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9. 26 수요일 유학생활 백 여든 두 번째날
2012. 09. 26 수요일 유학생활 백 여든 두 번째날
아까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알람이 울려버린다. 어제 일찍 자서 꽤나 잤을텐데 별로 잔 것 같지 않고 더 자고싶었다. 그래, 좀 더 자자.
눈을 떠보니 8시 50분이었다. 학교가는 준비를 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도시락을 쌀 여유는 없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밥이 밥솥에 뻔히 있는데 학교식당에서 사 먹기는 아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도시락을 싸지 않고 바로 학교로 갔다.
1교시 일본의 역사b, 교수님이 수업에 쓸 자료를 돌렸다.
‘어라? 이거 전기때도 했던건데?’
전기 첫 시간에 배웠던 ‘일본지진의 역사’이다. 다음주까지는 전기에서 배웠던 것이 약간 겹친다고 했다. 오늘의 수업내용 ‘일본지진의 역사’는 프린트도 전기때와 완전 똑같았다.
“......제가 고등학교 선생님도 했었지만은, 어떤 교과서를 봐도 지진의 역사는 어디에도 가르치지를 않아요. 일본은 지진지대에 위치해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지진이 정말 많아요. 교과서에 나오는 지진은 관동대지진뿐입니다. 나눠 준 프린트에 교과서의 관동대지진 부분을 넣었으니 읽어보겠습니다.”
수업내용까지 전기때와 똑같았다. 관동대지진은 한국인의 아픈역사이기도 하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엄청난 사상자를 냈습니다. 대부분이 화재로 죽었어요. 도쿄 전체가 불바다였다고 하죠. 에, 지금이야 바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로 상황을 알 수 있었지만 이 때는 그런게 부족해서 유언비어가 많이 퍼졌어요. 그 중에 대표적인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있다! 저기 조선인이 살고있다! 죽이러가자! 그러면서 수천명의 조선인들, 수백명의 중국인들까지도 살해를 당했습니다.”
왜 조선인이 유언비어의 대상인지, 연도를 거슬러 1910년 한일병합이야기가 나오고 더 거슬러올라가 일본의 열강들과 불평등조약을 맺었던 일, 시간이 흘러 그 불평등조약을 이웃나라들에게 똑같이 써먹어서 괴롭힌 일들을 설명하셨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알고있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교수님이 한국의 슬픈역사, 일본의 나쁜짓을 열심히 설명할 때 잠깐 눈을 비비다 렌즈가 눈동자에서 이탈해버렸다.
‘아윽...!’
눈도 못 뜨고 어쩔도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주룩주룩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다시 렌즈가 자리 잡게 하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눈물을 흘려야한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중에도 교수님의 강의는 계속 되었다. 교수님은 나를 어떻게 봤을까? 자기나라의 슬픈역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애국청년으로 보였을까?
2교시는 토익시간, 건양대의 커리큘럼에 맞추기 위해 어쩔수없이 듣는 영어수업이라지만 잘못선택한 것 같다. 사람이 너무 적다보니 일일이 지목하여 답을 말하도록 시킨다. 원래 영어수업을 가장 싫어했지만 이번 영어수업은 말로 표현을 못할만큼 싫어졌다. 아, 내가 영어롤 조금만 공부했었더라면 이 지경은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2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3교시는 공강이라 상당히 긴 시간이 비게 된다. 나랑 철이는 학교에서 사먹는 게 아니라 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철이도 집에 밥이 많은데 사 먹기가 아까웠나보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고 나서도 4교시 수업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 음악을 들으며 쉬다가 다시 학교로 갔다.
4교시 한일번역수업을 마치자마자 영은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세요”
“네 오빠, 오늘 주현이 언니가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이라서 다 같이 사이제리야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어때요?” “음, 안타까운 일이야. 내가 오늘 아르바이트를 가거든요...”
“아, 맞다..”
“기다려봐, 철이 바꿔줄게”
나는 집에와서 20분정도 쉬다가 바로 요시노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라? 근태컴퓨터를 보니 점장님의 이름에 노란색불이 들어와있지 않았다. 그동안 점장님은 자기가 나올때만 나를 불렀는데 점장님이 안 계신 날 출근한건 오늘 처음이었다. 가게엔 스즈키씨, 하나사카씨, 그리고 나 이렇게 셋 뿐이었다. 하나사카씨랑은 처음 일을 해 본다. 첫인상은 무뚝뚝해보여서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친절하게 내가 할 일을 이것저것 지시 해주었다.
일은 굉장히 많이 익숙해졌다. 완전히 한 사람 몫을 해내는건 아니지만 이제 거의 모든 일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오더를 입력하는것도, 오더를 주방에 전달하는것도 많이 빨라졌다.
요시노야의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다 좋은 사람들이다. 물론 지금 이렇게 내가 재밌어하는것도 아직 초반이라 사람들이 많이 봐줘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이 늘어가는걸 스스로도 깨닫고 있고,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규동을 먹으러 갈 땐 스키야가 아니라 일부러 요시노야를 찾아가서 먹을 정도로 요시노야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즐기고 있어서 그런지 근무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퇴근을 하게 되었다.
“조 상, 토요일부터는 –멘츠-야~!”
스즈키씨가 말했다.
“예? -멘츠-가 뭐죠?” “지금까지는 배워가면서 짧은시간 했잖아. 이제부터는 그런거없이, 근무시간도 늘리고 한 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고”
“아아,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정받았다는 이야기인가? 아무튼 기뻤다. 토요일부터는 막 대하겠다는 선언으로도 들렸다.
“안녕하세요!”
유니폼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다음 아르바이트 생이 들어왔다. 우자와씨였다.
“오오옷! 우자와 씨!”
“오옷, 조 상, 이제 온거에요??”
“아뇨, 끝났어요”
“그렇구나! 수고하셨어요”
“우자와씨 토요일날 출근하시나요?”
“토요일요? 에,,,,어디보자......네네, 나와요”
“오호, 그럼 같이 일할수도 있겠네요”
“시간대는 5시 이후인가요?”
“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같아요”
“히야~ 같이 일하면 정말 도움될거에요!”
“허허? 곤란한게 아니고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지난번에 같이 했을 때 느꼈지만 조 상이라면 분명 잘할거라고 생각했어요”
“으허으허, 거,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정말이에요! 처음 오는 사람들 보면 심한사람 많아요, 그리고 거의 패닉상태가 되는데 조 상은 그런거가 없잖아요. 특히 계산대 앞에서 정확하게 하는거보고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온 사람들은 계산대 앞에서 많이 얼어버리거든요. 진짜 멍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조 상이라면 아무 문제없어요. ”
우자와씨는 얼굴을 보기만해도 편해진다. 그리고 저런 한 마디가 외국인노동자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는 말한 본인도 모를 것이다.
“우자와 군~ 조 상 토요일부터 멘츠야”
스즈키씨가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우자와씨에게 말했다.
“우오! 진짜요!?”
우자와씨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우자와 씨, 멘츠라는거 있잖아요. 무슨일을 하는건가요?” 우자와씨에 귀에 대고 작게 물어봤다.
“멘츠요? 음...딱히 변하는건 없어요. 교육이 완전히 끝났다라는 의미? 하던대로 하면 되요”
“긴장안해도 되죠?” “당연하죠! 하던대로 하면 되요”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지시의 말투부터 달라질거같아서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한숨 놓았어요” 우자와씨의 근무시작시간이 아직 남아서 우자와씨와 대화를 했다.
“한국은 아르바이트를 줄여서 –알바-라고 해요, 일본은 –바이트-라고 하잖아요? 거꾸로죠?”
“우왕 그렇구나 시급은요?”
“...에.....일본 엔으로 따졌을 때 300엔...정도?”
“에에에에에??? 300엔이라고요????? 거짓말!”
“일본은 정사원이든 아르바이트 생이든 거의 같이 대우해주잖아요..? 한국은 그 차이가 상당히 심해요.”
“시급300엔?? 그거 받고 일하라면 전 못할겁니다 하하하 음, 물가차이가 있어서 그런가”
“그렇지도 않아요, 한국물가가 많이 올라서 일본이랑 별 차이 없어요.” “쩝, 그럼 엄청 아르바이트를 해도 먹고살기 힘들겠네요”
그렇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기 생활할 정도의 돈만 벌며 인생을 즐기는 ‘프리터’라는 단어가 한국에 존재할 수가 없다.
손님이 많이 빠지고 한가했는지 스즈키씨도 잠깐 들어와서 우자와씨랑 대화를 했다. 우자와씨랑 스즈키씨랑 빠칭코를 주제로 뭔가를 이야기한거같은데 AKB라는 단어가 나온것같았다.
“AKB?”
내가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몰라요? AKB라고, 지금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우자와씨가 가르치듯 이야기했다.
“저 완전 팬이에요!”
“오옷..?” 스즈키씨랑 우자와씨가 잠깐 감탄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걔랑 얘기가 잘 통하겠구만.”
아무래도 누군가 또 AKB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보다.
“오오시마 유코를 가장 좋아합니다. 악수회도 갔다왔어요~”
“으악, 진짜요??”
“스즈키라고 다른 알바생이 있는데 그 녀석도 AKB팬이에요”
우자와씨가 말했다.
“하아, 완전 오타쿠수준이지”
스즈키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풀 네임이 뭐였더라 스즈키.....”
아까 세어 본 결과 여기 요시노야에 스즈키씨만 무려 네 명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씨라는걸 쓸대없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스즈키 나오야...?”
월요일날 잠깐 대화를 나눈 남자 스즈키의 이름을 말해보았다.
“아아아! 맞아요 그 녀석, 안경쓰고!”
....허어, 그 녀석이 AKB팬이었구나...
“어제 만났는데 AKB이야기는 못해봤어요”
“안 돼 안 돼, 위험해. 장난아니야”
스즈키씨가 남자 스즈키는 보통팬이 아니라는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솔직히 기대되었다. 공감대가 있다는건 사람관계에서 아주 좋은 것이다.
“K-POP은 어때요?” 우자와씨가 나에게 물어봤다.
“전 K-POP 별로 안 좋아해서요..” “엑? 정말요? 일본인쪽에서 보면 그건 정말 아까운데요?”
“뭐랄까, K-POP은 일반인도 부를 수 있는 노래에 의미없는 가사만 반복해서요. 듣고있으면 저게 노래인가....생각되서 별로에요”
“헤에...뭐랄까, 그건 AKB48도 다를거없다고 생각하는데”
우자와씨가 말했다.
“아니에요! AKB48의 노래를 듣고있으면 힘이난다고요. 가사부터가 –열심히 하자-, -자신을 칭찬해주자-, -두려워 말고 달려나가자!- 이런 메시지가 있어요!”
그 외에도, 취직은 일본에서 하고싶은지, 어떤일을 하고 싶은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자와 씨가 근무시간이 되어 들어갔다.
나는 손님으로 다시 들어가서 주문을 했다.
“규사라 오오모리 테이크아웃 부탁합니다.” “조 상, 마카나이로 먹으면 싸게 먹을 수 있는데~”
스즈키씨가 말했다.
“그냥 가져가서 먹으려고요.”
집에 와서 밥솥에 있는 밥에 요시노야에서 사온 고기를 얹고 거기에 날달걀을 또 얹었다. 이러면 요시노야에서 파는 규동+달걀과 똑같아진다. 완전 꿀맛이었다.
“아아아 맛있다!!”
얼마 후 밖에서 철이랑 주현이, 영은이, 광표의 소리가 나가서 나가보았다.
“밥을 몇 시간동안이나 먹은거야”
“주현이가 많이 늦게 도착해서 늦었다. 헤헤”
주현이가 한국에서 산 꼬꼬면을 주었다.
내일은 3, 4교시인데 그 3, 4교시가 지난주에 이어 또 휴강이 되었다. 즉, 내일도 수업이 하나도 없다. 내일부터 아키하바라 AKB극장에서 한정판 생사진을 판다는데 수업이 없는김에 거기나 가 봐야겠다. 그리고 다행이 내가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AKB48의 악수회가 한번 더 있는 듯 하다. 내년 2월 2일! 귀국하기 직전이다. 한번 더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다행이다. 이 악수회에 참가하기 위해 10월 31일날 발매되는 AKB48의 28번째 싱글 극장반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오오시마 유코의 악수회권은 다 팔려버린 것이다. 아, 최고 인기멤버를 좋아하는 팬은 힘들다. 어찌할지 좀 생각을 해야겠다.
오늘의 지출 – 요시노야에서 오오모리 규사라 38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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