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계절
엠버스피어의 기사들은 펜도락을 가운데 두고 원을 그리며 돌았다.
"화살을 쏘아 놈의 움직임을 봉쇄해라."
기사 단장의 말에 활을 가진 기사들은 강철 화살을 시위에 올리고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강철의 화살촉을 삼성 마나의 힘으로 날리면 두꺼운 강철 갑옷도 쉽게 꿰뚫을 수 있다.
"후, 그딴 화살로 블러드 나이트의 몸에 상처를 줄 수 있을까 보냐."
"저 정도로 피를 뒤집어썼으니 마지막 주문을 걸 때가 아닙니까?"
"아니 좀 더 두고 보자고 신선한 피가 더 들어왔어. 어림잡아 생각하면 실수를 범하기 쉬워. 확실히 하는 것이 좋아. 그들이 그렇게 기대하고 있는데 불완전한 것을 주면 안 되지."
테츠는 두 사람의 사령술사를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펜도락이 이전 데스 나이트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보고 그를 조정하는 인물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기척을 찾아 나무 위로 움직이다가 으슥한 숲속에 숨어 있는 두 명의 사령술사를 찾아냈다.
그들은 테츠가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펜도락과 기사의 싸움에 열중하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 중원이나 이곳이나 사악하고 간악한 놈들은 꼭 있군."
"엇?"
돌연한 소리에 사령술사 두 명은 매우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뒤로 언제 온 건지 테츠가 서 있었다.
테츠는 지풍을 퉁겨내 두 사령술사의 요혈을 짚었다.
그리고 아혈을 찍어 목소리를 잠갔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 저 녀석을 해결하고 다시 올 테니."
두 사람의 몸은 완전히 굳었고 공포에 찬 두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테츠는 막 전투가 시작된 곳으로 달려갔다.
펜도막은 향해 쏟아졌던 화살은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그리고 시작된 학살은 지옥의 풍경을 그려냈다.
펜도락은 괴성을 지르며 기사무리 속으로 뛰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피해라. 우리는 놈의 상대가 아니다."
기사 단장은 고함을 치며 펜도락의 앞을 막아섰다.
펜도락의 검은 감정이 없는 사신의 검이었다.
방패로 막든 검으로 막든 모조리 잘라 버렸다. 그 어마어마한 힘을 경험한 기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테츠는 천마비행으로 펜도락을 향해 날아갔다. 손에는 어느새 뽑힌 데오뜨랑이 내공을 머금고 웅장한 검명을 토했다.
번쩍이는 검광과 함께 펜도락의 검을 쥔 손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본 기사들이 크게 고함을 쳤다.
"됐다. 검을 쥔 손을 잘랐다."
기사들이 다시 달려들어 검을 찔렀으나 펜도락의 강철 갑옷을 뚫을 수 없었다.
잘린 팔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역시 요기 때문에 검이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테츠가 다시 검을 들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잘린 팔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 처음에는 붉은 기류처럼 보였는데 다시 보니 그것은 피였다. 피가 마차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잘린 팔에서 솟아난 피를 끌어당겼다.
"저런!"
"괴물이다."
잘린 팔이 허공으로 들려지더니 잘린 부위가 맞춰지면서 다시 들러붙었다.
잘린 팔은 순식간에 원상복구 되었다.
"모두 비켜나시오. 들어오지 마시오."
테츠는 고함을 치며 천마비행으로 신형을 띄웠다. 그 순간 펜도락이 검을 휘두르며 역시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내려갓!"
테츠는 천마 삼검 천마섬으로 일격에 펜도락의 목을 쳐냈다.
요기를 완벽히 베어내는 검 데오뜨랑은 일반 검이 하지 못한 것을 너무나 쉽게 해냈다.
목이 떨어지자 붉은 피 분수가 치솟았다.
"대단하군. 그의 검은!"
기사 단장이 테츠의 일 검에 감탄을 내보내며 펜도락을 주시했다.
그 이변은 이번에도 펜도락에게서 벌어졌다. 목의 피가 서로를 끌어당기듯 당기더니 잘린 목이 다시 붙어 버렸다.
"끔찍하군. 저건 마물이다. 사람이 아니야."
"저놈 진짜 펜도락인거야? 펜도락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펜도락인 맞긴 맞는 거냐? 투구를 쓰고 있어 그를 알아볼 수가 없어."
"목이 잘렸다고 분명히! 그런데 저게 뭐야?"
살아남은 기사들과 용병들은 경악의 표정을 지으며 펜도락을 주시했다. 목이 완전히 붙자 무서운 기세로 테츠를 향해 덤벼들었다.
테츠는 이미 이전에 데스 나이트도 상대해 봤고 리치도 상대해 봤기 때문에 매우 놀라지는 않았다.
단순히 움직이는 펜도락은 절대 테츠의 상대가 아니었다. 더욱이 요기를 베는 검 데오뜨랑을 든 테츠에게 펜도락은 상성이 엄청나게 나빴다.
테츠가 고함친 덕분에 다른 기사나 용병은 접근하지 않았다.
테츠는 차분한 자세로 펜도락의 검을 쳐냈다.
"우와 저 용병은 도대체 누구지?"
"저 괴물을 상대로 물러섬이 없어. 그의 검을 봐. 검은색의 검을!"
기사와 용병을 완벽히 학살했던 펜도락이 테츠 하나에 막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테츠는 펜도락의 검의 쥔 팔을 다시 잘라 버리고 그의 가슴에 파천수라장의 일장을 날렸다.
파천수라장을 맞은 가슴 부위 갑옷이 우그러들려 큰 소리를 내질렀다.
펜도락은 몇 발자국이나 뒷걸음쳤고 다시 잘린 팔이 날아와 붙었다.
테츠는 욱신한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봤다.
"반발력이 대단하군.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야."
테츠의 파천수라장은 요기의 반발력에 위력이 많이 감소했다. 그런데도 갑옷을 찌그러트리는 수준이다. 기사들은 매우 놀랐다.
테츠가 어떤 공격을 했는지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워해머의 공격에도 생채기 하나 못 내던 갑옷이다.
요기 때문에 장력 위주의 공격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 테츠는 데오뜨랑에 내공을 올렸다.
펜도락은 데스 나이트와는 또 달랐다. 데스 나이트는 잘린 몸을 붙일 수 없다.
"이놈들은 이런 추잡한 마물만 계속 만들어 내는구나."
테츠의 데오뜨랑이 다시 한번 천마삼검을 쏟아 냈다. 데오뜨랑은 갑옷을 가르고 싶은 상처를 냈다.
하지만 그 상처에 뿜어져 나온 피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상처가 아물었다.
"이놈은 피에 저주가 걸려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펜도락이 피를 흘리며 쓰려진 시체 옆으로 가니 시체에서 쏟아져나온 피가 살아 있는 것처럼 펜도락의 갑옷 사이로 스며들었다.
"모두 잘 들어요. 놈을 유인 할 테니 동료의 시체를 수습하도록 하십시오. 놈이 시체의 피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모두 저분의 말을 들었지? 기회를 봐서 시체를 수습해."
테츠가 다시 한번 천마삼검으로 펜도락의 팔과 다리를 잘라 냈다.
"지금입니다."
놈이 재생할 동안 기사들과 용병이 달려들어 시체를 업고 뒤로 물러났다.
"피를 모두 지우세요. 놈은 피를 찾아다닐 겁니다."
펜도락의 팔과 다리가 다시 붙었고 망설임 없이 테츠를 향해 또다시 덤벼왔다.
그는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그러니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 따위로 놈을 멈출 수는 없었다.
"펜도락이 어떻게 저런 힘을 손에 넣었지?"
"악마다. 악마야. 저건 사람이 아니야."
기사들과 용병이 술렁이자 테츠가 고함을 쳤다.
"이놈은 악마가 아니고 네크로맨서가 만든 괴물입니다."
"네크로맨서?"
"네크로맨서라면 제국 이전의 사령술사가 아닌가?"
"아니 이곳에 사령술사가 있다는 말입니까?"
장내가 술렁이자 펜도락이 흥분해서 하며 기사들에게 덤벼들었다.
기사들은 기겁하고 흩어졌다. 다행히 테츠가 천마비행으로 날아와 펜도락의 검을 쳐냈다.
테츠의 움직임을 본 기사들과 용병들은 크게 감탄하며 소리를 쳤다.
"저 사람은 보통 용병이 아니다."
"엄청난 움직임이다. 대단한 실력을 갖춘 것 같아. 도대체 저 젊은이는 누구지?"
"그의 움직임을 보았는가? 마치 마법사가 움직이는 것 같아."
"저 괴물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어. 우리가 상처하나 내지 못한 괴물을."
기사와 용병은 탄사를 질러내며 감사의 눈빛으로 테츠를 바라봤다.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 땅 위에 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록 죽은 동료가 안 됐지만 산 사람은 그에게 구원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어서 놈을 죽여 주십시오. 동료의 복수를 해 주십시오."
테츠는 일검으로 펜도락의 목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리고 잽싸기 천마비행으로 날아올라 공을 걷어차듯 머리통을 후려 찼다.
내공이 실린 테츠의 발에 맞은 머리통은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목을 잃은 몸이 버둥버둥 됐다.
용병 한 명이 달려들어 잘린 목에서 투구를 벗겨 냈다. 드러난 얼굴을 확인하자 사람들은 공포에 소리쳤다.
"미친! 머리통이 살아 있어. 아직 움직이고 있다고."
"이 사람 펜도락이 맞아 그를 본 기억이 있어. 이 사람은 확실히 펜도락이 맞다고!"
"그가 어떻게 죽지 않은 괴물이 된 거지? 정말 네크로맨서의 소행인가."
"으, 과거의 악령이 부활했어. 네크로맨서가 다시 나타났다."
기사 단장만은 침착성을 유지하고 말했다.
"불로 태워 그렇지 않으면 부활할 거다."
테츠는 목 없이 발광하는 몸뚱이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안쪽 내용물이 그대로 흘러내리자 그제야 펜도락은 완전히 쓰러졌다.
그래도 목은 죽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눈동자까지 굴렸다.
"진심으로 소름 끼치는구먼."
"누가 저 머리통을 싸매도록 해. 증거로 가져가도록 하자. 놈이 부활하지 않게 몸은 태워 버려라."
기사 대장은 테츠에게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였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그대의 무용에 깊이 탄복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떠나볼까 합니다. 조금 더 조사해 볼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놈을 잡은 것은 그대이니 현상금을 받으러 성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찾아가도록 하지요."
"그대의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전 떠돌이 기사 테츠라고 합니다."
"테츠 기사님이 우리 모두를 살려 주셨으니 이 은혜 마음에 간직해 두겠습니다."
"동료의 시체를 수습하고 모두 엠버스피어로 철수하십시오. 쿠센 영주께 오늘 일을 정확히 전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오늘 벌어진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그들도 저희의 말을 믿을 겁니다. 테츠 기사님은 저희와 같이 가시지 않을 겁니까?"
"저는 여기서 더 조사해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부디 건사하시길. 모두 가자."
기사와 용병이 모두 물러가고 공터에는 불타는 펜도락의 몸뚱이만 남았다.
"내가 너희 같은 족속을 잘 다룰 줄 알아. 너희 둘 중 누가 상급자야?"
테츠는 온몸이 굳은 체 서 있는 두 사람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푸악, 네놈이 블러드 나이트를 죽일 줄이야? 네놈은 누구···. 악!"
"질문은 내가 한다. 너희는 대답만 해."
"우리를 어떻게 할 거냐. 어서 풀지···, 으악"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이지?"
테츠는 사령술사의 완맥을 움켜잡고 비틀었다.
"우아악, 그, 그만,"
"자 묻는 말에 대답하자. 너희는 누구와 손을 잡고 있지."
두 사람은 입을 처닫고 서로를 바라 봤다.
"그래 옆 사람이 신경 쓰인단 말이지? 먼저 말하는 놈은 살려 준다."
"페렌드 남작입니다."
우측의 사령술가가 먼저 외쳤다. 왼쪽의 사령술사는 분노한 얼굴로 자신의 동료를 쳐다봤다.
"난 약속은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야."
테츠는 오른손의 검지를 튕겼다. 파천혈옥지(破天血玉指)는 왼편 사령술사의 이마에 손가락만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힉!"
"약속은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지?"
"놈은 어디에 있어?"
"내일 올 겁니다. 블러드 나이트가 오늘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테츠는 불타는 시체를 가르치며 말했다.
"저게 블러드 나이트야?"
"그렇습니다."
"너도 네크로맨서지?"
"그, 그렇습니다."
"너희는 동료가 얼마나 돼? 죽여도 죽여도 끈질기게 기어 나오네."
"그럼 당신이 잰슨과 아사르를 죽인?"
"아, 드리코의 성에서 데스 나이트를 만든 놈들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들은 내 동료였습니다."
"동료의 원수를 보고 있는 셈이군 그래?"
"···."
"너희는 제국의 해악이야.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마물로 만들지 않나. 죽어 자빠진 시체를 일으키지 않나. 너희는 제국에서 없어져야 할 악성 종기 덩이야."
"우리는 무한한 지혜를 탐구하는 주술사일 뿐입니다. 단지 사람들의 눈에 좋지 않다는 것으로 우리를 무시하지는 마십시오."
"지혜도 지혜 나름이지 너희들이 추구하는 것은 없어져야 할 지혜다."
테츠는 다시 지풍을 날려 아혈을 점해 버렸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였다. 숲 안으로 한 무리가 말발굽 소리를 내며 접근해 왔다.
네크로맨서는 불타버린 펜도락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저쪽 숲속에서 말을 탄 인물이 속속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스문, 선물은 준비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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