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3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홉 번째날
2012. 10. 23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홉 번째날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밤 잠도 잘 오지않아 계속 뒤척였었다. 별로 자지 못했는데 1교시 수업을 들으러 나가려니 미칠것같았다. 그런데다가 하늘은 구멍이 뚫렸는지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덤으로 화요일 1,2교시는 내가 정말정말정말 싫어하는 수업이다. 이쯤되면 수업에 안 나갈 핑계는 차고도 넘친다.
“음냐음냐, 잘거야......”
저 비를 뚫고 학교를 가면 흠뻑 젖을테고 그런 불쾌한 상태로 불쾌한 수업을 들으라면 돌아버릴 것이다. 나의 건강을 위해 오늘은 자체 휴강을 하자. 1교시 쉬는김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2교시 생애학습론 수업도 쉬자. 어? 그럼 3교시 수업도 쉬어버릴까 하루 안나간다고 영향이 있는것도 아닌데...3교시 안나간다치면 4교시도 걍 빠질까? 에이, 오늘 하루 그냥 통째로 쉬어버릴까? 까지 다다랐다.
역시 철이는 룸메이다. 아무말도 안해도 수업을 빠지겠다 결심하면 아무말도 안했는데도 서로 그 날은 똑같이 빠진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철이도 1, 2교시를 나가지 않고 잠을 잤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영은이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밥을 같이 먹자고 말이다.
“나 집이다.” “뭐?” “그냥 잤어”
“철이는?” “철이도” “서로 안 깨워주고 그냥 자다가 지금까지 잔거에요?”
아니, 작정하고 안 나간건데라고 상황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아무튼 일어났으니 학교는 가야지. 밥 맛있게 먹어라”
철이는 3교시 수업을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 3교시 수업마저 쉬었다.
“이따가 4교시 나갈거야, 영화보러 가야지. 그 때 봐”
4교시 동아시아 영상문화시간은 가만히 앉아서 영화만 보면 된다. 영화보러 가겠다고 그 때 보자고 했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며 빈둥대다가 오후 2시가 넘어 슬슬 일어나 학교를 갔다.
“영화 보러 왔다.”
자리에 앉으며 철이에게 말했다. 가방도 없이 몸만 와서 강의실에 앉았다. 난 불량학생이 아니다. 필요없으니까 필요하지 않은건 가져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보러 왔다면서 정작 틀어준 영화조차 보지 못하고 계속 졸았다.
“오늘 윤희누나랑 수진이 누나 우리집에 와서 놀기로 했잖아”
철이가 말했다.
“응, 그래, 찌개 끓여주겠다고...”
방학전에 수진이 누나에게 국물좀 먹고싶다고 말했더니 누나가 우리집에 와가지고 찌개를 끓여준다고 했었다. 몇 달이 지나, 오늘 수진이 누나가 우리집에 온다.
“그냥 피자 시켜먹자고 하면 안되나, 갑자기 피자가 당기네..”
“사실, 나도 그게 훨 나은 것 같아”
그도 그럴것이 찌개라면 최근에 나 혼자서도 아주 잘 끓여먹고 있다.
“더군다나 된장찌개야”
매운걸 좋아하는 나는 김치찌개를 요구했는데 수진이 누나는 된장찌개를 끓여준다고 했다. 싫다고는 못하고 아, 그러군요 하고 말했는데 미안하지만 굳이 된장찌개를 먹고싶지 않았다. 끓여주겠다는데 무슨 불만이 있냐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나 혼자 더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된장찌개를 끓여주면 먹겠지만, 그래도 피자가 훨씬 낫다.
“그래, 오늘 비도 오는데, 그거 끓여주겠다고 우리집까지 찌개 재료들고 오면 힘들잖아”
바로 주변환경을 이용해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냈다. 난 천재다.
해먹을 반찬거리가 없어서 선피아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고 잠시 후 윤희누나랑 수진이 누나가 집에 왔다. 수진이 누나는 비옷을 입고 있었고 한 손에는 비닐봉지 한 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피자를 먹자고 미리 말했는데도 굳이 찌개재료를 들고 온 것이다. 아, 미안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 피자를 주문했다. 그러고보니 피자를 시켜먹는건 정확히 이번이 세 번째인데, 마지막으로 시켜먹은게 4월달이니 무려 6개월 전이다.
피자를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슨 얘기를 그리 했는지, 시간은 쭉쭉 흘러갔다. 사실 그냥 오늘 쉬고싶었다. 못 보던 드라마나 보면서 가만히 있고 싶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진이 누나가 전기때, 나에게 먼저 왜 이야기를 걸었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나를 몇 살로 봤는지 의문이 풀렸다.
“음, 그 때 이랬지...저런 오빠도 학교 다니는구나...”
“예???” 나를 제외하고 다들 폭소가 터졌다.
“미안미안, 근데 키도 크고 이러니까”
“누나가 지금 스물 아홉인데 그거보다 오빠로 봤다면 최소한 서른으로 봤단거여요?” “그렇지”
충격, 나이 먹어보인단 소리를 몇 번, 아니 꽤 들어도 서른이 넘어간건 처음이었다.
“...아, 피자 맛있었어요,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피자를 다 먹고 다 같이 약쿠스 드러크에 가서 마실거리랑 과자 두 개를 사 온다음 더 떠들다가, 오후 10시 35분의 마지막 전차를 태우기 위해 윤희누나랑 같이 토가네 역까지 걸어갔다. 다행히 비는 다 그쳤고, 수진이 누나는 자전거를 타고 혼자 집에 갔다.
그리고나서 늦은 휴식을 취하고, 영어숙제를 대충 해치웠다.
오늘의 지출 – 선피아에서 반찬거리 생선 536엔
피자 - 1086엔
음료, 과자 – 300엔
총 1922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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