.
"아델리오! 네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을 거다."
테츠 주변으로 소환진식이 그려졌고 소환진에서 리치가 솟아올랐다. 단번에 지독한 요기가 바닥에 깔렸다.
"네크로맨서의 스킬을?"
"나는 평소 네크로맨서 스킬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네크로맨서인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아."
-키에에에엑
리치가 날뛰기 시작하자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테츠가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아델리오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로미오를 두 번째 미끼로 쓰고 로미오를 먼저 공격한 것은 테츠를 로미오 쪽으로 유도할 속셈이었던 거다.
아델리오는 테츠의 무위를 충분히 조사해 왔기에 로미오를 이용해 테츠와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도한 것이다.
밤의 자매단에서 최고의 인재를 불러들였다. 세븐 어쌔신에 들지는 못하나 그에 못지않은 최고의 인재를 집결시켰다.
목적은 하나 밤의 자매단 암살 실패의 원인이고 세븐 어쌔신을 무너뜨린 마교의 교주 테츠를 잡기 위해서다.
놈들 중에 심지어 오크로 분장까지 한 놈도 있었다. 오크 사이에 섞여들어 테츠와 로미오를 향해 갖은 암살 무기를 쏟아 냈다.
지금 로미오는 무기라고는 아예 없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인 상태다. 쏟아지는 무기 세례를 피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날아오는 무기류는 암살자답게 지독한 독이 묻혀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스치기만 해도 절명할 수준의 독이다. 이들은 밤의 자매단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다.
그런 만큼 이들의 각오 또한 죽음을 초월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을 막기 위해서는 성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로미오가 걸리적거려 제대로 효율을 내지 못했다.
암살자들 또한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미오를 죽이지 않고 미끼로 잡아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테츠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공격 초점을 테츠가 아닌 로미오에게 맞췄다. 테츠의 인간성을 잘 파악한 새턴의 날개가 내린 명령이었다.
테츠는 인상을 치푸리며 날아 오는 무기류를 처냈다.
"이놈들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모두 한꺼번에 지옥으로 보내 주마."
테츠가 성력을 일으키는 순간 등줄기가 화끈 거림을 느꼈다. 테츠가 내려다 보니 가슴을 뚫고 시커먼 검 하나가 삐죽 솟아나 있었다.
뒤를 돌지 않아도 테츠를 공격한 것이 누구인지 단숨에 알았다.
"네가 새턴의 날개였구나!"
"당신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지. 그 결실을 보는 군."
"결실? 이따위 검으로 나를···. 우욱!"
테츠는 검은 피를 한 사발 토해냈다.
"조금전 아델리오가 말한 독말이야. 그 것이 다 담긴 검이다."
테츠는 휘청이다 무릎을 꿇었다.
"지금 보니 아델리오가 미끼였군. 크윽. 저놈이 왜 저런 행동을 한 거지."
"너무 똑똑해서다. 네게 명령을 받았잖아? 제시어스 왕자를 지키라고 말이야. 그는 지금 제시어스 왕자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다."
"로미오, 아니 새턴의 날개가 이던가?"
"이제 갈 때가 되었군. 수천 년 동안 밤의 자매단을 건드리고 살아남은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로미오는 테츠의 등에 꽂힌 검의 손잡이를 잡고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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