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의 마기(魔氣)
정말이지 저번에 디멘션 포탈을 만들어 두지 않았다면 오늘 이왕자군을 몰살 시킬 뻔했다.
마테니의 감각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 더 화가 났다.
요즘 라마단의 정수를 계속 사용하다 보니 얼이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테니도 파악했던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빠진 꼴이라니.
눈앞에서 궁수와 마법사들이 자신을 올려 보고 있었다. 갑자기 밝은 빛이 나고 불쑥 솟아났으니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가 났으니 대가를 주리라.
머리가 쥐어짜질 정도로 큰 소환진이 그려졌다. 테츠는 힘차게 소환진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키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각종 무기를 든 스켈레톤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전사 스켈레톤이 롱소드만 들고 나왔었다. 그다음은 방패를 든 스켈레톤이 섞여 나왔고 소환을 할 때마다 전사들의 종류와 무기가 늘어갔다. 지금은 롱소드, 창, 도끼, 쌍수검 심지어 쌍검을 들고나온 스켈레톤도 있었다.
테츠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소환진을 또 그려냈다. 이번에는 궁수 스켈레톤이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화살을 뿌렸다.
이놈들은 인정, 자비, 멈춤을 모른다. 그냥 눈에 비치는 모든 생명체를 공격하게 되어 있다. 비명과 비명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진정한 지옥이 펼쳐진다. 테츠는 멈추지 않고 또 소환진을 그렸다.
그제야 앞서 있던 궁수 중 한 명이 테츠를 알아 보고 크게 외쳤다.
"카, 카오스 마법사다. 저 놈이 카오스 마법사다."
소환진이 떨어진 직후 몇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솔직히 라마단을 사용하다 내공을 끌어 올리는 순간을 놓칠 뻔했다.
장심에 내공을 불어 넣고 휘저으니 날아오던 화살은 목표를 잊고 모조리 튕겨 나갔다. 솔직히 내공이 없이 날아오는 화살은 테츠에게는 어린애들이 쏘는 장난감 화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마나가 담겨 있는 화살도 있으나 내공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에임달 백작과 카날 남작은 지금 벌어진 상황에 혼비백산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도대체 이 망자들은 어디서 나온 것이오?"
"누군가 이 망자들을 소환한 것 같습니다."
"망자를 소환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인가? 드센 백작이 보낸 사람인가?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그들은 테츠가 카오스 마법사며 망자를 소환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이해가 되는 상황이 아니었고 이 현실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스켈레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모두를 향해 공격해댔고 거기다 궁수가 쏘아 대는 화살이 소나기가 오는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스켈레톤 궁수가 쏘는 화살에는 요기가 가득 담겨 있어 기사의 갑주 정도는 가뿐하게 뚫었다.
궁수뿐만 아니었다. 각종 원소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 스켈레톤도 손을 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파이어 볼트와 라이트닝 볼트가 하늘을 밝혔고 아이스 볼트도 하얀 서리를 뿌리며 날아다녔다.
테츠에게 화살을 쏘던 궁수들은 전사 스켈레톤이 덤벼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조금의 여유를 찾은 테츠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이번에도 또 하나의 소환진을 그렸다.
소환진에서는 하늘을 보라색으로 물들이며 요기를 뒤집어쓴 리치가 솟아났다. 이 보라 색깔의 요기에 닿는 인간은 어떤 인간을 막론하고 녹아내리는 무서운 독무였다.
특히 안개처럼 뿌옇게 흩날리는 독기를 한 호흡이라도 들이키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지옥도가 펼쳐졌다. 제랄의 요새는 루엔의 성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많은 수의 병력을 수용하고 있었다.
기사 단장이 나서서 리치를 상대하고 무너진 부대를 정비하자 서서히 균형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테츠는 가소롭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또 소환진을 그려냈다. 이번에는 붉은 기류를 날리는 리치가 솟아나며 사방으로 요기를 뿌렸댔다.
에임달 백작과 카날 남작은 지휘도 잊은 채 얼이 완전히 나간 사람이 되어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리치가 또 솟아났어 분명히 누군가 리치를 소환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를 찾아라. 반드시 그놈을 찾아야 한다."
카날 남작은 에임달 백작을 바라보며 외쳤다.
"리치는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리치를 소환한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드센, 드센 백작이 데리고 있는 네크로맨서는 망자를 소환할 수 있고 리치와 암흑 기사를 만들 수 있다고 저도 들었소. 리치를 소환한다는 소리는 저도 처음 듣는 일이오."
"저기 소환되는 리치는 또 무엇입니까?"
"나도 알 수가 없소. 도대체 누가 리치를 소환하는 것인지."
"혹시 카오스 마법사가 아닙니까?"
"설마?"
그와 중에 테츠는 또 세 마리의 리치를 소환했다. 여섯 마리의 리치가 날뛰기 시작하니 아무리 기사 단장들이 막고 있다고 하나 요기 때문에 접근이 어려워 연거푸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스켈레톤과 기사들이 어울려 완전한 육박전이 전개되었다. 방패병이 앞을 막고 창병과 합세 하여 밀고 들어오니 일시적으로 스켈레톤이 밀리기 시작했다.
완벽한 공방의 협업으로 그저 적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스켈레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기사의 전진이 더딘 것은 궁수 스켈레톤과 마법사 스켈레톤이 쏘아 대는 원거리 공격 때문이었다.
인간도 궁수와 마법사들이 있다. 궁수는 정확히 스켈레톤을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뼈다귀로 만들어진 틈새로 화살이 빠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마법사들이 요기를 뚫고 스켈레톤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인간과 함께 썩여 난장판을 이루고 있는지라 아군이 다칠까 하여 강도 높은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특히 범위 마법은 사용이 아예 불가능했다.
그러나 마법사 스켈레톤은 그런 머리가 없다. 그냥 눈에 띄는 대로 마구 마법을 쏟아 냈다. 테츠는 스켈레톤이 쓰러지면 그것보다 더 많은 스켈레톤을 소환해 냈다.
그것은 적이 스켈레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거기다 최전방에 붙어 싸우는 스켈레톤이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어느새 돋아난 스플린터 공격에 단단한 대열이 완전히 무너지기도 했다. 이것이 한 사람의 힘에서 나오는 거란 걸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전투를 치웠던 베테랑의 기사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사 스켈레톤의 경우 그 단단하기가 웬만한 기사의 갑옷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평범한 검으로 뼈다귀를 후려치면 되레 튕겨 나올 뿐이었다. 스켈레톤의 관절 부위를 무너뜨리려면 순수하게 마나 5성 정도는 돼야 가능했다.
보통 기사들은 3성에서 4성 정도 수준이고 새내기는 2성도 수두룩했다. 수적으로는 기사들이 월등히 많으나 질적으로는 열세였다.
지금 스켈레톤 한 마리에 기사 두세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싸움이 될 정도였다. 기사 단장급은 모두 리치를 막느라 자신의 부대를 지휘할 수도 없었다.
"이래서는 루엔의 성과 다른 바가 무엇이오?"
"지하가 무너졌다는 보고는 받았지 않았습니까? 카오스의 마법사는 지하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카오스 마법사가 아닙니다. 다른 적이 침입한 것입니다."
"망자와 리치를 소환한 것을 보니 드센 백작이 데리고 있다는 네크로맨서보다 더 뛰어난 자인 것 같소! 이왕자도 네크로맨서를 손에 넣은 모양인 인데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상황을 어찌 설명하겠소?"
에임달 백작은 검을 뽑아 들고 갑자기 달려드는 스켈레톤과 맞섰다. 그는 검에 마나를 올리고 단번에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카날 남작도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세워 들고 묵직한 철퇴를 손에 잡았다.
"놈은 높은 곳에서 소환술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오. 성벽 위로 올라가야겠으니, 나를 따라오시오."
에임달 백자과 카날 남작이 스켈레톤 무리를 뚫고 성벽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계단은 폭이 좁아 스켈레톤을 상대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뒤따라 오는 카날 남작이 커다란 카이트 쉴드로 화살과 마법을 방어했다.
두 사람이 성벽 위로 올라서서 주위를 살폈다. 카날 남작이 테츠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 용병 복장을 한 저 사람이 수상합니다."
"용병인가? 확실히 이곳에서는 보지 못한 복장을 하고 있군."
에임달 백작은 성벽 위를 내달렸다. 궁수 몇 명이 그를 발견하고 고함을 쳤다.
"영주님께서 적진에 계신다. 지원 사격을 해라."
에임달의 앞으로 수많은 화살과 마법이 떨어져 내렸다. 덕분에 수월하게 스켈레톤을 뚫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테츠는 이미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사 두 명을 감지하고 있었다. 갑옷이 매우 화려하고 가슴에 문양을 새겨 넣은 것으로 보아 귀족임이 분명했다. 카날 남작이 들고 있는 방패의 문양을 본 테츠는 그것이 망루에 걸려 있는 깃발의 문양과 같음을 보고 그가 평범한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치열한 공방전이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기사들이 하나둘 스켈레톤을 부숴 나가기 시작했다. 테츠는 계속해서 스켈레톤을 무식하게 소환해 냈다.
한 마리가 부서지면 그 자리에 두 마리의 스켈레톤이 솟아 나오는 꼴이었다.
테츠 본인 자체도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라마단을 계속 사용했다.
이것은 마르지 않은 장작이 불꽃을 꺼트리기 싫어 계속 자신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았다.
인간은 유한하다. 체력이 있고 정신력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소진되고 태울 장작이 없으면 불은 꺼지기 마련이다.
테츠는 심한 갈증이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해도 이 갈증이 가시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띵해지고 속이 울렁거리며 약간은 어지럼증도 느껴졌다. 그런데도 테츠는 소환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 나갔다.
에임달 백작과 카날 남작이 코앞까지 왔는데도 테츠는 소환을 멈추지 않았다.
테츠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에임달 백작을 바라봤다.
"네가 망자를 소환한 자냐?"
테츠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갸웃했다.
"카날 남작 방어를! 놈을 칩시다."
갑자기 카날 남작이 방패를 세우더니 대쉬로 달려들어 왔다. 방패는 테츠를 강타했고 테츠는 비틀거리며 튕겨 나갔다.
그때 테츠는 정신이 확 들었다.
"이런! 내가 무얼 하고 있었던 거야?"
몸은 성벽 위 망루의 벽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테츠는 내공을 끌어모아 몸의 중심을 잡고 회전시켜 두 발로 망루의 벽에 착지하듯 달라붙었다.
"정신을 차리게 해 주어 고맙군. 아니었다면 라마단의 정수에 정신이 먹힐 뻔했어."
자세를 가다듬은 테츠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카날 남작을 향해 퉁겨 나갔다.
"엇!"
그 속도에 카날 남작은 화들짝 놀라 카이트 쉴드로 몸을 가렸다.
-쾅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며 방패가 산산이 쪼개지며 뿌연 먼지가 흩날렸다.
테츠가 방패에 천마폭(天魔爆)의 일장을 때려 박은 것이다. 무려 칠성의 공력을 가하여 후려쳤으니 방패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파편을 뿌렸다.
"우윽"
카날 남작은 엄청난 충격을 받아 휘청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이놈이!"
에임달 백작은 휘청이는 카날 남작 앞으로 뛰어들며 칠성의 마나를 검에 올렸다. 검에서 푸른 기운이 뻗쳐 오르며 오러 블레이드가 테츠를 향해 날아들었다.
테츠는 내공으로 데오뜨랑을 검집에서 밀어 올리며 발검의 형식으로 천마삼검의 일초인 천마섬(天魔閃)을 펼쳐 냈다.
에임달의 오러 블레이드와 칠성 공력의 천마섬이 격검하자 푸른 불꽃이 튀었다.
"으억!"
에임달 백작은 테츠의 내공의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해내고 휘청했다. 중원의 말로 치면 두 사람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것이다.
에임달 백작과 카날 남작이 테츠에 당하자 그들을 구하러 달려온 기사들이 다짜고짜 테츠를 향해 몸을 날렸다.
테츠는 천마비행의 경공을 밟으며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장법을 쏟아 냈다.
회선무류강(回旋無流剛)의 막강한 암격이 달려드는 기사의 몸을 마구잡이로 후려쳤다.
그들이 걸치고 있던 갑옷에 손바닥 장인이 움푹 새겨졌다.
"어서 피하십시오. 저놈은 저희가, 끅."
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테츠의 일장을 맞고 앞으로 꺼꾸러졌다.
카날 남작은 오장육부가 이미 조각나서 피를 토할 때마다 내장의 찌꺼기가 달려 나왔다.
"우, 우리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괴물을 건드린 것 같습니···."
카날 남작은 말을 끝내지 못하고 앞으로 엎어져 버렸다.
에임달 백작은 그나마 카날 남작에 비해 나았다.
도대체가 저놈이 어떤 괴물인지 알 수가 없다. 마법도 아니고 마나도 아닌 처음 보는 기술에 기사들이 추풍낙엽으로 쓰러져 갔다.
에임달 백작은 자신을 위해 뛰어드는 기사들을 등 뒤로 두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부하를 버리고 혼자 도망가서야 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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