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02 화요일 유학생활 백 여든 어덟 번째날
2012. 10. 02 화요일 유학생활 백 여든 어덟 번째날
‘영빈 상~ 좋은아침! 오늘 학교 몇 교시 까지?’
일어나자마자 사야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야’
‘사야도 4교시까지니까 오늘 선물 들고갈게!’
눈은 떴지만 침대에서 떠나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1교시를 나가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힘을 내어 일어나서 학교를 갔다. 1교시 아메리카문화 수업이 끝나고 2교시 생애학습론 강의실 앞에서 우연히 사야를 만났다.
“엇?? 영빈 상! 안녕~ 잘 됐다!”
“사야! 안녕??”
사야는 자기친구한테 먼저가있으라고 한 뒤 노란색 봉지를 보여주었다.
“되게 재미있는거 준비했어~ 쨔잔...!!!!”
고야가 그려져있는 클리어파일이었다.
“으엌, 고야?? 왓핫핫핫핫핫”
내가 매 끼니 고야를 먹는걸 알아서 이걸 고른듯하다. 비싼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나에 대한 이미지가 담긴 선물을 받으면 상당히 기분이 좋다.
“이 부채는 철 상꺼고, 이 초콜릿은 두 사람이 사이좋게 나눠먹어야 돼!”
“고마워 사야!”
“수업 힘내~”
“힘내는거에는 익숙해져있으니까 걱정 마, 그럼 바이~”
생애학습론이 끝나고 철, 희애, 주현, 영은이랑 같이 밥을 먹고 3교시 일본어휘수업을 들은 뒤 4교시 동아시아와 영상문화수업. 사토교수님은 칠판에 ‘われらの歪んだ英雄’라고 썼다.
‘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리고 이어서 ‘1992년, 한국’이라고 쓰셨다. 그렇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도 나왔던 그 명작소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초등학교 때 영화로도 봤었다. 그 영화를 지금 일본에서 12년만에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조 군, 이 영화 알고있나요?”
“예, 초등학교때 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봤었어요? 오오, 그렇군요!”
사토 교수님은 ‘李文烈’을 칠판에 쓰고 나한테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았다.
“이문열입니다.”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지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봤을 때 이렇게 대단한 영화가 있다니 정말 깜짝놀랐어요, 영화에서만큼은 1992년 그 당시에도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야~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지요.”
그리고 사토교수님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배경이 되는 1959년의 설명을 하시고 영화를 틀어주셨다. 12년전, 초등학교 때 본 영화지만 아직까지도 홍경인의 엄석대가 생생하다. 영화 마지막의 명대사 ‘저 새끼 순 나쁜새끼에요’도 말이다. 시간관계상 영화의 약 15분정도까지만 보고 수업이 끝났다.
모든수업이 끝나고 집에오자마자 마츠모토 키요시로 향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폼클린징도 다 떨어지고 치약도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약과 화장품을 같이 파는 드럭스토어 체인점이다. 살 것을 다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피아에 들어갔다. 반찬거리도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음냐음냐, 뭘 사다놓고 맛있게 먹을까...”
고야챔플도 여전히 맛있긴했지만 상상만해도 몸이 거부할 정도로 질려버렸다. 싫어진게 아닌데 말이다. 사람 몸은 정말 신기하다.
이게 뭐냐, ‘화요일 특별코너, 각종튀김 좋아하는거 아무거나 집으세요, 6개에 330엔!’? 처음보는데 이런게 있었나...? 카레롤, 롤피자, 야채튀김, 새우튀김, 오징어튀김, 닭꼬지, 메추리알꼬치, 햄버그 등등이 있었다. 하나에 60엔 꼴로 비교적 싼 가격이었다. 좋다. 6개 골라서 집어가자. 뭘 가져갈까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영빈, 영빈”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 교수님도 여기로 반찬거리를 사러 오셨다.
“억, 교수님”
“뭐 사러 왔어”
“반찬거리죠, 마침 지금 이렇게 6개 330엔 코너가 있어서 보고있었어요”
“이것들이 6개 330엔이래?” “네네,”
“주현이랑 영은이도 여기로 반찬거리 사러 온다고 하던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 교수님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주현이랑 영은이가 이쪽으로 왔다.
“잘 됐다, 우리집에서 잡채먹고 안 갈래?? 많이 남아서. 그리고 쫄우동이라고 먹어봤냐? 끝내주지, 먹으면 기절한다.”
장 교수님이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빨리 집에가서 쉬고싶었다. 게다가 9시부터는 GTO스페셜이 한다. 그래도 어떻게 거절을 하겠는가, 쫄우동이 뭔지 먹어보고 싶기도 하고... 장 교수님은 철이도 불러서 나랑 철이, 주현이 영은이. 이렇게 장 교수님 댁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우선 잡채를 대접받았고 그 다음으로는 먹으면 기절한다는 장 교수님표 쫄우동을 먹었다. 솔직히 많이 싱거웠지만 배가고파서 마구 흡입했다.
내가 장 교수님 댁에서 밥을 먹는걸 조금 망설였던 이유, 밥 먹은 뒤에 기나 긴 대화타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쉬고 싶었기에 거절하고싶었던 것이다. 9시에 시작하는 GTO 스페셜은 볼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9시는 훌쩍 넘어버렸고 10시 15분쯤이 돼서야 기나긴 대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말 오랜시간 나눴지만 가장 기억에 ‘모리’교수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쩌다보니 모리교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지금까지 모리교수에게 갖고있는 이미지는 ‘정말 나쁜사람’이었다.
처음 유학을 왔을 때, 유선이도, 은아도, 혜연이도 그리고 그 외 많은 한국인도 모리교수님의 수업만은 절대 듣지말라고 했다.
“왜? 뭐라하던데?”
장 교수님이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고 물어보셨다.
“일단 그 모리교수라는 사람이 한국인을 무시한대요.”
“지네가 공부를 안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수업과 관련없이 군사, 무기 얘기를 늘어놓고”
“모리교수님은 전공이 군사쪽이야. 그리고 북한을 연구하시는 분이다. 그런 얘기가 나오는게 어쩌면 당연한거지, 그리고 얼마나 잘 아시는데 그걸 배울생각을 안하고 그냥 싫다고 나쁜사람을 만드는걸 봐라, 거기에 바로 넘어간 너도 문제다.”
“열이면 열 절대로 듣지 말라고 하니까요”
“나쁜 분 아니고 얼마나 상냥한 분이신데... 아이고 아이고”
‘사람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모른다’ 라는걸 언제부턴가 꼭 머릿속에 넣고 행동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결국 ‘모리’라는 글자만 보고 이 수업은 듣지 않겠다고 제외부터 시켰다. 그리고 ‘모리’ 교수를 볼때마다 겪어보지도 않고 말을 섞어본적도 없으면서 ‘저 사람은 나쁜사람’ 이라고 인상부터 찌뿌렸었다. 가만 보면 사람을 싫어하는데도 별 다른 이유가 필요없는 것 같다.
오늘의 지출 – 마츠모토 키요시에서 폼클린징, 칫솔, 치약, 과자 하나 625엔
선피아에서 반찬거리 1284엔
총 1909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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