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06 토요일 유학생활 백 아흔 두 번째날
2012. 10. 06 토요일 유학생활 백 아흔 두 번째날
자전거 사고가 다행히 정말 빠르게 마무리 지어졌다. 덕분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일어나보니 무려 오후 1시였다. 게다가 오늘은 아르바이트도 7시 30분부터다.
밥을 먹고 어제 사온 오오시마 유코 퍼즐을 맞추었다. 조각이 따닥따닥 맞아나갈때의 쾌감은 정말 끝내준다. 난 프라모델도 그렇고 퍼즐도 그렇고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 장래에 이런 성격을 살릴 수 있는 일이 없나 찾아봐야겠다.
밤 9시부터 ‘기묘한 이야기’라는 유명한 프로그램이 시작한다. 정규방송이 아니고 가끔 특별할 때 틀어주는데 저런 괴담시리즈를 좋아한다. 꼭 보고싶었다. 오오시마 유코가 나온다고 하니까...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가야해서 포기해야했다. 금방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올테니까.
나는 스스로가 ‘슬로우 스타터’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시작하던, 시작은 정말 멍청하고 실패투성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지고 제 페이스를 찾고, 나아서 성장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그런 성격이 잘 나타나고 있다. 출근 후 얼마 안되서는 버벅거리고 동작이 느리다. 게다가 오늘도 초반에 대형실수를 저질렀다.
“주문은 정하셨나요?” “네기시오부타동 정식 하나요” “예, 감사합니다.”
네기시오부타동이라고 분명히 들었으면서 나는 야키니쿠 정식을 입력하고, 주방에 전달도 야키니쿠 정식이라고 전달했다. 그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 자신있게
“규테이 잇쵸!(야키니쿠 정식 하나 라는 요시노야의 전달방식)”
당연히 주방은 야키니쿠 정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거의 완성될 때 쯤에 저 손님이 야키니쿠가 아니라 네기시오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뭣 때문에 알게됐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야키니쿠가 아니라 네기시오였어요!”
그래도 손님한테 가기전에 깨달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아무튼 나 때문에 야키니쿠 정식 하나를 손해 본 셈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머리숙여 사과했다.
“조 상, 잘못됐을 때는 바로바로 얘기해주세요, 안 그러면 음식 하나를 날리는거니까”
엄청 혼날 줄 알았는데 스즈키 씨는 미소로 타일러주었다. 게다가 새로운 쿠폰들이 많이 생겨서 계산할때도 새 쿠폰들에 대한 적응이 좀 필요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항상 초반에 엉성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제 페이스를 찾는다. 오늘따라 왠일인지 오후 8시 반이 넘어도 손님들이 계속 찾아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당황하고 버벅거리지 않으며 척척 잘 해냈다.
“조 상! 식사 어디까지 나갔나요?”
“네기시오부타동 두 개만 나오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밀려왔던 손님이 식사를 하나하나 다 하고 나갔다.
“조 상, 정말 대단하네요”
우자와씨는 항상 나보고 대단하다고 칭찬해준다. 민망할정도로 말이다. 하나사카씨랑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정 반대다. 물론 하나사카씨도 대화를 나누어보면 그런게 아닌걸 알지만 하나사카씨랑 같이 일할 땐 괜히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아니에요, 대단하긴 아직 한참 멀었고, 실제로 오늘도 큰 실수 했고”
“전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우자와씨도 처음에는 많이 실수하고 그랬나요”
우자와씨가 말이 필요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하루종일 실수였죠! 스즈키씨한테 혼나는게 일이었어요 정말 맨날!”
“우자와씨가 맨날 실수라니, 전 상상이 안 가네요”
“그렇게 실수하는것도 처음뿐이에요”
그리고 손님중에 처음으로 내 이름표를 보고 어디서 온 사람이냐고 물어본 손님이 있었다.
“자네는 중국사람인가?”
“아니오, 한국인입니다.”
“한국이군, 일본어 끝내주는구만”
“아닙니다. 아직 멀었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퇴근시간이 다 되었고 나랑 교대하러 기무라 사야코씨가 와서 인계를 했다.
“계산 끝난건 없고요, 테이크아웃용 비닐봉지를 접는 작업을 이어서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무라 사야코가 살짝 수줍은 듯 작게
“수고하세요”
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정확히는 ‘수고하셨습니다’지만 말이다.
“아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나 역시 한국어로 답해주었다.
“일은 많이 익숙해지셨나요?” “글쎄요, 그건 제가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평가하는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희 같은 학교지요?”
“예, 맞아요. 여러번 학교에서 만났었죠”
거짓말이다. 장 교수님에게 듣기 전까지는 이런 애가 있는줄도 몰랐다. “장 교수님의 한국어 수업때요!”
아, 역시, 전기때 견학갔던 한국어수업을 기무라 사야코도 들었었구나.
“그 수업 들으셨었군요, 전 앞쪽에 앉아서 기무라씨가 있었는지 잘 몰랐어요”
“전 뒤 쪽에 앉았었거든요, 실례지만 나이가...”
“22에요, 약 일주일 뒤에 23이 되지만”
“생일!”
기무라 샤아코가 한국어로 ‘생일’이라고 외쳤다.
“맞아요, 곧 생일이에요 하하하”
역시 나도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저보다 나이 많으니까 말 편하게 하세요, ‘오마에’ 든 뭐라 불러도 좋으니...”
“에에엑? 안될말이죠, 나이는 관계없어요, 여기선 선배이고 게다가 ‘오마에’라니”
‘오마에’는 가장 스스럼없는 2인칭으로 굉장히 친할경우에 쓰는, 그래서 반대로 친함이 드러나는 거친표현이다.
“제가 일본와서 누군가를 ‘오마에’라고 불러본 적 단 한번도!....몇 번은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래도 먼저 저렇게 말해줬다는건 기무라 사야코가 나랑 친해지고 싶어한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치에미 알아요?”
사야코가 물어봤다. 편하게 대해달라 이야기 해 줬으니 이하 사야코라고 쓰겠다.
“알죠, 우에치 치에미”
“나 치에미 친구”
한국어로 이렇게 말 한 다음에, 사야코는 손가락으로 나랑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며 ‘친구’ 라고 이야기했다.
“오케이 오케이, 너, 나 친구!”
나도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기무라씨랑 대화할 수 있는것도 이렇게 잠깐 교대할 때 빼곤 못하지만 말이죠”
그러니까 더 친해져서 요시노야에서 뿐만 아니고 다른곳에서도 만나서 놀거나 이야기하자라는 마음에 이런 말을 꺼낸 것 같다. 나란 녀석은 속이 음흉하다.
손님 두 명이 들어왔다.
“이제부터 제가 이어서 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사야코가 말했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내일 하라주쿠와 시부야로 놀러갈 계획을 세웠다.
오늘의 지출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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