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4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열 번째날
2012. 10. 24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열 번째날
화요일과 수요일 둘 다 똑같이 1교시가 있지만 아침의 공기는 정말 다르다. 화요일의 아침공기는 손에 잡힐수만 있다면 멱살잡고 후려패고 싶을 정도로 기분나쁜 공기이고, 수요일의 아침공기는 마셔줄만 하다. 어제도 썼지만, 화요일은 가장 싫어하는 수업이 1,2교시에 포진해있고, 수요일 1교시는 일본의 역사로 내가 재밌어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2교시 토익이 끝나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은 뒤에 한 시간 정도 쉬고 4교시 번역수업을 듣기 위해 다시 학교로 갔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본어의 문장은 한국어로, 한국어의 문장은 일본어로 번역하는 시간이다.
‘おじいさんの昔話は耳にたこができるほど聞かれた。’ 라는 문장을 할 차례였다.
“이게 뭐냐, -귀에 문어가 생길정도로 들었다-라니”
김대석 교수님이 철이의 답안지를 보면서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를 비롯하여 교실 전체의 한국인이 빵 터져버렸다. 웃음폭탄의 위력은 굉장했다. 몇 분 동안 쉬지 않고 웃었다. 절대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라 진짜 미치도록 웃겨서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폭소를 했다. 거짓말하지않고, 올해 들은 말 중에 가장 웃긴 말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떻게 해, 너무 웃겨!!!!”
나랑 희애랑 마주보며 웃겨서 숨이 넘어가 죽을 것 같이 웃었다.
“그냥 직역한거에요...”
철이가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귀에 문어가 생기다니 그런말을 우리가 쓰나”
아직까지 웃음폭탄은 유효했다. 나 역시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일본은 그런표현을 쓰나보다 하고.. 문어(타코)가 생겼다”
“타코가, 그 타코가 아닌데....”
오지-상노 무카시바나시와 미미니 타코가 데키루호도 키카레타.
그대로 직역하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귀에 굳은 살이 생길정도로 들었다.
이를 우리나라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고친 번역은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또는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정도로 들었다’ 이다. 수업이 끝나고 철이에게 물어보니, 그 때 아무리 생각해도 귀에 못이박혔다라던가 딱지가 앉았다라는 표현이 생각이 안나서 대충 ‘타코가 데키루’를 문어(타코)가 생겼다라고 썼다한다. 물론 저 타코는 ‘문어’가 아니다. 문장에서의 타코는 날리는 연, 굳은 살, 문어 세 종류 중, 굳은 살의 의미로 쓰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바로 요시노야로 출근하였다. 순조롭게 일을 하던 중, 또 사건이 터져버렸다. 한창 바쁜 시간, 테이크아웃의 대응을 정신없이 하고 한숨 돌릴 때였다.
“이 전표는 뭐야?”
“엑.....!!?”
80번 테이블에, 다 먹고 난 그릇과, 전표는 있는데 손님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표를 받지 않는 이상은 계산 할 수가 없잖아요”
“전표를 받아야 계산을 하지. 먹고 도망친건지, 아니면 바쁘니까 그냥 돈 올려놓고 그걸로 계산 끝났다고 생각하고 나간건지...”
“아, 아까 한창 바쁠 때 계산대 위에 돈이 올려져 있었거든요? 저는 그걸 카운터에 넣지않은 줄 알고 서둘러서 넣었는데 혹시 그거 아닐까요?”
“돈이 올려져 있었어?”
“네, 전 받은 돈을 카운터에 넣는걸 깜빡한줄 알고 얼른 카운터에 넣었고요”
“흠, 그럼 그건가.. 한번 봐야겠네. 이 전표는 버리지 마”
몇 시간 후, 점장님이 말했다.
“완전한 먹튀”
“헉, 그런가요!”
“계속 이 쪽을 신경써서 수상하다곤 생각했는데....테이크 아웃으로 바쁠 때 천천히 도망갔어.”
“어쩌죠, 경찰에 신고하실건가요”
“됐어, 벌써 다 그릇들도 치워버렸잖아. 비디오가 남아있긴하지만...”
퇴근시간에 스가씨랑 교대를 하고 나올 때, 점장님이 종이를 내밀었다.
“싸인해”
아르바이트생들의 이름이 쭉 있었다. 뭐지?
“뭐 이상한거 아니니까 걱정말고 하하하하”
점장님이 망설이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릴때부터 싸인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박혀있다.
“이번에, 보너스가 안 나오고 대신에 이게 나왔네, 본사가 힘든가”
‘가족 서비스권’이라는 6장의 종이쪼가리 뭉치를 주었다. 전국의 요시노야에서 쓸 수 있는 할인권이다.
“오옷! 감사합니다, 그런데 보너스요? 아르바이트 생한테도 보너스가 나와요?”
“응, 가끔 나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6시간 일하는데도 꼬박꼬박 휴식을 취해야하는 법률에다가 아르바이트 생 따위에게 보너스라니
“한국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보너스 많아~ 연휴때 꼬박꼬박 다 나와서 일하면 보너스로 7000엔 정도 추가로 나오고, 5년이상 근무한 아르바이트 생은 사원여행도 공짜로 보내주고 그러지”
“아르바이트 생한테!”
확실히 일본은 대단한 나라이다.
점장님은 집으로 돌아가시고, 오늘 나랑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남자 스즈키, 나오야랑 대화를 나누었다.
“아아아! 저 녀석 짜증나”
나오야 뿐 아니라, 우자와 씨도 그랬고 아무래도 점장은 여기 아르바이트 생들한테 좋은 이미지가 아닌 듯 하다. 나오야는 나랑 같이 AKB팬이므로 자연히 AKB 이야기가 나왔다. 나오야의 휴대폰에는 아예 코지마 하루나의 휴대폰 줄이 달려있었다.
“전 여기서 점장님 글씨를 읽는게 제일 힘들어요”
“아오오! 다 마찬가지에요, 저 녀석 바보에요 바보!”
“여기여기 첫째줄 신경쓰이는데 도대체 뭐라쓴거죠?”
오늘날짜 인수인계 노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조 군과 나오야가.......야밧타라??”
나도 거기서 걸렸다. 기껏 알아봤더니 뜻을 모르겠다.
“그런 일본어가 있어요?”
“아뇨, 없어요. 에이, 신경쓰지마요 저 녀석 바보니까”
언제부턴가 일이 끝나면 편의점에 들러 우유를 마시는게 습관이 되었다. 오늘은 바나나우유이다. 일을 할 때마다 다른 종류의 우유를 마시는게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내일은 오전수업이 없는날이라 마음편히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오늘의 지출 – 요시노야에서 마카나이 180엔
편의점에서 138엔
총 310엔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