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일본 교환유학일기

2012. 10. 09 화요일 유학생활 백 아흔 다섯 번째날

2012. 10. 09 화요일 유학생활 백 아흔 다섯 번째날

1교시 아메리카 문화 시간을 마치고 2교시 생애학습론, 나랑 생애학습론 시간의 이노우에 교수님은 아무래도 궁합이 맞지 않나보다. 이 교수님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들을 수가 없는건지 내가 안 듣는건지 경계가 모호하다. 이 교수님의 입이 벌어지자마자 나는 최면에 빠진 듯 잠의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오늘도 뭐라하는지 하나도 못듣고 꾸벅꾸벅 헤드뱅잉을 했다.

그 덕분이라고하기엔 뭣하지만 오히려 3교시 요시다 토모히코 교수님의 수업을 경청할 수 있었다. 이노우에 교수님의 수업이 결코 졸린수업이 아니다. 그런데 졸림의 명사 요시다 토모히코 교수님보다 더 졸리게 느껴진다.

4교시 동아시아의 영상문화 시간, 지난주에 이어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본다. 수업시작전에 강의실로 오시더니 나랑 철이가 앉아있는곳으로 오셨다.

“조 군, 김 군, 환영회 있는거 알죠?”

“예에??”

“아? 들은거없어요?”

“무슨 환영회 말이죠?”

“유학생 환영회”

“처음 듣는데요.”

“이번에 새로 유학 온 학생이 있지않습니까? 김 상이라고, 한국인 한 명 있죠?”

주현이랑 영은이를 말하는건가?

“아뇨, 두 명 있는데요”

“오오? 두 명이에요?”

“예, 제가 아는 김이 맞다면 그 김이랑 같이 사는 아이가 있어요. 동서대출신이죠?”

“아니아니, 동서대출신은 아니에요”

“엑?”

“또 다른 김 상 모릅니까?

“...김 상이라고 해도 한국인은 김씨가 워낙많아서요. 풀네임을 듣지않으면 몰라요 여기 바로 옆에도 김 씨가 있잖습니까”

나는 철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토교수님은 껄껄 웃었다.

“그 유학생 환영회는 언제입니까?”

“내일 5시 반 부터에요”

“아아, 전 아르바이트를 해서 안되겠네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안되겠다. 결국 철이 혼자 가게 되었다.

“아르바이트가 이렇게 양날의 칼이라니까?” 철이가 나한테 말했다.

“이런때는 확실히 안타깝지만 그래도 얻는게 많다. 아르바이트로 공부하는 일본어도 얼마나 많은데, 내일 친구 많이 사귀어서 나도 소개해주고 그래라.”

물론 가장 좋은 공부는 친구를 많이 사귀어서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억지로 자기위로를 하자면 그런 경험은 전기때 충분히 했으니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공부하는걸로 충분하다. 지금사귄 친구야 어짜피 얼마못가 헤어지게 될테니까 말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사토 교수님이 배경설명을 하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모두가 어른들의 세계를 학급으로 옮겨서 표현한 작품이다. 사토교수님은 1945년 우리나라의 해방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0년, 조 상, 이 전쟁은 누가 어디를 침략했죠?”

“북쪽의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에 남침하였습니다.”

사토 교수님은 다른 한국인들도 많은데 계속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이 전쟁은 언제까지 지속되었죠?” “1953년 7월에 끝났....아니, 끝난건 아니고 휴전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렇죠, 3년간 지속 된 전쟁이 끝나고 이승만은 독재를 시작합니다. 무려 3선에 걸쳐서 계속 대통령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4선때, 부정선거가 들통이 나버려서, 1960년, 학생운동이 일어납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59년, 서울의 명문학교에 다니던 초등학생 ‘한병태’가 시골학교로 전학가면서......”

역시 시간이 지나 다시봐도 재미있고 메시지도 확실한 명작이다. 시간관계상 전부는 보지 못하고 다음주에 나머지를 다 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니 광표가 친구들을 데리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과제를 위해서다.

“야~ 조영빈 빨리 나와~”

“기다려봐, 사진찍는데 면도 좀 하고 찍자.”

면도를 정성껏 하고 나갔더니 다들 하나같이 한 마디씩 한다.

“똑같은데?” “똑같은데요” “시끄러 이것들아”

나 외에 친구들은 이미 다 찍었다고 하고 나만 찍으면 된다고 한다.

“어? 왜 안 되지?”

광표의 필름카메라가 말을 듣지 않았다.

“카메라가 널 거부한다.”

주현이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 너 찍어서 이렇게 된거잖아, 이딴거 찍으니까 카메라가 배탈나지”

지금 생각하니 말이 좀 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키키

원인은 필름이 꽉 차서 그런것이었다.

“에? 필름 사러 안 가?” 기껏 자기를 위해서 면도까지 정성껏 했는데 난 안 찍고 끝내려하다니? “다른 애들 많이 찍어서 괜찮아”

“야야야야, 그래도 이놈아 다른애들 다 나오는데 나만 쏙 빼면 내가 슬프잖아”

그렇게 나는 광표의 과제물에서 제외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도 쉬는 날이라 한 시간 정도만, 지난번에 사서 오오시마 유코 퍼즐을 맞추기로 했다. 그런데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라 도무지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 맞추고 그만두자, 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반복되어 결국 하루종일 해서 난이도 별 5개의 이 퍼즐을 아까 다 맞춰버리고 말았다. 학교 다녀와서 지금까지 퍼즐에 투자를 해버린 것이다.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고 자기가 완성한 작품을 봤을 때의 쾌감은 끝내준다. 그래서 난 프라모델을 장난감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한다. 그 재미를 모르니깐...퍼즐도 맞춰보니 그런 비슷한 재미가 있었다. 퍼즐 역시 꽤나 재미있는 취미같다. 시간만 많다면 말이다.

저녁에 정말 오랜만에 소영이랑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라이브 꼭 보러와!! 요새 맨날 라이브연습한다 댄스동아리’

‘뭐냐, 두달만에 온 메시지가 날짜도 안 알려주고 다짜고짜 라이브 보러오라니’

‘11월 25일’

‘가면 네 이름 쓴 수건 들고 괴성질러줄게’

‘와라!ㅋㅋ’

‘괜찮다면 무대난입도 해 줄 수 있어’

‘근데 천엔이야’

‘일요일이면 아마 아르바이트 없을거다. 갈래’

‘우우옹~ ^0^’

‘근데 천엔인데....좀 비쌈’

‘뭐 어때, 덕분에 메이지대학 구경도 할테고, 네 연습량이 천엔도 안한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ㅋㅋ 공연은 그만한 값을 지불하고 봐야제’

‘우리 라이브는 대학에서 안 해’

‘그럼 뭐 도쿄돔에서 하냐?’

‘도쿄돔 컴온’

‘에? 진짜?’

‘농담ㅋㅋㅋㅋ 아무튼 무슨 홀 빌려서하고 DVD만들어서 뒤에 촬영팀도 있고그래’

‘바보야, 나 순수한 사람이라 믿어버렸잖아’

‘..뭐야 -_-; 때리고싶당..뭔 놈의 동아리가 도쿄돔에서 해ㅋㅋㅋ’

‘그러고보니 6월달에 만났을 때 좀 많이 맞았던거같기도 하고’

‘고뤠?ㅋㅋㅋㅋ 나 오프닝이랑 펑크랑 호러랑 케이팝 네 개 나간다’

‘오프닝부터 볼 수 있겠네’

‘케이팝은 옷이 섹시해서 망했어, 안 어울려 엉엉엉’

‘음...판단은 내가한다.’

‘아오, 배랑 어깨랑 다 내놓는다는데. 내 뱃살! 라이브전까진 다이어트!’

‘신오쿠보 가자’

‘앙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롱’

‘라이브 끝나고가자ㅋㅋㅋ’

얘는 본의아니게 일본에 와서 춤 연습만 하는것같다. 뭔진 몰라도 보러가야지, 메이지대학 동아리의 힘을 한번 보러 가봐야겠다. 소영이도 과제가 있고 나도 영어숙제가 있어서 11월 25일 라이브때 만나기로 하고 서로 할 일을 했다.

오늘의 지출 – 점심 오야코동 400엔

매점에서 아몬드라떼 110엔

카스미에서 쌀, 고기, 딸기우유 1844엔

총 2354엔

[Knark.mt]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