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호흡이 거칠다?
여관 안으로 들어오자 숨어 있는 사람의 기척을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테츠는 절정의 감각으로 상대의 기척을 읽었는데 이상하게 상대의 호흡이 매우 불규칙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큰 상처를 입었을 때의 호흡이었다.
테츠는 잠겨진 문을 열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쉭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파공성을 알아듣고 내공으로 정확히 날아오는 물건을 잡았다. 그것은 작은 단검인데 어둠 속에서도 보일 만큼 날이 시퍼렜다.
'독?'
단검에는 치명적인 독이 발라져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절명할 수 있는 치명적이 독이었다.
이런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기사도와 명예를 최고로 예우하는 이 제국에서 이런 짓을 벌이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런 무기는 대부분 암살자 전용이다.
테츠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어둠에 적응했다. 그리고 침대 뒤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인형을 발견했다.
진득한 이 냄새를 결코 가릴 수는 없다. 이것은 완벽한 피 냄새다.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테츠는 심호흡하며 말했다.
"이것 보시오.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나는 적이 아니니 공격하지 마시오."
"···."
"내가 그곳으로 갈 테니 공격하지 마시오."
테츠가 강압적으로 제압하지 않는 이유는 그를 진정시키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를 흥분 시키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테츠는 천천히 침대 가까이 다가왔다. 호흡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는 마지막 힘을 모아 공격을 한 것 같았다.
테츠가 침대로 가 보니 검은 암살복을 입은 사내가 침대에 기대 있었다.
"이보시오. 움직이지 마시오. 내가 경맥을 짚어 볼 터이니."
그가 대답이 없자. 테츠는 그의 팔목의 경맥을 짚어 보았다.
맥이 거의 끊어질 듯 펄떡거렸다. 솔직히 죽기 일보 직전이 사람이다. 테츠는 장심에 대고 내공을 끌어 올려 천천히 불어 넣어 주었다.
"쿨럭,"
그는 기침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테츠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힘겹게 말했다.
"당신은 레피드가 아니군. 난 가망이 없다오."
"왜 이곳에 숨어들었습니까? 누구를 암살하려 합니까?"
그는 멍하니 테츠를 올려 보더니 품 안에서 하나의 서신을 꺼냈다.
"이것을 일왕자에게···, 엘레이어크경에게···. 그에게 부디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의 손이 서신을 잡은 채 뚝 떨어져 내렸다.
테츠는 그의 호흡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손에서 빼든 서신을 품속에 넣었다.
'뭔가 중요한 내용이겠지? 일왕자라···. 엘레이어크경이라고 했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
테츠는 시체를 그대로 남겨 두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테니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황혼의 샘으로 돌아온 테츠는 암살자로부터 얻은 서신을 펼쳐 보았다.
서신의 내용을 읽던 테츠의 안색이 수시로 변했다.
편지는 알레이어크 경에게 보내는 거였는데 정확한 내용은 없이 묘한 단어가 나열된 암호 같은 문장의 나열이었다.
그런데 문장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드센 백작의 이름이다. 서신에는 그가 네필의 가호를 받았다고 되어 있었다.
"마테니 혹시 네필의 가호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네필의 가호? 잘 모르겠습니다만, 네필은 배신의 신이 아닙니까? 네필의 가호라면 배신의 가호를 받았다는 이야기인데 정확히 말하면 배신했다라는 정도일까요?"
"그래?"
묘하다. 정말 묘하다. 이 서신에는 이런 식으로 모르는 단어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거의 모든 문장이 이런 은유적 표현으로 되어 있다.
마테니에게 서신을 보여 주었다. 마테니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해 보더니 자기 생각을 정리해 들려주었다.
"대충 해석해 보면 암흑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날개를 접고 때를 기다리라는 말인데 마신이 이왕자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한다. 헬리오스 이 자는 신화 속의 인물인데 자식으로 부모의 목을 베어버린 자입니다. 헬리오스의 입김이 그를 유혹하노니 이 모든 것이 그의 뜻이라 감히 누가 막을까? 대충 이런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봐 여기 드센 백작의 이름이 있잖아? 이놈은 왜 있는 거야?"
"드센 백작이 마신을 이끈다고 쓰여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인데요. 드센이 네필의 가호를 받았다는 부분이 걸립니다."
"그는 누구며 왜 이런 서신을 가지고 있었지?"
"알 방법은 엘레이어크 경이란 자를 찾아내는 방법뿐입니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어. 엘레이어크 경을 찾아봐야지."
그때 방문 밖에서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츠 기사님 계십니까? 밖에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라? 이 야밤에?"
손님이라고 찾아올 사람이라고 해 봤자 엠버스피어에서는 메흘린 뿐이지 않은가?
테츠와 마테니는 밖으로 나갔다.
테츠를 맞이한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인데 키는 작고 뚱뚱한 몸을 가진 사람으로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귀족인 듯 했다.
그는 나무계단을 밝고 내려오는 테츠를 보고 달려오더니 환영의 인사를 보내왔다.
"이거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마교의 테츠 기사가 맞는군요 하하. 이거 영광입니다."
"저를 알고 있습니까?"
테츠는 그 귀족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알다 마다요. 전 펠링턴 기사 대회를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펠링턴 기사 대회에서 준우승하신 분을 어찌 몰라 볼 수 있겠습니까? 저의 기사가 이곳에서 테츠 기사를 보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하하. 저녁을 대접하려고 찾아 왔더니 계시지 않으시더군요.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아하, 그러시구나. 펠링턴 기사 대회에 참가 하신 분이로군요."
"하하, 부끄럽습니다. 저야 참가라기보다는 구경꾼에 가깝지요. 이봐 주인장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여기 전체를 대여하겠네. 지금 있는 손님은 돈을 받지 않을 테니 지금부터 손님을 받지 마시게. 그리고 이 여관에서 최고의 술과 음식을 내어오게. 하하."
테츠는 그의 말을 끊으려 하다 그의 웃을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수 없었다.
"준우승하신 기사분을 이런 곳에서 대접하려니 부끄럽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적적한 참이었습니다. 잘 됐습니다."
"주인장 어서 술과 고기를 내어 오시오. 이분이 적적하다 하지 않습니까? 허허."
"그런데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전 요한센 남작입니다. 이곳에는 핀든 남작이라는 친우가 있는데 그를 만나러 여기에 왔다가 우연히 테츠 기사님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지 뭡니까 하하."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이런 호의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보잘것없다니요. 테츠 기사님의 그 무용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때의 그 감동은 제가 평생을 잊지 못할 겁니다."
요한센 남작은 뭐가 좋은지 크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는 펠링턴 대회에 있었던 테츠의 싸움을 요목조목 풀어가며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해 댔다.
그 상황에서 술과 고기가 차려지고 테츠는 요한센이 권하는 술을 연거푸 마셨다.
핀든 남작과 친구인 듯 하여 처음에는 꺼림칙했으나 그의 성격이 워낙 쾌활하고 입담도 좋아 테츠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의 화술에 완전히 푹 빠져 버렸다.
의심이 많은 마테니 조차 그의 말한디 한마디에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술 항아리는 계속 쌓여 갔다.
내공이 엄청난 테츠도 취할 만큼 많은 술이 들어갔다. 마테니는 벌써 인사불성의 수준으로 책상 머리에 이마를 대고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거 취기가 많이 올라 좀 쉬어야 하겠습니다. 하하."
"아, 이거 아쉽군요. 피곤하시다니 쉬셔야지요. 한숨 푹 자고 남 다음 맛있는 차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주접을 많이 떨었더니 피곤해지는군요. 하하."
"오늘 술과 음식 대접 무척 감사합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먼저 들어가 쉬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어이 종업원 이분은 이미 주무시니 업어 방으로 모시게."
"네. 네 알겠습니다."
테츠는 의자에서 일어나 비틀거렸다.
'어라, 너무 많이 마셨나? 내가 술에 이렇게 약했나?'
테츠는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술은 마시면 늘고 마시지 않으면 줄어든다. 그동안 이렇게 많은 술을 일시에 마신 적이 없으니 당연히 취기가 올랐겠지 하고 생각했다.
침대에 오르자마자 정신을 잃을 듯이 곯아떨어졌다.
종업원은 옆 침대에 마테니를 눕히고 재빨리 방을 빠져나왔다.
종업원이 내려오며 요한센 남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완전히 곯아떨어졌습니다."
"됐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절대 깨우지 마라.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 잘까요?"
"졸음의 눈동자 화분을 두 숟가락이나 넣었으니 거의 나흘은 잠만 잘 거야."
황혼의 샘 주인이 약간은 못마땅한 투로 이야기했다.
"저희 여관은 엠버스피어에서 가장 유명한 곳입니다. 이런 일로 안 좋은 소문이 퍼지면 곤란합니다."
요한센이 턱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대기 하고 있던 서번트 한 명이 큼직한 자루를 내려놓았다.
주인은 슬쩍 자루를 열어보고 안쪽에서 쏟아지는 금빛을 보자 입을 헤벌쭉 벌렸다.
"소문만 나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없을걸세. 그 정도 금액이면 몇 년을 일해야 벌 수 있을 거야."
"이르다 뿐입니까. 남작님. 아예 이참에 그놈들을 처리해 버릴까요?"
"안돼 강한 충격을 주면 깨어나 버려."
"일격에 심장을 찔러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괜한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그들이 깨어나면 모른 척이나 잘해. 알겠어?"
"물론입니다. 하하."
테츠는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들이기니 약간은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지 세상은 깜깜했다.
"이상하군.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테츠는 어지러운 머리를 이끌고 침대에 앉자 운공조식에 들어갔다.
내공도 잘 모이지 않고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이상하다. 이건 독에 중독된 현상인데?'
테츠는 천마심공을 끌어내 신심을 맑게 했다. 모든 경락으로 내공을 이끌고 일주천 시켰다.
그제야 정신이 맑아지고 돌덩이처럼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한참 동안 운공조식을 끝내고 일어나 마테니에게 다가갔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흔들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맥을 잡아 보니 딱히 이상은 없어 보였다.
'이렇게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뭔가 이상해.'
테츠는 주변의 짐과 옷 안의 서신들을 살펴보았지만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심한 갈증이 밀려와 밖으로 나왔다.
여관에는 많은 손님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웬 사람들이 이 새벽에 식사를 하는 거지? 가만 아침까지 요한센이 이곳을 빌렸다고 하지 않았나?"
테츠는 여관 밖으로 나갔다가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의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저녁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여관의 손님들이 먹는 음식은 모두 저녁 만찬이었다.
테츠는 종업원을 불렀다. 그에게 물 한잔을 주문했다. 이윽고 종업원이 물을 가지고 왔다.
"이봐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오늘은 23일입니다."
"뭐라고?"
테츠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요한센 남작과 술을 마신 것이 20일 야간이다. 그럼 최소 삼일을 잔 셈이 된다.
이왕자에게서 온 서신에 따르면 21일이 엘드리치를 공략하는 날이었다. 벌써 사흘이 지났다.
테츠는 다시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마테니를 흔들어 깨웠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다. 나 혼자라도 가 볼 수밖에."
테츠는 창문을 열고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천마비행으로 어둠을 가르며 늙은 요리사의 집 지붕으로 떨어져 내렸다.
디멘션 포탈에 오른 테츠는 엘드리치의 성벽 위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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