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감
일단의 무리는 귀족의 복장을 한 사내와 기사들 그리고 용병 차림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홀로 서 있는 하스문에게 접근했다.
"하스문, 동료는 어디에 있소?
그러나 하스문은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체 그저 무심히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귀족의 사내가 턱짓으로 신호를 하자 뒤쪽에 있던 용병 한 명이 말에서 내려 앞에서 걸어 나왔다.
"하스문 페렌드 남작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까?"
그가 하스문의 어깨를 잡았을 때 하스문의 몸체는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그는 즉시 하스문의 맥박을 체크 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불에 반쯤 탄 시신을 발견했다.
검은 갑옷은 완전히 반으로 잘려져 있었다.
"이것 말입니다. 며칠 전에 보았던 블러드 나이트인 것 같습니다."
"뭐라고? 그것이 정말이냐? 누가 블러드 나이트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냐? 잘못 본 것은 아니고?"
"확실합니다. 이 갑옷은 블러드 나이트의 갑옷입니다. 그리고 머리통이 없습니다. 누가 머리를 잘라 간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블러드 나이트를 일반 검으로 저렇게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돼!"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네가 판단할 것이 아니지."
숲 안쪽에서 테츠가 모습을 보였다.
"기다리느라 지루했어. 꼭 안 올 것만 같았거든."
기사들이 검을 힘차게 뽑아 올리며 페렌드 남작을 보호했다.
"네가 페렌드 남작이지? 꼭 뭐 같은 놈들이 뭐 같은 짓거릴 하네."
"저놈을 잡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게 하라."
페런드 남작의 말에 용병 세 명이 말을 달려왔다.
테츠는 천마비행으로 마주쳐 가는 동시에 천마삼검 중 일검 천마섬을 펼쳤다.
세 개의 수급이 동시에 공중으로 치솟고 목을 읽은 몸뚱이는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저런! 저놈을 막아라."
테츠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의 검이 다시 한번 검기를 뿜었다.
"큭"
펜도락의 시체 곁에 멀뚱히 서 있던 용병 하나가 검기를 맞고 앞으로 엎어졌다.
"저놈을 죽여라."
페렌드 남작은 크게 고함치며 말 고삐를 당겼다.
기사들은 방패를 세우고 검을 뽑아 테츠를 향해 달려왔다.
테츠의 검이 검기를 뿌리자 기사들은 속절없이 말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저놈은 도대체 뭐냐?"
기겁한 페렌드는 말고삐를 힘차게 치며 박차를 찍었다.
나머지 기사를 모두 베어 넘긴 테츠는 숲 한쪽으로 달리는 페렌드 백작을 바라봤다.
페렌드 백작은 뒤를 돌아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다행히도 쫓아 오지는 않는 것 같았다.
"저놈은 누구인가? 블러드 나이트를 없앤 놈일까? 대단한 무위다. 저놈이 블러드 나이트를? 기사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블러드 나이트를 저놈 혼자 죽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반드시 놈의 동료가 있을 것이다. 이상해. 롱홀드에서 블러드 나이트를 상대할 만한 기사는 없을 텐데. 저놈은 어디서 나타났지? 설마? 이 사실을 빨리 보고 해야 하겠군."
페렌드는 말을 달리며 수시로 뒤를 돌아봤다. 그는 미행이 없다는 것 알자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드라코 성의 데스 나이트도 완전히 물 건너 갔다고 하더니 우리까지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이건 뭔가 꼬리를 물고 오는 게 분명해. 황궁에서 눈치를 챈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저런 놈이 어디서 나타났지?"
말을 달리는 페렌드는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
"제길 사람 많은 곳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는데 너무 겁이 없었나.?"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블러드 나이트를 없앤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놈이 블러드 나이트를 없앤 것이 확실한가?"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블러드 나이트의 시체는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저와 같이 갔던 기사와 용병이 모조리 그놈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솜씨는 엄청났습니다."
페렌드 남작은 북쪽으로 하루를 달려 에스카달의 요새에 당도했다. 에스카달 요새는 북방의 이민족과 오크, 오우거 등의 몬스터를 방어하기 위한 솔라리스 북쪽 방어선 중 하나였다.
이곳 요새는 완벽한 방어형 요새로 성곽이 유별나게 높고 매우 튼튼한 성문을 가진 요새였다. 이 롱홀드 요새들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자급자족이 된다는 것이다.
적에게 포위 공격당해도 수년은 끄떡없이 버틸 정도로 잘 정비된 요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침입을 허락지 않는 철옹성이 에스카달의 요새다.
이곳의 성주 카브란츠는 롱홀드 북방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몸을 가졌는데 그의 신체만큼 그의 성정도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드센 백작에게 뭐라고 보고들 드릴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애초에 엠버스피어에 너무 접근한 것이 문제요."
"그곳이 아니면 최고의 소재를 어떻게 고른단 말입니까? 그나마 걸린 놈이 기사 단장급이라 좋아했건만."
"미행이 없는 것은 확실하오?"
"물론입니다. 한길로만 오지 않고 여러 길을 번거롭게 돌아왔습니다. 늘 추적도 확인하며 이동했으니 문제없습니다."
"드센 백작이 도착하려면 아직 사흘의 시간이 남았소."
"그동안 마땅한 이유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우리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네크로맨서는 어떻게 되었소? 그들도?"
페렌드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곤란하게 되었군. 이제 네크로맨서를 어디서 데려오나 솔라리스에 들어온 네크로맨서가 여덟인데 여섯이 죽어버릴 줄이야. 다시 죽음의 땅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드셀 백작이 데리고 있는 그놈들이 진짜가 아닙니까. 죽은 놈들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니."
"하스문과 야렌이 죽은걸 몰레이그가 알면 펄쩍 뛰겠구나."
카브란츠 성주가 문밖을 향해 고함을 치자 대기 하고 있던 문지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사흘 동안 성문을 내리고 절대 열지 말도록 해라. 경계를 강화하고 성내 모든 화물을 꼼꼼히 점검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곳은 천연의 요새요. 성문을 잠근다면 새 외에는 이곳을 넘어 들어올 자는 없을 거이오."
두 사람은 그들의 대화들 듣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드센 백작 이놈이 사흘 뒤에 이곳에 올 모양이군. 먼저 손을 쓰는 것보다 천천히 기다려야 되겠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고 있어. 딱딱 아귀가 맞아 들어가는구나.'
테츠는 성내 가장 높은 첨탑 꼭대기 층에 홀로 앉아 운공조식을 했다.
사흘이 지나갈 동안 테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굉음을 내며 성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기사들이 성내로 들어왔다.
에스카달의 성주 카브란츠는 직접성 앞까지 나가서 드셀 백작을 맞이했다.
페렌드 남작은 굳은 표정으로 드셀 백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셀 백작은 흰머리가 가득하지만, 그의 풍채에서는 위엄이 뚝뚝 묻어났다. 정말 귀족다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귀족의 정복에 하얀색 단추가 그의 품의를 말해 주고 있다.
멋진 콧수염과 구레나룻은 흰머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의 외모는 완벽한 귀족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간 잘 지냈는가? 카브란츠 성주, 페렌드 남작."
"드센 백작을 뵙니다."
드센이 말 위에서 내리려 하자 기사 하나가 말의 옆구리 쪽으로 엎드렸다. 드센은 기사의 등을 밟고 말 위에서 내렸다.
그는 가는 기침을 하며 페렌드를 바라봤다.
"얼굴에 무슨 일이 있다고 씌어 있구나."
그 말에 페렌드 남작의 얼굴빛이 흑색이 되어 갔다.
"뜻하지 않은 일을 당했습니다."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자. 여긴 공기가 차다."
드센 백작의 뒤로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두 명의 마법사가 따랐다. 그들은 키만큼이나 긴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접견실 최상석에 드센이 앉았다. 그곳은 항상 카브란츠 성주가 앉던 자리였지만 오늘은 드센백작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래, 블러드 나이트는 잃었고 그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너는 혼자 도망쳐 온 것이 아니냐?"
"그의 무위가 엄청났습니다. 제가 그와 맞섰다면 지금 이 소식을 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검은 후드를 쓴 마법사의 입에서 쇠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제자 하스문과 야렌은 어떻게 되었지?"
페렌드는 올 것이 왔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놈이 두 명을 모두 죽였습니다."
-쿵
마법사는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내 이 복수는 반드시 할 것이오. 놈의 뼈를 갈고 살을 말려 페란투스의 주술 재료로 사용할 것이외다."
"몰레이그 당신의 노여움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입니다. 그놈의 정체도 알지 못하고 이곳에 있을 이유라도 있는 거냐? 페렌드?"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옳다는 판단에···."
"네가 본 그자는 어떠한 자이더냐?"
"평범한 용병 복장에 덩치가 있는 사내였습니다. 그가 쓰는 검술이 매우 특이하였습니다. 저는 그가 혹 황궁에서 보낸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황궁에서? 그쪽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몰레이그는 후두에서 깊은 안광을 뿜으며 말했다.
"나의 제자 여섯이 모두 죽임을 당했어. 이건 참을 수 없는 치욕이군."
"죽음의 땅에서 여러분을 구해낸 것은 어려운 부탁을 드리려 했던 것인데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얀차카가 죽음의 땅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게 되었소. 이제 네크로맨서들은 얼마든지 이 땅으로 건너올 수 있소. 여러분이 성황의 결계에 구멍을 내준 덕분이오. 그 수고는 잊지 않겠소."
카브란츠 성주가 몰레이그를 처다보며 쓴 웃음을 흘렸다.
"블러드 나이트를 잡았다고 하는 용병 말이오. 블러드 나이트를 인간이 홀로 잡을 수 있는단 말인가? 그 정도 잡기 쉬운 블러드 나이트라면 제고를 해 봄이?"
몰레이그의 지팡이가 다시 한번 땅을 울렸다.
"리치도 그렇고 데스 나이트도 그렇고 모두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 위력을 가진 놈들이요. 블러드 나이트는 소드 마스터 네 명이 붙어도 잡아내지 못하는 마물 이외다."
"그럼 제자분이 완벽하지 못한 것을 만들었나 봅니다. 리치도 쉽게 제거되었고 데스 나이트도 보고도 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제거되어 버렸습니다. 이번에 블러드 나이트까지."
"도대체 어떤 놈이지 정말 궁금하오. 마치 우리 뒤를 따라 다니며 방해를 놓는 것 같단 말이오."
"마교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마교? 네 제자를 죽인 것들이 마교라는 자요?"
"마교는 사람이 아니고 그들의 파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도 보고를 통해 알고만 있지 그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테헤란에서 넘어왔고 드라코의 성에서 데스 나이트를 없앴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마교라 정말 희한한 이름이군."
"최근에 그들은 펠링턴 기사 대회를 휩쓸었습니다. 무려 1위와 2위를 마교의 인물이 차지했습니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오?"
"지금까지는 알아낸 정보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황궁 쪽의 인물들과 접촉을 했으나 황궁에서도 절대 모르는 일이라 합니다."
그때 페렌드 남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혹시 이번 일에 그들이 관여된 것은 아닐까요?"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 일당은 알야센으로 떠났다. 그곳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 줄은 모르고 있을 거야."
"그럼 그때 그놈은 누구일까요? 검을 한번 휘둘렀는데 제 호위 기사의 머리가 순식간에 잘려 버렸습니다. 롱홀드에서 그런 무위를 가진 자가 있을는지? 놈의 검은 검이 무시무시했습니다."
드센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검은 검이라고 했나? 혹시 얼굴에 철가면을 쓰고 있던가?"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거리가 멀어 확실히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가면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마교의 인물 중 한 명이 검은 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검 자체가 검은 검은 흔하지 않은 검이지요. 철가면을 쓰지 않았다고 하면?"
그때였다. 갑자기 접견실의 문이 활짝 열리고 한 인물이 불쑥 들어섰다.
"잘됐네. 여기에 싹 다 모여 있네."
"누구냐?"
"저놈이!"
페렌드는 경악스러운 눈빛을 하며 손가락으로 테츠를 가리켰다.
"저, 저놈입니다. 블러드 나이트를 죽인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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