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0)
제이미는 간만에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군단의 야외 생활은 정말 피곤한 나날의 연속이다. 군단장이 머무는 천막은 병사들의 천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편한 침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끝낸 제이미는 오랜만에 진수성찬이 높인 식탁을 앞에 두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요즘 군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오크를 쫓아 행군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돌더니 이제는 다시 짐을 풀고 대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물론 그런 명령을 내는 것은 1군단장 노르딕 사령관이다. 노르딕은 가끔 아칸 시티로 가는데 돌아올 때마다 전군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제이미는 노르딕이 어디서 그런 명령을 받아 오는지 늘 궁금 해왔다. 지금 겉으로는 정권을 시몰레이크 후작이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암중으로 세력은 정확히 분할되어 있다.
두 왕자가 모두 죽었지만, 분명한 것은 윌리엄 대공은 아직 살아있고 차기 왕위 우선순위가 되어 버린 제시어스 왕자도 있다. 윌리엄 대공의 최측근은 아직도 윌리엄 대공과 아그니스 공주 곁에 머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윌리엄 대공을 깨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어반마르스에도 장문의 전문을 보냈고 테일리아드 킹덤 오브 소서러스 연합에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상태이다. 윌리엄 대공이 깨어난다면 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당장에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반사르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제이미는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복도를 따라 걷다가 설치된 쥐덫을 보고 혀를 찼다.
"아니 어떻게 관리했기에 집에 쥐가 들끓지?"
집사 케티스도 안면을 찡그리며 말했다.
"쥐가 아닙니다. 요즘 들어 회색 족제비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었는지 자주 출몰하고 있습니다. 시녀들이 보고 기겁을 했지 뭡니까? 족제비를 잡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입니다."
"족제비? 아니 그놈들이 왜 집안에 들어와?"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띄고 있습니다."
"안되면 사냥꾼을 불러 대대적으로 손봐야지 청소도 할 겸 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말에 사냥꾼 몇 명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남 시종 한 명이 달려왔다.
"이 녀석 조용히 움직이지 못할까? 뉘 앞에서 그리 방정맞은 모습을 보이는 거냐?"
케티스의 호통에 남 시종은 즉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 밖에 마차가 한 대 와 있사온데 제이미 백작을 초청한다고 합니다."
제이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를 초청해? 누구라고 하더냐? 시몰레이크 후작님이 보내신 자들이냐?"
"아뇨, 마부는 반사르가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반사르가? 아니 반사르가에서 나를 왜 찾지?"
제이미는 알 수 없는 느낌에 당황했다. 반사르가라면 친윌리엄파로 시몰레이크 후작과는 앙숙 사이다.
그리고 5군단장인 자신은 이미 시몰레이크의 친위대장으로 불릴 만큼 시몰레이크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반사르가에서 자신을 왜 찾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고위 계급을 지닌 자다. 후작이면 갓 백작을 단 제이미에게는 왕과 다를 바 없는 존재다.
"할 수 없군. 무슨 일인지 직접 가볼 수밖에···."
"외출 채비를 준비하겠습니다."
***
시몰레이크 후작은 늘 즐겨 앉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놀라운 일인데요? 반사르가가 먼저 고개를 숙여 올 줄이야···."
프로이시어는 시몰레이크 후작의 명을 처리하러 성내를 나갔다가 조금 전에 돌아온 참이었다.
이틀 전 반사르가의 전령이 방문했고 그로부터 반사르가로부터 정식 초청장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말한 것은 황태자 후임을 저희더러 정하란 말이지요?"
"그렇다니까. 놈이 내 속을 꿰뚫어 보고 있어서 섬뜩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빈말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이니 분명해. 그는 황태자 후임의 전권을 내게 맡겼어."
"그건 나는 대권에 관여하지 않겠다. 그러니 나에 관한 관심을 끊어라. 이 말처럼 들리는군요."
프로이시어의 날카로운 인상이 더 날카롭게 변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만약 내가 정한 황태자 후임을 아칸 왕의 자리에 앉히더라도 자신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 오히려 삼대 가문을 설득해 줄 것이라 했네."
프로이시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는 손에 쥔 패 중에서 가장 강한 패를 꺼냈습니다. 누가 그를 궁지에 몰았을까요? 아니면 그가 이제 진정으로 본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것일까요? 구미가 당기는 말이지만 선뜻 집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 이치로 공짜는 없습니다."
시몰레이크 후작은 프로이시어의 말을 되씹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이 자꾸 은연중에 제이미 백작의 이야기를 꺼내더군. 좋은 부하를 뒀다니 뭐니 하면서 말이야. 그런 상황에 왜 제이미 백작 이야기를 꺼내는지 이해가 되질 않더군."
프로이시어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이해되지 않는 말을 던지는 것은 상대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말일 겁니다. 제이미 백작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건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케이사르 후작은 그것이 신경 쓰인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제이미가 무얼 했기에 그러지? 참 저번 보고에 제이미 백작이 늦은 밤에 이곳에 들렀다 간 적이 있다고 보고를 받은 적이 있어. 어떤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왔다고 했지. 아마도."
그때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번쩍 떠졌다.
"어린아이라면? 혹"
"밖에 아무도 없냐?"
"네, 분부하십시오."
"며칠 전 제이미 백작을 봤다는 녀석을 데려와라."
프로이시어는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알기론 제이미의 가족은 오크에게 모두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가 그런 무위를 가지게 된 것은 소드 마스터를 만나 수련을 받았다고 했고 오크의 침공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 보니 마을은 이미 오크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일가족이 모두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제이미가 데리고 온 아이는 누구지? 밤늦게 아일 데리고 직접 찾아 왔다고? 그런데 아침 해 뜨기 전에 나갔어? 도대체 그 아이가 누구지?"
"케이사르 후작이 뜬금없이 제이미의 이름을 올리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후작이고 가문의 전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백작 나부랭이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는 것은 뭔가 케이사르에게 중요한 것을 제이미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입니다. 그것이 저희와 관계된 것으로 생각하고 후작님을 초청한 것입니다. 의중이 무엇인지 떠보기 위해서일 겁니다."
"너는 사람을 보내 제이미를 즉시 데려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뭔가 이상해. 케이사르 이 자식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 거지?"
***
오래된 원목의 탁자와 의자는 얼마나 사용했는지 앉은 자리에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작지 않은 덩치의 사내가 원목 의자에 앉아 탁자에 기댔다.
"그러니까 네 말은 시몰레이크 후작은 아무것도 모른다 이 말이지? 정말 웃기는 일이군."
"마녀의 감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는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이미의 단독 범행이라고 보기에는 말이 안 돼."
"그 부분은 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푸후훗. 너도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있나?"
"요즘 일어나는 일은 저를 당혹게 하는군요. 그 사건 이후 제이미 백작을 계속 주시하고 있지만 그의 주변에서 단 한 올의 빈틈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제이미 백작이 관여된 것은 맞고?"
"그의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는 분명히 데오랑트의 것입니다. 그는 데오랑트와 접촉이 있었고 데오랑트의 사기에 침습 당했습니다."
"데오랑크의 사기에 침습 당했는데 멀쩡하게 잘만 돌아다니는구나. 그가 신이라도 된다는 것이냐?"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이미 백작이 제단을 망가뜨렸고 데오뜨랑와 데오랑트를 빼돌린 것은 사실입니다."
"제이미 백작의 뒷조사를 해 봤더니 신기한 것이 나왔어. 우연인지 모르지만 아니 우연이 아니겠지. 놈은 피오레 마을 출신이었다."
"피오레 마을이라면 천한 마녀 피렌시아의 고향이 아닙니까? 그럼 나브 공주와?"
"웃기지? 놈은 나브 공주를 데리고 아칸 시티로 들어왔다. 아무몰드 격투장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더군. 그리고 그놈의 친형이란 자도 있었어. 아무몰드 격투장에 두각을 드러내자 곧바로 시몰레이크 후작의 눈에 띄어 그의 밑으로 들어갔고. 5군단에 배속되어 오크와의 전투에서 현격한 공을 세워 백작의 지위까지 받았다."
"저희는 바로 등잔 밑에 그 아이를 두고도 그동안 찾지 못했습니다."
"제이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큰 걸림돌이 될 거야. 그런 걸림돌은 걸려 넘어지기 전에 파내는 것이 옳아."
***
제이미는 마차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주변이 상당히 어두웠기 때문이다. 반사르가로 가는 길은 번잡한 길을 지난다.
그만큼 주변이 밝아야 하고 사람들 소음으로 시끌벅적해야 한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사방을 조용하고 심지어 풀벌레 소리까지 들려왔다. 더욱이 마차를 밝히는 등외에는 아무런 불빛도 보이지 않는 숲속 길이었다.
제이미는 이 길이 눈에 익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가장 안 좋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건의 한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그 때문에 악몽을 꾸곤 한다. 오렌시아와 나브를 납치해 폐가에 가둬 놓고 며칠 동안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제이미는 그 일을 아직도 후회하곤 한다. 그 둘이 무사히 그곳을 탈출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은 다 동원해 아칸 시티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오렌시아를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오렌시아는 아칸 시티를 떠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잔버크에 있는 피오레 마을로는 가지 않았을 거다. 그곳은 오크에 점령당했고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마차의 밖으로 느껴지는 풍경에 생각하기 싫은 추억이 떠올라 제이미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케이사르는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은 것일까?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마차의 움직임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덜컹거리는 움직임을 참지 못하고 제이미는 고개를 내밀었다.
"이봐, 어디로 가는 거지?"
아무런 대답도 들려 오지 않았다. 이곳이 어딘 줄 눈치챈 제이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아칸 시티에서 가장 북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근처 난민촌과도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귀족이란 신분을 가진 사람은 절대 오지 않는 곳이다. 이곳은 시민보다 심지어 노예보다 더 천한 취급을 받는 떠돌이 거지들이 몰래 아칸 시티로 넘어 들어와 자리 잡은 곳이다.
그래서 군데군데 폐허가 된 집도 많고 그런 집은 대부분 조잡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제이미는 마차의 밖으로 완전히 상체를 끄집어냈다.
마부석에 당연히 있어야 할 마부가 보이지 않았다. 말은 순전히 제멋대로 달리고 있었다.
제이미는 마부석으로 옮겨와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세웠다. 분위기가 싸한 느낌은 무언가 터질 것 같았다.
제이미는 마부석에 걸려 있는 등불을 집어 들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거의 무너져 가는 폐허 한 채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 폐허는 옛날 오렌시아와 나브를 가둬 놓은 지하실이 있는 폐허였다.
- 쉭, 쉬이익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마차 주변으로 몇 명의 인물이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모두 무장을 했으며 몇 명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제이미는 폐가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일단 복면을 뒤집어썼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로 찾아온 것은 아닐 테니까.
"네놈들은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거냐? 5군단장 제이미 백작이다."
제이미는 더듬거리며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제이미가 검을 뽑자 주변에 있던 인물들은 경계하는 투로 자세를 잡았다.
"조심해라. 놈은 엄청난 검사다. 모두 일시에 습격해야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제이미는 폐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타난 인물들도 제이미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제이미의 무용을 익히 들었는지 매우 신중한 자세로 움직였다.
"최대한 자신을 보호하되 안 되면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해라. 빈손으로 돌아가면 후작이 제이미 백작 대신 우리 목을 벨 것이다."
제이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폐허 안에서 어찌할 줄을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 순간 여러 명이 동시에 폐허 안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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