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9. 28 금요일 유학생활 백 여든 네 번째날
2012. 09. 28 금요일 유학생활 백 여든 네 번째날
“띠리리링!”
아아아아아악! 뭐야!!! 늦잠 자도 되는 날에 일찍 깨버리는 것 만큼 불쾌한 일도 없다. 오늘 수업도 없는데 카카오톡이 오는 소리에 아침 일찍 깨버렸다. 무슨 용건이 있어서 보낸 메시지도 아니다. 요새 유행하고 있는 ‘애니팡’이라는 게임으로 초대한다는 스팸수준의 메시지였다.
‘아나.....’
휴대폰을 집어 던지고 다시 누워서 잠을 청했다.
눈을 떴을 때는 꽤나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아침일찍 깨버렸다는 사실이 아주 불쾌했다. 점심은 돼지고기를 밥 위에 올리고 날계란을 얹어 비벼먹었다. 요새 매 끼니에 날계란에 밥을 비벼먹고 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심심해서 또 낮잠을 자버렸다. 오늘은 푹 쉬기로 아예 작정했다. 눈을 떠보니 오후 5시다.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다 가버린 것이다.
‘아, 곧 주간AKB가 하겠군’
요 몇 주 아르바이트 때문에 주간AKB를 챙겨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실시간으로 주간AKB를 보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컴퓨터를 하다가 여유를 즐겼다.
반찬거리가 다 떨어져서 선피아에 갔다. 요새 일부러 저녁 7시 반쯤 선피아에 가고 있다. 이 시간쯤엔 폐점을 위해 반찬들을 반 값에 팔기 때문이다. 계란도 다 떨어져서 계란도 집었다. 최근의 내 끼니에는 날계란이 필수이다. 계란도 사고, 반찬거리도 대량으로 샀다.
전기에는 우리 집 바로 윗층에 아무도 살지 않았는데 후기가 되어서 누군가 들어왔는지 가끔 시끄럽게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그 소리가 많이 심했다. 음악소리도 들리고 하는걸 봐선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와선 놀고 있나보다.
그렇게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시간이 늦어지고 슬슬 잠을 자려고 할 때였다.
“띵동띵동”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배달음식따위를 시킨것도 아니거니와 이 시간까지 택배가 움직일리도 없다.
‘허허허허허.....’
누가 눌렀는지는 몰라도 어떤 용건으로 초인종을 눌렀는지는 짐작이 갔다. 인터폰 화면을 보니 역시나 서양여자 둘이 서 있었다.
“예, 누구시죠.”
화면을 나와 있는 서양여자는 모르는 사람이니 누구냐고 물어봐도 소용없긴하지만..
“어음어음, 아음~ 이웃솨람인뒈요. 우리 집에서 파~티를 하는데 같이 놀지 않겠어용~?”
서양여자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일본어로 말을 했다. 역시나 파티초대였다. 내일 아르바이트는 6시부터이고 오전엔 아무것도 없다. 훗, 나쁘지않지.
나랑 철이는 윗 집으로 올라가서 맥주를 대접받았다. 생각이상으로 많은 외국인, 아, 나도 외국인인가? 생각이상으로 많은 서양인들이 모여있었다. 게다가 출신국도 제각각이었다. 미국, 헝가리, 노르웨이, 프랑스, 핀란드의 사람들이랑 각각 인사를 나누었다. 일본어를 상당히 잘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회화가 불가능했고 아예 말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히 일본어보다는 영어가 더 편리한 장소였다. 그런데 나는 영어를 말할 줄 모르니, 일본어를 못하는 서양인이랑 인사를 할 땐, 일본어를 잘 하는 서양인이 통역을 해 주는 식으로 인사를 했다.
‘......영어를 잘하면 인정받는 이유를 알겠군’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이제야 피부로 느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어느나라 어느나라 신경쓸거 없이 영어로 말하면 된다. 세계공용어라 꼭 필요하다는 건 귀에 못이 박혀도 들었지만 어짜피 수능 때문에 배울뿐이라고 애써 가볍게 여겼는데 역시 피부로 느낀다음 세계공용어라는 말을 곱씹어 봤을땐 단어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영어를 못해선 정말 크게 될 수 없다.’
난 영어를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꼭 필요하다. 꼭 필요한걸 알고 있기에 더더욱 싫어했다. 영어공부는 정말 재미없다. 어떤 책을봐도 재밌게 쓴건 단 한권도 없다. 그런데 오늘 이런상황을 마주하니까 영어는 꼭 정복해야하는 산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 오오, 그럼 강남스타일 알아요??”
“강남스타일~! 요새 그거 엄청 유명한거잖아!”
“춤 이거 아냐 이거, 말 춤 ~~”
나랑 철이가 한국인이라니까 미국인 한 명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거기있는 사람 대부분이 알고있다고, 정말 재미있다고 말하며 강남스타일에 나오는 말춤을 따라했다. 요새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있다고 연일 화제가 되는데 나는 어느정도는 언론에 의해 부풀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내 눈 앞에서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강남스타일 이야기를 하며 춤을 따라하고 있다. 뭐든지 피부로 느껴야 실감이 나는 법이다.
‘강남스타일이 정말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게 맞구나!’
나랑 철이도 신나서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따라하며 놀았다.
“워우오오~~~”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말춤을 추었다. 대한민국 가수의 노래와 춤을 지금 각국에서 모인 서양유학생들이 따라하고 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웠다. 스포츠로 하는 국위선양역시 대단하지만, 난 이렇게 연예인들이 하는 국위선양이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안주도 없이 계속해서 맥주를 들이부었다. 맥주만 먹으면 다행이지만 각국에서 가져온 이상한 술도 가끔 마셨다. 하나같이 독했다. 소주는 맹물수준인 정도이다. 시간에 지나자 하나둘씩 취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래기나’라는 아이는 취해서 나랑 포옹을 하곤 했다.
“한국에선 친구들끼리 포옹하는거 이상해?” “응...? 응 조금 이상하지. 사귀는게 아니라면...”
“일본도 그렇겠지? 우리나라에선 아무렇지도 않은데...이리 와 한번 더~”
흠흠....좋다. 이런 전개. 한번이 아니고 계속 할 수도 있는데..
“영빈은 생일이 언제야?”
“10월 15일”
“와우~ 2주 있으면 생일이네, 내가 생일 선물을 준비하겠어!” “땡큐~!”
거짓말마라.
스타크래프트 매니아라서 수준높은 경기를 매일 보여주는 한국의 프로리그를 보러 한국에 가보고 싶다, 하지만 게임할 때 한국인을 만나면 싫다. ‘아 Fuck 이 게임은 졌군!’ 한국인을 만나면 지는게 당연하다고 말했던 미국인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들 백인이라 그런지 얼굴이 빨간 것이 더더욱 두드러지게 보였다. 시간은 이미 새벽 3시가 넘었고,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하나둘씩 소리없이 사람이 줄어갔다. 나도 엄청나게 졸렸고 술을 더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다들 취해서 영어로 말하고 있다. 난 있어봤자 대화도 못한다.
“철아, 안되겠다. 난 간다.”
그리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철이도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 일기를 쓰고있는데 이미 날이 밝았다. 지금 자고 일어나면 또 아마 늦은 오후일 것이다. 에휴..
오늘의 지출 – 선피아에서 반찬거리 1706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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