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9. 08 토요일 유학생활 백 예순 네 번째날
2012. 09. 08 토요일 유학생활 백 예순 네 번째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밖이 계속해서 시끄러웠다. 시끄러운 그 소리는 한국어였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굳이 들으려하지 않아도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그리고 뭘 하고 있는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현이가 자전거 타는걸 연습하고 있고, 영은이는 그걸 도와주고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잘 하고 있나 구경하러 갔다. 일본에 오자마자 광표한테 자전거 타는법을 가르쳐주었던 며칠간이 생각났다. 뒤에서 자동차 엔진소리만 나도 멈추고, 앞에 사람이 보여도 창피해서 자전거를 멈춰가며 연습했었다. 광표는 4월 한달 간,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갈 때 ‘목숨을 걸고 학교가는 기분’이라고 말했었다. 물론 지금은 아주 잘 탄다.
그 때의 광표랑 주현이가 오버랩 될 거라고 생각하며 나가본거다. 출발도 못하고 낑낑대며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는데 주현이는 비틀비틀 거리기는 해도 아주 잘 타고 있었다. 광표의 연습 3일차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어, 뭐야? 잘 타네”
“네, 연습 조금 하니까 바로 저렇게 타네요”
주현이가 배운게 빠른건지 광표가 둔했던건지 모르겠지만, 주현이는 아직 커브를 돌지 못할 뿐 직선은 비틀거리면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저 정도라면 더 가르칠거 없네”
“네, 이제 혼자 타 보면서 익숙해지면 되겠어요”
지난 날, 광표에게 장난으로 보조바퀴를 다는걸 생각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말했던게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장 교수님에게 전화가 왔다, 희애가 주현이랑 영은이의 집에 놀러오고싶다고 하길래, 일단 우리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우리집에 오면 주현이랑 영은이의 집이 어딘지 가르쳐주라고 한다. 희애한테 전화를 해봤더니 지금 당장은 아니고 5시쯤에 온다고 했다.
AKB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5시 20분쯤에 광표가 우리집에 왔다. KFC가 창립기념일을 맞이해서, 어떤 메뉴를 세일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걸 사먹으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떤 메뉴인지 이름은 모르겠다.
준비를 마치고, KFC로 출발하려 하기전에 화장실을 갔다. 그런데 내 방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몰라...그냥 집 전화인데?”
요시노야인가보다. 나는 아무 기대를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요시노야에 채용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요시노야 점장 노구치라고 합니다. 조 상의 휴대전화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엊그제 아르바이트 면접말인데요, 채용을 하는걸로 하게 되었습니다.” “!!!!!!!!”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요시노야에서 나를 받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어제도 썼지만 요시노야에서는 같은 시간에 나 말고 다른 일본인도 아르바이트 신청을 하러 왔었다. 아무래도 그 일본인을 뽑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포기하고 KFC를 마지막으로 생각했었는데 채용이 된 것이다. 새벽12시부터 3시까지만 쓸 생각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제와서 다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용을 결정해 준 것 자체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솔직히 마음 구석 한켠에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계약을 해야하는데요, 9월 13일 17시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계약할 때 필요한게 있어서 가져오셔야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메모할 것을 준비해주세요”
“예, 메모 준비 됐습니다.”
“증명사진 1장이랑, 외국인등록증 복사본 양면, 뒤까지 말이죠. 자격외활동허가서, 에, 그리고 보험증 있으신가요?”
“예 있습니다.”
“그 보험증 역시 앞 뒤로 복사부탁드리고요, 통장에 도장찍힌 부분있죠? 그것도 복사해서 제출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도장있으신가요?”
“예예, 있습니다.”
“도장도 가져오십시오”
“예, 확인하겠습니다. 증명사진 한 장, 외국인등록증 복사 양면, 자격외활동허가서, 보험증 복사 이것 역시 양면, 통장복사본, 그리고 도장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9월 13일날 뵙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세!! 채용이 됐다! 정말 많은 곳에 아르바이트 신청 전화를 했다. 역시 계속 두드리면 문을 열리게 되어있다! 하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가장 큰 산은 넘었지만 산이 하나 더 남아있다. 나는 1년이상 할 수있다고 말을 했는데, 자격외활동증명서에는 나의 비자기간이 써 있다. 이걸보고 내 채용을 얼마든지 취소할 수 있다. 추궁하면 어떻게 또 거짓말을 해서 넘길지 대비해야겠다. 역시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광표와 철이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구한것에 성공한 것을 축하해주었다. 이제 기쁜마음으로 치킨을 먹으러 KFC에 가면 된다. 그런데 또 전화가 와서 보니 희애였다. 우리집 근처에 다 왔다고 해서 희애를 기다린다음에 주현이랑 영은이의 집을 알려준 뒤 KFC로 달려갔다.
세일하는 치킨세트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치에미였다.
“엣? 치에미?”
“오, 오빠들 안녕, 얘들은 나 사는곳 친구들이야”
치에미가 자기랑 같이 있던 두 친구를 소개해줬다.
“안뇽~~~~~”
치에미의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우리도 웃으면서 안녕이라고 인사해주었다.
집에 돌아오는길에 마실 것도 사고, 세 남자는 미친 듯이 치킨을 뜯었다. 치킨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나는 마실거리로 맥주를 샀는데 보통 맥주보다 알콜함량이 좀 많아서 그런지 오랜만에 알딸딸한 기분을 느꼈다.
치킨을 다 먹고 우리는 웃긴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지금 희애가 있을 주현이랑 영은이의 집에 놀러갔다. 지금까지 우리 집이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주현이랑 영은이의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좋았다. 넓기도 했고 거실까지 에어컨이 달려있었다.
7시 반 쯤에 해산하고, 주현이랑 영은이 집은 아직 인터넷개통이 되지 않아서 인터넷을 하러 잠시 후 우리집에 오겠다고 했다. 나랑 철이는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집에 온지 10분도 안되서 초인종이 울렸다.
‘엄청 빨리 왔네, 급하긴 급한가보군’
“여! 왔냐!”
당연히 주현이랑 영은이인줄 알고 문을 확 열었는데 중년의 아저씨가 서 있어서 당황했다. 택배였던 것이다.
“조영빈씨이신가요?”
“예,,,,예.......”
“싸인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며칠전에 주문한 AKB48의 앨범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초인종이 울렸다. 이번엔 정말 주현이랑 영은이였다. 인터넷을 연결해주고 우리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4월 28일날, 동서대학교에서 만들었다는 한일합작영화, 너무 오래 된 일이라 기억에서 꺼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정말 재미가 없던 영화였다.
주현이랑 영은이는 일본어 전공이 아니다, 미디어전공이다. 그래서 영화제작에 관련된 수업을 신청한다고 한다. 주현이는 어찌해서 자리가 생겨서 온 거고, 영은이는 일본어전공이랑 같이 시험을 봐서 이겨서 교환에 발탁되었다고 한다. 영은이의 일본어가 빼어난것도 아니고 자격증 레벨도 2급인데 영은이한테 져서 못 온 동서대 일본어전공자들은 도대체 뭘 공부한건지 모르겠다. 반성해야한다.
아무튼, 미디어학과라서 각종 영상을 만들어왔는데 4월 28일 20주년 행사때 본 그 더럽게 재미없던 영화의 극본을 주현이가 쓴 거라고 한다. 재미가 없다는건 본인도 인정했다. 자기가 만들었던 영화 중에 지우고싶은 랭킹 2위라고 한다. 아무래도 제작과정에 상당히 많은 트러블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만드는 중엔 편했어, 일본에서 맨날 1200엔짜리 뷔페로 밥 먹고, 저녁도 막 5000엔짜리 밥 먹고 그랬거든”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만든 영화라면서 제작비가 다 그쪽으로 갔나보구만”
주현이는 그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 새 유학생들과 나랑 철이와의 수다는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고 11시가 넘어서야 돌아갔다. 영은이는 야구도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 같이 야구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고, 내일은 광표도 합류해서 다 같이 노래방을 가기로 했다.
오늘의 지출 – KFC치킨세트 990엔
편의점에서 맥주 295엔
총 1285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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