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일본 교환유학일기

2012. 10. 14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번째날

2012. 10. 14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번째날

일요일이라 푹 자고 난 뒤에 5시에 나갈 준비를 했다. 윤희누나, 수진이 누나랑 저녁밥을 먹기로 약속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오후 다섯시까지는 뭘 했는지 쓸 수가 없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고 정말 한 게 없이 뒹굴거리기만 했을 뿐인데 오후 5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왜 쉴 땐 시간이 이리 금방 지나가는것입니까. 연구할 필요가 있다.

토가네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윤희 누나는 미리 와 있었고, 얼마 후 수진이 누나가 합류하여 사이제리야 레스토랑으로 갔다. 솔직히 난 사이제리야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양이 적다. 맛이 있는것도 아니다. 치에미랑 와서 까르보나라를 시켰을 땐 너무 느끼하여 다 먹는게 목표일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래도 가격이 비싼편이 아니고 친구들이랑 가벼운 마음으로 오랜시간 앉아있고싶을땐 사이제리야 만한곳도 없는게 사실이다.

각자 먹을 음식을 주문하였다. 나는 도리야랑 피자, 두 개를 주문했다. 내가 돼지가 아니고 일본인들은 대부분 사이제리야에서 메뉴 두 개를 주문했다. 양이 적고, 가격도 부담되지 않아서이다. 같은 이유로 내가 일하고 있는 요시노야에서도 메뉴 두 개를 주문하는 사람이 많다.

윤희누나랑 수진이 누나는 나랑 철이가 무슨 말만 하면 그렇게 웃어주고, 우리도 거기에 신나서 더욱 더 활발히 이야기를 했다. 이미 식사는 다 끝낸지 오래고 계속 수다를 떨었고, 그렇게 사이제리야에서만 세 시간 반을 앉아있었다.

“실례합니다. 더 주문하실 것 있으신가요?” “아뇨, 없습니다.” 하도 오래 앉아있어서 빨리 나가주십사 눈치를 준 거라 판단하여 우리는 수다를 마무리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냐음냐, 난 두 개 먹었는데, 얼마지?”

전표에서 도리아랑 피자를 찾아서 더 한 값을 동전지갑에서 꺼내고 있을 때,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온 윤희누나가 말했다.

“계산 다 했어”

“예?, 이걸 다 했다고요?” “응”

이 때 까지만 해도 일단 한번에 계산하고 나중에 각자의 분을 회수하려는 줄 알았다.

“괜찮아 괜찮아”

“하?”

사실 평소의 나 였다면 ‘아 그렇습니까, 잘 먹었습니다 땡큐’ 하고 입 싹 닦았을 텐데, 메뉴 두 개나 흡입했으므로 그럴수가 없었다. 나랑 철이랑 수진이 누나는 돈을 쥐어주려 했지만 윤희누나는 끝내 거부했다.

윤희누나랑 수진이 누나 둘 다 집이 학교 앞의 구묘역 쪽이다. 수진이 누나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윤희누나는요?”

“나는 전차 타고 왔는데”

“전차 있어요?”

“응, 아직 안 끊겼지”

“아니, 그게 아니라 토가네선은 전차 텀이 굉장히 길잖아요”

“아! 맞다! 확인하고 나올걸”

토가네 역을 가보니 전차는 앞으로 한 시간 뒤, 10시 35분에나 있었다.

“이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쩌나, 한 시간을 기다리던가, 걸어가던가, 하는 수 밖에 없지. 하지만 두 선택지 전부 정답이라고 할 수 없었다.

“네 뒤에 태우면 되겠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철이에게 툭 던졌다. 사실 지금 당장 윤희누나를 어떻게 집으로 보내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

“그래야겠다”

그래서 이 밤에 나랑 철이랑 수진이 누나, 철이는 뒤에 윤희 누나를 태우고 이 밤에 다시 학교를 향해 달렸다. 학교를 한참 윤희누나를 내려주고, 우린 다시 수진이 누나 집까지 간 다음에 집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꽤나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서 운동이 되었을 것이다.

집에 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AKB48의 극장반CD 결제를 했다. 집에와서 휴대폰을 보니 영은이가 내일 하라주쿠를 간다고 주문이 있으면 사다주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오예! 안 그래도 새로나온 A4생사진을 사러 일부러 하라주쿠를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였는데 잘 됐다. AKB48 오피셜샵 지하에서 오오시마 유코와 카와에이 리나의 A4생사진을 사다줬으면 좋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에 페이스북을 보니 후배 은지가 글을 남겼다. 내년에 조사이국제대학으로 올 교환유학생 선발이 끝난 모양이다.

은지는 이것저것 물어볼게 많다고 메신저 접속을 요구했다.

‘저기,,,근데 오빠 생일이세요?’

‘어? 어찌알았어’

‘아이디 옆에 생일 표시가 있어서요’

‘약 30분정도 남았지만 맞아’

‘그렇구나! 미리 축하드려요! 헤헤’

벌써 교환유학생을 선발이 끝났구나, 교환에 선발되었을 때 기뻐했던게 벌써 1년전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은지는 물어볼게 많으니 각오하라고 일러둔 다음에 이것저것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일본의 대학 사정을 알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질문들도 여럿 있었다. 이곳에서의 시험부담은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시험걱정을 하며 어떻게 해야하냐면서 질문해 오는 후배가 정말 귀여웠다. 나도 작년엔 이랬겠지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뭐든지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다른시각에서 보면 새로운것에 겁 먹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준비하는건 좋지만, 경험해보면 해결될 것에 미리 겁을 먹는건 좋지 않다.

12시가 지나고, 10월 15일이 되었다.

“영빈아, 생일 축하한다.”

철이가 내 방으로 넘어와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

“알고있었냐”

“당연하지”

“역시 룸메밖에 없고만” 솔직히 알아줄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내 생일을 누구에게 떠벌리는 스타일도 아니고, 철이는 애초에 이벤트를 챙기는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내일도 아르바이트 가는거냐?”

“가야지”

“야, 그럼 어찌하냐 그래도 네 생일인데 친구들끼리 놀아야지. 내가 지금 애들 점심에라도 시간 되는지 물어볼게”

“아서라, 점심에 시간 되는애가 어딨겠어, 그리고 그렇게 생일인거 홍보하는거 안 좋아하기도 하고”

난 정말 얄미운 구석이 있다. 내 생일을 왠만해선 남들에게 홍보하지 않는다. 그건 아주 예전부터 그랬다.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서가 절대 아니다. 나쁘게 말하면 친구들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과연 내 생일을 알아주고 챙겨주느냐 챙겨주지 않느냐....왜 굳이 그러냐면 홍보하지도 않았는데 생일을 챙겨주면 내 기쁨도 두 배가 되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더 깊어진다는게 유치한 이유이다. 철이를 저지한것도, 밤 늦게 폐가 되니까도 아니오, 생일이라고 떠드는게 싫어서도 아니오, 다른 녀석들도 내 생일임을 알고 알아서 챙겨주느냐 마느냐를 떠보기 위해서이다. 나는 매년 이런식이어도 단 한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12시가 넘자마자 생일을 축하한다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말을 하니 다들 놀란다.

“에? 생일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국인들은 아,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만 일본인 친구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랐다.

“뭐, 나쁠거없고, 특별한 스케쥴이 있는것도 아니고, 요시노야 사람들은 내 생일이랑 아무 관계 없잖아?”

아르바이트는 오후5시부터 11시까지이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친구들과 노는건 불가능하다. 어떤 생일이 될지는 대충 예상이 가기는 한다.

오늘의 지출 – AKB48 CD 두 장 결제 2500엔

[Knark.mt]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